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lf a penny from the Golden Tiger RAW novel - Chapter 48
흑해도문 (1)
황화부는 왜구에게 피해를 입은 이들을 위해 피난민 임시 거처를 만들어 그들을 보살폈다.
“질서를 지키시오!”
식량을 배급해주는 곳은 인파로 북적였다.
“어이! 이곳에 와봐! 송 대협이 먹을 것을 가져왔어!”
“송 대협이 누군데?”
“그 있잖아, 녹안도귀랑 화령신조를 벤 백의검룡 대협!”
“아! 금호장의 삼 공자라고 하셨던 분!”
그곳에서 송삼현은 금호장의 돈으로 산 많은 음식을 그들에게 나눠줬다.
“양이 많으니 급할 필요 없습니다. 모두가 배부르게 먹게 해드리겠습니다.”
송삼현은 선무정과 같이 직접 음식을 나눠줬고 그 모습을 제갈귀호와 장우문이 멀리서 지켜봤다.
“… 어린 나이에 저리 올바르다니, 참으로 보기 드문 협객이군.”
“예, 그리고 무공 실력도 보통이 아닙니다.”
“무공을 봤었나?”
장우문은 지난번, 왜구가 침입할 당시, 송삼현이 배 위로 올라가 싸우던 것을 말했다.
“신묘한 검을 쓰더군요. 검기를 발현하는 것도 발현하지만, 검기를 통제하는 것을 봐선 초절정에 이른 것으로 보입니다.”
“검기를 통제한다라···.”
절정의 경지부터 검기를 다룰 수 있긴 하지만 그것을 통제한다는 것은 전혀 다른 수준이었다.
“참 탐이 나.”
“예?”
“저 아이를 맹에 소속되게 할 수는 없을까?”
“정도 무림인들은 맹에서 일하는 것을 자랑스러워하니 거절할 후기지수가 없을 겁니다.”
제갈귀호와 장우문이 대화를 하는 사이, 송삼현에게 황화부 지부대인이 다가갔다.
“송 대협, 정말 고맙소. 덕분에 이곳에 있는 피난민들이 안전히 정착할 수 있게 됐소.”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당연한 걸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은 세상이 아니오.”
지부대인은 진심으로 송삼현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피난민들이 배부르게 먹기에는 황화부의 지원으로는 부족했는데 그 부족한 것을 송삼현이 해결해준 거였다.
“송 대협의 이름은 죽을 때까지 못 잊을 거요.”
송삼현은 피난민들을 도와주며 명성을 쌓아갔다.
*
며칠 뒤, 황화부에 무림맹 분타가 세워지는 것이 거의 마무리 되어갈 때쯤, 난 선무정과 객잔에서 밥을 먹으며 대화를 나눴다.
“…. 누가 빼앗아 먹기라도 하냐? 천천히 먹거라.”
“요새 주군을 따라다니면서 일만 하느라 도통 뭘 먹질 못하지 않았습니까.”
“뭐? 뭘 먹질 못해?”
헛웃음이 나왔다.
“어제 네가 먹은 것만 해도 소 한 마리는 잡았을 거다.”
“그건 아닙니다! 저도 일한 만큼 먹는 겁니다!”
“그래, 알겠으니 많이 먹거라, 부족하면 더 시키고.”
“정말이요?”
“네가 일은 많이 했으니까.”
“제가 이래서 주군을 따르는 겁니다! 시원하십니다! 하하하하!”
이곳에 머무는 동안, 선무정은 솔선수범해서 피난민들을 도와줬다.
인파에 밀려 못 먹는 이들까지 세세하게 챙기는 것도 몇 번 봤었다.
“점소이! 여기네!”
선무정은 세상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이것저것 음식을 또 시켰고 어차피 먹는 거는 그다지 통제하고 싶지 않아서 다 먹게 뒀다.
“난 먼저 나갈 볼 테니, 다 먹은 뒤에 쉬고 있거라.”
“예! 주군, 천천히 다녀오십시오!”
그렇게 밖으로 나오자 아이들이 뛰어노는 게 보였다.
