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lf a penny from the Golden Tiger RAW novel - Chapter 55
무림맹 (2)
“백의검룡이라면 금호장의 삼 공자?”
백의검룡이라는 별호를 들은 주변인들은 모두 놀랐다.
“저자가 백의검룡이라고?”
“녹안도귀와 화령신조를 죽이고 흑해도문까지 멸문시킨 후기지수?”
“소문에 구척이 넘는 거구라고 들었는데 아니었군.”
“구척이면 사람이 아니라 괴물이지, 괴물.”
“저 검 한 자루로 흑해도문을 멸문시켰다는 건가?”
“약관도 지나지 않은 나이에 그 정도의 무위라니···. 믿기지 않아.”
웅성거리는 소리가 점점 커졌고 나를 보던 황진후의 시선은 내 옆에 있는 선무정에게 향했다.
“옆에 계신 분은 누구십니까?”
“제 동행입니다.”
“성함과 문파가 있습니까?”
“문파는 따로 없고···.”
그 말에 선무정은 품에서 무언가를 뒤적거리더니 작은 동패를 하나 꺼냈다.
“여기요.”
그곳에는 ‘천음(天音)’이라고 적혀 있었고 황진후는 깜짝 놀랐다.
“천음산보님을 증명하는 패를 가지고 계신 분은 혹시···.”
“그분의 제자입니다.”
“신분이 확인되었습니다! 들어가시지요.”
안으로 들어가면서 선무정에게 전음을 보냈다.
[패도 가지고 있었느냐?]
[굳이 패를 꺼낼 일도 없었고 사부님이 만에 하나 맹에 출입할 때, 이 패를 보여주면 된다고 하셔서 아껴두고 있었지요.]
무림맹 안으로 들어가 황진후의 안내를 받으며 군사부로 갔다.
가는 길은 익숙했다.
원래 내가 무림맹으로 들어오는 시기보다 9년이나 일찍 왔으나 변한 것은 크게 없었다.
지나다니는 사람들.
수련을 하는 무인들.
내가 기억하고 그리워했던 곳이었다.
“무정아, 넌 방으로 들어가서 쉬고 있거라.”
“그래도 되겠습니까?”
“군사 어른을 뵙는 자리니 나 혼자만 가야 할 것 같다.”
“네! 그러면 알겠습니다.”
“부당주님, 부탁드리겠습니다.”
내 부탁에 황진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덕산아! 이리와서 선 소협을 객실로 안내해드리거라!”
그렇게 선무정은 다른 접객당원의 안내를 받으며 방으로 갔고 반각 정도 걷자 ‘군사부’라는 간판이 보였다.
중원 무림의 모든 정보가 오가는 곳.
그렇기에 많은 무인이 경계를 서고 있었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군사부로 들어가는 게 아니었습니까?”
“지금 군사부에서 극비로 다뤄지는 일이 있어 통제가 제한되고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아! 그렇군요.”
군사부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옆길을 통해 뒤쪽에 있는 별실로 갔다.
“이곳에서 기다리고 계시면 곧 군사님이 오실 겁니다.”
“예, 알겠습니다.”
황진후가 포권을 올리고 나간 뒤에 잠시 기다렸다.
‘… 참으로 그리운 정취구나.’
저번 삶에서도 군사부에 몇 번 오긴 왔었다.
허나 그때와는 조금 달랐다.
아마 시일이 지나면서 많은 것들이 바뀐 것이겠지.
그래도 그 분위기가 남아있어 그리운 감정이 올라왔다.
‘내가 다시 이곳에 올 줄은 몰랐는데.’
그렇게 옛 생각에 잠겨 있자 잠시 후, 밖에서 누군가가 이곳으로 오는 기척이 들렸다.
한 명이 아닌 두 명.
제갈귀호말고 다른 사람도 오는 건가.
끼익.
“오랜만이구나.”
“총 군사님을 뵙습니다.”
제갈귀호에게 정중하게 예를 올리고 뒤에 따라서 들어오는 사람을 봤다.
제갈귀호는 입꼬리가 올라갔고 같이 들어온 여인을 소개해줬다.
“이쪽은 내 손녀 제갈소소네.”
*
제갈소소, 삼호 오화 중, 지화라 불리며 아름다운 미모로 많은 남성의 마음을 울리는 여인이었다.
“안녕하세요. 제갈 소소라고 합니다.”
절제된 예와 우아한 기품, 저번 삶에서 스쳐 가며 봤던 그녀는 냉기를 풀풀 풍기며 차가운 인상을 준 사람이었다.
“여기서 제갈 소저를 뵐 줄은 몰랐습니다. 송가 삼현이라고 합니다.”
“송 대협님의 소문은 익히 들어 알고 있습니다. 아직 열다섯 밖에 되지 않으셨는데 강호에서의 활약이 정말 대단하더군요.”
“무릇 소문은 과장되기 마련이지요.”
“그 소문도 사실에 기반이 되어 나오는 것이니 마냥 과장되었다고만 볼 수는 없지요.”
세 사람은 자리에 앉아 차를 마시며 여러 대화를 나눴고 제갈귀호가 이번 일에 관해 이야기했다.
