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lf a penny from the Golden Tiger RAW novel - Chapter 27
금선독룡 (3)
저번 삶에서 당수향을 처음 봤던 건 정마 대전 당시에 사천당가 사람들과 마교도를 고문할 때였다.
칼로 천천히 살을 포 뜨고 그곳에 독약을 바르며 상대가 괴로워하는 걸 웃으며 지켜보던 모습은 아직도 머릿속에 생생했다.
‘젊을 때부터 이랬구나.’
눈앞에서 흑의인을 고통에 몸부림치게 만드는 그녀를 보고 살짝 뒤로 물러났다.
당만우를 살짝 봤는데 이런 게 익숙한지 별다른 행동을 하지 않았다.
소란을 듣고 온 다른 사천당가 무사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죽은 흑의인들의 시신을 치울 뿐, 동요하지 않았다.
“어서 말하세요. 흑사회는 금선독룡을 어디까지 찾아냈나요?”
“… 퉤.”
피가 섞인 침을 뱉은 흑의인은 말할 생각이 없어 보였고 당수향은 품에서 단도를 꺼냈다.
그러더니 그의 손가락 하나를 거침없이 잘라버렸다.
“제 질문에 답을 하지 않을 때마다 손가락 하나씩 없어질 겁니다. 다시 물을게요. 금선독룡에 대해 어디까지 알고 있나요?”
“…..”
촤악!
“끄으으으윽!”
“제가 손가락 자르는 데 망설일 거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벌레들을 죽이는 것에는 아무런 감흥이 없으니.”
살기가 묻어나는 말이었다.
뒤에 이어진 고문에 버티지 못한 흑의인은 아혈이 풀린 틈에 혀를 깨물며 자결했다.
“아혈을 푸는 게 아니었어요.”
“상관없다. 어차피 고문한다고 순순히 불 녀석들이 아니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흑사회가 이렇게 대놓고 공격해 온 거라면 이후에 더 큰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을 공산이 있습니다.”
당수향은 상황을 냉철하게 파악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내일 날이 밝기 전에 미리 봐둔 곳으로 입산한다. 그리고 삼현아.”
“네, 곡주님.”
“금선독룡을 유인할 계책이 있느냐?”
“금선독룡은 습한 곳에 서식하고 다른 동물의 혈향을 좋아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니 네 명씩 세 개조로 나뉘어서 혈향을 풍기며 수색하는 게 좋을 겁니다. 이미 수색을 마친 곳은 우리들만 아는 암호를 남겨놓고요.”
“…. 수색을 많이 해본 사람처럼 말하는구나.”
“서책을 많이 보다 보니 어쩌다가 알게 됐습니다.”
“좋아, 그러면 네 개조로 수색을 하고 합류 지점은 이곳 다숭골에서 해시에 만나는 것으로 하자.”
그렇게 모든 상의가 끝나고 난 잠도 오지 않아 지붕 위로 올라가 보초를 설 생각이었으나 당수향의 목소리가 발을 잡았다.
“송 공자님!”
“… 네?”
방금까지 흑의인을 고문하던 사람이 사근사근하게 웃으며 다가왔다.
“어디 가세요? 방은 이쪽이시잖아요.”
“지붕 위에서 보초를 설 생각이니 먼저 주무시지요. 방도 모자라서 다 같이 자지 못합니다.”
그 말을 한 뒤에 지붕으로 올라갔다.
밤하늘에 달이 구름에 살짝 가려진 풍경은 자연스레 시선을 끌었다.
구경하고 있는 것도 잠시, 지붕 위로 당수향이 올라왔고 내 옆에 앉아 객잔에서 가져온 만두를 건네줬다.
“아까 저녁도 별로 안 드셨잖아요.”
“아까 흑의인의 손가락을 거침없이 자르던 모습이랑 상반되어 혼란스럽네요.”
“그, 그건 잊어주세요. 적들을 고문할 때는 그러는 것이 사천당가의 법도라서···.”
진짜 사람이 이렇게 달라질 수 있는 것인가.
아까는 접근하는 이를 모두 죽일 것 같은 독화였다면 지금은 그저 독은 없고 향기만을 머금은 꽃 같았다.
“그나저나 오늘따라 달이 정말 예쁘네요. 구름에 가려진 것이 제법 운치가 있습니다.”
“말을 잘 돌리십니다?”
“…. 그냥 잊어주시고 만두 좀 드세요.”
방금까지 살기를 풍기던 여인은 온데간데없고 지금은 달빛을 즐기는 평범한 여인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혹시 실례가 아니라면 부탁 하나만 해도 될까요?”
“뭐를요?”
“백독불침이라고 들었는데 이 일이 다 끝나면 제가 만든 독단 하나만 드셔보실래요?”
만두 먹다가 체하는 줄 알았다.
