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lf a penny from the Golden Tiger RAW novel - Chapter 5
진왕 전하 납시오! (1)
회귀하여 이곳에 온 이후로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스르르륵.
무공의 구결이 허공에 뜨는 것과 전생에 내가 싸웠던 적들의 신형이 구현되는 거였다.
부족한 경험을 충족시키며 비무를 할 수 있으니 이것은 나에게 아주 큰 자산이 될 것이 분명했다.
‘또 보고 있군.’
내공을 흘려 주변에 기척을 확인하는데 지붕 위에 암부 한 명이 숨어서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수련을 하기 전에 저것부터 먼저 처리하는 게 낫겠군.
바람처럼 신형을 날려 전각을 타고 올라가 지붕에 다다랐다.
워낙에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암부는 피할 새도 없었고 금빛 복면을 쓰고 있던 암부는 갑자기 뒤에서 나타난 나 때문에 화들짝 놀랐다.
“한 가지만 부탁해도 되겠소.”
“… 말씀하시지요.”
암부는 금호장주 송우태의 직속부대로 다른 이의 명령에는 따르지 않는다.
그러나 삼 공자이기에 ‘부탁’이라는 표현으로 말을 할 수 있었다.
“수련에 대해서 장주께는 자세하게 말하지 마시오, 그저 수련에 열중합니다, 라고 전해주실 수 있겠소?”
굳이 내 경지를 알리고 싶지 않았다.
주목받는 건 딱 질색이니까.
“… 그리하겠습니다.”
“부탁하겠소.”
말을 끝낸 뒤에 다시 전각 아래로 뛰어내렸다.
유운검법의 기본 보법이 될 ‘유운보(流雲步)’는 이미 대성에 이르렀으니 이 정도 경공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시작해볼까.”
며칠 동안의 관찰 끝에 무공 구결이 나오게 하는 것과 과거에 내가 경험했던 것이 재현되게 하는 것은 집중에 따랐다.
일류와 절정 경지에 오른 무인들을 지나 이제 초절정의 경지에 도달한 이를 상대할 차례였다.
구체적으로 떠올렸고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자는 전쟁 당시, ‘소검마(小劍魔)’라 불리며 많은 정파 고수들을 죽인 검객 사휘도였다.
육척이 넘는 키에 긴 장도를 휘두르는 그의 검은 붉은 검강를 발현해 상대를 양단하는 살검(殺劍)이었다.
‘해보자.’
스윽.
자세를 잡자 소검마는 삼장이 떨어진 곳에서 땅을 박차며 도약해 순식간에 내 앞으로 날아왔다.
피 냄새가 가득담긴 파화신검의 초식이 내 목으로 들어왔다.
번개 같은 속도에 황급히 유운보를 펼쳤다.
목 옆으로 아슬아슬하게 검이 지나갔고 난 자세를 잡고 소검마를 향해 검을 출수했다.
‘유운 1식 운행(雲行)’
검이 이리저리 흔들렸고 왼쪽으로 들어가는 척 허수를 던지며 오른쪽 허리를 노렸다.
하지만 소검마는 뒤로 도약하며 피해내고 붉은 검강이 그의 검을 휘감았다.
“아니, 벌써 검강을 쓴다고? 양심이 어디 있는 것이냐.”
초절정의 경지부터 구현할 수 있는 검강, 그것이 나를 덮쳐왔고 황급히 검을 들어 정수리로 오는 검을 막아냈다.
꽈앙!
검에 내공을 흘려 간신히 막아내긴 했지만, 약간의 내상이 동반됐다.
‘제길, 아직 검기를 발현할 수 없으니 막아내는 것조차 힘겹구나.’
뒤로 다섯 보 물러난 다음 백여 합을 나눴고 결국에는 소검마의 검이 내 복부를 관통하며 패배로 끝났다.
전생의 경험으로 어떻게든 버텼지만, 아직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만약 경험도 없었다면 십 초식 안에 목이 떨어져 나갔겠지.
“…. 쳇, 아직은 무리인가.”
내 앞에 있는 소검마의 형상은 비무가 끝나자 연기처럼 사라졌다.
지금 내 수준으로는 아직 미치지 못하는 경지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누워있을 수만은 없다.
전생에 천하제일 검으로 가는 데까지 가장 많은 도움을 준 것은 ‘경험’이었다.
내 기억 속에 그 경험들은 있지만, 아직 이 몸에는 경험이라는 게 부족했다.
적어도 내가 머릿속으로 구사하는 검술은 구사할 정도는 되어야 초절정이 되는 고수를 상대할 수 있었다.
“우선 너를 넘는 것부터 시작이다.”
송삼현이 소연무장에 누워 하늘에서 움직이는 구름을 보고 있을 때, 암부는 지붕 위에서 지켜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뭘 한 거지?”
