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lf a penny from the Golden Tiger RAW novel - Chapter 32
꼭 화산으로 오시오 (1)
‘너의 무는 어디를 향해있느냐.’
저번 삶에서 사부님이 나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이 말을 듣고 정말 많은 고찰을 했다. 과연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이런 노력을 해서 얻고자 했던 게 무엇인지.
‘처음에는 무시했던 이들의 높은 콧대를 납작하게 하고자 했으나 지금은 누군가를 지키는 것에 의를 두고 있습니다.’
강해진다는 것은 지키는 것이 늘어나는 거였다.
그렇기에 나의 검은 누군가를 지킬 때, 가장 의미 있다고 여겼고 그 깨달음 덕분에 화경에 오를 수 있었다.
스윽.
지금도 이 마음가짐이라면 금선독룡의 내단을 흡수한 뒤, 수련하면 능히 화경에 오를 것만 같았다.
“멍하니 뭐 하세요?”
“잠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철방은 어디로 갈지 정했어요? 객잔 주인에게 물어보니 이 근방에서는 명홍 철방이 유명하다고 하던데 그리로 갈까요?”
안양에서 유명한 철방은 ‘명홍 철방’으로 언제나 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다른 철방과 다름없는 품질에 저렴한 가격, 이러니 사람들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아니요. 화려한 장신구를 사려면 저곳을 가겠으나 무기를 살 때는 저런 곳을 피해야 합니다.”
명홍 철방은 명성이 있는 곳이었으나 끌리지 않았다.
“그러면요?”
“저기로 가보지요.”
내가 가는 곳은 사람들의 발이 끊긴 곳이었다.
물건을 사러 오는 사람들보단 구걸하는 거지들이 판을 치는 곳이었고 지나가면서 그들에게 은자를 하나씩 쥐여줬다.
“… 돈을 그렇게 쓰셔도 돼요?”
이런 내가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을 짓는 당수향이었으나 웃으며 대답했다.
“어차피 마음대로 쓰라고 한 돈이니 제가 편한 대로 쓰는 거지요.”
그렇게 마음이 내키는 곳으로 가다 보니 귓가에 철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깡!
맑고 고운 소리.
깡!
새로운 검이 탄생하는 소리였다.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발이 이끌렸다.
그렇게 걷다가 도착한 헌 철방, 바깥에는 여러 농기구가 줄지어 있었고 안에는 무기들이 많았다.
“계십니까.”
안에서 철을 두드리는 소리가 멈추더니 한 노인이 걸어 나왔다.
“뉘시오?”
“검을 하나 사러 왔습니다.”
“별일이네. 이곳까지 무기를 사러 온 객이 있다니, 편히 둘러보고 마음에 드시는 게 있으면 가지고 가게나.”
당수향은 암기류 쪽으로 구경을 했고 따라온 화산파 도사는 당수향의 옆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난 느긋하게 철방을 둘러봤다.
퀴퀴한 냄새와 먼지가 자욱했으나 검들은 하나같이 빛나고 있었다.
스윽.
그러다가 묘한 이끌림을 받았다.
검이 한데 어우러져 있는 곳에서 나를 끌어당기는 검을 잡았다.
검집은 일반적인 검정 색깔의 검집이었으나 검날은 푸른 철로 만들어진 검이었다.
“청철로 만든 검이군요.”
“검을 볼 줄 아는가.”
청철은 북쪽 지방에서만 채취되는 푸른색의 철로 색이 아름다워 장신구로 많이 쓰이는 철이었다.
철 치고는 약해서 무기로 사용하는 이는 드물었지만, 이 검은 달랐다.
“여러 겹을 붙이셨군요.”
“청철의 단점을 보완하려면 그리 겹겹이 쌓을 수밖에 없더군.”
“훌륭합니다.”
검날에 파도 문양처럼 물결이 이어져 있었다.
이것은 하나의 철로 벼린 것이 아닌 여러 개의 철을 겹겹이 만들었을 때만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문양이었다.
“… 삼 년 전에 만든 검이지. 하지만 청철로 만든 검은 약하다는 인식이 많아 지금껏 팔리지도 않네.”
“이걸로 하겠습니다.”
“괜찮겠나?”
“물론이지요. 이리 좋은 검을 여기서 만날 줄은 몰랐습니다.”
“검을 알아주다니 고맙네.”
검을 살짝 휘둘렀다.
그렇게 힘을 주지 않았는데도 허공을 가르는 느낌이 경쾌했다.
슬쩍 내공을 흘리자 이 검도 내가 마음에 드는지 공명음을 울렸다.
대단한 명검은 아니었으나 전에 쓰던 검보다는 훨씬 나았다.
“얼마지요?”
“은자 한 냥만 주시게.”
