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lf a penny from the Golden Tiger RAW novel - Chapter 25
금선독룡 (1)
금호장에서 나와 곧장 독곡으로 향했다.
어머니를 살리기 위한 급박한 길이 아닌 여유로운 길이라 천천히 주변의 풍경을 감상하고 객잔에 묵으며 강호행의 느낌을 만끽했다.
그렇게 출발한 지 오 일이 지난 오후, 독곡이 있는 만향산 앞에 도착했다.
“이곳은 두 번째 와도 적응이 안 되는 향을 풍기는 구나.”
멀리서도 풍기는 아찔한 향을 맡으며 입구 쪽으로 갔는데 사람들이 보였다.
그 앞에는 검은 옷을 입은 이들이 들어가지 못한 채,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대체! 숙부님은 왜 우리에게까지 길을 열어주지 않는 것이냐!”
“누이, 저기 누가 옵니다.”
가까이 가자 그곳에 모인 이들이 일제히 나를 바라봤고 여인은 어디선가 많이 본 얼굴이었다.
자세히 보니 내가 아는 얼굴이었다.
‘당수향이 아닌가.’
사천당가 가주 당인태의 장녀로 후기지수 중에 아름다운 미모를 가진 ‘사미(四美)’로 통하나 지독한 성격으로 독을 품은 꽃이라 하여 ‘독화(毒花)’라는 별호로 불렸다.
“저는 사천당가의 당수향입니다. 실례가 안 된다면 누구신지 알 수 있을까요?”
난 포권을 하며 말했다.
“제 이름은 송삼현이고 독곡에 볼일이 있어서 왔습니다. 사천당가의 아가씨를 여기서 이렇게 뵐 줄은 몰랐네요.”
“저를 아세요?”
“그럼요. 당 소저의 미색은 강소성에도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니까요.”
작은 미소를 짓던 당수향은 나를 살펴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소협께서는 독곡에 대한 소문을 듣지 못했나 보군요. 연기를 마시면 평범한 이는 일각도 되지 않아 죽음에 이릅니다.”
“그런데 사천당가 분들께서는 왜 못 들어가고 계십니까? 이런 독 연기쯤은 아무렇지 않은 거 아닌가요?”
사천당가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독의 내성이 일반인 보다 강했다.
그러니 지금도 버티고 있는 것이고.
“연기만 있다면 다행이지요, 허나 독 연기 안에 진법이 숨겨져 있어 진법을 만든 술사의 허락이 없으면 독 연기 속에 헤매다 죽을 거예요.”
“그렇군요.”
“아마 길을 열어주지 않을 듯싶으니 소협은 이만 내려가는 게 좋을 거 같아요. 퍼지는 향을 계속 맡다간 언제 혼절할지도 모르니까요.”
“조언에 감사드립니다. 허나 저도 그냥 돌아갈 수 없는 처지라서요.”
그들은 입구 왼쪽에 서 있고 난 오른쪽으로 갔다.
곧이어 연기 안에서 인기척이 느껴지더니 두 눈을 가린 무사 한 명이 나를 향해 왔다.
“송삼현 공자 되십니까.”
“그렇소.”
“곡주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어서 들어가시지요.”
무사가 나에게 호의적으로 말하다가 독곡 안으로 들어가자고 말을 꺼내자 당가 측에서 한 명이 나왔다.
당수향이 아니라 그녀의 동생 당만우였다.
“잠시만 기다리시오! 어찌 우리는 두고 그분만 데리고 들어간단 말이오!”
“곡주님의 명이니 전 그저 따를 뿐입니다.”
무사가 건네준 단약을 먹은 뒤에 당혹스러워하는 그들을 지나쳐 연기 안으로 사라졌다.
*
이렇게 독곡 안으로 들어온 건 모든 삶을 통틀어 이번이 처음이었다.
독 연기 때문에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무사가 나를 이끌어주지 않았다면 진즉에 길을 잃었겠지.
“얼마나 걸립니까?”
“다 왔습니다.”
무사의 말을 듣고 의아해했다.
고작 몇 걸음 걷지 않았는데 벌써 도착했다니.
입구에서 올려다본 정상은 그렇게 높더니 일각도 되지 않아 독곡 정상에 도착했다.
광활한 평지에 갖은 독초와 약초가 한데 어우러져 자라고 있었고 폭포는 한 폭의 명화처럼 잘 어울렸다.
“와.”
독 연기의 찝찝한 감촉은 온데간데없이 무슨 지상낙원이라도 온 것처럼 감탄이 나오는 절경에 두리번거리던 중, 귓가에 호통 소리가 들렸다.
“왔으면 어서 올 것이지! 왜 이리 굼뜨냐!”
