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lf a penny from the Golden Tiger RAW novel - Chapter 42
퍼지는 명성 (2)
사흘 후.
말을 타고 진황도에서 낭방 구안현으로 가는 길에 행색이 초라한 이들을 만났다.
흡사 어디 전쟁터에서 온 피난민처럼 보였다.
“… 주군, 저들은 대체 어떤 자이길래 저리 행색이 초라합니까?”
옆에서 말을 타던 선무정도 놀란 눈빛으로 그들을 봤다.
“나도 모르겠다.”
“행색을 보아하니 혹, 왜구들의 소행이 아닐까요? 객잔에서 밥을 먹을 때, 왜구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왜구라···.”
그러고 보니 나도 선무정을 만나기 전에 객잔에서 그런 이야기를 들었었다.
하지만 왜구가 아무리 잔혹하다 해도 삶의 터전까지 빼앗는 경우는 없는데 이상했다.
“그만 가자. 우리도 일을 마무리 지어야지.”
“네!”
옆에 관군이 있으니 저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은 불필요했다.
그렇게 우리는 발을 돌려 갈 길을 가려는데 행렬에서 어머니의 손을 꼭 잡고 비틀거리던 어린아이가 풀썩하고 쓰러졌다.
“화화야!”
그 아이의 부모는 화들짝 놀랐고 난 말에서 내려 그들에게 다가갔다.
“무슨 일입니까?”
“아이가 갑자기 쓰러졌습니다.”
그때 선무정이 아이의 손목을 잡고 눈을 감았다가 떴다.
“먹지 못해 기력이 없는 것입니다.”
“진맥을 볼 줄 아느냐?”
“제대로 된 의술을 배운 적은 없으나, 이 상황은 익숙합니다. 저도 전에 이 아이처럼 피난을 한 적이 있어서요.”
상황이 익숙하다는 말을 듣고 선무정에 관한 기억이 떠올랐다.
선무정은 산적 떼에게 부모를 잃고 배를 곯다가 천음산보에게 거둬져 살아남았다는 걸.
“저도 어릴 때 마을이 산적 떼에 습격당해 불타 사라지고 피난길에 올랐을 때, 먹지 못해 쓰러진 적이 있어 잘 압니다. 먹을 것을 먹고 쉬면 다시 기운을 차릴 것입니다.”
선무정이 음식에 집착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어릴 적에 피난민 생활을 하며 많이 먹지 못해 배를 곯는 날이 많았기에 시간이 날 때마다 계속 채워 넣으려는 거였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나으리.”
“진맥을 봐주셨으니···. 값이라도 드려야 하지만···. 가진 것이 없어서.”
“아닙니다! 그냥 잔재주라서 감사할 필요 하나도 없습니다.”
아이 부모가 어찌할 바를 모를 때, 나는 선무정에게 전음을 보냈다.
[객잔에서 챙긴 음식 일부를 아이에게 주거라.]
선무정도 천음산보의 진전을 이어받으며 내공이 반 갑자가 넘었으니 전음을 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다.
[네? 하지만 이리 뚫린 곳에서 섣불리 음식을 줬다간···.]
[괜찮다. 다른 이들이 빼앗으려고 한다면 내가 막아줄 것이니 어서.]
내 전음을 들은 선무정은 보자기에서 주섬주섬 꺼낸 만두를 아이의 손에 쥐여주고 물을 먹여 정신을 차리게 했다.
“괜찮으니 먹거라. 먹고 기운을 차려야 또 아버지와 어머니와 길을 나설 것이 아니냐?”
아이는 정신을 차리더니 손에 들린 만두를 허겁지겁 먹으려는데 갑자기 관군 한 명이 다가왔다.
“누구시기에 이리 도움을 주십니까?”
“지나가던 객입니다.”
관군은 내 허리춤에 있는 검을 슬쩍 보더니, 무림인이라는 걸 눈치챈 것 같았다.
“무림인이십니까?”
“그렇소.”
“이번 일은 그냥 넘어가겠는데 다음부터 이런 일이 있으면 먼저 관군에게 허락받고 행동하십시오.”
사람이 쓰러졌으면 괜찮은지를 먼저 물어야지 도움을 주는 사람에게 오히려 뭐라고 한다는 게 말이 되는 건가.
저들은 진심으로 이들을 도와주려고 하는 것보다 오히려 귀찮다고 여기는 것 같았다.
“먹거라. 괜찮다.”
주변에 지나가는 이들이 아이가 만두를 먹고 있는 걸 힐끔거리며 입맛을 다셨으나 우리 때문에 오진 않았다.
오히려 배고픈 아이들이 슬금슬금 눈치를 보며 부모의 손을 잡고 왔고 선무정의 보자기에 있던 만두는 계속해서 사라졌다.
[…. 얼마나 챙긴 거야?]
[그 집 객주가 만든 만두가 얼마나 맛있었는데요! 주군 때문에 다 거덜 났습니다.]