왜구의 피해를 입었다고 보기 힘든 밝은 모습이라 한동안 시선을 빼앗겼고 잠시 후, 걸음을 옮겼다.
그날 밤.
잠이 안 와 산책하는 중에 꽃들이 핀 들판을 발견했다.
그곳으로 천천히 오르자 허리를 굽혀 꽃을 꺾는 아이가 있었다.
“이곳에서 무엇을 하는 것이냐?”
“아! 어머니께 드릴 꽃을 따는 중이었습니다.”
열 살로 보이는 소녀가 고사리 같은 손으로 꽃을 꺾었다.
슬쩍 그곳으로 가 아이의 발아래에 있는 바구니를 보니 아름다운 꽃들이 담겨있었다.
“예쁜 꽃이구나.”
“당아욱이라고 저희 어머니가 제일 좋아하는 꽃이에요.”
“너도 꽃을 좋아하니?”
당아욱은 영롱한 보랏빛의 아름다운 꽃이었다.
금호장 청월각에서 어머니가 가꾸던 꽃밭에도 있던 꽃이었지.
“네! 그래서 저는 나중에 집 앞 마당에 많은 꽃을 심을 거예요!”
티 없이 맑은 아이의 웃음은 희망을 품고 있었다.
“꼭 그리될 거다.”
“자요! 이거 제가 드리는 거예요.”
아이는 나에게 꽃 한 송이를 건네줬다.
“아저씨도 어머니께 전해주세요! 이 꽃의 꽃말은 어머니의 사랑이거든요!”
“…. 고맙구나.”
“아니에요! 아저씨가 저희에게 먹을 걸 줬으니 저도 그 답례를 드리는 거예요!”
“아저씨? 나 아직 약관도 안 지났는데?”
“높은 분들이랑 계셔서 나이가 있는 줄 알았는데···. 그러면! 다음번에 만나면 오라버니라고 불러드릴게요.”
“약조하는 거다.”
“네!”
소녀는 해맑게 웃으며 나에게 꽃을 준 뒤에 언덕을 내려갔다.
“오라버니라.”
소녀가 주고 간 꽃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아름다운 꽃이었으나 묘한 슬픔을 품고 있었다.
*
다음 날에도 그다음 날에도 여지없이 소녀는 들판에 나타나 꽃을 꺾었다.
그리고 그 아이가 나를 부르는 호칭은 어느덧 오라버니로 바뀌어있었다.
“오라버니는 언제 가세요?”
“잘 모르겠구나. 아마 이제 곧 떠나지 않을까 싶은데?”
아이는 꽃을 꺾고 난 그 옆 바위에 앉아 달구경을 했다.
“그렇구나···. 또 이곳에 오실 거지요?”
“아마 그럴 거다. 여러 곳을 돌아다니다 보면 언젠가 다시 이곳에 발을 디딜 날이 오겠지.”
아이와 여러 꽃을 구경했다.
아이가 지금 부모를 비롯해 조부모와 함께 살고 있다는 것과 동네 아이들과 매일 뛰어노는 것, 어제는 뭘 먹었고 오늘 뭘 먹었는지 나에게 조잘조잘 떠들었다.
“그런데 아직 너의 이름을 모르는구나. 알려줄 수 있느냐?”
만난 지 삼 일째가 됐는데도 아직 이름도 몰랐다.
“제 이름은 도화에요!”
“내 이름은 송삼현이다.”
“알고 있어요. 오라버니 이름은 마을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거든요.”
“그러냐?”
“네! 우리를 도와주시는 훌륭한 분이라고 하셨어요.”
“너는 언제까지 꽃을 꺾을 참이냐? 벌써 삼 일째가 아니더냐.”
“오늘로 끝이에요. 어머니와 할머니께 만들어드릴 화관이 거의 다 만들어졌거든요.”
“장하구나.”
꽃을 다 딴 뒤에 도화는 내 옆으로 와서 앉았다.
“오라버니는 강하지요?”
“응?”
