Half a penny from the Golden Tiger RAW novel - Chapter 2
금호장의 반푼이 (1)
“공자님 기침하셨어요?”
“… 그래.”
“벽라춘(碧螺春)을 가져왔습니다. 쭉쭉 드세요!”
의식이 돌아오고 이틀이 지났다.
처음에는 믿어지지 않아 이상한 헛소리를 많이 했지만, 새로운 기억을 통해 내가 어떤 사람인지 파악했다.
지금 나에게 차를 내주며 말을 건 아이는 어린 시절부터 내 시중을 드는 소월이라는 아이고 매일 아침 따뜻한 벽라춘을 줬다.
강소성(江蘇省)의 대표적인 차답게 풍미가 좋았고 다 마신 뒤, 빈 잔을 건네주자 소월이는 두 손으로 공손하게 받았다.
“조식은 어떻게 하시겠어요? 지금 가져올까요?”
“생각이 없구나.”
“그래도 드셔야 하는데···. 그러면 공자님이 좋아하시는 고기만두로 준비하라고 할까요?”
“아니다. 지금은 걷고 싶구나.”
“네! 그러면 제가 모시겠습니다.”
소월이는 내가 걸어가자 두 걸음 뒤에서 따라왔다.
“소월아. 잠시 혼자 있고 싶으니 자리를 피해 주겠느냐?”
“아! 네. 공자님. 그러면 만두를 준비하겠습니다!”
“난 됐다니···.”
“작은 마님께 드릴 것도 준비하면 바쁘겠네요! 얼른 가겠습니다!”
소월이가 자리를 피해 주고 난 홀로 정원을 걸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인사를 했다.
전생에 부모님을 일찍 잃고 혼자 살아온 나에게 이러한 상황은 어색했다.
하지만.
더 심각한 것이 있었다.
‘25년 전이라.’
중원을 피로 물들인 정마 대전이 일어나기 25년 전으로 돌아온 거였다.
그것도 원래 내 몸이 아닌 다른 사람의 몸으로.
“하아. 이게 대체 무슨 일이냐.”
지금 내 몸은 사십을 앞둔 몸이 아니라 아직 여물지도 않은 열넷 아이의 몸이었다.
“금호장(金虎庄)의 삼남이라니.”
금호장은 강소성 남경에 있는 부유한 장원으로 전쟁 당시에는 막대한 재력으로 보급을 책임졌던 곳이었다.
전생에 부모를 사파의 손에 잃고 개방에 거둬져 자랐던 시절과 정반대의 삶, 어릴 때부터 몸이 약해 온갖 영약을 먹으며 무공을 배워온 송삼현의 몸은 균형이 잘 잡혀 있었다.
‘원래라면 그 독을 먹고 죽었어야 할 운명, 어째서 이런 상황이 된 거지. 그것도 전쟁이 일어나기 전으로.’
푸른 내음이 가득한 정원 거닐다가 연못에 서서 멍하니 잉어들을 바라봤다.
그러다가 물에 비친 모습이 보였다.
전생에 검만 쥐고 살아 상처가 가득한 얼굴이 아닌 손에 물 한 방울도 묻히지 않은 뽀얗고 앳된 얼굴이었다.
‘만약 누군가가 나에게 새로운 삶을 살 기회를 준 거라면 허송세월할 순 없다.’
전쟁이 일어나기 25년 전.
내가 할 일은 명확했다.
‘그 지옥 같은 혈겁(血劫)을 이번 삶에서는 막아내겠다.’
이번 생에는 누구보다 강해지겠다. 고금 제일의 천마를 막아내기 위해서라도.
천하제일 검 천유현, 아니 이제 금호장의 삼 공자 송삼현으로 살아갈 나의 발걸음은 내디뎌졌다.
“송삼현. 네가 꽃을 피우지 못한 삶을 내가 꽃을 피우겠다. 그러니 너무 속상해하지 말고 편히 쉬거라.”
*
금호장 대회전(大會殿).
매달 말일에 열리는 회의 때문에 대회전 안에는 여러 당주가 모여 있었다.
여러 안건이 오가며 회의가 진행됐고 상석에는 금호장주 송우태가 자리에 앉아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장강수로맹과의 계약 관계를 다시 맺었습니다. 앞으로 1년을 주기로 계약을 맺기로 했습니다.”
금호장이 운영하는 금호 표국은 장강을 중심으로 하는 거래가 많았기에 수로맹을 거치지 않고서 거래가 어려웠다.
그래서 금호장은 매년 장강수로맹과 계약을 맺어 안전하게 거래를 해왔다.
“좋습니다. 제안은 같나요?”