청철은 무기로 만들면 팔리지 않는 광석이지만, 장식품으로 쓰려는 이들이 있어 적어도 은자 열 냥은 하는 물건이었다.
그런데 이리 겹겹이 만든 검이 한 냥이라니.
거저 주는 거였다.
스윽.
그런 주인에게 은 한 냥이 아닌 은원보를 건네줬다.
“… 이게 무슨?”
한 냥만 달라고 했는데 은원보라니.
주인을 비롯해 당수향과 화산파의 도사 또한 놀란 토끼 눈을 하고 나를 봤고 난 검을 잡고 미소를 지었다.
“훌륭한 검이니 값을 받아야지요.”
주인은 놀라면서도 은원보를 받아 챙겼고 나는 검을 살피며 물었다.
“혹, 이 검의 이름이 있습니까?”
“청월(靑月)이라네.”
“청월이라···. 감사합니다.”
푸른 달이라 마음에 드는 이름이구나.
*
안양을 떠나 독곡으로 가는 길은 평화로웠다.
도복에 매화가 새겨져 누구라도 화산파라는 걸 알았기에 불필요한 접촉은 일어나지 않았다.
다만 불편한 점이 하나 있었는데.
“초절정에 들었을 때는 어떤 깨달음을 얻으셨습니까?”
“검은 어떤 검입니까?”
“금호장에서 생활은 왜 포기하고 강호행을 하시는 거예요?”
옆에서 재잘재잘 떠드는 화산파 제자들 때문이었다.
다들 나보다 나이가 많은데도 이리 궁금한 것이 많다니, 아무래도 화산에서의 생활이 심심한가 보다.
“천천히 물으십시오, 제가 답해드릴 수 있는 건 모두 해드리겠습니다.”
그 뒤로도 화산의 제자들과 여러 이야기를 나눴고 지나가다가 금호장의 분타가 있기에 말을 빌려 탔다.
같이 말을 타자고 해도 화산파와 당가는 말을 타지 않고 걸었다.
“이거 은근히 편한데 배워보지 않으시겠습니까?”
“우리는 말을 타지 않습니다.”
화산파는 산꼭대기에 있어서 굳이 말을 타지 않는다고 하지만 사천당가는 일반 세가라 어린 시절에 승마를 배우는 걸로 알고 있었다.
“당 소저?”
“엉덩이 아파서 싫습니다.”
…. 아, 그런 이유구나.
“천을 덧대어 앉으면 편합니다.”
“그러면 옷태가 안 나지 않습니까.”
“…. 옷태를 걱정하시는 분이 품에 그리 많은 암기를 숨겨놓고 다니십니까?”
“암기는 곧 저의 몸이지요.”
“한 마디를 안 지십니다.”
시간이 지나 밤이 깊어졌고 우리는 가던 길에 있던 객잔에서 하루 묵기로 했다.
방에서 쉬다가 바람을 쐬고 싶어 근처를 걸었고 어디선가 검을 휘두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또 하는군.’
화산파 일대 제자인 무형은 이곳으로 오는 길 내내 검을 수련했다. 훗날 매화검수로 오르는 자답게 수련에 소홀함이 없었다.
달빛 아래에서 매화검법을 구현했고 난 나무에 기대어 그것을 지켜봤다.
‘십사수 매화검법’
달빛을 머금은 매화검이 허공을 휘젓자 한 송이의 매화꽃이 검 끝에서 피어올랐다.
‘대단하군. 절정에 이른 매화라···.’
수선행(修禪行)을 하는 도사라 그런지 확실히 무위는 뛰어났다.
그러다가 검을 멈추고 뒤로 도는 무형과 눈이 마주쳤다.
“송 소협께 가르침을 청해도 되겠소?”
“화산의 검을 몰래 본 점, 사죄드립니다.”
“아닙니다. 이리 보는 이들이 많은 곳에서 검을 휘두른 저의 잘못이지요, 그것보다 저의 제안은 어떠신가요?”
“화산의 도사님과 검을 나눌 수 있다니 검학을 걷는 이로써 이보다 더한 영광은 없지요.”
“제가 그 정도는 아닙니다. 아직 깨달음이 부족해 만족스러운 대련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서로를 마주 보며 검을 뽑았다.
그리고 잠시 호흡을 정돈하는 때, 먼저 무형의 검이 일직선으로 뻗어왔다.
잔재주를 부리지 않고 꽃줄기처럼 올곧게 뻗어오는 검, 십사수 매화검법이었다.
챙!
힘은 부족했으나 예리했다.
짙은 매화향이 아닌 은은한 매화향이 코끝에서 맡아졌고 무형은 자세를 잡고 검을 출수할 준비를 마쳤다.
“다시 들어가겠습니다.”
여러 초식을 섞어 십사수 매화검법의 절초까지 나왔으나 무언가가 부족했다.