당용호였다.
그를 보자마자 난 포권을 올리며 예를 갖췄다.
“독곡주님을 뵙니다.”
“예는 됐다. 금호장의 일은 다 정리하고 왔느냐?”
“예.”
“알겠다. 따라오너라.”
당용호의 뒤를 따라가다가 궁금한 게 있어 한 가지 물었다.
“한데 사천당가 사람들은 왜 독곡 밖에 세워두십니까? 배분으로 따지면 곡주님의 조카들 아닙니까?”
“보나 마나 그 망할 형님이 나를 설득하라고 보냈겠지.”
“망할 형님이라면 사천당가 가주님이요?”
“그래, 그것보다 금선독룡에 대한 이야기나 하자꾸나.”
당용호는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미간을 좁혔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 안에는 여러 독약을 연구한 자료들이 벽 곳곳에 붙어 있었고 약초 향이 진하게 났다.
의자에 앉더니 용매산에 보낸 이들이 보낸 서찰을 내게 보여줬다.
“용매산으로 사람을 보내서 길을 알아보고 있다···. 그런데 이 일에 흑사회가 연관된 것 같구나.”
“흑사회요?”
“그래, 흑사회 수색대가 그곳에서 보인다고 한다. 그들도 금선독룡을 노리는 것 같다.”
금선독룡은 일 년 후에 독마장의 손에 들어가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한데 흑사회가 어째서 용매산에 나타난 것인가.
설마 독마장이 흑사회에 의뢰해서 금선독룡을 찾고 있던 것인가?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던 때, 멀리서 발소리가 들려오더니 방 안으로 아까 봤었던 당수향이 들어왔다.
“숙부님! 저에게 이리 매정하실 수 있습니까?”
조금 전에 당용호가 무사에게 무언가 귓속말을 하더니 저들을 들여보내라는 명을 내린 거구나.
“수향아, 그냥 오는 건 좋지만, 무언가 요구할 것이 있다면 독곡에 오지 않는 것이 좋단다.”
“… 전 그냥 숙부님을 뵈려고.”
콩.
당용호는 당수향의 머리를 살짝 쳤다.
“앗!”
“고얀 놈이 어딜 내 눈을 속이려고! 나만 보려고 한 녀석이 뒤에 무사들은 왜 대동해서 왔느냐?”
“….”
“형님이 너를 보낸 것은 ‘독수비단(毒水沸丹)’ 때문이겠지.”
독수비단?
들어본 적이 있었다.
사천당가의 단약으로 죽을 만큼 고통스러움에도 내공의 폭발적인 증진을 얻을 수 있다고 하여 무학을 추구하는 이들에게는 암매매로 거래되곤 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죽음에 이르기도 해서 사라진 것으로 아는데 그게 아니었나.
“난 할 말이 없다. 독수비단을 만드는 일에는 손을 뗐으니! 나머지는 너희들이 알아서 하거라.”
“숙부님!”
당수향은 당용호가 계속해서 거절하자 어쩔 줄 몰라 했고 어떻게든 말을 이어가려고 하다가 나를 봤다.
그러더니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분은 누구예요? 왜 외부인이 독곡에 들어온 거지요?”
씨익.
“나의 오랜 염원을 풀어줄 귀인이지.”
아니 그렇게 웃지 말아요.
진짜 도망치고 싶어지니까.
“오랜 염원이요? 숙부님의 오랜 염원이라면···. 혼인?”
“예끼! 이놈아! 이 나이에 무슨 혼인이라는 말이냐! 금선독룡이다! 금선독룡! 이 녀석이 금선독룡이 어디 있는지 알고 있으니 도움을 받으려는 것이다!”
금선독룡이라는 말에 당수향의 눈이 커졌고 나를 뚫어져라봤다.
“… 진짜 어디있는지 아시는 거예요? 금선독룡이?”
사천당가 사람들에게는 거의 신적인 영물이니 이런 반응이 나오는 건 당연했다.
내 대답을 기다리는 당수향의 두 눈은 빛나기 시작했고 난 고개를 끄덕였다.
“예.”
*
흑사회.
정도를 걷는 단체인 무림맹이 있다면 사도를 걷는 단체는 흑사회가 있었다.
이기적인 사파들을 힘으로 규합했기에 흑사회의 이름은 강호 전역을 울리고도 남았다.
흑사회주가 업무를 처리하는 방에는 흑사 이견이 한쪽 눈에 안대를 한 채, 무릎을 꿇고 있었다.
“송구하옵니다!”
흑사회를 이끄는 흑사회주는 천하 삼 대 고수로 이름을 날리는 ‘암귀(暗鬼)’ 철패흉이었다.