[그래도 웃고 기분 좋아 보이네?]
[아이들이잖아요. 아이들이 무슨 죄가 있겠습니까. 이렇게 만든 나라가 잘못이지.]
아이들은 만두를 허겁지겁 먹었고 반 정도 먹자 부모에게 주는 아이도 있었다.
처음에 만두를 줬던 아이는 만두를 다 먹고 나서야 우리를 봤다.
“감사합니다.”
“아니다. 어쩌다가 이곳까지 왔느냐.”
아이에게 말을 걸자 아이 부모가 대답했다.
“저희는 원래 진난현에 있었습니다. 한데 그곳에 왜구가 침입해 집이 불타 지낼 곳이 없어 대사현으로 가고 있습니다.”
“대사현이요?”
“네, 그곳에는 피난민들을 위한 임시 거처가 마련되어 있다고 하여 그곳으로 가는 중이었습니다.”
이들에게 나중에 뭐라도 사 먹으라며 돈을 주고 싶어도 그러지 못했다.
피난민들이 있는 곳에서 함부로 돈을 줬다가 힘이 센 다른 이들에게 빼앗길 공산이 컸으니까.
“건강히 대사현으로 가시길 바랍니다.”
그저 그들의 안전을 빌어주는 것 말곤 달리 할 것이 없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 은혜는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혹, 나리들의 존함을 알 수 있을까요?”
만두를 나눠준 다른 아이들도 나를 보고 있었고 나는 그들에게 포권을 하며 말했다.
“저는 송가 삼현이고 이쪽은 선무정이라는 자입니다.”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부디 나리들의 여정이 부처님의 은혜로 가득하길 바랍니다.”
그들은 연신 나에게 감사 인사를 한 뒤에 다시 뒤이어 길을 떠났고 난 그들을 한참을 보다가 말에 올라 길을 떠났다.
마음이 이상했다.
아이가 흙 묻은 손으로 밥을 먹는 건 저번 삶에서 수도 없이 봤으나 왜 이리 가슴이 미어지는 걸까.
*
“대단하네요. 그 화령신조를 죽이다니.”
낭방 구안현으로 돌아오자마자 명월루에서 루주와 차를 마셨다.
“아무것도 아니었소, 그리고 약조한 금자 열 냥이오.”
전낭에 든 금자를 주자 명월루주는 미소를 머금었다.
“아무것도 한 것 없이 받는 게 조금 마음에 걸리네요.”
“그대들이 화령신조의 행선지를 알려줘서 성공한 것이니 편하게 받아도 되오.”
“한 가지만 물어도 되나요?”
“어떤 거요?”
“… 혹, 이번 일이 무조와 연루가 되어 있습니까?”
정보를 다루는 조직들이 서로 견제하는 것처럼 명월루와 무조도 서로 견제를 했다.
물론 무조 쪽이 조금 더 평판이 높으나 명월루도 그에 못지않았다.
“그게 그대들이랑 상관이 있소?”
“아닙니다. 단지 확실히 하고 싶을 뿐입니다.”
“그렇소. 루주의 예상대로 무조와 관련되어 있소. 하지만 걱정은 하지 마시오, 무조는 그대들이 화령신조를 숨겨줬다는 걸 모르니까.”
이것을 묻는 것은 명월루가 화령신조를 숨겨줬다는 것을 알면 무조에서 보복이 들어올지도 모르니 조심스러운 거였다.
“말씀은 안 하실 거지요?”
“걱정하지 마시오. 무조에게는 그대들이 화령신조와 관련됐다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을 터이니.”
내 대답이 듣고 싶었던 대답이었는지 명월루주는 입꼬리가 올라갔다.
“감사합니다.”
“아니오.”
“그러면 또 하나. 혹, 송 대협은 무조의 사람이십니까?”
“무조가 내 사람이 될 것이오.”
명월루주는 내 말을 듣고 한참을 바라봤다.
천하의 무조를 내 사람이 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믿기지 않은 것이겠지.
“대협께서 목표로 하시는 것이 있으십니까?”
“그것이 궁금하오?”
“그래야 저희가 도울 수 있으니까요.”
“도운다고?”
“예, 저는 대협이 마음에 들거든요. 그래서 명월루는 앞으로 대협이 하시는 일에 도움을 드리려고 합니다.”
이게 갑자기 무슨 소리인가.
무조에게 협력을 받아도 되는데 명월루의 협력까지? 이건 거의 호랑이가 날개를 단 격이었다.
“내가 그대들의 말을 어찌 믿겠소? 정보를 사고파는 이들은 더 큰 이익을 주는 쪽으로 마음이 갈대처럼 변하는 건 흔한 일이 아니오.”
“대협께 믿음을 드리기 위해 화령신조가 저희에게 준 정보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전에 이야기해주지 않았던 화령신조와 관련된 내용이었다.