검을 받아주며 무형의 움직임을 유심히 살폈고 난 무형의 문제가 무엇인지 알아차렸다.
“검을 휘두르면서 잡념은 버려두는 게 좋습니다.”
매화의 검은 화려하면서도 정교함이 담겨 있었으나 무형은 쓸데없는 생각이 많은 것 같았다.
그것이 검에 드러났다.
“… 그게 느껴지십니까?”
“신중한 것은 좋지만, 너무 신중한 건 오히려 독이 됩니다.”
십사수 매화검법은 화려하게 허공을 수놓았으나 내 옷깃을 스치지는 못했다.
유운검법의 운무빈첩을 펼쳐 모든 검격을 막아냈다.
일각이 지날 무렵, 무형의 호흡이 올라왔고 내 호흡은 아무렇지 않았다.
“… 송 소협의 진심을 경험하고 싶습니다.”
“진심이요?”
“더 높은 경지에 오르기 위해선 나보다 높은 이의 검을 볼 필요가 있으니까요.”
그 말에 무형의 두 눈을 응시했다.
‘거짓이 없구나. 그렇다면 나도 화답을 해줘야겠지.’
자세를 잡았다.
“검에는 완전한 것은 없습니다. 끊임없이 변화하고 발전하는 것이 검의 본질이니 기억하세요.”
“가르침에 감사드립니다.”
무형의 진심에 난 새로 얻은 검, 청월에 내공을 흘려 검강을 만들었다.
달빛을 머금은 푸른 검강은 신비로운 기운을 내뿜었다.
검강을 본 무형은 동공이 커졌고 송삼현은 천무신검이 아닌 유운검법의 초식을 펼쳤다.
‘유운 1초식 운행’
구름의 움직임처럼 유려한 검이 순식간에 무형이 있던 자리를 공격했고 무형은 검막을 펼치며 막으려고 했다.
허나 검은 무형의 눈앞에서 변화했다. 앞이 아닌 옆으로 뱀처럼 이동해 검을 쥐는 손목을 검등으로 내리쳤다.
“이런!”
갑작스러운 변화에 검을 놓친 무형은 다급하게 장법을 펼쳐 막아보려 했으나 벼락같이 쇄도하는 검은 무형의 목 끝에 닿았고 무형은 검을 내려놨다.
압도적인 차이.
무형은 자신보다 열 살이 어린 이에게 패배해 분할 법도 한데 오히려 웃으며 포권을 올렸다.
“제 부족함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무 소협의 검은 빠르고 치명적이었습니다. 화산의 매화가 눈에 생생히 보일 정도로요.”
“과찬이십니다.”
“허나 한 가지, 제가 감히 말씀드리자면 검을 휘두를 때, 잡념이 많습니다.”
“….”
“잡념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그만큼 망설이는 것도 많아집니다. 망설이는 게 많아지면 검이 느려지고, 검이 느려진다면 상대의 검에 목숨을 잃겠지요. 그러니 검을 검집에서 뺐으면 오로지 검에만 집중하세요.”
“귀한 가르침에 감사드립니다.”
“저야말로 화산의 검을 견식 할 기회를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열 살이나 어린 나에게 가르침을 청하고 스스로의 부족함을 깨닫는 이가 과연 얼마나 있을까.
무형은 여기서 더 성장할 것이다.
내가 청월을 검집에 넣고 돌아서는 그때도 무형은 땀을 흘리면서 검을 휘둘렀다.
달빛에서 피어난 매화는 점점 그 향이 짙어졌다.
*
그들의 비무를 유심히 보는 이들이 있었다.
당용호와 유산해였고 그들은 나무 위에 걸터 앉아 술을 마시며 그들을 바라봤다.
정확히는 송삼현을 보는 거였다.
“참으로 대단한 아이입니다. 저 어린 나이에 저런 성취라니 쉬이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유산해의 말에 당용호는 술을 마시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 강호가 재미있어질 것 같아. 권위에 찌든 늙은이들의 뒤통수에 검을 꽂을 녀석이 나타났으니까.”
“다시 강호로 나오시는 겁니까?”
“응? 난 안 나가. 다 늙어서 귀찮게 강호를 왜 돌아다니나? 독곡에서 연구나 하며 여생을 보내야지.”
“그러면 송 소협은 독곡에서 데리고 계실 겁니까?”
당용호는 송삼현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데리고 있다라.”
마음 같아서는 옆에 두고 싶었다.
어디까지 성장할지 궁금했고 이리 마음이 가는 후기지수는 정말 오랜만이니까.
“내가 있으라고 해서 있을 놈으로 보이느냐? 저놈은 용이다. 용, 혼자서도 능히 천하를 지배할 재목이 누군가의 둥지에 똬리를 틀 필요는 없지 않은가.”
당용호는 직감했다.
송삼현은 품는다고 품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