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lf a penny from the Golden Tiger RAW novel - Chapter 20
이변 (4)
어머니가 오래 살지 못할 거라는 말에 머리가 하얘졌다.
한 달?
어머니와 같이 있을 수 있는 시간이 고작 한 달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누님의 고운 손이 내 어깨로 올라오며 위로해줬지만, 마음은 쉽게 진정이 되지 않았다.
톡.
당용호의 푸른 침이 어머니의 몸 곳곳을 찔렀고 마치 그림을 그리는 듯한 신묘한 침술에 보는 이들은 입을 벌리며 놀라워했다.
침을 타고 몸 안에서 흘러나오는 독은 허공에서 연기처럼 사라졌다.
한 식경 가량 시침을 마치고 침을 회수하자 어머니의 숨소리가 안정되기 시작했다.
“영령아, 약당에 가서 이거대로 탕약을 지어오거라.”
“네! 사부님.”
독곡주는 어머니의 진맥을 살피며 독의 기운을 빼는 데 집중했고 잠시 쉬는 순간에 물었다.
“곡주님.”
“그래.”
“혹여 이 독을 쓴 이를 찾을 수 있겠습니까?”
“가능하다. 무형 무취의 독이라면 모를까, 이리 극악한 독을 썼다면 필히 몸에 흔적이 남아 있을 것이다.”
“지웠어도요?”
“보통 이들은 모르겠지만, 내 눈을 피하지는 못한다. 독은 사라지지 않고 언제나 흔적을 남기니까.”
당용호에게 독의 흔적을 찾는 건 어려운 것이 아닐 것이다.
저번 삶에서 내가 기억하기론 독의 흔적을 찾는 일은 천하에 따를 자가 없었으니까.
“부탁드립니다.”
“백년해과도 못 주고 어미를 살려주겠다는 약조를 지키지 못하였으니 부탁 정도는 들어줘야겠지.”
당용호는 어머니가 안정을 찾자 영령이에게 어머니를 잠시 맡긴 뒤에 방에서 나왔다.
밖에는 송우태를 비롯해 금호장의 모든 이들이 빼곡하게 모여 있었고 당용호는 그들을 내려다봤다.
한 명 한 명 살펴보더니 어디론가 발을 옮겼고 그가 간 곳은 청월각의 아이들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킁.
코로 무슨 향을 맞더니 당용호의 입꼬리가 올라갔고 시녀를 똑바로 응시했다.
“독을 지우려고 애썼지만, 아이야. 너는 이미 중독이 되었구나.”
청월각의 시녀 유소라는 아이였다.
불과 며칠 전까지 소월이와 눈놀이를 하던 아이로 기억하는 데 그런 아이가 어찌하여.
“저, 저는 아무것도 안 했습니다!”
“손톱 뿌리가 검게 그을리기 시작한 것은 극독 중에서도 화령신독을 다뤘을 때, 나타나는 증상이니라. 그리고 넌 아마 이틀 안에 중독 증세가 발현할 것이다.”
당용호는 시녀 유소를 물끄러미 보더니 말했다.
“이대로라면 오래 살지 못하겠구나. 독을 전해준 이들이 말해주지 않았더냐? 이리 극독을 사용하면 사용하는 이도 무사치 못할 거라는 걸?”
당용호의 말을 들은 유소의 눈이 떨렸다.
그러더니 황급히 엎드렸다.
“살려주십시오!”
이것으로 시인을 한 것이었다.
송우태의 눈에서는 불이 뿜어졌고 주변 이들도 유소와 거리를 벌렸다.
유소가 당용호의 하얀 장포를 잡고 살려달라고 애원하지만 당용호는 독으로 무고한 자를 죽이는 것을 극도로 증오하는 사람이었다.
“그냥 죽거라.”
“네?”
“사람의 생명을 그리 쉽게 앗아갈 요량으로 그랬으니 너도 그에 맞는 벌을 받아야 하는 것이 순리 아니겠느냐?”