“독단을 무슨 어린 애한테 당과 주듯이 말하네요?”
“사천당가에서는 어릴 때부터 독 내성을 키우기 위해 여러 독약을 먹으면서 자라거든요. 그래서 당과보다는 독단이 더 친근해요.”
“그래도 독단은 싫습니다.”
“제가 당과도 사드리겠습니다.”
“당과랑 독단이랑 같습니까?”
“쓴 거를 먹으면 단 게 당겨서 의외로 궁합이 잘 맞습니다.”
이게 무슨 대화지.
*
용매산은 일반 산들과 달리 옆으로 쭉 늘어진 산맥이 장관이었다.
그 산맥은 왼쪽 끝에서 오른쪽 끝까지 족히 걸어서 삼 일은 걸리는 거리였다.
“어제 말한 대로 네 개조로 나눠서 수색한다. 흑사회와 교전을 최대한 피하고 은밀하게 이동하는 것에 집중하거라.”
당용호의 말에 어젯밤에 이야기한 대로 송삼현은 당수향과 같은 조가 되어 미리 알아둔 샛길을 통해 용매산으로 입산했다.
“흑사회가 뒤를 밟을 우려가 있으니 흔적을 지우면서 가시지요.”
당가 무사들은 흔적을 지우는 일에도 뛰어났다.
송삼현이 슬쩍 뒤를 봤는데 정말 지나온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을 만큼 깔끔했다.
동물들도 눈치채지 못하도록 조용히 이동했고 올라가면서 그들이 살펴본 곳은 총 두 군데였다.
폭포가 있는 옆 계곡.
커다란 나무 옆에 있는 구덩이.
허나 발견된 것은 없었다.
내공을 흘려서 주위 환경에 집중했으나 피부로 느껴지는 것은 다른 동물들의 움직임뿐이었다.
금선독룡은 아무리 좋아하는 먹이라도 주변 환경이 달라졌으면 오지 않는 경향이 있었기에 여러 번 자리를 옮겼다.
그러다가 나무 위에서 사사삭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고 모르는 척 앞만 봤다.
‘벌써 뒤를 잡힌 건가? 대놓고 오지 않는 걸로 봐서는 우리의 동태를 살피는 거군.’
그렇게 일각이 지나자.
“멈춰라.”
나무 위에서 신형이 내려왔고 그들은 어젯밤 본 흑의인들이 아니었다.
자세히 보니 그들이 허리에 찬 검집은 짙은 검은색이었고 눈에는 살기가 가득했다.
“… 흑검대인가.”
“한 번에 우리를 알아보다니 놀랍구나.”
총 세 명이었다.
하나같이 무시무시한 살기를 내뿜었고 적어도 절정 이상의 고수들로 보였다.
그들의 경지를 가늠해본 송삼현은 당수향에게 말했다.
“당 소저, 이 길로 쭉 올라가면 곡주님이 말씀하신 다숭골이 있으니 올라가십시오.”
“네? 당신은요! 제 독단으로 연기를 펼치면 같이 도주할 수 있습니다!”
“연기는 최후의 수단으로 남겨둬야 합니다. 그러니 어서 가세요.”
스릉.
송삼현은 검집에서 검을 뽑아 세 명의 흑검대원에게 겨누었다.
흑검대는 적어도 스무 명 이상이 모인 집단이라 적어도 열 명, 그 이상이 와 있을 수 있으니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어서 당용호와 합류를 해서 흑검대가 왔으니 다른 대안을 찾아야만 했으니까.
“… 꼭 오세요. 다숭골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그리하겠습니다.”
당가 무사들과 당수향이 단숨에 보법을 밟으며 올라가기 시작하자 흑검대 삼 인이 검을 뽑아 송삼현에게 달려왔다.
정확히는 당수향과 당가 무사를 노리는 것이었다.
그들이 펼치는 진은 삼검진으로 세 명의 검객이 능히 열 명의 무인을 상대하는 검진이었고 송삼현은 그들의 앞을 막아 운무빈첩을 펼쳤다.
검이 살아있는 것처럼 꿈틀거리며 흑검대의 검을 튕겨냈다.
챙!
챙!
챙!
그들의 검을 다 튕겨낸 후에 자세를 잡았고 흑검대원 중 한 명이 송삼현을 보며 말했다.
“예사 놈이 아니구나.”
삼검진을 막아내는 고수들은 있었어도 어린 검객이 막아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기에 그들은 적잖이 놀란 기색이었다.
“이리 난리를 피운다면 금선독룡은 모습을 감춰 나타나지 않을 거요. 이러면 그대들이나 우리나 얻을 게 없어보이는데 어찌 이런단 말이오?”
송삼현의 말에 조장으로 보이는 이가 말했다.
“금선독룡의 회수는 수색대 놈들이 알아서 할 일이지, 우리는 너희들을 죽이는 임무에만 충실하면 된다.”