왜소한 체구에 날카로운 인상, 그리고 그의 눈에는 생기가 없었다.
검술로는 천하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들었고 눈에 띄지 않고 적을 처리하는 암기술은 천하에서 따를 자가 없었다.
“추혼마공서를 분실했다고 했을 때는 내가 너의 눈을 팠다.”
그의 낮은 음성에는 진득한 내공이 실려 있었고 이견은 흠칫 놀랐다.
“한데 또다시 임무에 실패했으니 이번에는 무엇을 가져갈꼬.”
“다음에는 절대 실패하지 않겠습니···. 끄아아아아악!”
말이 끝나기 전에 흑사회주의 손끝에서 날카로운 암기가 나가더니 이견의 오른쪽 귀를 잘라버렸다.
그리곤 암기는 다시 흑사회주의 소매 안으로 쏙 들어갔다.
“귀를 가져가도 상관없겠지? 어차피 한쪽 귀가 있으니 듣는데 문제는 없지 않으냐.”
오만한 말투에 이견은 고통을 참으며 바닥에 엎드려 이마에 피가 날 정도로 머리를 박았다.
퍽!
“회주님의 은혜에 감읍할 따름입니다!”
“그만 나가보라, 다음에 실패했다간 귀에 이어 너의 그 팔 한 짝을 내놓아야 할 것이야.”
“존명!”
이견이 땅에 떨어진 자신의 귀를 주워서 나가자 흑사회주는 큰 의자에 앉아 아무도 없는 곳을 향해 말했다.
“천뇌.”
스르르륵.
어둠 속에서 신형이 나왔고 하얀 백발에 허리가 굽은 그는 흑사회의 머리로 알려진 ‘천뇌’ 유천기였다.
“추혼마공에 이어 용화단을 잃었소.”
“소인의 무지함 탓에 일어난 일이니, 소인의 목숨을 취하소서.”
“하하하하하! 내가 어찌 천뇌에게 그런단 말이오! 허나! 이번에는 절대 실패해서는 안 되오. 독마장에게 금선독룡을 주고 우리는 ‘독수혼공’을 받아내야 하오.”
“명심하겠습니다!”
흑사회주는 자리에서 일어나다가 말했다.
“용화단을 가져간 이들은 누구요?”
“북쪽에 사는 기마인들로 흉폭하고 잔인한 이들입니다.”
“살수대를 보내 모조리 도륙하시오, 그리고 용화단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반드시 찾아내 내 손으로 가지고 오시오.”
“존명!”
말을 마친 흑사회주는 어둠 속으로 사라졌고 천뇌는 흑사회주가 사라진 후에 방에서 나왔다.
그리고 그 앞으로 흑의인이 무릎을 꿇었다.
“현재 금선독룡 회수를 위해 파견된 흑사대에서 보고가 올라왔습니다.”
“고하라.”
“이틀 전부터 독곡이 용매산에 모습을 드러냈고 숫자는 다섯 명, 용매산으로 입산은 하지 않았고 바깥에서 길을 탐색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독곡? 천독의선이 금선독룡의 위치를 아는 것이냐?”
“자세한 것은 모르오나, 어디선가 냄새를 맡고 온 것이 아닐까 하는 우려가 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천뇌는 고민에 빠졌다.
“금선독룡의 위치 정보는 우리도 두 달 전에 간신히 알아냈다. 한데 독곡이 어찌 그 정보를 알고 용매산으로 온 것일꼬.”
금선독룡의 위치를 아는 이는 흑사회뿐이라고 자부했었다.
그렇기에 조금 여유를 가지고 찾는 중인데도 갑자기 독곡이 냄새를 맡고 왔으니 그의 머릿속은 여러 가지 생각이 충돌했다.
‘누군가 정보를 흘렸다? 아니야, 극비로 진행 중인 일이니, 이것은 확률이 낮다. 그렇다면 우리 말고도 누군가가 금선독룡의 흔적을 쫓았다는 것인데 단 한 번도 그에 대한 보고는 없었다.’
계속 머리를 굴리던 천뇌는 딱 한 가지 생각에 도달했다.
“우리 말고도 천독의선이 금선독룡을 노린다면 더는 지체할 수 없다. 인력을 늘려 용매산을 샅샅이 뒤지거라.”
“존명!”
보고한 흑의인은 신형을 날리며 사라졌고 천뇌는 바깥에 보이는 광활한 숲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거센 바람이 용매산이 있는 서쪽으로 불었고 하염없이 흔들리는 나뭇잎을 보며 나지막이 내뱉었다.
“… 천독의선, 아무래도 그대의 목숨을 취할 때가 온 것 같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