“이번에 허무맹랑한 일을 저질렀더구나. 흑해도문을 없앴다고? 그것도 혼자서?”
“예.”
“허허허허, 그때만 해도 가능할까 생각이 들었는데 정말 가능할 줄이야.”
“저에게 천인부도 붙여놨으니 보고를 다 들으셨지요?”
“….. 그것도 알고 있었느냐?”
“그 정도 기운도 느끼지 못할 거라고 보셨습니까?”
송삼현의 말을 듣고 제갈귀호는 확신을 가졌다. 눈앞에 어린아이가 화경에 도달했다고.
“어떤 깨달음으로 화경에 도달했느냐.”
흑해도문을 없애면서 송삼현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경지를 들킨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더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답했다. 제갈귀호는 속인다고 속을 위인이 아니었으니까.
“검에 대한 깨달음이지요.”
“참으로 깊은 깨달음인 모양이구나, 환골탈태한 흔적이 없는데 화경이라니.”
화경에 도달할 때, 환골탈태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송삼현은 하지 않고 도달했다.
간혹 깨달음이 깊으면 가능한 일이긴 했다.
“환골탈태도 해야지요. 허나 아직 몸이 다 여물지가 않아 환골탈태를 하기에는 이릅니다.”
“호오, 그거 기대되는구나. 환골탈태는 어디서 어떻게 할 참이더냐?”
호기심 가득 한 눈빛으로 묻는 제갈귀호를 보며 송삼현은 슬쩍 말을 돌렸다.
“그런데 바쁘신 거 아닙니까? 무림맹 군사부를 이끄시는 군사 어른의 시간을 빼앗는 것 같아 죄송스럽습니다.”
무림맹의 군사부는 매일 같이 수백 통의 소식이 전해졌다.
아래에 있는 책사들이 검열해서 올린 것을 총군사인 제갈귀호가 최종 결정을 하는 형태로 정보가 다뤄졌다.
그렇기에 군사부를 이끄는 제갈귀호는 매일 같이 서찰에 파묻혀 살았다.
“괜찮다. 지금은 부군사에게 맡겨놨으니까.”
“그렇군요.”
“말하는 것을 보니 군사부에 대해 아느냐?”
“정도 무림의 모든 정보를 다루는 곳이 아닙니까. 감히 저 같은 소생은 상상조차 못 할 일이지요.”
제갈귀호는 흐뭇하게 바라봤다.
“저번에 약조했던 진법은 내가 가르쳐주마, 지금 용천회 일만 마무리 지으면 시간이 나니.”
“그 정보는 도움이 되셨습니까?”
“아주 큰 도움이 됐지. 네가 용천회 늙은이들의 표정을 봤었어야 해.”
제갈귀호는 송삼현이 준 정보로 용천회에게 제대로 한 방 먹였었다.
허나 아직 ‘벽력탄’에 대한 정보는 공개하지 않았다. 섣부르게 말했다가 역풍을 맞을 수 있어 때를 기다리는 거였다.
“그렇군요. 제가 총 군사께 도움이 되었다니 영광입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곧 네가 준 결정적인 정보로 공격할 준비를 하고 있거든.”
지금은 팔다리를 잘라놓은 수준이었다.
용천회가 꼬리를 잘라내려고 하니 조만간 벽력탄으로 쐐기를 박을 참이었다.
팔다리가 아닌 깊게 박힌 뿌리까지 뽑아야 하니까.
“용천회가 쉽게 당할까요?”
“서문가후가 대비를 하겠으나 그 녀석이 쓸 수십 가지의 계책을 이미 생각하고 대비책을 만들고 있으니 그 녀석들이 판을 뒤집기는 쉽지 않을 거다.”
지혜로는 따를 자가 없는 사람이니 모든 방도를 예측해놨겠지.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씀해주십시오. 제 힘이 닿는 데까지 도와드리겠습니다.”
“지금까지 여러 후기지수를 봐왔다. 그나마 된 놈이 남궁효우라고 봤는데 그보다 믿음직한 놈이 있구나.”
“과찬이십니다.”
“안 그래도 맹주님이 한번 보자고 하셨는데 내일 밤이 어떠냐?”
“전 언제든 괜찮습니다.”
차를 다 마시자 제갈귀호가 입을 열었다.
“이렇게 차를 마신 뒤에 어딜 갈 참이냐?”
“이곳에 누님이 왔다고 해서 보러 가려 합니다.”
“금호장의 딸이라면 무림맹 접객당에 묵고 있으니 그곳으로 가면 될 거다.”
“이리 귀한 시간을 내 이야기를 할 수 있어 영광이었습니다. 그러면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제갈 소저도 다음에 또 뵙지요.”
그렇게 송삼현이 포권지례를 올린 뒤에 나가자 옆에서 이야기를 듣던 제갈소소가 말했다.
“할아버님이 궁금해하실 만한 분이시네요.”
“그렇지?”
“예, 말하는 거나, 풍기는 분위기, 그리고 무엇보다 상대를 배려할 줄 아시는 분이셨습니다.”
제갈귀호는 흐뭇하게 웃었다.
