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lf a penny from the Golden Tiger RAW novel - Chapter 33
꼭 화산으로 오시오 (2)
무형과의 대련을 끝낸 후에 방으로 들어가기도 뭐해서 조금 더 바람을 쐬려고 홀로 객잔 뒤 언덕에 올랐다.
언덕은 높지도 않고 풀도 많지 않아 느긋하게 걷기 최적의 장소였다.
“바람이 좋네.”
저번 삶부터 난 이렇게 밤에 바람 쐬는 걸 좋아했다.
뭔가 이렇게 바람을 쐬면서 잡념을 씻어내야 하루의 정리가 되는 기분이랄까.
스릉.
그리고 바위에 걸터앉아 검집에서 청월을 꺼냈다.
달빛을 받아 은은하게 빛나는 푸른 빛은 청철의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그때 뒤에서 인기척인 느껴졌고, 누구인지 단번에 알아차렸다.
“오셨습니까.”
“… 기감이 상당히 밝군, 일부러 발소리를 죽이면서 왔거늘.”
내가 검을 손질하는 중에 유산해가 옆으로 다가왔다.
“청철로 만든 검이라, 왜 그 검을 골랐나?”
“청철은 경도가 약하긴 하지만 이 검은 여러 개의 청철로 겹겹이 쌓아 경도가 일반 검보다 높습니다.”
“확실히 그렇군.”
“그리고 청철만의 장점이 있지요.”
“…. 내공을 순환하는 것을 말하는가?”
“역시 산화검께서는 잘 알고 계시는군요.”
청철은 색이 아름다워 장신구로 많이 알려진 철이나 북쪽의 한기를 받아 정순한 기운이 많은 철로 내공을 다루는 이들에게 상성이 잘 맞는 철이기도 했다.
훗날 ‘청화 검단’이라는 부대에서 사용하며 많은 효율을 알린 철이라 내가 이 검을 고른 것도 그 이유 때문이었다.
“어린 나이에 정말 대단해, 만약 자네가 화산의 제자였다면 대제자 자리는 자네 것이었을 거야.”
“과찬이십니다. 화산의 대제자는 화산의 후기지수 중 가장 뛰어난 이가 오르는 자리 아닙니까.”
“그러니 자네에게 어울리는 자리지.”
유산해는 진심이었다.
내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자 유산해는 다시 입을 열었고 아까 무형과 대련했던 이야기를 꺼냈다.
“무형이와 대련을 봤다.”
“….”
“일부러 무형의 검을 받아주며 자세까지 교정해주더군. 매화검을 어찌 그리 잘 아는가?”
내가 매화검법을 잘 아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저번 삶에서 내 부대에 있던 이가 매화검법을 극성까지 익혀 당대 최고의 화산 검수로 이름을 날린 무철이었으니까.
“그저 얕게 아는 것뿐입니다.”
“초절정에 이르렀으니 보는 눈이 다르긴 하겠지. 폐가 아니라면 동행 중에 제자들에게 많은 것을 알려줄 수 있겠나?”
“그러겠습니다.”
말을 마친 유산해가 가길 기다렸는데 유산해의 시선은 내 검에 꽂혔다.
“이 검이 자네의 상징과도 같은 검이 됐으면 좋겠군.”
“그리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게 유산해는 바람처럼 사라졌고 그가 있던 자리에는 짙은 매화향이 풍겼다.
“… 오행매화보라.”
뭔가 그리운 감정이 일렁였다.
오행매화보를 대성에 이르렀을 때만 맡을 수 있는 짙은 매화향, 그 향을 풍기던 무철의 뒷모습이 달과 함께 아른거렸다.
*
이른 새벽, 흑의인 서른 명은 강가에 모여 있었다.
“… 이대로 돌아가면 우리는 죽은 목숨입니다. 회주께서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하아, 그냥 발 빠른 걸로 밥 좀 벌어먹으려고 하다가 이게 뭔 일인지.”
그들은 금선독룡 회수 임무에 실패했으니 돌아가면 죽음 밖에 기다리지 않다는 걸 알았다.
