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lf a penny from the Golden Tiger RAW novel - Chapter 34
끊어지지 않을 인연 (1)
‘저 녀석이 벌써 화경에 이르렀다고?’
작금의 중원에 화경에 이른 자는 열 명이 조금 넘었다.
그런데 열다섯의 아이가 중원의 최고들만이 오를 수 있는 화경에 올랐다?
당용호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송삼현에게 걸어갔다.
“몸 안을 살펴봐도 되겠느냐?”
“네.”
송삼현의 등에 손을 올려 조심스럽게 기운을 흘려보냈다.
몸을 유심히 살피던 당용호는 기운을 갈무리하더니 입을 다물지 못했다.
“…. 이 무슨 내공이란 말인가, 금선독룡의 내단을 한 치의 흘림도 없이 모두 흡수했더냐?”
금선독룡의 내단은 독성이 강하고 영기의 흐름을 통제하기 힘들어 전부 흡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게 여러 기록에 적힌 내용이었다.
절반만 흡수해도 잘했다고 하는데 송삼현이 방대한 영기를 다 흡수했으니 당용호는 두 눈이 커졌다.
“네.”
“가히 하늘이 내린 재능이로다.”
지금껏 독곡에 자리 잡기 전까지 많은 곳을 돌아다니며 천하의 기재란 기재는 모두 봤었다.
그 많은 기재들도 화경에 이를 때는 폐관 수련으로 길고 긴 시간을 감내하며 올랐는데 눈앞에 있는 송삼현은 내단을 먹고 고작 엿새 만에 오른 것이 믿기지 않았다. 이것은 하늘이 내린 재능이 아니면 달리 설명될 말이 없었다.
“너는 대체 뭐 하는 놈이냐? 혹, 반로환동을 한 고수는 아니고?”
송삼현은 웃으며 대답했다.
“운이 좋았지요.”
“두 번 운이 좋으면 현경에도 이르겠구나.”
금선독룡의 내단은 일반적으로 일 갑자의 내공을 얻는다고 했는데 송삼현은 지금 일 갑자 하고도 반 갑절의 내공을 더 얻어 총 백 사십오 년의 공력을 몸 안에 품었다.
“나도 육십 년간 이르지 못한 곳을 너는 열다섯에 올랐구나. 이런 괴물이 어디에 있다가 이제야 나타났을꼬.”
오르지 못한 경지에 대한 질투는 커녕 그저 신기한 것을 구경하는 이의 눈빛을 하며 송삼현을 유심히 봤다.
“화경에 오르고 싶으신 겁니까?”
“불과 오 년 전에는 그랬으나 이제는 됐다. 세월이 지나니 무를 추구하는 것보다는 학문을 추구하는 것이 더 즐겁구나.”
무인이라면 성취에 대한 욕심이 있었으나 당용호는 그런 것을 내려두고 독과 암기 연구에만 몰두했다.
무공보다 그것에 더 만족감을 느끼니 굳이 무리해서 화경에 이르고자 하는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 모든 것은 흘러가는 대로, 이것이 그가 무림을 살아가는 방식이었다.
“그만 내려가자.”
“네, 곡주님.”
두 사람은 정상에서 내려갔다.
화경에 오른 송삼현의 기감은 전보다 더 열려있었고 바람 소리와 풀벌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세세하게 들렸다.
그러던 중에 앞서가던 당용호가 넌지시 물었다.
“삼현아.”
“네?”
“내가 전부터 깊은 생각을 했는데 사천당가와 인연을 맺지 않겠느냐?”
“인연이라면···?”
“수향이와 혼인이지.”
농담이 아닌 진담이었다.
당용호는 송삼현이 이대로 머물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았으니 데릴사위가 아닌 그저 혼인으로서 인연을 맺고 싶은 거였다.
“저 아직 열다섯입니다.”
“수향이는 이미 혼인을 올려도 될 나이니, 문제가 될 것이 없다.”
“아직 혼인 생각은 없습니다. 제가 하고자 하는 일을 마치면···. 그때 생각해보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그동안 묻질 않았구나. 넌 대체 무엇을 목표로 금호장의 그늘에서 이 험한 강호로 나왔느냐.”
금호장의 그늘은 중원 전체를 휘저을 때, 크나큰 울타리가 되어줄 것이 분명했다.
명문 정파의 후기지수들도 각자 속해있는 문파와 가문의 비호 아래 강호행을 하며 경험을 쌓아갔다.
허나 송삼현은 근본적으로 달랐다.
그늘에서 빠져나와 홀로 중원을 돌아다닌다고 하니 궁금했다. 눈앞에 있는 아이가 어떤 생각으로 그리했는지.
