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lf a penny from the Golden Tiger RAW novel - Chapter 22
떠나겠습니다 (2)
“금호장을 떠나겠다?”
송삼현의 입에서 나온 말에 송우태는 당황했고 혹시나 잘못들은 게 아닌가 하고 되물었다.
“내가 제대로 들은 것이 맞느냐?”
“예.”
“네 어미를 보살피려면 약당의 힘이 필요할 것이다. 그런데도 떠나겠다고?”
약당의 힘이 아니었다면 청월 부인은 극독을 먹고 엿새를 버티지 못하고 이미 죽었을지도 모를 만큼 약당의 풍부한 약재는 청월 부인을 보살피기 위해 꼭 필요했다.
“독곡주께서 도와주시기로 하셨습니다.”
송삼현의 입에서 나온 독곡주라는 말에 송우태는 말을 잇지 못했다.
아무리 금호장의 약당이 많은 약재를 다루고 의술의 수준이 높다고 한들 독곡에 비할 바가 못 됐다.
“그래서 어미를 데리고 독곡으로 가서 지내겠다는 거냐?”
“외조부께 가려 합니다.”
“절강성 온주로 말이더냐?”
“어머니도 금호장에 계시는 것보다 그것을 원하실 것입니다.”
몇 달 전부터 청월 부인은 송삼현과 밥을 먹을 때, 외조부가 계신 온주로 가고 싶다고 여러 번 이야기했다.
봄에 그곳에 핀 꽃이 세상 그 어느 것보다도 아름답다며.
송삼현은 그 말을 떠올렸고 어머니가 죽기 전에 온주로 가서 편안하게 모시고 싶었다.
“어미를 보내면? 그때는?”
“금호장을 떠나 강호행을 해볼 생각입니다.”
“강호행? 열다섯밖에 되지 않은 네가?”
“당분간 독곡에서 지낼 것입니다. 약조한 것이 있어 그것을 지켜야 하거든요.”
“….. 삼현아, 금호장은 앞으로 네가 하고 싶은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거대한 나무가 되어줄 것인데 왜 떠나려는 것이냐?”
금호장이 어떤 곳인가.
중원 3대 장원이자 삼대가 돈을 펑펑 써도 남는다는 부유한 장원으로 중원 곳곳에 분타를 세워 영향력이 엄청난 곳이었다.
그런데 그곳의 자식 자리를 내려두고 떠난다는 건 송우태로서 쉽게 납득이 되지 않았다.
“아무리 커다란 나무라도 모든 것을 품지는 못하지요.”
그 말을 들은 송우태는 멍하니 송삼현을 바라봤다.
많은 이들은 금호장의 이름을 어떻게든 이용하려고 했다.
작금의 정화 부인 일만 봐도 금호장을 가지려고 이러한 잔혹한 일이 벌어지는 곳인데 송삼현은 금호장을 가지고 싶다는 일말의 욕심조차 내비치지 않았다.
‘이 아이가 어찌 이토록 커 보일까.’
무공의 성취가 뛰어나고 서책을 많이 봐 깨달음도 있다는 건 알고 있었으나 이토록 가슴을 울리는 말을 하는 아이라고는 평소에 생각도 못 했다.
‘…. 결국, 내 욕심으로 싹을 잘라낸 거구나. 이리도 빛을 내는 아이이거늘.’
송삼현을 보고 말했다.
“삼현아.”
송우태는 이제 삼 공자가 아닌 이름인 송삼현으로 불렀지만, 송삼현은 아니었다.
“네, 장주님.”
아버지가 아니라 끝까지 장주라고 표현하며 명확한 선을 그었고 송우태는 그것이 속상한지 한숨을 푹 내쉬었다.
허나 어쩌겠나, 이 관계는 본인이 자초한 일이었으니.
“우리의 사이가 좁혀지지 않는구나.”
“좁혀지기에는 십사 년이라는 세월 동안 생긴 틈이 너무나 큰 것이지요.”
부자 사이는 좁혀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14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파인 골은 더 이상 붙여지지 않을 만큼 벌어졌고 송삼현은 마지막으로 말했다.
“이제부터 제 방식대로 저만의 길을 갈 것입니다.”
송우태는 가만히 송삼현을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
“… 우선 네 어미를 평안히 보낸 후에 다시 이야기하자꾸나, 온주로 가는 행렬은 내가 준비할 테니 너는 어미의 곁을 지키거라.”