그런데도 돌아갈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곳에 가족이 있기 때문이었다.
“대주, 어찌하실 거요?”
이들을 이끄는 자는 장평두였다.
“이대로 돌아가면 우리만 죽는 게 아니라는 걸 다들 잘 알 거다.”
장평두의 말을 들은 이들은 말을 하지 않고 고개를 푹 숙였다.
그동안 임무에 실패했던 이들이 어찌 되었는지 두 눈으로 똑똑히 봐왔기에 공포심이 몸을 지배했다.
“가족들을 살릴 방법이 딱 하나 있다. 한 번 들어보겠느냐?”
그 말에 모든 이들이 눈을 빛내며 웅성거렸다.
“그게 뭐요!”
“가족들만 살릴 수 있다면 뭐든 하겠소!”
흑의인들을 보고 장평두가 입을 열었다.
곧 들려오는 말에 주변 분위기는 차가워졌으나 모두가 무언가 결심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답이 그것밖에 없다면 해야지요.”
*
다음날, 우리는 아침 일찍 길을 나섰고 사람들이 있는 마을을 지나 갈대숲으로 들어가기 전에 잠시 걸음을 멈췄다.
“매복하기 딱 좋은 곳이군요.”
내 말에 유산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이곳에 매복해 있을 공산이 높으니 돌아가시겠습니까? 아니면 이대로 나아가시겠습니까?”
“돌아가면 시일이 늦춰지겠지.”
무작정 들어가기 전에 지형을 먼저 살폈다.
매복이 있다면 암기로도 충분히 위협이 될 수 있기에 방비를 할 수 있는 곳으로 가야했다.
그렇다면 긴 갈대가 아닌 짧은 갈대가 있는 곳, 암기가 날아오는 것을 눈치챌 만큼 공간이 있는 곳.
저기다!
“갈대가 짧은 지역이 있습니다. 저쪽으로 돌아가면 될 것 같습니다.”
“저기라면 설령 매복하고 있다고 해도 방비가 가능하겠군.”
돌아가려면 배를 타고 건너야 했기에 갈대숲을 지나가는 게 최선을 방도였다.
갈대숲으로 들어가 경계를 하며 천천히 발을 옮기는 그때, 인기척이 느껴졌다.
바람에 날리는 갈대의 소리가 아닌 병장기가 부딪치는 소리였다.
“적입니다!”
강호 경험이 적은 화산파 제자들은 당황했으나 유산해의 일갈에 정신을 차리고 검을 잡았다.
“원형진을 펼친다!”
우리는 원형진을 세워 적들의 습격에 대비했다.
수풀이 우거진 곳에서 검은 신형들이 마구 쇄도했다.
위에서는 화살이 밑에서는 검이 들어왔고 유산해는 제자리에서 뛰어 허공에 검을 휘둘렀다.
그의 검풍에 날아오던 화살들이 땅으로 비처럼 우수수 떨어졌다.
“웬 놈들이냐!”
당용호의 일갈에 흑의인의 대장으로 보이는 자가 포권을 하며 말했다.
“소인은 장평두라 합니다. 곡주께서 훔쳐 가신 금선독룡을 가지러 왔습니다.”
“훔쳐 가다니! 이게 언제부터 너희들의 것이었더냐! 우리가 직접 얻은 것이니 우리 것이지!”
“그러면 죽이고서 취하겠습니다.”
“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모조리 죽여라!”
용매산에 불을 지르면서 우리를 추격하는 걸 포기한 줄 알았는데 일부러 며칠 동안 접근하지 않으면서 방심하도록 한 뒤에 기습하는 거구나.
다들 각자 한 사람 몫은 하는 이들이니 난 나에게 달려드는 이들에게 집중했다.
숫자는 총 일곱 명.
그들은 일정한 간격으로 진을 펼치며 들어오는 것이 아닌 막무가내로 들어왔다.
‘왼쪽부터 베어나간다.’
촤아악!
일대 다수를 상대할 때는 길게 싸워선 안 됐다. 짧고 간결하게 한 걸음 나아가는 게 중요했다.
