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lf a penny from the Golden Tiger RAW novel - Chapter 40
뛰는 자 위에 나는 자 (2)
“뭐라?”
화령신조는 내가 한 말이 웃기는지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약관도 넘지 않은 아해가 감히 나의 목을? 하하하하! 어디서 파리가 꼬여도 이상한 파리가 꼬였구나!”
“주인을 배신하고 도망치려는 주제에 말이 많소.”
“내 강호를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너의 목을 뱃삯으로 가져가야겠구나.”
“그 뱃삯을 본인의 목으로 치를 생각은 못 했소?”
사람들은 화령신조와 대치하는 나를 보고 웅성거렸다.
“저자가 화령신조라고?”
“한 해전에 운남 차석현에서 아녀자들을 죽이고 마을을 불태운 뒤에 도망친 죄인이잖아!”
“그것을 쫓던 관군들을 모조리 죽이고 사라졌다고 들었는데 여기는 어찌!”
사람들 사이에서 화령신조의 악행은 널리 퍼져 있었다.
무조 때는 아는 이들이 없었으나 무조에서 도망친 후, 일어난 사건으로 화령신조라는 별호가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관군이 끝까지 쫓았으나 쫓지 못한 자, 그런 자와 대치한 나에게 곧 시선이 쏠렸다.
“저 공자가 진짜 화령신조를 이길 수 있다고?”
사람들의 목소리에는 의심이 있었다.
화령신조는 어느 정도 이름이 알려져 있으나 내 이름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으니 당연한 의심이었다.
“무정아, 잠시 뒤로 떨어져 있거라. 네가 나설 자리는 금방 마련될 터이니.”
“네! 주군!”
기본적인 육합검밖에 익히지 못했기에 선무정은 잠시 뒤로 빠졌다.
탓!
내가 잠시 다른 쪽으로 시선을 돌린 사이, 화령신조가 기습적으로 제자리에서 뛰어오르며 용조수의 초식을 출수했다.
“오늘! 버릇없는 후학에게 예의가 무엇인지 가르쳐주마!”
손에 둘린 붉은 기운에 살기가 진득했고 그걸 검막을 두른 검으로 튕겨낸 후에 곧바로 목을 베려고 했으나 화령신조는 잽싸게 몸을 뒤로 날리며 피했다.
“검이 제법 날카롭구나.”
“발이 제법 빠르오. 그리고 예의가 무엇인지는 알고 말하는 거요?”
“이놈이!”
“주인을 배신하고 도망친 쥐새끼한테 예 따윈 없다고 보는데.”
화령신조는 절정 수준의 무위를 지녔으나 그와 반대로 경공이 예사롭지 않았다.
경공 고수들은 대부분 자신의 무위보다 한 단계 높은 수준의 경공을 펼치는 경우가 많았고 화령신조도 마찬가지였다.
휙!
그는 계속해서 아슬아슬한 간격으로 내 검을 피했다.
허나.
경지의 차이는 명확했다.
화령신조의 용조수는 단 한 번도 나의 옷깃을 스치지 못했다.
보법은 신묘했으나 내 목을 노리고 들어오는 공격은 그리 날카롭지 않았다.
‘오른쪽.’
‘이번에는 왼쪽.’
‘너무 뻔해.’
화령신조의 보법도 시간이 지나자 어느 정도 눈에 익어갔다.
도망칠 때는 눈으로 쫓을 수도 없이 빨랐으나 공격을 할 때, 밟는 보법은 눈으로 다 읽혔다.
‘들어온다.’
손을 쭉 뻗어 내 목을 노리고 들어오는 손을 보곤 왼쪽으로 피하며 검을 휘둘렀다.
오른쪽 팔을 노렸다.
촤아아아악!
내 검이 그의 오른팔을 얕게 베자 화령신조의 표정은 당혹스러움으로 변했다.
“아직 강호에 이름도 날리지 못한 애송이가 제법이구나. 내 공격을 다 피하다니.”
검을 잡곤 양팔을 앞으로 쭉 뻗어 자세를 취했고 검날 사이로 화령신조가 나뉘어 보였다.
“다음은 빗나가지 않소.”
검에 내공을 흘렸고 서서히 푸른 빛이 휘감겼다.
청철과 어우러지는 푸른 내공에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스르르르륵.
푸른 검기가 연기처럼 사방으로 퍼지기 시작했고 검은 그 연기를 가르며 화령신조에게 쇄도했다.
‘연환참(煙渙斬)’
화령신조는 뒤로 급하게 보법을 밟으며 검의 간격에서 피하려고 했으나 검은 연기 속에서 늘어났다.
간격에서 벗어났음에도 끝까지 쫓아오는 검기에 황급하게 팔을 들어서 막아 보려고 했으나.
