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lf a penny from the Golden Tiger RAW novel - Chapter 31
용매산을 떠나라 (3)
깊은 산속, 하늘을 나는 새처럼 허공답보를 펼치며 용매산을 떠나는 검마의 등에 사휘도가 업혀있었다.
잠시 후, 용매산을 거의 빠져나올 때쯤 사휘도가 정신을 차렸다.
“사부님.”
“이제 일어났느냐?”
“… 독단으로 움직여 죄송합니다.”
“미련한 놈, 내가 용매산으로 오지 않았다면 넌 용매산에서 죽었을 거다.”
검마의 꾸지람에 사휘도는 손을 슬쩍 들어 자신의 왼쪽 목에 가져다 댔다.
지혈된 상태였으나 상처가 느껴졌다.
‘마지막에 들어온 일격은 날카로웠다. 내가 뒤로 살짝 피하지 않았다면 목이 그대로 베어나갔겠지.’
분명히 실력에서 앞선다고 생각했으나 마지막에 송삼현이 펼친 초식을 떠올리며 주먹을 떨었다.
천 개의 검 뒤에 숨겨둔 진짜 검.
만약 검마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그곳에서 죽었을 거라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분하더냐?”
그 떨림을 인지한 검마가 넌지시 묻자 사휘도는 끄덕였다.
“… 네.”
“그 분함과 무력함을 잊지 말거라, 그렇게 한 걸음 나아가면 그다음은 네가 이길 수 있을 것이니.”
검으로 무학의 끝을 목표로 하는 사휘도에겐 처참한 패배였다.
“그 녀석의 무공은 예사롭지 않았다. 나중에 확실하게 되갚아주려면 지금보다 곱절은 노력해야 할 것이야.”
“네.”
사휘도는 송삼현과 싸웠던 걸 떠올렸다.
천무신검과 유운검법의 묘한 조화, 그리고 마지막에 뻗은 일격에 죽을 뻔한 것까지.
머릿속에 세세하게 송삼현의 움직임이 떠올랐다.
‘다음번에 만나면 내 검이 너의 목을 떨어트릴 것이다.’
그리고 살짝 뒤를 돌아보는데 거대한 화마가 산을 삼키고 있었다.
“불이군요.”
“흑사회 수색대 놈들이 흔적을 지우려고 하는 것이지. 괜히 이곳에서 소란을 피웠다간 정파 놈들이 가만히 있을 리 없으니까.”
불타는 산을 뒤로하고 검마와 사휘도는 허공의 점이 되어 사라졌다.
*
푹 자고 일어나보니 처음 보는 방 안이었다.
하아.
누워서 천장을 보니 안도감이 들었고 다 끝났다는 게 이제야 실감이 났다.
머릿속에선 싸움의 잔상이 펼쳐졌고 마지막에 사휘도에게 베인 왼쪽 팔을 보는데 통증이 전혀 없었다.
‘천이랑 약재 냄새? 곡주님이 치료해주셨나 보구나.’
곧이어 방문이 열리더니 당수향이 약이 든 그릇을 가지고 들어오다가 나를 보곤 웃음을 지었다.
“어? 일어나셨어요?”
“… 여기가 어디입니까?”
“안양입니다. 밤이 늦어 하루 묵고 가려고요.”
“흑사회의 추적은요?”
“더는 오지 않아요. 흔적을 지우려고 용매산에 불을 질렀으니 철수한 것으로 보여요.”
불을 질렀다면 흑사회도 용매산에서 손을 털고 떠난 것이었다.
“더구나 화산의 도사님들도 동행하고 계셔서 더는 접근하지 못할 거예요.”
“화산파요?”
“예, 초작에서 나오는 길에 화산파의 도사님들과 조우했습니다. 다행히 가는 길이 같아 동행을 하고 있고요.”
화산파와 동행하는 거라면 흑사회가 섣부르게 접근하지 못할 터이니 다행이구나.
“내 검이···. 아, 부러졌지.”
검이 부러진 것이 기억나며 배가 얼얼했다.
검마의 장법에 맞은 터라 내상도 조금 있었고.
“검은 나중에 생각하고 우선 몸 상태를 확인해볼게요. 손 줘보세요.”
당수향은 내 손목을 잡아 진맥을 봤다.
“외상은 많이 다스렸으나 내상은 운기조식으로 다스려야 합니다. 제가 호법을 서 드릴 테니 천천히 하세요.”
“고맙습니다.”
“감사 인사는 저희가 해야지요. 송 공자 덕분에 많은 위기에서 벗어나 이리 올 수 있었습니다. 사천당가를 대표해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사실 용매산에서 내가 없었다면 사천당가 사람들은 큰 피해를 보았을 거였다.
흑검대, 금선독룡, 흑사회 추적대, 마지막에 이르러 검마의 제자 사휘도까지 상대한 내게 당수향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의 예를 표했고 난 미소를 머금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리 신경을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게 운기조식으로 내상을 다스렸다.