“화령신조가 우리에게 준 정보는 하나입니다. 하북성에 출몰하는 왜구.”
“왜구?”
“하북성은 왜구가 들어올 지형이 되지 않습니다. 더 가까운 강소랑 산둥이 있는데 굳이 하북까지 들어오는 게 이상하지 않으십니까?”
확실히 이상하긴 했다.
하북성으로 들어오려면 지형이 그리 순탄하지 않았다.
뿔처럼 튀어나온 산둥성을 지나도 요녕성이 있기에 굳이 왜구들이 깊숙한 하북까지 들어오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어찌하여 그런단 말이오.”
“다른 이들의 계략이지요.”
“다른 이들이 일부러 사람들을 죽이면서 그런 것을 꾸몄다고 말하는 거요?”
“네.”
쉽게 믿을 수 없었다.
왜구들이 야비하고 잔혹한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나 다른 이들이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포섭해서 일부러 피해를 준다는 건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모용세가.”
루주의 입에서 나온 말은 충격적이었다.
“그들이 왜구들을 포섭해 하북 쪽으로 왜구들을 보내는 겁니다. 저희는 그것들을 조사해 조금 더 체계적인 기록으로 만들어 팽가에 비싼 값으로 넘겼고요.”
“모용세가가 대체 왜 그런 일을 꾸민 거요?”
“권력.”
“권력?”
“팽가가 꽉 잡고 있던 하북의 패권을 슬금슬금 넘보는 것이지요. 모용세가가 중원으로 진출하려면 하북을 통해야 하니까요.”
역시나 권력다툼이었다.
“아무리 그렇다고 왜구를···. 관군은요?”
“관군도 한 통속이지요.”
“팽가는 대응은 어찌하고 있소?”
“무림맹으로 의견을 피력했으나 아무런 제지를 하지 않은 것을 보면 맹주께 보고되기도 전에 용천회가 관여한 것으로 보입니다.”
용천회.
그 늙은이들이 미쳐가는구나. 대체 무엇을 얻으려고 이리 무고한 이들까지 희생을 시키는 것인가.
“어찌하실 겁니까?”
“내가 뭘 말이오?”
“제가 지켜본 대협은 이런 일을 그냥 넘기지 않는 분 같아서요.”
“생각 중이오.”
이건 흑사칠견 사추도나 금선독룡, 화령신조 때와는 아예 다른 문제였다.
‘세력 다툼.’
오대 세가의 다툼에 내가 낄 명분은 없었다.
“그러면 이제 무조에게 가는 겁니까?”
“의뢰에 성공했으니 가서 대가를 받아야지요.”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고 나가려고 할 때, 명월루주가 다시 물었다.
“송 대협.”
“아직 할 말이 남았소?”
명월루주는 자리에서 일어나 나에게 예를 갖췄다.
“언제든 다시 명월루를 이용해주십시오. 그때만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
송삼현이 화령신조를 죽였다는 것은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고 퍼졌다.
객잔에서 술을 마시는 이들의 입에서는 송삼현의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다.
“아니, 정말이라니까! 송 대협이 화령신조의 목을 베는 것을 내 눈으로 똑똑히 봤다고!”
“검에서 푸른 연기가 나왔어. 마치 용처럼!”
“용 한 마리가 화령신조의 목을 물어뜯는 줄 알았다니까!”
그리고 그것은.
“응? 송삼현이라면 우리가 적수산에서 만났던 그 대협의 존함 아니냐?”
비문 상단주 벽이천의 귀에도 들어갔다.
“맞습니다! 백의에 청색 날의 검을 휘두르는 대협이 맞습니다!”
“그 대협이 화령신조를? 이럴 게 아니다! 나도 입이 근질거려 참지 못하겠구나!”
그렇게 비문 상단주 벽이천은 그날 저녁, 객잔에서 술을 마시며 적수산에 있던 이야기를 풀었다.
“그 송 대협이 적수산의 녹안도귀도 베었소, 내가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니까!”
“정말이오?”
“그렇소. 백의를 입고 아름다운 청검을 휘두르는 게, 마치 신선 같더이다.”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다른 이들이 하는 이야기가 벽이천의 귓가로 들려왔다.
“글쎄 그랬다니까 소문에 들리는 송삼현이라는 분이 왜구에게 피해당한 아이들에게 먹을 것을 줬다는군.”
“강호에 협객이 나타났어. 협객이!”
아이들에게 만두를 쥐여준 것까지 퍼졌다.
‘과연 대협이십니다! 이 벽이천! 송 대협의 뒤를 이어 진정한 협객이 되겠습니다!’
그렇게 송삼현의 명성이 서서히 퍼졌고 며칠이 지나자 사람들 입에서 한 단어가 꾸준히 나왔다.
“자네는 백의검룡 송삼현도 모르나?”
백의검룡(白衣劍龍)
송삼현의 별호가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퍼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