한 걸음에 하나를 두 걸음에는 둘을 세 걸음에는 셋을 베어나갔다.
수십의 신형이 허공에 마구 날렸고 우리는 한 명 한 명 착실하게 처리해나갔다.
‘대체 이들이 원하는 것은 뭐지.’
당용호의 독장과 유산해의 매화검, 그리고 후기지수들의 무위에 흑의인들을 하나둘씩 죽어갔다.
전력 차이가 확실했다.
정말 이들이 우리에게 금선독룡의 잔해를 가지러 온 게 맞는 건가?
챙!
장평두가 당가 무인을 베려는 그때, 내가 그곳으로 신형을 날려 검을 튕겨낸 뒤에 그의 앞을 막았다.
“어찌 이리 목숨을 함부로 한단 말이오. 이곳에 독곡주님과 화산파의 도사님들이 있는데 정녕 그대들이 이길 수 있다 보시오?”
흑사회 수색대는 초절정을 넘긴 무인이 없었다.
경공이 뛰어난 절정의 무인들, 그렇기에 이건 그냥 죽고자 하는 것밖에 되지 않았다.
내 말을 들었는데도 장평두는 포기하지 않고 검을 쭉 뻗어 쇄도했고 난 반검의 자세를 취했다.
‘천무 1식 개벽.’
검을 두른 푸른 검기가 몸을 휘감았고 마치 연기처럼 휘날렸다.
촤아아아악!
땅부터 하늘까지 이어진 검격, 주변의 갈대들은 절반가량 잘려 나갔고 검의 경로에 있던 이들은 몸이 갈라지며 절명했다.
“… 저게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화산파 도사들을 비롯해 당가 일행이 하는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연기처럼 날리는 검기를 몸 안으로 갈무리한 뒤에 무릎을 꿇고 있는 장평두를 보며 말했다.
“정말 우리가 가져간 금선독룡의 잔해를 가져가려고 온 것이오?”
저벅.
“아니면 그냥 죽으러 온 것이오?”
내 말을 들은 장평두는 피눈물을 흘리며 나를 봤다.
“우리는 그것을 가지고 가야 한다! 가지고 돌아가지 못하면 어차피 죽은 목숨! 이리 죽나 저리 죽나! 매 한 가지 아니겠나!”
“흑사회주 때문이오?”
흑사회의 방식은 잘 알았다.
임무에 실패한 자들은 절대 가만히 두지 않았다.
유능한 자들은 신체의 한 부분을 잘라내는 데 그친다면 말단들은 가족들까지 몰살당한다.
그렇게 공포심으로 통제하는 것, 그것이 그들의 방식이었다.
“그러니 죽으려는 거겠지, 당신들이 임무 중에 죽으면 적어도 가족들은 지킬 수 있을 테니까.”
그래서 이들은 죽으려는 거였다. 자신들이 죽어야 가족들이 흑사회의 비호에서 계속 살 수 있었으니까.
내 말이 정곡을 찔렀는지 흑사회 수색대들의 몸이 움찔거렸다.
잠시 싸움이 멈췄고 모두가 내 말에 집중하자 장평두가 하는 말 또한 모두에게 들렸다.
“… 죽이시오.”
모든 걸 포기하고 죽음을 결심한 그의 말에 아무도 말을 하지 못했고 난 장평두의 목으로 검을 휘둘렀다.
“자, 잠시!”
목에 검이 닿기 직전, 화산파 여도사가 나섰으나 죽음을 앞둔 장평두는 살려달라는 말보다 오히려 웃음을 지었다.
“고맙소.”
죽음을 예감한 이가 짓는 웃음은 언제봐도 씁쓸했다. 살려달라는 절규보다 가슴에 더 사무쳤다.
“…. 잘 가시오.”
촤악!
목을 베면서 튄 피가 내 얼굴을 적셨다.
그 모습에 나를 말리려던 화산의 여도사가 발을 멈췄다. 소영영이라는 여인이었다.