검마의 장법에 기혈이 뒤틀리긴 했으나 침착하게 혈을 안정시켰다. 그렇게 한 시진이 지나고 운기조식을 끝내자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우리를 호위해주시는 분들이에요.”
문이 열리더니 매화 문양이 새겨진 하얀 도복에 허리춤에 검을 파지한 도사들이 들어왔다.
난 그들을 보며 포권을 올렸다.
“송가 삼현이 대 화산의 도사님들을 뵙습니다.”
남자 세 명과 여자 두 명의 화산파 도사들이 내게 포권을 하며 예를 표했고 슬쩍 경지를 가늠했다.
한 명은 초절정, 남자 한 명과 여자 한 명은 절정, 남은 두 명은 일류구나.
“나는 화산의 유산해일세.”
사십 대로 보이는 자가 다가와서 인사를 했고 난 포권을 취했다.
“산화검을 뵙습니다.”
“나를 아나?”
“검학을 걷는 이들 가운데 산화검을 모르는 이들이 없지요. 삼 년 전에 석가장에서 아이를 잡아 먹는 악귀를 처단한 일은 어린아이도 알 만큼 유명하지요.”
유산해는 차기 화산의 오 장로 중 한 명이 될 자이니 이리 안면을 터서 나쁠 건 없었다.
“이리 도움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어차피 무림맹으로 가는 길이니, 가는 길에 동행하는 것이라 여기면 된다. 한데 송가 라면 금호장과는 어떤 관계지?”
“금호장의 삼 공자였지요.”
“.. 였다라? 그러면 지금은 아니라는 건가?”
“홀로서기 중입니다.”
“천하제일의 장원이 될 곳을 두고 홀로서기라 어린 나이에 대단한 친구를 만났군.”
유산해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중에 뒤이어 당용호가 방으로 들어왔다.
“몸은 괜찮더냐?”
“곡주님의 보살핌 덕분에 금방 기운을 차렸습니다.”
당용호는 옆에 앉더니 내 이마에 손을 올렸다.
그리곤 나를 다시 눕혀 침을 꺼내 몸 곳곳에 시침했다.
신묘한 시침 덕분에 몸이 가벼워졌다.
“그나저나 넌 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놈이냐? 아직 열다섯밖에 되지 않은 나이에 초절정에 이르고 그 검마 늙은이의 공격도 막아내다니.”
당용호의 입에서 나온 말에 화산파의 도사들은 모두가 놀랐다.
초절정이란 아무리 뛰어난 고수라도 서른이나 마흔이 되어서야 이룰 수 있는 경지인데 열다섯의 어린아이가 이르렀다고 하자 쉬이 믿어지지 않았다.
“… 열다섯에 초절정에 이르렀단 말입니까?”
“어찌 그런 일이.”
“믿을 수가 없습니다.”
화산파의 제자들은 서로를 보며 놀란 표정을 지었고 유산해는 침착하게 나에게 물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몸을 한 번 살펴봐도 되겠나?”
“예.”
산화검은 내 등에 손을 가져다 대며 내공을 흘려 몸속을 살폈다.
나쁜 의도가 아니라 궁금해서 그러는 것이니 굳이 막지 않고 살펴볼 수 있도록 해줬다.
그러자 점점 눈이 커졌다.
“어찌 이리 정순한 내공을 쌓았을꼬, 이 나이에 일갑자의 내공이라니.”
“운이 좋았습니다.”
“강호에서 운은 곧 실력이라는 말이 있다. 그리 겸양을 떨 필요는 없단다.”
유산해는 기운을 갈무리했고 난 옷매무새를 정돈한 뒤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당수향이 놀랐다.
“어딜 가시려고요?”
“검이 필요합니다. 이대로 다시 흑사회 놈들이 추격해온다면 맨손으로 상대할 수는 없으니까요.”
언제 또 흑사회가 습격할지 모르니 검을 사야 했다.
“저희가 있으니 그리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화산파 제자의 말에 웃으며 대답했다.
“아, 제가 검이 옆에 없으면 좀 불안한 체질이라서요.”
“그러면 저랑 같이 나가요.”
“네? 저 혼자 다녀와도 됩니다.”
“같이 가시지요?”
당수향은 웃음을 지으며 말하지만, 그 안에는 묘한 살기도 느껴졌다.
같이 안 가면 직접 만든 특제 독단을 먹여준다는 그런 느낌이었다.
“….가시지요.”
*
우리는 저자로 나와 길을 걸었다.
당수향은 내 옆에서 걸었고 화산파에서도 우리들의 호위로 주충연이 따라왔다.
화산파의 이대 제자인 그는 절정 경지에 오른 무인이었고 투박하면서도 남자답게 생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주충연 소협이라 하셨지요?”