촤아아아악!
화령신조의 왼팔이 뚝 하고 땅에 떨어졌다.
*
배 위에서 일어나는 송삼현과 화령신조의 싸움을 멀리서 보는 시선이 있었다.
그 시선의 주인은 명월루주였다.
그녀는 진황도의 항이 내려다보이는 객잔의 제일 높은 곳에서 차를 마셨고 그 옆을 무사들이 지키고 있었다.
“루주.”
그때 그녀의 옆으로 여자 무사가 나타났다.
“조화야, 왔느냐. 너도 어서 와서 보거라, 보는 재미가 제법 있구나.”
“해가 뜨거우니 어서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밖에 더 계시다가 몸이 상하실까 염려됩니다.”
“궁금하구나.”
“네?”
“저 공자가 화령신조를 상대로 어떻게 싸울지.”
화령신조의 경공은 신묘하기 그지없었다.
한 마리의 새처럼 공중을 활보하는 그를 잡기 위해 여러 추적대가 붙었으나 다 소용이 없었다.
그렇기에 궁금했다.
과연 송삼현이 어떻게 화령신조를 잡을지.
그때.
촤아아악!
송삼현의 푸른 검에 화령신조의 팔 한 짝이 떨어졌고 명월루주는 찻잔을 든 채로 굳어버렸다.
“…. 한데 아주 압도하는구나. 화령신조의 보법이 전혀 통하지 않아.”
멀리서도 싸우는 것은 훤히 보였다.
명월루주는 송삼현이 화령신조의 팔을 잘라내는 것을 보고 차를 마시려는데 차가 떨어졌다.
“차가 떨어져 가는구나, 가서 더 가져오거라.”
“네, 루주.”
여자 무사가 나가자 뒤이어 화령신조를 배웅한 노인이 들어왔다.
“그리 재미있으십니까?”
“저런 신묘한 검술은 대체 뭐지요? 금호장의 유운검법은 저토록 신묘하지 않은데.”
명월루주는 전에 풍운검 송일현이 싸우는 것을 본 적이 있어 유운검법을 익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송삼현이 펼치는 건 송일현의 펼치는 검법과는 결이 달랐다.
“예사 인물이 아닙니다. 무공 수준이 초절정에 이른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 보이네요. 역시···. 저자와 계속해서 인연을 이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면 저희에게도 도움이 될 것 같네요.”
“네, 저자는 강호에 큰 발자취를 남길 것입니다.”
*
명월루주가 흥미로운 눈빛으로 싸움을 지켜볼 때, 다른 곳에서도 그들의 싸움을 지켜보는 이가 있었다.
흑의인들을 거느린 백발노인인 천뇌였다.
천뇌의 맞은편에 앉은 오른팔 한충건이 말했다.
“저자는 화령신조입니다. 한 해전에 관군을 죽이고 모습을 감췄다고 들었는데 어찌 이곳에 나타난 것인지···.”
천뇌는 화령신조의 이름을 떠올렸다.
“화령신조라면 무조에 있던 녀석이 아니냐?”
“맞습니다. 무조에서 기밀 정보를 빼돌려 크게 팔아먹은 뒤, 도주해 무조에서도 눈에 빠지게 찾는 자라고 들었습니다.”
천뇌의 머리는 빠르게 돌았다.
한 해전에 마을을 불태운 뒤에 모습을 감췄던 화령신조, 그리고 그 화령신조를 죽이려는 송삼현.
그것과 관련된 무조.
“… 그렇게 된 거였군.”
천뇌의 머릿속에 이것은 분명히 송삼현이 무조와 접촉을 했고 그들을 포섭하기 위해 화령신조를 죽이려는 것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어찌할까요?”
“지켜보자꾸나. 날쌘 새 한 마리를 잡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니.”
그리고 그때, 송삼현이 푸른 검기를 머금은 검으로 화령신조의 왼팔을 잘라내자 천뇌의 안광이 빛났고 옆에 있던 한충건이 헛웃음을 지었다.
“…. 쉬워 보이는데요?”
“저렇게 어린 나이에 저리 신묘한 경지라니, 참으로 놀랍구나.”
*
“이···. 무슨 검술이란 말이냐. 이런 검술은 무조에서도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
팔이 떨어지며 바닥에 피를 뚝뚝 흘리던 화령신조는 혈을 눌러 지혈했다.
“발이 빠르긴 하네. 발이 아니었다면 목이 베였을 텐데.”
화령신조는 팔이 떨어져 나갔음에도 차분함을 유지하며 나를 노려봤다. 다시 달려들 기세였다.
“한 가지만 묻자, 무조가 나를 어떻게 찾은 것이지? 그 누구도 찾을 수 없는 곳에서 한 해 동안 숨죽여 살았건만.”