화산의 도사들처럼 도를 닦는 이들은 무고한 희생을 극도로 꺼리는 경우가 많았기에 내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은 것이겠지.
“… 싸움이 불가능한 자였습니다. 굳이 목숨을 가져갈 필요는···.”
“이 자들은 이미 죽음을 각오하고 온 것입니다.”
“네?”
“송 소협의 말이 맞으니 영영이는 그만하거라.”
유산해의 말에 소영영은 더 말을 하지 않았고 유산해는 나에게 와 어깨를 토닥였다.
저번 삶에서도 이리 목숨을 내던지는 이들을 여러 차례 봐왔다.
전력이 되지 않으면서도 목숨을 초개처럼 버리며 오로지 목표를 향한 작은 돌로서 생을 마치는 이들을.
허나.
이들의 목적은 그것과는 살짝 달랐다.
‘가족.’
이들의 목적은 임무를 완수하겠다는 것이 아닌 가족을 지키는 것이었다.
싸늘하게 식어가는 흑의인들을 시신을 봤고 아직 숨이 끊어지지 않은 한 명의 흑의인이 보였다.
“꺼억.”
목이 베어져 말을 하지 못했다.
“참으로 미련하오.”
“… 끄윽.”
흑의인은 피를 토하며 나를 쳐다봤다.
그 눈은 죽음을 담고 있었다.
“허나 당신들의 뜻을 존중하겠소, 그러니 마지막은 편안히 가시오.”
고통 속에 신음하던 그의 심장에 검을 꽂아넣었고 잠시 후, 온전히 숨이 끊어졌다.
소영영이 이런 나를 보며 무언가 말하려고 했으나 내가 먼저 그녀에게 말했다.
“그대들은 그대들이 추구하는 길을 걸으시오, 나는 내가 추구하는 길을 걸을 터이니.”
잠시 잊고 있었던 감각
갈대밭에 널브러진 시신은 한곳에 모아 불태웠다.
화산파 도사들은 떠나는 이들을 위해 기도했고 난 물끄러미 불 속으로 사라지는 시신을 봤다.
“…. 참으로 안타까운 이들이네요.”
어느덧 내 옆에선 당수향이 하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안타까운 이들이긴 하지만 저들이 흑사회 소속으로 했던 일이 모두 용서되는 건 아니지요.”
가족을 위해 죽음을 선택했으나 그런 것이 그동안 저지른 악행을 씻어주지는 않는다.
“괜찮아요?”
“아무렇지 않습니다. 다만, 마지막에 죽어간 이의 눈빛이 잊히지 않을 거 같아요.”
저번 삶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죽음을 봤다.
익숙해질 법하지만 죽음은 시간이 흘러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이러한 죽음은 더더욱.
“이들은 왜 이런 선택을 한 걸까요? 살아서 가족을 보살필 생각을 하는 게 맞을 텐데.”
“흑사회의 규율이 문제인 거지요.”
“규율이요?”
당수향의 말에 대답해줬다.
“흑사회는 임무에 실패한 개는 용서하지 않습니다.”
잔인한 규율이었다.
“말도 안 돼···. 아무리 그래도.”
그때 당용호가 다가왔다.
“흑사회주, 그놈이 사파를 무력으로 통합하고 흑사회를 세우며 만든 규율이지.”
이어서 유산해가 말했다.
“다른 이들이 부당하면서도 묵묵히 따르는 것도 이유가 있습니다. 일단 임무를 완수하면 막대한 재물을 받을 수 있는 이유가 제일 크지요.”
여러 일을 해주며 얻는 막대한 재물 덕분에 흑사회는 재물이 마를 일이 없었다.
그렇기에 이익을 추구하는 사파에게 이것은 가장 큰 이점이었다.
“그리고 이 통제가 가능한 가장 큰 이유는 삼 년 전에 일어난 일 때문입니다.”
삼 년 전, 흑사회의 다른 이들은 흑사회주의 강압적인 규율에 반기를 들었다.
악행으로 강호에 이름을 날린 무인 사십여 명이 흑사회주를 기습했으나 모두가 죽임을 당했다.