“세상을 구하려고요.”
그 답이 송삼현의 입에서 나왔고 당용호는 깜짝 놀랐다.
“뭐라? 세상을 구해?”
“예.”
송삼현의 허무맹랑한 말에 당용호는 별 희한한 놈을 다 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강호에 이름을 날려 협객이 되고자 하는 이들은 많았으나 세상을 구하고자 한다니···.’
이상하게 들릴지 몰라도 이것은 틀린 말이 아니었다.
송삼현은 정말 세상을 구하려고 더 강해지려는 것이니까.
말을 마친 송삼현은 멍하니 서 있는 당용호를 지나쳐 앞서갔고 멍하니 뒤를 보던 당용호는 헛웃음을 지었다.
“내단을 흡수할 때, 금선독룡의 독이 머리로 스며든 건가?”
*
쾅!
“…. 그래서 다 실패했다?”
어둠이 짙게 깔린 방 안에서 천뇌는 탁자를 강하게 내리치며 앞에 넙죽 엎드린 흑의인을 호되게 꾸짖었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파견된 이들은 모두가 죽었고 사휘도만 살아온 게 사실이렷다.”
“그렇습니다! 수색대와 흑검대는 모두 전멸! 사휘도만이 검마께 구출되어 현장에서 빠져나왔습니다!”
금선독룡 회수에도 실패하고 흑사회 수색대와 흑검대가 죽임을 당하며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이게 무슨 패착(敗着)이란 말이냐.’
천뇌의 주먹은 부들부들 떨렸고 밖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왔군.”
“네?”
흑의인이 의아한 표정을 짓는 그때, 천뇌의 방문이 ‘쾅!’ 부서질 듯 열리더니 검마가 들어왔다.
“오셨소.”
“내 제자를 데리고 재미있는 일을 꾸몄더구려. 천뇌 선생.”
“제자분이 많이 다쳤다 들었습니다.”
“그대가 회주의 두터운 신임을 받아서 잘 모르는 모양인데.”
겉으로 풍기는 살기에 침이 저절로 삼켜졌고 검마의 검이 탁자 한가운데 꽂히며 반으로 뚝 갈라졌다.
“내 제자를 한 번만 더 이런 일에 연루시킨다면 그때는 갈라지는 게 저것이 아닌 당신이 될 것이오.”
천뇌는 검마의 두 눈을 보며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옆에 있는 흑의인이 검마가 내뿜는 기운에 억눌려 일어나지도 못하고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검마께서는 언제 폐관을 끝내시고 나오셨습니까?”
천뇌의 물음에 검마는 태연하게 답했다.
“열흘 전이요.”
“용매산에서 일어난 일을 보셨습니까?”
“내가 갔을 때는 이미 다 끝나있더군. 휘도를 구출해오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소.”
“…그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검마는 뿜었던 내공을 갈무리한 한 뒤에 말했다.
“어떤 미친놈이 강호에 나타났소, 강호 초출로 보이나 약관도 되지 않은 나이에 초절정의 경지에 오른 녀석이지.”
“강호 초출인데 약관의 나이도 되지 않은 초절정 고수라···. 혹, 금호장의 삼 공자요?”
천뇌도 이 정도까지 왔으니 어느 정도 눈치를 챘다.
독곡이 개입했다고 해도 그들이 흑사회의 정예들을 모조리 죽였다고 보긴 힘들었다.
그렇다면 판을 흔들 한 명이 더 있어야 했는데 송삼현밖에 없었다.
“그 녀석이 금호장의 삼 공자라고?”
“그랬군, 그랬던 거였어.”
“아무튼, 난 이만 가겠소. 부디 내 경고를 무시하지 마시길 바라오.”
천뇌는 검마가 나가고 방 안에 털썩 주저앉으며 웃음을 터트렸다.
“금호장의 삼 공자가 그리 고강한 무공을 지녔다니 정보가 다 틀렸구나.”
알고 있던 정보가 달랐다.
금호장의 삼 공자는 내화외빈의 반푼이로 무공에 재능이 없다는 것이 강호에 소문이 자자했다.
그랬던 송삼현이 초절정에 올라 계획을 망가트리는 데 관여를 했다면 모든 계산을 처음부터 다시 해야 했다.
‘주시해야겠어.’
천뇌는 허공을 보며 말했다.
“흑매.”
그러자 천장에서 하나의 신형이 떨어졌다.
“흑조단에 일러라, 송삼현의 경계 등급을 천 등급으로 올려 예의 주시하라.”
*
화경에 오른 지도 어느덧 한 달이 지났고 난 매일 같이 연무장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단전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단전에 내공이 흘러넘치기 일보 직전이니 내단을 형성해야 했고 한 달 동안 천천히 내단을 쌓아갔다.