“아무리 숨어도 냄새는 나는 법이오.”
“하하하! 이 어린 아해야, 무조···. 그놈만 아니었으면 나도 이러지 않았다! 허나 이 모든 건 그놈이 자초한 일이다!”
도통 알 수 없는 말이었다.
내가 아는 건 그저 화령신조가 무조를 배신한 것뿐이니.
“그놈만···. 그놈만 아니었으면 난 이렇게 살지 않았단 말이다!”
갑자기 절규했다.
주변 사람들도 웅성거리기 시작했고 난 화령신조에게 걸어갔다.
“그대와 무조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오.”
“…. 뭐라? 네놈은 무조가 보낸 것이 아니냐?”
“무슨 사연이 있다고 해도 당신이 저지른 일은 사라지지 않소. 그러니 죽으시오.”
사람들은 착각하는 것이 있다.
무슨 사연만 있으면 자신이 한 짓이 정당화가 될 거라는 착각.
그 착각이 모이고 모여 결국에는 후회로 남기 마련이거늘 화령신조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삶이란 결국, 무언가 선택하는가에 따라서 살 수도 있고 죽을 수도 있소, 그리고 당신은 당신의 그릇된 선택으로 죽임을 당하는 것이고.”
화령신조는 팔을 부여잡고 무릎을 꿇은 상태에서 가까이 다가가는 나를 바라봤다.
그러더니 무언가 결심했는지 눈빛이 변했고 입을 열었다.
“팔은 없어도 살 수 있다.”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나를 보며 말했다.
“내겐 다리만 있으면 되거든.”
내게 금방이라도 살초를 날릴 것처럼 하다가 진각을 하더니 배 밖으로 달아났다.
‘허공답보(虛空踏步)’
뛰어난 경공술사답게 그의 신형은 무공을 아는 자들도 쫓을 수 없을 만큼 빨랐다.
뭐.
이건 어느 정도 예상 범주 안에 있는 행동이었다.
내가 진각을 밟으며 쫓아가려고 했으나 멈췄다. 이제는 내가 아닌 다른 이가 나설 차례였다.
“무정아.”
“예! 주군!”
“가서 떨어트려라.”
“예!”
이 순간을 위해서 선무정을 데리고 온 거였다.
화령신조의 경공보다 뛰어난 풍천신보의 경공, 두 사람은 명확한 차이가 있었다.
화령신조는 자신에게 그림자가 드리우자 위를 올려다봤고 곧 경악을 금치 못했다.
“어찌···. 어찌! 나보다 위에서 경공을 펼친단 말인가!”
그런 그를 보고 송삼현은 피식 웃었다.
뛰는 자 위에는 항상 나는 자가 있는 법이었다.
피를 보기 싫어 검을 잡는 걸 두려워하는 자라 평생 발을 단련했고 경공의 최고봉에 오른 천음산보의 ‘천운보(天雲步)’ 진전을 이었기에 화령신조보다 뛰어날 거라고 예상은 했다.
그러나 선무정은 내 예상을 뛰어넘었다.
화령신조가 허공답보로 하늘을 걷는다면 선무정은.
‘능공허도(凌空虛道)’
하늘을 날았다.
“당신이 하늘을 걷는다면 내가 데려온 사냥꾼은 하늘은 날지.”
무공은 일류 수준에도 미치지 않으나 경공은 화경 수준이로구나.
대체 천음산보는 무슨 괴물을 키워낸 것인가. 고작 스물둘에 능공허도라면 서른에는? 마흔에는? 난 중원 제일의 경공 고수를 수하로 얻은 것을 이제야 실감했다.
매일 밥만 축내는 식충이인 줄 알았던 이가 이토록 신묘한 경공을 펼치다니.
선무정은 단숨에 화령신조를 따라잡은 다음에 그를 내려다봤다.
“내가 당신같은 무공 고수들을 이길 자신은 없으나 누구보다 빠르다는 자부심은 있소.”
퍼어어어억!
주먹으로 화령신조를 내리쳤고 화령신조는 날개를 잃은 새처럼 균형을 잃고 땅으로 떨어졌다.
“주군!”
난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배 밖으로 뛰어내려 일위도강의 경공을 펼치며 화령신조가 떨어지는 곳으로 재빠르게 신형을 날렸다.
다섯 장.
삼 장.
일 장.
내가 오는 것을 본 화령신조는 급하게 균형을 잡고 다시 허공답보를 펼치려고 했으나 내 경공도 그에 못지않았다.
물 위를 평지처럼 내달리는 신기에 가까운 경공을 펼치며 검을 출수했다.
촤아아아아악!
내 검은 하늘에서 날개를 잃고 떨어지는 새의 심장을 꿰뚫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