그것도 그들의 가족까지도 철저하게 죽이며 싹을 뽑아버렸다.
“반기를 들면 가족들까지 다 죽을 거라는 걸 잘 아는 이들이니 반기를 들지 않고 이렇게 죽으면서 가족들이라도 지키려고 한 거지.”
흑사회는 하북성의 끝자락에 본거지가 있었고 무림맹은 그들을 함부로 대할 순 없었다.
중원 곳곳에 퍼진 그들의 세력과 더불어 그곳에서 많은 백성이 살고 있었기 때문에 만약 전쟁이 일어나면 큰 피해가 야기될 테니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며 지켜보는 중이었다.
“자기가 죽으면 가족들이 보호받을 거라는 게 참으로 미련한 짓이라고 봅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삶을 포기하고 죽음을 선택하는 건 쉬우면서도 미련한 짓이지.”
그들이 불속에서 한 줌의 재가 되어 사라지는 것을 끝까지 본 연후에 발길을 돌렸다.
내가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강해지겠다는 것처럼.
저들 또한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버렸다.
강호에선 강한 자들이 사는 법이 있듯이 약자들이 사는 법도 명확했다.
*
길을 떠나는 내내 당수향이 옆에서 재잘재잘 떠드는 바람에 귀가 쉴 틈이 없었다.
잠시 발을 멈춰 계곡에서 목을 축이고 가려는데 아까부터 나를 물끄러미 보는 시선이 있었다.
“무슨 할 말이 있소?”
장평두를 죽일 때, 나를 말리려던 화산파 여도사 소영영이었다.
“… 사부님이 아무런 말도 하지 말라고 하셨으나 어찌 싸울 의지도 없는 자들을 베셨나요.”
참으로 답답한 사람이다. 이런 걸 말하는 걸 보니 이번에 화산에서 처음 내려온 거겠지.
“말을 듣지 않았습니까. 저들은 자신들이 죽어야 가족들이 살 거라는 믿음 하나로 죽음을 선택한 거라고.”
“…..”
“강호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이해하려 하지 마십시오. 때론 이해하지 못했더라도 넘어가는 미덕을 보여야 밤에 칼을 맞지 않는 법입니다.”
“그, 그래도.”
“지금처럼 이렇게 한 가지 면만 보고 나서는 것이라면 여도사님은 아마 머지않아 죽어간 이들과 같은 운명이 될 겁니다.”
소영영은 내 말을 듣고서 뒤로 갔다.
더는 할 말이 없었다.
이것도 이해하지 못하는 거면 그냥 강호에서 누군가의 칼을 맞으며 배울 뿐이니까.
“….. 한데 송 소협.”
이번에는 무형이 말을 걸었다.
“예?”
“마지막에 보여준 초식은 대체 뭐였소? 푸른 검기가 옷처럼 몸에 둘러진 것은 처음 보오.”
“많은 이들이 착각하는 것이 검기가 일정한 모양이 있다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검기는 명확한 모양이 없습니다.”
기에는 틀이 없었다.
창에는 창기가 있고 권에는 권기가 있듯이 검에도 검기가 있어 이것을 본인의 무공에 맞게 변화시키면 됐다.
“그렇군요.”
이리 묻는 것은 아마 자신의 검기 때문이겠지.
흑의인 수색대와 일전을 벌일 때, 살짝 무형이 싸우는 것을 봤는데 확실히 재능은 있으나 검이 너무 정직했다.
그것이 나쁜 것은 아니나, 성장이 더뎌지면 조급한 마음에 자칫 엇나갈 우려가 있었다.
“조급해하지 마세요. 천천히 마음을 다잡으면 능히 초절정에 오를 것입니다.”
“송 소협 덕분에 많은 것을 얻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그 뒤로 더는 흑의인의 추적은 없었다.
용매산을 떠난 지 오 일이 되자 독곡이 있는 만향산 인근에 도착했고 우리는 갈림길에서 화산파 도사들과 이별했다.
“이곳까지 호위를 해주셔서 감사하네.”