송삼현은 소검마랑 싸웠지만, 다른 사람들이 볼 때는 가부좌를 틀고 앉아 명상한 것처럼 보였다.
그리곤 땀을 뻘뻘 흘리며 쓰러지니 어리둥절할 수밖에.
*
진왕의 행렬이 남경(南京) 일대를 진동시켰다.
호위대는 적색 갑옷을 입고 ‘秦’ 진왕부를 알리는 표를 높이 휘날리며 금호장으로 향했고 거리의 사람들은 엎드리며 행렬에 예를 갖췄다.
“진왕 전하께서 매년, 이맘때면 남경에 온다더니 그 위세가 정말 대단하네.”
“황제 폐하 다음으로 권세를 누리시는 분이니 당연한 거 아니겠나.”
사람들은 속닥거리며 진왕에 관한 대화를 나눴다.
그들이 하는 말은 다 좋은 말들만 있었고 비난하는 말은 단 하나도 없었다.
그건 진왕이 지금까지 살아온 길이 옳았다는 걸 증명했다.
“그 권세를 누리시는 게 당연한 분이시지. 오 년 전, 청해성 대기근 때, 구휼미를 풀어 백성들을 구원해주셨고 기마인들이 북방에서 계속 약탈을 일삼자 고작 천여 명의 기마대를 이끌고 수만 명의 기마인을 도륙하시지 않았나.”
“대단하신 분이지.”
진왕의 위명(威名)은 중원 전역에 퍼졌다.
그 행렬이 금호장의 앞에 도착하자 마차가 섰고 그 안에서 진왕이 내리자 송우태는 넙죽 엎드렸다.
“금호장주 송우태가 진왕 전하를 뵙습니다!”
“금호장의 모두가 진왕 전하를 뵙습니다!”
송우태의 목소리가 금호장의 장원 전체를 울리자 금호장의 모든 이가 바닥에 넙죽 엎드려 예를 올렸다.
마차에서 진왕이 내리자 그 뒤에 있는 마차에서 진왕비와 군주, 왕세자도 같이 내려 송우태가 있는 곳으로 걸어왔다.
“그만하고 일어나시게. 자네가 매년 이러니 내가 부담스러워서 다음에 또 오겠나. 허허허.”
친우사이기에 격식 없이 대했고 송우태는 감히 눈을 못 마주친 채, 입을 열었다.
“보는 이가 많습니다.”
“허허허, 내가 고지식한 친우를 뒀어.”
“안에 상을 준비해놨습니다. 함께 들어가셔서 말씀 나누시지요.”
“그리합시다. 오랜만에 만난 친우와 코가 비뚤어질 때까지 마셔봅시다.”
진왕을 화의각으로 모셔 진수성찬을 대접했다.
사소한 이야기가 오갔고 송이현은 아름다운 군주를 보며 헤벌쭉 웃고만 있었다.
진왕의 금지옥엽인 주홍연은 열다섯의 나이에 벌써 진왕과 진왕비의 피를 이어받아 경국지색의 미모를 뽐냈다.
“이번 금호무회의 준비도 잘 되어가고 있소?”
금호무회(金虎武會).
남경에서 매년 팔월에 열리는 비무회로 금호장이 주최해 그 명성이 높았다.
중원 고수들이 모여 비무를 펼쳤고 그곳의 우승자는 금전 열 냥과 더불어 보검을 얻을 수 있으니 매년 참가자는 수백 명에 이르렀다.
“왕야께서 잘 보살펴주신 덕분에 준비는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진왕이 남경으로 온 이유는 휴식이라는 명분이었지만, 그는 매년 금호무회를 보아왔다.
“기대되는군. 이번에는 어떤 무인이 나타날지.”
“저도 그렇습니다. 늘 금호무회에서 화제가 되는 무인이 나타났으니까요.”
“아, 그러고 보니 일 공자의 무위가 그토록 대단하다 들었소, 강호에서 풍운검이라 불린다고?”
진왕의 시선이 자신에게 향하자 송일현은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포권지례를 올렸다.
“부족한 저에게 과분한 별호입니다.”
“부족하다니 협의가 가득한 무인이 그토록 겸양을 떨어서야 되겠는가.”
“부끄럽사옵니다.”
“혹여 왕세자의 무예를 봐주지 않겠나? 이 아이는 강호인들을 선망(羨望)하여 자네를 꼭 보고 싶어 했네.”
왕세자의 나이는 올해로 열셋, 그는 무예에 흠뻑 빠져 매일 수련을 하며 자유롭게 주유천하(周遊天下)하는 강호인들을 부러워했다.
“어찌 알량한 재주를 가졌다 하여 왕세자께 무례를 범하겠나이까. 제발 명을 거두어주십시오.”
송일현이 고개를 숙여 들지 못하자 왕세자가 말했다.
“풍운검의 이야기는 모두가 사람들의 입으로 전해 들은 이야기입니다. 전 본인에게 꼭 그 많은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녹림채주를 죽인 이야기도요!”
