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lf a penny from the Golden Tiger RAW novel - Chapter 3
금호장의 반푼이 (2)
꼬박 이틀에 걸려 유운검법에 관련된 비급을 모두 읽었고 그 외에도 새로운 비급서들을 닥치는 데로 읽었다.
전에도 모르던 비급서들이 있어서 나름 재미있었다.
금호장의 일반 무인들이 배우는 ‘낙수검(落水劍)’, 긴급 표물 수송을 위한 ‘속표대(速鏢隊)’의 경공인 ‘와소보(鼃逍步)’까지 전생에 내가 모르던 무공을 하나둘씩 알아갔다.
‘그러면.’
내가 해야 할 것은 천무신검과 유운검법을 하나로 합치는 데 집중하는 거였다.
두 가지 모두 정파의 무공이라 두 가지를 익히는 데 무리는 없었지만, 두 가지의 다른 무공을 한 가지로 합치는 것은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혹여 잘못되면 주화입마(走火入魔)에 빠져 폐인이 될 수 있으니까.
‘섣부르게 하지 말고 우선 두 가지 무공을 모두 대성을 이루고 시작해도 늦지 않겠지.’
유운검법은 천무신검만큼 강한 무공은 아니었지만, 계속해서 발전이 가능한 상승 무공이었다.
그것의 기본이 되는 유운심법 또한 단계가 명확하고 안정성이 있어 익히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
이 몸으로 유운심법을 운용했던 흔적이 있으니 그 길을 찾는 건 쉬운 일이었다.
스르르르륵.
그때였다.
눈앞에 이상한 글귀들이 허공에 나열됐고 그것은 ‘천무신검’과 ‘유운검법’의 구결들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나열된 구결, 도저히 믿을 수 없는 형상에 입을 떡 벌렸다.
“……”
방금 읽은 유운검법의 구결은 그렇다 치더라도 사부님께 그저 말로 이어받은 천무신검의 구결까지 보인다니 믿기지 않았다.
천무신검은 서책이 아닌 말로써 전승되는 비밀스러운 무공이었으니까.
‘이해할 수 없는 일들만 일어나는구나.’
가만히 응시하다가 고개를 젓고 유운검법에 집중했다.
‘구결 자체는 단순하지만, 그 안에 다양하게 변화하는 초식들은 쉽게 익힐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만약···. 이걸 다 익힌다면 능히 화경의 경지에 오를 수 있을 터.’
자리에 앉아 있다가 일어나서 첫 번째 초식을 구사했다.
‘구름처럼 유연하게 뻗어라.’
모든 초식의 근간이 되는 첫 번째 초식은 유운검법의 18개 초식과 모두 연관이 되어 있었다.
그 뒤에도 여러 초식들을 보며 동작 하나하나 공부했고 반나절이 지나자 누군가 방문을 두드렸다.
“공자님, 강 무사입니다. 안에 계십니까.”
방문을 두드린 사람은 내 호위무사인 강승유였다.
비급을 정리한 뒤에 나가자 강승유가 포권지례를 올렸다.
“작은 마님께서 찾으십니다. 이만 가시지요.”
“알았다.”
비각을 나와 내가 지내는 전각으로 걸어가자 강승유가 넌지시 물었다.
“전과 많이 달라지셨습니다.”
“죽다 살아났는데 전처럼 살 수는 없지 않으냐. 살려면 달라져야지.”
그 말에 강승유의 입가엔 호선이 그려졌다.
*
송삼현(宋三賢).
그 이름은 금호장에서 큰 영향력이 없었다.
금호장의 삼남이지만, 다른 형제들과 달리 자신만 다른 어머니의 밑에서 태어난 것이 그 이유였다.
다른 형제들의 어머니는 정실부인인 정화부인이고 송삼현의 어머니 장유련은 첩이었다.
그것도 금호장에서 허드렛일을 하던 시녀였기에 무시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첩의 자식.’
송삼현에게 이런 꼬리표는 당연했다.
그럴수록 아버지라는 존재가 옆을 지켜야 했는데 아버지 송우태도 발길이 줄었고 지금은 뚝 끊어졌다.
‘… 14년 동안 나만을 보고 사신 어머니라.’
그렇기에 어머니가 의지할 곳은 나뿐이었다.
같이 석식을 먹는데 어머니는 생선 살을 발라 내 밥 위에 올려주셨다.
전생에서는 밥을 빼앗길까 봐 걱정하던 삶에서 이제는 누군가가 나에게 밥을 챙겨주는 삶이라니 괜히 울컥했다.
“미안하구나. 어미가 매우 부족해 너에게 늘 참고 살라는 것만 가르치니···.”
어머니의 눈가에는 눈물이 번졌다.
“전 지금도 만족하며 살고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어차피 무시 당하는 건 익숙했다.
전생에 내가 무공으로 이름을 날리지 않았다면 아마 죽을 때까지 무시당하는 삶을 살았을 거다.
그랬는데 이 정도 무시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그때와 달리 지금은.
후루룹.
맛이 좋은 음식이 함께하니까.
“힘들고 고되더라도 버티거라. 누가 뭐라 해도 넌 금호장의 아들이다. 그 점을 명심하고 살거라.”
“네, 그렇게 할게요.”
나보다 어머니가 더 힘들 거다.
아무도 찾아주지 않는 전각에서 하루하루 늙어가고 계실 뿐이니까.
굳이 이 가문에 미련은 없었다.