“네. 작년과 같은 금액을 제시했고 그들도 흔쾌히 받아드렸습니다. 이것으로 장강 길은 다시 금호장의 손에 놓인 것과 다름없습니다.”
“그렇게 처리하도록 하지요.”
“다음 안건입니다. 외총관께서 말씀해주시겠습니까.”
금호장 외총관 송광은 머리가 굉장히 좋은 사람이었다.
흰 머리에 흰 수염으로 사람들에게 ‘지백(智白)’이라는 별호로 불렸고 금호 표국의 장강 길을 개척한 자라 금호장에서 영향력이 컸다.
“섬서성(陝西省) 서안(西安)으로의 표행에 관련된 안건입니다. 출발 일은 보름 후, 진시(07~09)이며···.”
외총관은 계속해서 표행이 향하는 길과 그 길의 위험도, 보표를 하는 인원, 대략적인 기일을 상세히 말했다.
한 치의 부족함도 없는 설명에 송우태의 입가에는 호선이 그려졌다.
“알겠소. 외총관이 책임지고 일을 진행하도록 하시오.”
“알겠습니다. 장주님.”
“그리고 삼 공자는 뭘 하고 있소?”
이름이 아닌 ‘삼 공자’라는 호칭은 그가 얼마나 아들과 거리를 두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사람들은 그런 발언이 익숙한지 동요하지 않았고 의약(醫藥)을 책임지는 약당주가 대답했다.
“공자님의 몸 상태는 좋아졌습니다. 독 반응이 전혀 없고 최근에는 무공 수련을 하는 터라 면밀히 살피고 있습니다.”
이야기를 들은 송우태는 자신의 오른편에 서 있던 호법당주를 쳐다봤다.
“호법당주는 어떻게 보시오? 어릴 적부터 공자들의 수련을 봐오지 않았소.”
“일 공자는 뛰어난 무위로 이미 강호에서 풍운검(風雲劍)으로 불리고 있으니 말할 것도 없고 이 공자는 무재는 평범하나 뛰어난 지능과 근성이 있어 훗날 발전을 기대할 만합니다. 허나 삼 공자는···. 노력은 하오나 평범하여 발전이 없습니다.”
금호장의 무를 책임지는 호법당주 이윤에게 있어 삼 공자는 그저 평범한 아이에 불과했다.
여덟부터 무공을 가르치며 교두 역할을 자청했지만, 열 살 때부터 발전이 없었으며 3년을 더 가르쳐도 한 걸음을 나아가질 못했다.
이야기를 가만히 듣던 송우태가 말을 했다.
“… 그런 녀석이 갑자기 수련이라? 평소에 수련보다는 서책에 몰두하더니 별일이군.”
약당주가 다시 말을 꺼냈다.
“사고 이후에 변했다는 이야기가 돌고 있습니다.”
“변해? 그 범재가?”
“네. 말수도 줄고 시종 없이 돌아다니는 것도 파다하다 합니다.”
송우태는 가만히 말을 듣다가 말했다.
“됐소. 범도 아닌 이리가 몸에 줄을 긋는다고 범이 될까.”
아들에 대한 기대감이 전혀 없었다.
굳이 송삼현을 보지 않아도 장남인 송일현과 차남인 송이현의 재능이 충분하니.
“그러면 오늘 회의는 여기서 마치도록 하지요. 다들 수고했습니다.”
송우태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모두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예를 올렸다.
회의가 끝나고 전각을 나온 당주들은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눴고 약당주 주변으로 접객당주와 집법당주가 왔다.
“정말 삼 공자 몸에 학령초의 기운이 없단 말이오?”
“그렇소.”
“허허, 그것참 놀랍군요. 극독인 학령초를 먹고도 살아남다니.”
“내화외빈(內華外貧)이지 않습니까. 내공이 버텨주어 살아난 거겠지요.”
송삼현은 어릴 적부터 영약을 먹고 자란 덕분에 몸속에 내공은 또래에 비해 컸지만, 그것을 제대로 운용할 줄 모르고 무공의 무자도 모르니 사람들은 내적으로만 화려하고 외적으로는 평범하다며 내화외빈이라 불렀다.
“내공만 있으면 뭘 합니까. 결국, 외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반푼이 밖에 더 되겠소?”
“접객당주! 말이 과하시오! 말을 가려서 하시오!”
“내가 뭐 틀린 말을 했소? 금호장의 삼 공자가 반푼이라는 사실은 이미 강호에 퍼질 때로 퍼진 소문이 아니오.”
금호장은 중원에서 이름만 대면 알 정도로 명성이 높았다.