“저, 저는···.”
유소가 말을 하려고 할 때, 내 검이 그녀의 목을 겨누었다.
당용호는 나를 보더니 웃음을 지었다.
“아무래도 내 예상보다 죽음이 빨리 찾아올 것 같구나.”
유소는 고개를 돌려 나와 눈이 마주쳤고 화들짝 놀랐다.
“삼현아!”
누님이 다급하게 외쳤지만, 나의 노기를 어그러트릴 자는 없었다.
당용호가 누님을 나에게 다가오지 못하게 했고 뭐를 하든 용인한다고 암묵적으로 동의했다.
송우태를 비롯해 금호장의 누구도 내 행동을 막지 않았다.
“고, 공자님···. 제, 제발 살려주십시오.”
소월이가 만두를 쪄오면 같이 앉아서 먹었던 아이였다.
검 수련이 끝나면 마실 것을 가져다주며 땀을 닦아주는 아이였다.
어머니를 모시고 꽃구경하러 다니던 착하디착한 아이였다.
“어찌하여.”
푹.
“네가 어찌하여 어머니에게 독을 먹였느냐.”
바닥에 엎드린 유소의 손등에 검을 찔러넣었다.
“꺄아아아아악!”
유소의 비명이 귀를 울렸지만, 검을 거둘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묻겠다. 배후는 누구더냐.”
당장이라도 목을 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으나 애써 감정을 억눌렀다.
“정말 모릅니다!”
꽉.
아예 손등을 뚫어 손바닥에서 검이 나오자 주변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커졌다.
그때 소월이가 다급하게 달려와 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공자님! 유소는 병든 부모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꾐에 넘어간 것이 옵니다! 그러니 부디 용서해주십시오!”
“…. 소월아, 비키거라. 너에게까지 화가 미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소월이는 또 무언가를 말하려다가 나를 보고선 말을 잇지 못했다.
곧 소월이의 모습이 일렁였고 뺨으로 눈물 한 방울이 떨어졌다.
난 눈물을 닦아내고 유소의 손등을 뚫은 검을 빼내며 목에 겨누었다.
“끝까지 말하지 않는다면 이 세상의 죽음 가운데 가장 고통스러운 죽음이 무엇인지 경험하게 해주겠다.”
여자와 아이를 건드리지 말라는 가르침이 있지만, 그딴 게 지금 무슨 소용인가.
유소는 손등을 타고 전해지는 고통에 바들바들 떨었고 피가 흘러나와 바닥을 적셨다.
“다시 묻겠다. 배후가 누구냐, 말을 하지 않으면 너의 가족들도 똑같이 죽임을 당할 것이다.”
“어, 어찌하여! 제 가족을 건드린단 말입니까!”
유소의 외침에 살기 가득한 눈으로 내려봤다.
“그러는 너는 왜 나의 가족을 건드렸더냐?”
두 눈이 흔들렸다.
“강호에는 말이다.”
“….”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말이 있다. 사파 놈들이 취급하는 말이긴 하지만 오늘만큼은 내가 악귀가 되어 그들의 말을 따를 참이다. 여기서 배후를 말한다면 너는 죽겠지만, 너의 가족들은 살 수 있다.”
유소는 바들바들 떨더니 입을 열었다.
“…. 금호표국 영호청 일각주께서 시켰사옵니다.”
유소의 입에서 나온 이름에 주변에 웅성거리는 소리가 커졌다.
원하는 답을 듣고서 검을 거둬들였고 소월이가 다급하게 뛰어오며 출혈 부위를 닦아줬다.
난 공포에 사로잡혀 바들바들 떠는 유소에게 말했다.
“약속대로 너의 가족들은 건드리지 않으마.”
그리고 떠나기 직전 한 마디 남겼다.
“어머니가 너를 많이 아꼈으니 너의 목숨은 어머니의 뜻에 따라 처분할 것임을 명심하거라.”