방대한 내공을 뭉쳐서 내단으로 만드는 일은 화경에 든 고수들에게도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나에겐 저번 삶에서 한 번 갔던 길이라 수월했고 어느덧 끝에 도달했다.
‘후우.’
예상보다 시일이 조금 걸리긴 했어도 금선독룡의 내단보다 조금 큰 내단이 형성됐다.
‘그러면.’
지금부터 해야 할 것은 심상 수련이었다.
한 달 동안 내단 형성과 검술에 집중해 천무신검과 유운검법을 모두 대성에 이르렀으니 실전 감각을 익혀야 했다.
가부좌를 틀고 앉아 집중하자 소검마 사휘도의 형상이 눈앞에 나타났다.
‘소검마.’
지난 싸움을 떠올리며 차분하게 보법을 밟았다.
열 걸음.
다섯 걸음.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며 검을 출수한 사휘도는 내 오른쪽 허리를 베려고 했으나 난 검을 뽑으며 그의 검격을 막아냈다.
검강이 스며든 검이라 묵직했고 몸에 호신기를 두르지 않았다면 내상을 입었을지도 몰랐다.
‘확실히 젊은 시절보다 내공의 질이 고강하다.’
피한 것도 잠시, 파화신검의 초식이 나를 덮쳤고 그 사이로 난 유운검법의 초식을 찔러넣으며 검로를 흐트러트렸다.
끼기기긱!
검날끼리 부딪치며 괴기한 소리가 들렸고 사휘도의 움직임이 무너졌다.
‘지금이다.’
지난번에는 닿지 못했던 것.
허나 이제는 닿을 수 있는 것.
스르르르륵.
검 주위에 둘린 푸른 검강이 길어졌고 삼 장 너머에 있는 사휘도를 덮쳤다.
화경에 이르면 검강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를 수 있었고 지금 이것이 그 결과였다.
촤악!
사휘도가 피하는 바람에 왼쪽 어깨밖에 베지 못했으나 계속해서 신형을 쫓았다.
평소처럼 수백 개의 합을 넘기지 않았다. 고작 열 합 만에 푸른 검과 붉은 검이 충돌해 사휘도가 피를 토했다.
“커헉.”
그때를 놓치지 않고 난 다시 초식을 구현했다.
‘운룡회천’
저번 싸움에서 사휘도에게 썼으나 통하지 않은 초식이었고 검강이 얇은 실처럼 뻗어나갔다.
검사(劍絲), 기존에 검기로 이뤄진 것이 아닌 검강으로 이뤄진 얇은 실이었다.
그것이 용이 똬리를 틀듯이 한데 어우러졌고 사휘도가 검강을 두른 검으로 베려고 했으나 베어지지 않았다.
콰아아앙!
같은 검강으로 이뤄진 실이 그리 쉽게 베일 리는 없었다.
한 걸음, 한 걸음 사휘도에게 가까워졌고 난 검을 반검을 쥔 뒤에 사휘도를 쳐다봤다.
처음 심상 대련을 할 때는 쳐다볼 수도 없는 높은 경지에 있다고 느껴졌던 존재가 지금은 한없이 작아 보였다.
아니 이제는 내가 그보다 커진 거였다.
촤아아아악!
검을 휘두르자 검사가 하늘로 솟구치기 시작했고 사휘도는 역시나 치명상을 피하기 위해 급소만 방어했다.
허나 그것은 예상한 일이었다.
내가 초절정의 경지였다면 저번처럼 통하지 않았겠으나 이제는 아니었다.
스르륵.
올곧게 하늘로 올라가던 검사의 형태가 변했다.
활처럼 휘어진 검사는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사휘도의 검을 피하며 복부에 꽂혔다.
푸우욱!
초절정의 경지에 이른 사람이라면 내공의 질을 높여 강기를 발현할 수 있으나 병장기를 떠난 내공을 통제하는 것은 어려웠다.
허나 화경의 경지에 오른 이들은 검기를 쏘아낼 수도 있고 얼마든지 통제할 수 있었다.
이것이 그 차이였고 그 결과는 확실했다.
복부에 치명상을 입은 사휘도의 검은 멈췄고 그가 검을 멈추자 수많은 검사가 몸에 꽂히기 시작했다.
“끄아아아아악!”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갈가리 찢겨 나갔고 사휘도의 숨이 끊어지는 것과 동시에 형상이 사라졌다.
“후우.”
숨을 내쉰 뒤에 감았던 눈을 떠 하늘을 올려다봤다.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
화경의 경지에 올라 바라보는 경치는 초절정 때와는 확연히 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