“그렇습니다.”
“시장하실 텐데 국수 한 그릇 드시지 않겠습니까?”
“좋습니다.”
근처 객잔에서 국수를 시켜 간단히 요기하는데 작은 소란이 일어났다.
꼬질꼬질한 차림의 어미와 아이가 나란히 들어와 국수 한 그릇을 먹으려는데 점소이가 막았다.
“글쎄 안 된다니까요?”
“딱 한 그릇이면 됩니다···. 어떻게 안 되겠습니까?”
객잔 안에는 많은 이들이 있었다.
이곳이 안양에서 제일 큰 객잔이라 앉을 자리가 없었고 딱 한 자리뿐이었다.
그래서 점소이는 한 그릇을 시킬 저들을 받을 바에야 다른 손님을 받아 이익을 챙기려고 했다.
“죄송합니다.”
점소이가 냉정하게 뚝 끊어내는 것을 보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딜 가시려고요?”
“돈 좀 쓰러 갑니다.”
내가 간 곳은 점소이랑 아이와 어머니가 있는 곳이었다.
그들은 막 나가려고 했고 난 그들의 팔을 잡아 비어있는 자리에 데려다가 앉혔다.
내 행동에 점소이가 우물쭈물하는데 그녀를 보고 말했다.
“내가 이들의 것까지 계산할 테니 원하는 음식을 내어주시게.”
“네?”
“아이야, 먹고 싶은 것이 있느냐?”
고작 다섯 살밖에 안 되어 보이는 아이였다.
아이는 어미의 눈치를 보더니, 고개를 저었으나 난 아이의 눈이 향하는 곳을 봤다.
그곳에는 회과육과 만두를 먹는 이들이 있는 자리였다.
“이곳에 회과육과 고기국수, 만두를 내어오게. 계산은 내가 할 터이니.”
“네!”
점소이는 다급하게 안으로 들어갔고 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이들에게 웃어줬다.
“많이 드시고 가시게.”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혹여 가족들이 더 있소?”
어미는 우물쭈물하더니 대답했다.
“아, 아닙니다.”
“괜찮으니 말해보시게.”
“아이만 네 명입니다. 아비는 먼 운남으로 일을 하러 갔고 간신히 먹고살고 있긴 하오나···.”
아이를 굶기는 어미의 심정이 어찌 편할 수 있겠는가.
난 맛있게 먹으라고 한 뒤에 당수향에게 돌아갔고 계산을 한 뒤에 객잔을 나왔다.
그러자 황급히 아이의 어미가 달려 나왔다.
“나으리!”
거친 숨을 몰아쉬는 그녀가 울먹이며 말했다.
“이리 도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집에 있는 다른 아이들도 먹을 수 있게 만두를 싸주시고···.”
내가 다른 음식도 싸갈 수 있게 했다고 하자 당수향과 화산파 도사는 깜짝 놀랐다.
“도울 수 있는 것이 이것뿐이라 미안하네.”
“평생 이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많은 아이들을 키우는 데 힘이 들 것이네.”
전낭에서 은자 네 냥을 꺼내 손에 올려줬다.
“적어도 아이들은 굶기지 말게. 먹어야 튼튼하게 클 게 아닌가.”
아이의 어미는 눈물을 흘렸고 내가 건네준 은자를 보물인 마냥 두 손으로 꼭 끌어안았다.
우리는 그렇게 다시 길을 나섰고 당수향이 나에게 물었다.
“어찌 저들을 도와주신 거예요?”
“그냥 저런 이들을 보면 쉬이 지나치지 못하는 성격이라서요.”
“… 굉장히 따뜻하시네요?”
“따뜻하다긴 보단 의무라고 보시면 됩니다.”
“의무요?”
“많은 이들은 각자의 의를 두고 행을 실천합니다. 다른 이들은 어떤 것을 의로 두는지 모르겠으나 저는 저들에게 의를 둡니다.”
“….”
“무언가를 빼앗는 것이 아닌 지키기 위한 것, 가진 것을 나누는 것, 그것이 무의 본질이라 여깁니다.”
저들을 보니 옛 생각이 났다.
내가 처음 무공을 접했을 때는 단순히 강해져 나를 무시했던 이들이 나를 쉽게 보지 못하게 하려는 마음이 컸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여러 경험 끝에 처음에 품었던 나의 신념은 많이 변했고 마침내 깨달음의 끝자락에 이르렀을 때 정립된 신념은 하나였다.
서서히 저번 삶의 깨달음이 떠올랐다.
내가 어떤 것을 목표로 무공을 배웠는지, 어떤 것을 이루기 위해 죽기살기로 노력을 했는지.
더 강해지겠다는 것도.
천마를 막아내는 것도.
그저 지키는 것의 범주에 들어갈 뿐이거늘···. 내 검이 어디를 향했는지 잠시 잊고 있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