그제야 정신이 든 유소는 땅에 엎드려 울음을 터트렸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공자님. 죽을죄를 지었사옵니다. 이리하지 않으면 제 가족들을 죽인다고 겁박하여 그만···.”
“지금에서야 후회한들 뭐가 달라지겠느냐, 이 모든 것은 스스로가 만든 것이니 그에 따른 책임도 스스로가 지면 된다.”
유소는 엎드려 고개를 들지 못했고 난 검집을 바닥에 버려두고 피가 뚝뚝 떨어지는 검을 들고 걸어갔다.
내가 걸어가자 사람들은 양옆으로 갈라졌고 금호표국의 금빛 복장을 한 표사에게 물었다.
“일각주는 지금 어디 있느냐.”
*
무사들과 시녀들은 정화각으로 들어오는 송삼현의 모습에 경악하며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정화각 호위무사들은 송삼현을 막으려고 했지만, 함부로 나서지 못했다.
“뭐 하는 거냐! 정화각을 위협하면 우리가 막아야 하거늘!”
“허나 삼 공자님의 기세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접근하는 모든 이를 죽일 기세를 풍기고 있습니다.”
“그게 무슨···.”
송삼현이 정화각으로 들어오자 시녀들에게 이야기를 들은 정화 부인은 피하려고 했는지 다급하게 방에서 나왔다.
그 뒤를 집법당주와 일각주가 따라 나왔지만, 눈앞에 보이는 악귀에 아연실색했다.
뚝.
검에 묻은 피가 바닥에 떨어졌다.
소름 돋는 모습에 아무도 움직이지 못할 때, 호법당주 이윤이 금검대를 이끌고 정화각 정원에 도착해 송삼현의 앞을 막아섰다.
“이쯤에서 그만하시지요. 보는 눈이 많습니다.”
하지만 송삼현의 시야에는 호법당주가 아닌 그 건너에 있는 정화 부인뿐이었다.
목소리에 내공을 담아 내뱉었다.
“제 어미는 독 때문에 한 달 후에 죽을 것입니다. 이제야 마음에 드십니까?”
곧 송삼현의 노기 섞인 음성과 살기 섞인 내공이 피부를 찌르자 그들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 머, 멈추거라! 여기가 어디라고!”
금호표국 일각주, 영호청은 절정 초입에 이른 고수였다.
금방 기운을 갈무리한 뒤에 금검대를 뚫고 송삼현에게 검을 빼 들었지만, 송삼현의 기세에 밀려 검이 떨렸다.
송삼현은 그에게 한 걸음 다가가며 정화 부인에게 말했다.
“금호장의 그늘에서 마치 자신이 주인인 것처럼 기뻤을 것이오.”
저벅.
“이곳에 있으니 다른 이들은 자신의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오만함이 생긴 것이지.”
저벅.
“약조해 드린 대로 보여드리겠소.”
스륵.
“어미를 잃은 새끼의 분노가 어떤 것인지.”
촤악!
검을 휘두르자 영호청의 왼팔은 몸에서 떨어졌고 피가 뿜어져 나와 정화각 바닥을 적셨다.
그 누구도 반응하지 못하는 쾌검.
영호충도 팔이 베인 것을 미처 느끼지 못했고 팔이 바닥에 떨어지고 나서야 고통을 느꼈다.
“으아아아아아아악!”
그의 비명을 들은 송삼현은 얼굴에 묻은 피를 닦을 새도 없이 고통에 몸부림치는 영호충에게 말했다.
“아프오?”
“이, 이 미친놈이!!!”
일어서지도 못하는 영호충에게 주먹을 날렸다.
퍽!
“내 어머니는 더 아팠을 거요.”
퍽!
“지금도 계속 아파하고 있소.”
퍽!
“그러니 내가 어머니를 대신해 그대들에게 벌을 주는 것이니 달게 받으시오.”
정화각에 만개한 붉은 꽃처럼 정화각의 바닥에도 붉은 꽃이 만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