“인연을 잘 쌓아보거라, 훗날 우리 맹에 큰 도움이 될 녀석이니.”
“할아버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는 후기지수는 처음이네요.”
“그런가?”
“예, 보는 눈이 워낙 까다로우셔서 마음에 드는 후기지수들이 없으셨잖아요. 그리고 저를 이렇게 데리고 합석한 적도 이번이 처음이고요.”
“너의 배필로서 어울릴 거 같은데 너의 생각은 어떠냐.”
“…. 또 저를 놀리시는 겁니까?”
“농이 아니다. 참으로 마음에 드는 녀석이구나.”
제갈귀호의 머릿속에서는 미래에 무림맹의 그림이 그려졌다.
수많은 이들을 이끄는 제일 위, 맹주의 자리에 앉은 이의 얼굴이 자꾸 아른거렸다.
‘어떻게 무림맹으로 끌어들여야 할꼬.’
*
군사부를 나와 기다리고 있던 접객당원의 안내를 받으며 걸어갔고 지나가는 이들이 나를 힐끔힐끔 바라봤다.
“… 저들이 왜 저를 저리 보는 겁니까?”
“그야 최근 강호에 소문이 자자한 백의검룡 대협이시니까요! 수려한 외모에 가공할 무공! 그리고 약자를 배려하는 마음까지! 존경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렇구나.
저번 삶에서는 크게 느껴보지 못한 시선이라서 그런지 조금 어색했다.
그때는 신분을 숨겨야 하는 부대에 있었으니까.
“그리고 저도 마찬가지고요! 백의검룡 대협께 안내해드리고 싶다는 이들 중! 치열한 경쟁을 뚫고 제가 됐습니다!”
“축하드려야 하는 거지요?”
“네! 무려 스무 명이 넘는 경쟁자 사이에서 제가 됐으니까요!”
이 사람은 말이 많은 사람이었다.
조잘조잘 떠드는 소리를 들으며 걷자 곧 목적지에 당도했다.
“이쪽이 무림맹에 온 객을 맞이하는 용화객입니다.”
“감사합니다.”
안내받으며 도착한 용화객은 상당히 컸다.
무림맹을 찾아온 이들이 묵는 곳으로 갑, 을, 병, 정, 이렇게 네 등급으로 방이 배정됐다.
“금호장의 송 소저는 지금쯤 미리 오신 다른 분들과 다과를 들고 계실 겁니다.”
“안내를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접객당원은 나에게 포권을 올린 뒤에 갔고 난 용화객 안으로 들어갔다.
커다란 연못 한가운데에 있는 정자에서 송연화를 비롯해 다른 여인들이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남성들은 섣불리 그곳으로 가지 못하고 멀찌감치 서서 그녀들을 바라보기만 했다.
“꽃들이 따로 없군, 중원에서 제일이라는 미녀들만 모아놨어.”
“저쪽에 앉은 분이 남궁세가에서 오신 남궁유유 소저고 왼쪽에 앉으신 분이 하북 팽가의 팽유화 소저지?”
정자에 당도하자 송연화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 주위로 여러 여인이 있었으나 나는 오로지 송연화만 봤다.
“오랜만입니다. 누님.”
내가 인사를 하자 송연화의 눈은 놀라움으로 변했고 눈시울이 붉어졌다.
“삼현아!”
“뛰지 마세요. 그러다가 넘어지면 다칩니다.”
와락.
“보고 싶었다.”
“… 저도요.”
오랜만에 느껴보는 따뜻함에 마음이 편안해졌다.
*
그 시각, 무림맹 본산에서 5리 정도 떨어진 거리에 있는 한 전각.
‘용천회’
간판이 있었고 그곳 정원을 거니는 사람이 있었다.
용천회주 혁련서권이었다.
우람한 체구에 8척이 넘는 키.
‘권신’
이라고 불리며 무림 맹주까지 역임했던 그가 정원 거닐었고 그 옆에는 서문가후가 있었다.
“흑해도문을 멸문시킨 자가 지금 무림맹에 와 있다?”
“예, 제갈귀호와 만났다고 합니다.”
혁련서권은 서문가후 만큼이나 머리가 굴러가는 사람이었다.
무림 맹주였던 시절에 제갈귀호를 상대해봤으니 그가 어떤 의미로 송삼현을 불렀는지 유추했다.
“…. 자신들의 세력으로 끌어들이려는 거군.”
“제가 생각할 때도 그렇습니다. 흑해도문을 홀로 멸문시킬 정도면 적어도 화경의 초입에 도달했다고 봐야 합니다.”
화경의 초입.
수많은 무림인이 닿으려고 하나 평생 노력해도 닿지 못하는 곳을 고작 열다섯의 아이가 이뤘다는 걸 혁련서권은 듣고도 믿기지 않았다.
‘만약 적이 된다면 위험한 자임에 틀림이 없다.’
서문가후는 가만히 연못을 보는 혁련서권을 보며 말했다.
“제가 만나보겠습니다.”
“자네가?”
“예, 용천회로 끌어들일 수 있다면 최고겠으나 그렇지 않아도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떠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