안광이 빛나며 송일현을 보았고 송일현은 난감해하며 송우태 쪽을 힐끔 봤다.
그러자 송우태가 허허 웃으며 말했다.
“신하가 된 자로서 어찌 명을 어기겠느냐. 마마의 뜻대로 따르거라.”
“예, 그리하겠습니다.”
화의각에서 두 가문이 하하호호하며 식사를 하는 자리에 송삼현은 없었다.
애초에 이 자리에 오지 말라는 명을 받았으니까.
*
소연무장에서 계속 수련을 하며 몸을 단련시켰다.
검을 휘두르다가 잠시 물을 마시며 주위를 돌아보는데 처음 보는 사람이 있었다.
고급스러운 비단 옷을 입고 감탄이 나올 미색을 가진 여인은 금호장의 사람이 아니었다.
“누구십니까? 여긴 함부로 올 수 있는 곳이 아닌데.”
금호장은 허락되지 않은 외부인의 출입은 엄히 다스리는 곳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금호무회를 보러 온 고관대작들이 금호장 접객당에서 머물며 교분을 쌓기도 하니 고관대작 중, 한 명의 딸인가?
“그저 풍경이 아름다워 둘러보고 있었다.”
내가 지내는 청월각의 풍경이 보기 좋긴 하지.
풍성한 푸른 잎에서 나오는 내음은 머리를 맑게 해주고 벌레들의 지저귐은 노랫가락처럼 들렸다.
“금호장의 초청을 받으셨습니까?”
“그렇다.”
왜 계속 하대하는 거지? 초면인데.
“아, 그러면 둘러보시고 돌아가십시오. 저는 볼일이 있어서 이만.”
그냥 가려고 했지만, 옷자락을 잡혀 움직이지 못했다.
뽀얗고 가느다란 손에서 이런 힘이 나오다니 예사 인물이 아니라는 게 분명해졌다.
“길을 잃었다. 길을 찾아다오.”
응?
“옆을 지키는 이가 없습니까?”
“그렇다. 식사 후에 다과를 먹다가 바람을 쐬고 싶어 홀로 나온 거라서···. 그리고 이곳에는.”
여인은 두리번거리더니 말했다.
“지나다니는 사람이 없구나.”
그렇지.
청월각은 소월이를 비롯해 3명의 시녀와 2명의 호위무사밖에 없으니까.
“… 제가 사람이 있는 곳까지 모셔다드리겠습니다.”
여인은 가만히 나를 뚫어져라 봤다.
“혹여 금호장의 어디서 오셨는지 기억하시나요?”
“그걸 모르겠구나. 금호장의 장원이 워낙 넓어 와도 와도 길눈이 어두워 자주 까먹는다.”
일단 청월각 밖으로만 가면 돌아다니는 이들이 많으니 그들에게 이 여인을 인계해야겠다.
“그런데 너는 금호장의 삼남이 아니더냐. 어찌하여 식사에 오지 않았지?”
“오지 말라 하는데 어떻게 갑니까. 아직 제 이야기를 모르는 거 보니 남경 사람이 아닌 거 같은데···.”
“안다. 금호장의 반푼이라는 소리는 들었다.”
“초면에 너무 하십니다. 다짜고짜 하대할 때부터 이상한 사람이라는 건 눈치챘지만.”
“기분이 상했다면 미안하구나.”
“괜찮습니다. 익숙하니까요.”
앞장서서 걸어갔고 여인은 뒤를 졸래졸래 쫓아왔다.
미색과 기품을 보니 예사 사람은 아닌 거 같았다.
“꽃이 예쁘구나.”
여인이 멈춘 곳은 내 어머니가 가꾸는 꽃밭이었다.
“꽃은 예쁘지만, 금방 지니 마음이 아프구나.”
눈에 안쓰러움이 가득했다.
꽃이 진다는 것이 이리 속상해하는 사람은 오랜만에 보는구나.
전생에 같이 전장을 누볐던 여인이 무심코 떠올라 그때 했던 말이 저절로 나왔다.
“만물은 만들어지지만 다스려지지 않고 시간이 지나면 머무르지 않고 떠나갑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면 그곳에 또 다른 생명이 피어나니 마음 아파하지 말고 기다리십시오. 다음에 다시 피면 보러오면 되니까요.”
꽃을 보던 여인이 나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꽤 재미있는 말을 하는구나. 학문을 배웠느냐?”
“따로 학당을 다녀본 적은 없습니다. 서책만 주야장천(晝夜長川) 읽었지요.”
여인은 기분 좋은 미소를 머금으며 나를 보다가 다시 꽃을 봤고 그때 청월각 입구에서 한 시녀가 다급하게 들어왔다.
“군주마마 여기 계셨습니까! 지금 난리 났습니다!”
군주마마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