*
청월각으로 돌아온 나는 밖에서 약당주와 이야기를 나누는 당용호에게 걸어갔다.
“곡주님 부탁이 있습니다.”
“말해보거라.”
“제 어미가 아프지 않고 마지막을 보낼 수 있게끔 도와주시겠습니까?”
송우태에게 말할 때는 이미 말이 된 상태였지만, 아직 당용호와 이야기가 된 상태가 아니었다.
“내가?”
내키지 않아 하는 내색이나 나에겐 당용호가 거부할 수 없는 조건이 있었다.
약당주가 잠시 다른 이와 대화를 나누는 틈에 슬쩍 귓속말로 말했다.
“금선독룡.”
말을 듣더니 흠칫 놀라며 나를 흘깃 노려봤다.
“…. 그리하마.”
“감사합니다.”
“네가 금선독룡을 구해준다는 게 사실이라면 이런 것들은 아무것도 아니지. 허나 사실이 아니라면 너의 그 목숨을 취할 것임을 명심하거라.”
“네. 그리하지요.”
“그것보다 어서 들어가 보거라, 네 어미가 조금 전, 정신을 차렸으니.”
당용호의 말을 듣고 문을 연 뒤에 들어갔다.
안에서 영령이가 어머니의 옆에서 열심히 보필하고 있었고 나를 보더니, 자리를 피해줬다.
방 안에는 우리 두 사람만 남았고 난 조심스럽게 걸어가 어머니의 앞에 앉았다.
“삼현아.”
“… 네, 어머니.”
안색이 창백했고 입술은 생기를 잃었다.
그런데도 언제나 나에게 보여주던 아름다운 미소는 잃지 않고 여전했다.
“얼굴이 왜 이리 꺼칠한 것이냐.”
울컥.
당장 죽어가는 건 어머니이면서 이 순간에도 저를 걱정하시는 겁니까.
“…. 어머니의 얼굴이 더 좋지 않습니다.”
“됐다. 이리 너의 얼굴을 보니 좋구나, 바람을 쐬고 싶은데 같이 걷겠느냐?”
“네.”
어머니를 모시고 나와 조심스럽게 걸었다.
“꽃이 다 져버린 것이 아쉽다.”
어머니가 씨앗을 뿌리고 가꿔온 꽃들이 추운 날씨 탓에 모두 져버렸다.
난 어머니를 부축하며 그곳을 거닐었다.
“봄이 오면 이 청월각이 다시 꽃으로 뒤덮이겠지?”
“…. 그럴 것입니다.”
“너와 다시 한번 그 풍경을 보고 싶구나.”
어머니의 눈에는 슬픔이 있었다.
아마 자신이 오래 살지 못할 거라는 걸 알고서 하는 말 같았다.
“꼭 그리될 것입니다.”
어머니는 늘 앉으시던 돌에 앉으시곤 연못을 바라보며 말했다.
“삼현아.”
“네, 어머니.”
“유소는 너무 나무라지 말거라. 그 애도 겁박당해서 한 일이니 금호장에서 내쫓는 것으로 끝내줬으면 좋겠구나.”
어머니는 항상 온화했다.
밑에 사람이라고 함부로 대하지 않고 언제나 웃는 낯으로 지내며 주변 사람들에게 따뜻함을 주는 사람.
그런 어머니는 마지막에도 자신이 아닌 남을 생각했다.
“…. 그리하겠습니다. 어머니.”
어머니는 웃으면서 내 손을 잡아줬고 나도 마찬가지로 미소를 띠며 어머니를 바라봤다.
“이 어린 네가 눈에 밟혀 내가 어찌 떠날 수 있을꼬.”
*
금호장의 금옥은 죄인들을 가두는 곳으로 햇빛이 들지 않는 지하에 있어 습했다.
저벅.
저벅.
어둠이 깔린 금옥에는 발소리가 울렸다.
계단으로 내려가자 쿰쿰한 냄새가 맡아졌고 무사들의 인사를 받으며 더 안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걸음을 멈춘 곳은 정화 부인이 갇힌 금옥 안이었다.
꽃처럼 화사했던 고급스러운 비단옷은 얼룩이 묻어 있었고 그녀의 머리카락은 풀어 헤쳐졌다.
그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눈에는 증오심이 가득했다.