그러니 자연스레 금호장주 송우태의 자식에 대한 소문도 있었고 그 중, 삼 공자에겐 ‘반푼이’라는 별호가 붙었다.
무공에 재능이 없고 그렇다고 머리가 뛰어난 것도 아닌 그저 평범한 사람.
“이런 말을 하는 나도 속상하오, 괜히 대 금호장의 이름에 흠이 갈까 두렵소.”
그러니 금호장 내에서도 삼 공자를 지지하는 세력은 단 한 곳도 없었다.
*
밥을 먹은 후, 난 연무장에 가만히 앉아 운기를 시작했다.
‘이 나이에 벌써 15년 이상의 내공을 가졌다니. 약관의 나이에 어떤 경지에 있을지 벌써 기대가 되는구나.’
열넷의 나이에 이 정도 내공량은 가히 최고라 할 수 있었다.
전생에 나였다면 이 나이에 내공은 커녕 개방에서 구걸하러 다니느라 바쁠 때였는데.
“그러면 슬슬 무공을 정리해볼까.”
내공이 이 정도 받쳐준다면 성장도 빠르니 차근차근 기본을 제대로 다져야 했다.
사상누각(沙上樓閣)이 되어버리면 아무리 강해도 무너질 가능성이 크니까.
늦은 밤, 금호장의 비급서들이 모인 비각으로 갔다.
앞을 지키던 무사들이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고 안으로 들어가자 높은 선반에 서책들이 수도 없이 많았다.
‘내가 찾을 건 하나다.’
금호장의 무공, ‘유운검법’
가문의 직계들만 익히는 무공이라 일반 무인들이 읽을 수 없었고 비각 안에 있는 방 앞에는 무사들이 지키고 있었다.
“삼 공자님을 뵙습니다.”
“고생 많으세요. 안으로 들어가도 될까요?”
“네, 들어가시지요.”
오로지 직계들만 들어갈 수 있는 방.
그 안에는 유운검법을 비롯해 금호장의 역사가 고스란히 있었다.
비급서들이 모인 곳에서 유운검법(流雲劍法)이라고 적힌 서책을 발견했다.
자리에 앉아 그 책 안에 있는 내용을 읽는데 역시나 이름처럼 부드러운 초식이 많았다.
형과 식의 변화가 많았고 모든 초식이 ‘변(變)’에 집중되어 있었다.
‘구름처럼 흘러가는 자유로운 검’
이름처럼 이 말이 딱 맞았다.
내가 전생에 배운 ‘천무신검(千武神劍)’과는 다른 결이었다.
천무신검은 강한 초식들이 주를 이뤄서 파괴력을 강조하는 검이니까.
‘잠깐, 혹시 이 두 가지를 잘 조합시킬 수 있을까?’
강한 파괴력을 중시하는 천무신검에서 부족한 것은 부드러움이었고 그 부드러움을 채워줄 단서를 유운검법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뭐가 어떻든 지금은 우선 무공에 집중하자.
무공에 있어 완전한 건 없었다.
시대가 흘러가며 많은 이들의 손에 무공은 변화하고 발전하며 새로운 가르침을 준다.
그러기에 내가 집중할 것은 완전한 게 아닌 천무신검에 있어서 부족한 ‘자유로움’에 집중해야 했다.
- 검은 결국, 휘둘러서 누군가를 베어야 존재한다. 그러니 강함에 집중하라.
- 부드러움은 독이 된다. 강하고 올곧은 검일수록 부러트리기 힘든 법, 더욱 강한 검을 만드는 데 집중하거라.
일인전승 천무신검의 계승자이자 전생에 나의 사부였던 유천 사부가 했던 말이었다.
허나 사부님, 아무리 강한 검이라도 너무 올곧기만 하면 꺾입니다. 그러니 전 꺾이지 않는 검을 새로이 창안하겠습니다.
스륵.
그러기 위해 나는 비급을 꺼냈다.
‘유운검법’
‘유운심법’
이 무공의 구결은 머릿속에 있었다.
허나 그것을 잊고 새로이 구결을 정립해야 했다.
열넷의 아이가 배웠던 것과 사십을 앞둔 천하제일 검이 배운 것이 다르듯 보는 시선이 다른데 어찌 그 비급을 전부 봤다고 자부하겠나.
“역시.”
머릿속에 있던 구결을 잊고 새로이 그것을 보는데 원래 주인이 보지 못했던 내용이 눈에 들어왔다.
‘무공에 대한 이해도’
이것이 내가 천무신검을 대성에 이르러 천하제일 검으로 불릴 수 있는 재능 중 하나였다.
스륵.
방 안에는 비급을 넘기는 소리만이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