“아닙니다. 곡주님께서 오래전, 장문인을 치료해주신 은을 갚는 것이니 이건 아무것도 아닙니다.”
당용호와 유산해가 인사를 나눌 때, 나는 무형을 비롯해 화산파 제자들하고 인사를 나눴다.
“송 소협! 나중에 꼭 화산으로 놀러 오시오!”
“꼭 오세요!”
“섬서성 인근에 지나갈 일이 있으면 화산으로 찾아오세요. 저희가 화산을 구경시켜드리겠습니다!”
그들은 화산에 꼭 놀러 오라고 했고 그들의 호의에 웃으며 포권을 올렸다.
“부디 화산 도사님들의 여정이 평안하길 빌겠습니다.”
인사를 마치고 유산해는 나에게 다가왔다.
“송 소협을 또 볼 날을 기다리고 있겠네.”
“저도 그날을 기다리겠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그렇게 화산파 도사들은 매화향을 남기며 사라졌고 우리는 그들과 반대 길로 걸어갔다.
어느덧 독곡의 입구에 도착하자 난 당용호에게 말했다.
“곡주님 부탁이 있습니다.”
“부탁?”
“당분간 독곡에서 지내도 되겠습니까?”
“독곡에서? 어째서?”
“금선독룡의 내단도 흡수해야 하니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는 독곡이 제일 좋지 않겠습니까.”
빨리 길을 떠날 연유도 없고 약조했던 이들과 만나려면 다섯 달이라는 시간이 남아 있었다.
그 시간 동안 금선독룡의 내단을 흡수하며 검술에 발전을 도모할 둥지가 필요했고 독곡이 안성맞춤이었다.
“뭐 알겠다. 네 덕분에 얻을 것은 모두 얻었으니 너의 부탁도 들어주마.”
“감사합니다.”
“앞으로 무조건 너의 말을 다섯 번은 들어줄 것이다.”
“다섯 번이요?”
당용호는 독곡 입구로 들어가면서 나에게 말했다.
“너는 약조를 지켰으나 난 약조를 지키지 못했으니 그것이 옳은 결정이 아니겠느냐.”
어떤 말인지 이해했다.
나는 금선독룡을 찾아주겠다는 약조를 이행했으나 당용호는 어머니를 살려주겠다는 약조를 지키지 못했으니까.
“… 의외로 섬세하십니다?”
“어린놈이 늙은이를 놀리면 못 쓴다.”
그렇게 독곡의 연기 속으로 신형들이 사라졌다.
*
독곡으로 들어오곤 사흘이 흘렀고 이곳에는 나를 제외하고 당수향이 남았다. 당만우는 하루 전에 당가 무사들이랑 이미 떠났고.
“송 소협! 어딜 가십니까?”
방에서 나와 가볍게 몸을 푸는데 당수향이 멀리서 영령이와 같이 손을 흔들었다.
“푹 쉬었으니 수련을 해야지요.”
“조금 더 쉬시지.”
“이미 충분히 쉬었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포권을 올린 뒤에 전에 봐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때, 뒤에서 당용호가 당수향에게 다가가며 하는 이야기가 들렸다.
“수향아.”
“네! 숙부님.”
“삼현이를 우리 가문 데릴사위로 들이는 것이 어떠냐?”
“… 네?”
“어차피 어디에도 속박되지 않고 자유롭게 떠돌아다닐 아이이긴 하지만 우리와 평생 끊어지지 않을 인연의 끈을 이어놓는 것도 좋지 않냐는 말이다.”
“그 말씀은?”
“그래 너랑 혼인을 올리는 것이···.”
“숙부님!”
“왜 갑자기 소리를 지르냐, 너도 삼현이를 보려고 독곡에 남은 것이 아니냐.”
“저, 저는 독수비단 때문입니다!”
“핑계는 잘만 대는구나.”
“숙부님!!!”
그런 말은 좀 다른 데 가서 좀 하세요. 다 들리니.
바삐 걸음을 옮겼고 약초와 독초가 어우러진 밭을 지나 독곡 정상에 올랐다.