하지만 송삼현의 몸에 들어오고서 어머니가 자신에게 얼마나 지극정성인지 몸이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서 떠날 때 떠나더라도 어머니만큼은 잘살게 해드리고 싶었다.
저번 삶과 통틀어 나에게 유일한 어머니니까.
‘송삼현도 그걸 바라겠지.’
*
한 달은 금세 흘렀다.
“삼현아!”
난 거의 연무장에서 살았고 오늘도 땀을 흘리며 수련에 열중했다.
잠시 쉬는 순간에 해맑게 내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내 누님인 송연화였다.
올해 17세가 된 그녀는 여러 가문에서 혼담이 올 정도로 미모가 상당했다.
“누님 오셨어요.”
그리고 어린 시절, 자기는 무에 재능이 없으니 몸이 약한 동생이 먹고 강해졌으면 하는 마음으로 그 많은 영약을 챙겨준 사람이기도 했다.
“자, 이거 먹거라. 작은어머니께도 드리고.”
송연화가 건네준 것은 꿀떡이었다.
“늘 감사해요.”
“감사는 무슨! 우리는 남매잖아, 남매!”
이 가문의 자식들을 참 특이했다.
우선 장남이자 훗날 송우태의 뒤를 이어 금호장주가 될 송일현은 풍운검이라 불리며 절정 수준의 무위를 지닌 후기지수였다. 전쟁 때는 금호장주 송우태의 곁에서 보급을 책임지며 많은 공을 세웠다.
둘째인 송이현은 무위는 평범했으나 머리가 좋아 향시에도 급제할 정도였다.
약관이 되면 궁으로 가 관직을 할 거라는 소문이 무성했지만, 전쟁 때, 금호장의 군사로 활약하며 마교의 천라지망을 뚫고 보급을 최전방에 있던 부대에게 전해 인정을 받았다.
그리고 유일한 여식인 송연화는 미모는 강소 제일이었고 머리 회전이 뛰어나 남자로 태어났다면 일찌감치 관직 길에 올랐을 거라는 소문이 무성한 사람이었다. 훗날 남궁세가의 소가주와 혼인을 올려 금호장과의 관계를 돈독하게 만들어줬다.
그들에 비하면 난···. 어휴. 평범한 범재,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누님, 저랑 이렇게 있는 거 알면 장주님이 또 혼내실 겁니다.”
송우태는 이 집안에서 나를 철저하게 고립시켰다.
그래서 나를 만나러 오는 송연화는 올 때마다 송우태에게 불려가 혼이 나곤 했다.
지금도 장원 곳곳에 있는 암부(暗部)가 지켜보고 장주에게 보고하겠지.
“너 또 아버지께 장주님이라 한다?”
“….. 아버지라는 소리가 잘 안 나와서요. 그리고 장주님께 아버지라고 했다가 혼나기만 했잖아요.”
어린 시절 기억에 아버지에 대한 좋은 기억이 없었다.
무엇을 가지고 싶다면 알아서 사라고 하고 아무것도 사주지 않았다. 다른 자식들은 가지고 싶지 않다는 것도 잘만 사주며 차별했다.
‘어머니는···.’
변변한 외가도 없고 외가 쪽이 농사를 짓는 평범한 집안이니 발언에도 힘이 실리지 않았다.
“그래도 삼현아, 아버지 좋으신 분이니 너무 미워하지 말거라. 아버지가 거두는 입만 해도 수천 명에 이르니까.”
금호장이 대단한 건 안다.
그래도 자기 핏줄에게 이런 대우는 정말 너무한 거 아닌가?
뭐.
아무렴 어떤가.
이제 내가 송삼현으로 살게 되었으나 이 가문에 미련이 없으니 굳이 무시당한다 해도 나도 똑같이 무시하면 됐다.
어차피 열여덟 살이 되면 이곳을 떠나 강호행을 할 생각이니까.
그래도 그 전에 한 가지 확실하게 해둘 것이 있었다.
“… 누님. 부탁이 있습니다.”
“응? 뭔데! 삼현이가 나한테 부탁이 있다니!”
“훗날 제가 갑자기 사라지더라도 저희 어머니를 챙겨주세요. 제가 다시 돌아올 때까지요.”
그건 어머니의 안전이었다.
진지한 말에 송연화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고 옅은 미소를 지었다.
“어릴 때랑 똑같네.”
“네?”
송연화는 방긋 웃었다.
“네가 5살 때였나? 그때도 작은어머니가 울고 있는 걸 보고 나에게 그러지 않았더냐. 어미가 꿀떡을 좋아하니 따뜻한 벽라춘과 가져다드리라고.”
너무 어릴 때라 그런지 그때의 기억이 흐릿했다.
“삼현아.”
“네. 누님.”
“작은어머니는 너무 걱정하지 말거라. 내가 잘 보살펴 드릴 테니 너는 네가 하고자 하는 걸 하렴. 그래서 아버지 코를 납작하게 해드리거라.”
송연화는 그야말로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 같았다.
“자, 아~”
꿀떡을 집어 입에 넣어주는 걸 받아먹었다.
전생에는 하루하루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을 쳤었다.
나에게 느긋함이란 사치였는데 그래도 잠깐은 이런 것도 나쁘지 않은 거 같구나.
“공자님! 여기 계세요? 아! 아가씨께서도 계셨군요!”
“그래, 무슨 일이더냐.”
“일 공자께서 돌아오셨습니다!”
풍운검 송일현.
금호장의 장남이 일 년의 강호행을 끝내고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