“강하면 그 왜구들도 다 없앨 수 있지 않아요?”
“왜구는 없애도 없애도 또 나타난다. 뿌리를 뽑지 않으면 사라지지 않아.”
도화는 하늘에 뜬 달을 보며 말했다.
“그런 날이 올까요?”
그 말에 섣부르게 답을 해줄 수 없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어떻게 말을 해줘야 이 아이에게 힘이 될 수 있을까.
허나 도화의 얼굴을 보니 생각이 거짓말처럼 하나로 정리됐다.
“그런 날이 올 거다. 반드시.”
내 대답을 들은 도화는 나를 보고 말했다.
“내일 점심 때, 만두 사주세요! 황월객잔에서 파는 만두 먹고 싶어요.”
“그러자. 내가 원 없이 사주마.”
“약조한 거예요?”
“그렇다니까, 너 말고도 너의 가족들 것까지 사줄 것이니 걱정하지 말거라.”
가족들까지 사준다고 하자 도화는 활짝 웃었다.
저 하늘에 떠 있는 달처럼 밝게.
*
이틀 후.
황화부를 떠나기 전날, 객잔에서 밥을 먹고 나왔는데 선무정이 신형을 날리며 다급하게 나에게 다가왔다.
“주군! 큰일 났습니다.”
“무슨 일? 너는 피난민들이 지내는 곳에 도움을 준다고 하지 않았더냐.”
“피난민들이 모인 마을에 왜구가 침입했습니다!”
“뭐라고?”
“어서 가보시지요!”
그 말을 듣고 피난민들이 지내는 곳으로 갔다.
챙!
챙!
병장기가 부딪치는 소리가 났고 무림맹 무사들과 관군이 왜구들과 전투 중이었다.
“삼현아!”
남궁효우는 왜구를 죽이며 나를 봤다.
그곳에는 많은 시신이 있었다.
“이놈들 말고 다른 왜구들은요?”
“이놈들을 버려두고 배를 타고 달아났다.”
남궁효우의 말을 듣고 이곳저곳 돌아봤다.
울고 있는 아이들.
그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몸을 날리는 어른들.
그 처참한 상황을 보다가 난 걸음을 멈췄다. 어제까지 나와 객잔에서 만두를 먹으며 말을 나누던 도화가 보였다.
“…. 도화야.”
“오라버니!”
아버지의 품에 안긴 도화에게 다행히 큰 상처는 없었다.
허나 도화가 만들려던 화관이 왜구들의 발길질에 처참하게 짓이겨졌다.
덥석.
힘없는 작은 손이 내 옷 소매를 잡아끌었다.
바들바들 떨리는 것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마을 사람들이 그랬어요···. 오라버니는 강한 사람이라고···. 그러니까···.어머니를 살려주세요.”
울먹이며 말하는 도화에게 침착하게 질문했다.
“어디 계시느냐?”
도화는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며 아비의 품에 안겼고 아비가 대신 이야기했다.
“왜구들이 마을의 아녀자와 아이들을 닥치는 대로 끌고 갔습니다.”
그 말을 듣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묵호대주 장우문이 나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흑해도문의 사주를 받은 왜구들로 밝혀졌다.”
“… 또 용천회가 꾸민 일입니까?”
“한 놈을 잡아 심문한 결과, 이번에는 흑해도문의 독단적인 행동으로 보인다. 왜구들만 있던 게 아니라 평소에 보이지 않았던 흑해도문 녀석들도 있었다. 아마 사람들을 잡아다가 노예상에 팔아버리려는 심산이겠지.”
흑해도문은 용천회의 정보를 받은 모용세가가 왜구를 포섭할 때, 이용한 사파였다.
하북, 산둥 지역 일대를 기반으로 활동하며 왜구들과 관계가 좋아 왜구들을 도와 마을을 약탈해 그에 따른 이익을 챙기는 집단이었다.
더 나아가 사람을 납치해 노예상에게 파는 일까지 스스럼없이 하는 잔혹한 이들이었다.
“… 그렇군요.”