송삼현은 검에 내공을 흘려 검막을 만들었다.
‘지체할 틈은 없다. 단숨에 꺾어야 한다.’
그들은 삼검진을 펼쳤고 사방에서 소용돌이처럼 몰아치는 검에도 당황하지 않고 운무빈첩을 펼치며 막아냈다.
왼쪽, 정면, 오른쪽.
계속해서 검이 들어왔고 송삼현은 검막을 두른 검으로 튕겨내며 뒤로 일곱 장 정도 물러난 뒤에 검을 왼쪽 허리로 보내 자세를 잡았다.
“이놈!”
왼쪽에 있던 흑의인이 송삼현의 정면으로 뛰어들었으나 송삼현은 차분하게 검을 휘둘렀다.
검로를 읽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상대의 몸이 돌아가는 방향, 검을 쥔 손, 시선이 향한 곳.
그렇기에 흑의인이 휘두른 검은 송삼현을 스치지도 못했고 송삼현의 검이 그를 덮쳤다.
‘좌하단에서 우상단으로.’
촤아아아악!
‘그리고 우상단에서 좌상단으로.’
촤아아아악!
‘좌상단에서 우하단으로.’
촤아아아악!
세 번의 검격으로 그의 옷은 찢겼고 무참하게 베어져 피가 흘러나오며 쓰러졌다.
‘평범한 검인데도 도저히 예측할 수가 없을 만큼 예리하군.’
검으로 밥을 벌어 먹고사는 그들은 매일 같이 혹독한 수련을 거치며 흑검대가 될 수 있었다.
매일 같이 살검을 받는 게 일상인 그들에게도 방금 그 검은 눈으로 쫓을 수 없었다.
생각하는 것도 잠시, 송삼현이 유운보를 펼치며 거리를 좁혀왔다.
탓.
“조장! 옵니다!”
이번에는 송삼현의 차례였다.
그는 부드러움의 묘리가 담긴 유운검법의 초식으로 그들을 몰아세웠다.
검이 춤을 추며 예측하지 못하는 곳으로 들어왔고 피하려고 하는 순간에 덮쳐오는 날카로움은 마치 한 마리의 매가 먹이를 낚아채는 것처럼 치명적이었다.
‘대체 무슨!’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것으로 보였으나 그 안에는 정묘함이 숨겨있었다.
유운검법의 묘리가 제대로 담긴 검에 흑검대는 밀렸고 조장은 가까스로 송삼현의 검격을 막으며 외쳤다.
“뒤로!”
조장의 말에 그들은 일제히 거리를 벌렸다.
일각이 채 되지 않은 시간에 여러 합을 나누었지만, 송삼현은 밀리는 기색이 없었고 흑검대의 호흡은 거칠어졌으나 송삼현의 호흡은 아직 안정적이었다.
스윽.
그리고 다시 자세를 잡았다.
이번에는 전에 연습했던 초식을 시험해 볼 심산이었다.
“얼마 전에 깨달은 것이 하나 있소.”
“뭐라?”
“구름은 형체가 없소. 형체가 없는 것에서 형체를 찾으려고 하니 한 걸음 나아가질 못한 거요.”
송삼현은 끊임없이 천무신검에 유운검법의 묘리를 어떻게 접목시킬까하는 고민을 했었다.
그렇게 고민을 거듭하던 어느날.
연무장에 비가 내렸었다.
떨어지는 비를 보고 스스로 창안한 초식.
‘… 이게 뭐란 말인가, 약관도 되지 않은 어린아이가 내뿜는 내공이라고?’
송삼현의 몸에서 내뿜어지는 기운에 흑검대는 압도됐다.
“내가 잠시 잊고 있었소, 검이란 화려하든 화려하지 않든 결국, 사람을 베는 것에 중점을 둬야 한다는 걸.”
뚝.
뚝.
흑의인들의 눈에는 화창한 하늘이 갑자기 어두워지며 비가 내리는 것처럼 보였다.
이것은 그들에게만 느껴지는 환영이었다.
‘환영?’
분명히 환영이었으나 그들에게는 실제처럼 비의 향도 맡아지고 감촉도 느껴졌다.
송삼현의 내공에 압도되어 완전히 기선을 빼앗긴 거였다. 빗방울에 녹아든 송삼현의 검이 빛나기 시작했다.
‘검기?’
검기가 점점 변해갔고 조장으로 보이는 이가 송삼현의 검에서 느껴지는 기운에 화들짝 놀랐다.
‘사휘도님의 검과 비슷하다.’
송삼현의 검에 둘러진 검기, 아니 그것은 검기보다 더 정순한 기운이 담긴 검강(劍罡)이었다.
‘초절정에 올랐단 말인가!’
빗속을 뚫고 하늘로 승천하는 용 한 마리가 그들을 덮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