“그리 보지 마세요. 두 눈을 뽑아 죽여버리고 싶어지니.”
동정심? 그딴 건 없었다.
당장 목을 졸라 죽이고 싶은 것을 억지로 참고 있는 거니까.
나는 쪼그려 앉아 정화 부인과 눈을 마주쳤다.
“왜 극독을 그리 혼합해서 어머니에게 먹인 겁니까?”
중독 시켜서 죽일 거였으면 극독 하나만 해도 사람은 버티지 못하고 죽을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극독을 혼합한 것을 왜 그리했는지 알 수 없었다.
“… 버틸까 봐 그리했다.”
“예?”
“네가 학령초를 먹고 살아났듯이 그년도 살아날까 봐 아예 살아나지 못하게 하려고 했다.”
“….”
“원래 너에게 살모의 죄를 뒤집어씌워 금호장에서 내쫓으려고 했건만! 애초에 시녀 따위를 믿어서는 안 됐다! 모든 증거를 너의 처소에 넣었다면 지금 여기는 네가 있었겠지!”
원래 나를 함정에 빠트리려고 했었구나.
하지만 그것은 이제 달라진 이야기다.
지금 이곳에 내가 있고 저곳에 정화 부인이 있듯이.
“살려달라고 애원하세요.”
“이놈이!”
“그렇게 해서 살아서 나온다면 그때 내가 세상에서 가장 고통스럽게 죽여드리겠습니다.”
“….. 네 어미만 아니었으면 됐다. 네 어미만 아니었으면!”
“제 어미가 무엇을 잘못했습니까? 당신은 이미 금호장의 모든 것을 누리며 살고 있는데 대체 뭐가 모자란 겁니까?”
정화 부인은 금호장에서 많은 것을 누리고 살았다.
첩인 우리 어머니와 달리 정실부인인 그녀는 모두에게 인정받았고 사천성을 주름잡는 ‘유동상단’의 장녀였기에 외가의 힘도 막강했다.
이런 축복받은 환경에서 대체 무엇이 부족하길래 이리도 악독한 짓을 스스럼없이 행할 수 있는 것인가.
“금호장은 첩의 자식에게 가선 안 된다.”
겨우 이 이유 때문이었나.
자기 자식이라는 핑계를 대며 결국에는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고.
“애초에 금호장을 가질 생각은 없었습니다.”
“거짓말하지 마라! 대 금호장이다! 중원 삼 대 장원에서도 제일이라 칭송받는 곳인데 욕심을 안 부리는 것이 말이 되느냐!”
“모든 것을 당신의 잣대로 판단하지 마세요. 내가 앞으로 할 일 가운데 금호장은 그저 바람 앞에 흔들리는 등불 같은 것밖에 안 되니.”
전쟁 당시, 금호장의 이름은 중원에서 명성이 자자했지만, 그들보다 뛰어난 이들이 바다처럼 많았다.
그들은 언제나 후방이었고 뛰어난 이들은 전방에 섰다.
그런 금호장을 내가 욕심을 냈다고?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소리였다. 앞으로 내가 가는 길과 비교하면 금호장은 가는 길에 있는 돌부리에 불가했다.
“저는 금호장을 떠날 것입니다.”
흠칫.
“뭐, 뭐라?”
정화 부인은 당황한 표정이었다.
“남들이 다 당신처럼 금호장을 가지고 싶어 할지라도 저는 아닙니다.”
“….”
동공이 떨리며 당혹스러움으로 가득 찬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난 그녀에게 들릴 만큼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늘에 비십시오, 여기서 죽여달라고···. 만에 하나라도 당신이 살아서 금호장 밖으로 나온다면 제일 먼저 내 검이 당신의 목에 닿을 것입니다.”
정화 부인은 아마 일을 꾸민 이들과 죽임을 당할 공산이 컸다.
저번 삶에서 기억하는 송우태의 성격상, 도리에 어긋나는 짓을 한 이들을 무참히 죽였으니 이번에도 그리하겠지.
“내 반드시 너를 찢어발겨 죽일 것이다! 명심하거라! 죽어서 원귀가 되더라도 내 너를 죽일 것이니!”
뒤에서 정화 부인의 절규가 들려왔으나 무시하고 금옥 밖으로 걸어갔다.
그렇게.
어머니를 모시고 절강성 온주로 가는 아침이 밝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