“지금 관군들이 배를 타고 쫓으려고 하고 있으니 너도 괜찮으면 타고 가겠느냐?”
“예, 그리하겠습니다.”
장우문과 대화를 마치고 울고 있는 도화의 손을 잡았다.
바들바들 떨리는 흙 범벅이 된 손.
그리고 눈물 때문에 예쁜 얼굴이 얼룩져있었다.
도화의 손에 품에서 꺼낸 꽃을 쥐여줬다.
저번에 나에게 준 당아욱이었다.
그 꽃을 보고 나를 보는 도화의 눈에는 전에 봤던 희망은 사라지고 슬픔만이 서려 있었다.
“기다리거라, 내가 꼭 너의 어머니를 데리고 오마.”
*
달이 어두운 하늘을 밝히는 밤.
바다 한가운데 배 한 척이 떠 있었다.
왜구들로 위장한 그 배는 ‘흑해도문’의 배였다.
쏴아아아아.
파도 소리가 들리는 갑판 위.
황화부를 습격한 흑해도문의 배는 산둥성 연대 북쪽에 있는 작은 섬, 흑해도로 향했다.
“하하하하! 황화부 녀석들이 피난민 마을에 많은 것을 풀어놔서 수확물이 꽤 괜찮습니다!”
“조금 희생이 있긴 했으나 왜구 녀석들이 한 짓으로 알 터이니 저희에게 불똥 튈 일은 없을 겁니다.”
“허나 그곳에 버려두고 온 녀석들이 있지 않으냐. 그 녀석들이 우리가 개입했다고 알면 추격대를 꾸려 쫓아올 것이다.”
“그것도 염두에 뒀지요. 지금 풍향이 거세 파도가 높습니다.”
휘이이이잉.
“강이 아닌 바다는 바람의 영향을 더 많이 받지요.”
그의 말이 맞았다.
바람이 거세 파도가 높았고 거대했기에 흑해도문의 배처럼 범선이 아닌 이상 쫓아오는 게 거의 불가능했다.
“그리고 우리의 영역에만 가면 해류가 거세 어지간한 뱃사공도 통과하지 못할 거니 걱정하지 마시오. 하하하하하!”
그들이 만족스러워하는 그때.
탓.
바다에서 신형 하나가 물고기처럼 튀어 올라 배의 갑판을 밟았다.
“누구냐?”
그는 송삼현이었다.
가장 가까이서 정체를 묻는 이를 무시하고 배 한가운데로 걸어갔다.
저벅.
저벅.
저벅.
“멈춰라! 감히 이곳이 어디라고!!!”
촤아아아악!
앞을 막으려는 사람의 팔을 가차 없이 베어버렸다.
“으아아아아악!”
팔이 바닥에 떨어지자 모두가 놀랐고 일제히 각자의 무기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흑해도문의 무사 한 명이 앞으로 나왔다.
“본문의 허락도 없이 흑해도문의 배에 올라 검을 휘두르다니! 죽을 생각으로 온 것이구나!”
스윽.
주변을 둘러봤다.
수십 명의 무인이 주변을 포위했으나 전혀 흔들림 없는 눈빛을 한 송삼현은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흑해도문 부문주 가융도를 보고 말했다.
“한 가지만 묻겠다.”
“무엇이냐? 곧 죽을 놈이니 답을 해주마.”
“어찌하여 그들을 공격하고 약탈했느냐.”
그 말에 가융도는 뒤로 넘어질 정도로 박장대소하며 말했다.
“그거야 유흥이다. 약자들이 울부짖는 소리만큼 아름다운 운율이 없고 약자들 것을 약탈하는 것만큼 맛있는 건 없지.”
그 말을 듣고 송삼현의 몸밖으로 퍼지는 짙은 살기.
스릉.
푸른 검날이 달빛을 받으며 빛났고 푸른 검기가 연기처럼 송삼현의 몸을 휘감았다.
“알겠다.”
저벅.
“그렇다면 나도 너의 논리대로.”
촤아아아아악!
“약자들이 울부짖는 소리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들어보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