독곡에서 제일 경치가 좋은 곳은 역시나 정상이었다. 그곳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가슴이 뻥 뚫릴 만큼 시원했다.
“그러면 해볼까.”
품에 갈무리해뒀던 금선독룡의 내단을 꺼냈다.
금선독룡의 내단을 먹은 뒤, 가부좌를 틀고 앉아 운기에 집중하자 내단의 영기가 몸 곳곳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허나 좋은 것만 있는 게 아니었다.
독의 기운을 풍기고 있어 자칫 잘못했다간 독에 중독되어 주화입마에 빠질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찌릿.
가공할 독성에 몸 곳곳이 저렸으나 내공을 보내 빠르게 해독했다.
‘이것만 버티면 천독불침에 이를 수 있다.’
천 가지의 독이 침입할 수 없는 체질, 이런 체질은 평생 독공을 익힌다고 해도 이르기 힘든 경지였다.
천천히.
그리고 급하지 않게.
기해혈부터 시작된 기의 흐름에 집중했다.
금선독룡의 내단에서 나오는 영기가 몸속에서 튀지 않고 다른 기운과 잘 어우러지도록 집중했다.
시간은 계속해서 흘러갔다.
얼마나 지났는지도 잊었고 지금은 오로지 내단에만 온 신경을 집중했다.
뚝.
땀이 떨어졌다.
뚝.
몸 전체에 독 기운이 퍼지면서 생긴 땀은 바닥에 떨어지며 돌을 녹였다.
백독불침이 아니었다면 진즉에 독에 중독되어 죽었을지도 모른다.
독성이 내공의 통제하에 놓이자 내단의 영기가 몸 전체로 퍼져나가 포근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때 묘한 이끌림을 받았다.
‘… 화경에 들 수 있겠다.’
이 느낌이라면 화경의 벽을 깨트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깨달음을 떠올리자.’
저번 삶에 얻었던 깨달음, 이번 삶에서 다른 것에만 집중해서 잠시 잊었던 깨달음.
그것을 떠올렸다.
그리운 감정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내가 화경에 오를 때, 느꼈던 감각, 그것이 몸을 지나 머리까지 전해졌다.
‘그저 흐름대로.’
화경에 오른다는 것은 입신(入神)의 경지에 한 걸음 다가가는 걸 의미했다.
무학을 걷는 많은 이들이 목표로 하지만 대부분이 오르지 못하는 경지였다.
그리움의 파도가 내 혈 자리를 휘저으며 막혀있던 것들을 뚫었고 그렇게 굳건히 닫혀있던 문을 열었다.
“…..”
검의 바다가 눈앞에 펼쳐졌다.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검들이 꽂혀있는 곳에 난 검파(劍把)를 밟으며 그곳에 한 걸음 내디뎠다.
한 걸음을 내딛자 파도처럼 밀려오는 검의 잔상이 내 몸을 휘젓고 가며 사라졌다.
스르르륵.
감았던 눈을 뜨자 눈에서는 푸른 안광이 머물다가 사라졌고 몸 전체를 훑어봤다.
금선독룡의 내단은 온전히 흡수됐고 내공의 흐름 자체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변했다.
어서 밖으로 나오고 싶다는 듯 몸 안에서 용솟음치는 기운을 안정시킨 뒤에 참았던 숨을 내뱉었다.
척.
그리곤 손을 뻗어 멀리 있는 돌을 내공으로 집었다.
화경에 든 확실한 증거, 격공섭물(隔空攝物)이었다.
저번 삶과 같은 경지를 난 열다섯에 이뤄냈다.
인기척이 들린 곳을 보자 당용호가 있었다.
“제가 이곳에 오른 지 얼마나 지났습니까?”
“엿새째다. 그동안 아무도 이곳으로 못 오르게 했지, 그건 그렇고···. 화경에 든 것이냐?”
말을 하지 않고 짓는 웃음을 본 당용호는 신기한 것을 보는 듯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약관도 되지 않아 화경이라니, 뭐 이런 괴물 같은 놈이 다 있을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