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lf a penny from the Golden Tiger RAW novel - Chapter 56
무림맹 (3)
송연화와 같이 있는 다른 소저들에게도 포권을 올렸다.
남궁유유.
팽유화.
남궁세가와 하북 팽가의 딸들로 송연화와 열여덟 동갑내기 친우였다.
인사를 한 뒤에 빈자리에 앉아 대화를 나눴다.
“강호행은 힘들진 않고?”
“예, 재미있습니다. 호화회가 끝나면 강서로 가보려고요.”
“강서로?”
“예, 화산파의 도사님에게 초대도 받았고 사천에도 놀러 오라는 분이 계셔서요.”
내 강호행이 주된 대화 내용이었다.
“난 너의 소문이 들려 올 때마다 심장이 덜컹 내려앉는다. 적수산의 녹안도귀와 화령신조, 그리고 이번에는 흑해도문이라니···.”
보통 후기지수들의 강호행은 이리 굵직한 흔적을 남기지는 않았다.
호위를 해주는 고수와 편안한 길을 찾아 유명한 곳을 둘러보는 정도라 내가 걷는 강호행은 그것들과 비교하면 차원이 달랐다.
적수산의 녹안도귀.
마을 하나를 통째로 불태운 화령신조.
동쪽 바닷길을 꽉 잡고 왜구들과 노략질을 일삼는 흑해도문.
목숨을 잃는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질 않은 이들이라 송연화의 표정에는 걱정이 묻어있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든든한 이들이 곁에 있습니다.”
“맞다. 저번에 보내준 서찰에 벗이 생겼다고 하지 않았더냐, 누이에게 소개는 안 해주는 것이냐?”
“지금은 잠시 떨어져 있습니다. 호화회 때,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송연화가 살짝 서운한 표정을 짓자 난 다과를 하나 집어 송연화의 입에 넣어줬다.
“진짜 강호에 소문이 자자한 백의검룡이 맞으신 거지요? 이렇게 보니 그 무시무시한 소문의 주인이 아니신 거 같네요.”
송연화와 대화를 나누고 있자 맞은편에 앉아서 가만히 대화를 듣던 남궁유유가 말을 걸었다.
훗날에 남궁세가의 검 二 대를 이끌며 ‘검후’라고 불렸었던 여인으로 송연화와 둘도 없는 벗이었다.
“당연하지요. 강호에 이름을 날린다고 해도 제가 금호장 송연화의 동생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으니까요.”
“대협과 인연이 되어서 참으로 기쁩니다.”
“네?”
“제 오라버니와 송 소저가 혼인하면 우리의 인연도 이어지는 거 아니겠어요? 혈연으로.”
“그러네요.”
“저도 나중에 오라버니가 혼인하고 나면 강호행을 할 생각인데 그때 도움을 주세요.”
“도움이요?”
“예, 집안에서는 할아버님부터 모두 반대를 하실 거라···. 강호에 명성이 자자한 분이 같이 다녀준다면 걱정을 덜지 않으실까요?”
아, 그러니까 나를 이용해 강호행을 하고 싶다는 거구나.
“어렵지 않은 부탁이네요.”
그다지 어렵지는 않았다.
“약조하신 겁니다! 약조만 들어주시면 제가 대협의 부탁도 꼭 들어드리겠습니다!”
오대 세가의 필두인 남궁세가와 인연이 된다면 훗날 많은 도움이 될 거니 이런 관계도 나쁘지 않지.
남궁유유의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그 옆에 있던 팽유화가 입을 열었다.
“저도 할 말이 있는데 해도 되겠습니까.”
팽유화는 일반 여인보다 덩치가 훨씬 컸다.
스윽.
그러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나에게 두 손을 모아 공손하게 예를 갖췄다.
당황해서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포권지례를 취했다.
“하북 황화부에서 일어난 왜구의 사태에 도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대협 덕분에 하북 황화부를 비롯해 하북 해안이 왜구의 위협에서 많이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아닙니다. 제가 아니더라도 다른 분들도 똑같이 했을 겁니다.”
내 대답에 팽유화는 방긋 웃었다.
“제 오라버니가 했던 말 대로 참 예의가 바르신 분이네요.”
“그렇습니까?”
“예, 제 오라버니가 대협의 칭찬을 입에 침이 마를 정도로 하셨어요. 실제로 보니 왜 그러셨는지 이해가 되네요.”
팽유화의 칭찬에 웃음을 짓는데 송연화가 말했다.
“유화야, 내 동생을 좋게 봐주어 고맙구나.”
“송 대협이 하신 일에 비하면 내 인사는 아무것도 아니니 신경 쓸 필요 없다.”
송연화는 흐뭇하게 웃더니 나를 쳐다봤다.
“그건 그렇고 흑해도문은 어찌 무너트린 것이냐?”
“강호를 돌아다니다 보니 여러 인연이 생겨서요. 그 사람들의 도움을 좀 받았습니다.”
그렇게 말을 하고 있자 어디선가 인기척이 느껴졌다.
나만 느낀 게 아니었다.
남궁유유와 팽유화도 무공을 익혔는지 인기척이 들린 곳을 쳐다봤다.
“이곳에 계셨군요. 송 대협.”
척.
갑자기 신형이 날아오더니 우리가 모인 곳에 난입했다.
남궁유유는 자리에서 일어나 갑자기 찾아온 불청객에게 언성을 높였다.
“이게 무슨 결례요.”
“죄송합니다. 송 대협,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당신이 사과할 곳은 제가 아니라 소저들 쪽인 거 같소만.”
“소저들께도 죄송합니다.”
“무슨 일이요?”
“서문가후님이 뵙자고 하십니다.”
서문가후, 뛰어난 머리 때문에 무림맹 총 군사에 역임해야 한다고 하는 이들이 많았으나 제갈귀호에게 밀려난 사람이었다.
“그분이 저를 왜?”
“소인은 정확한 내용은 모릅니다. 단지 송 대협을 모셔오라는 명령만 받았을 뿐입니다.”
“한데 웃기는군요. 용천회가 무림맹 안에서 이리 막 나가도 되는 거요?”
이 자만이 아니었다.
기감을 조금 더 넓히니 주위에 자객처럼 은둔해서 나를 보는 시선들이 느껴졌다.
“밤도 아닌데 주위에 쥐새끼들이 너무 많은 거 같소만.”
“…..”
“이리 무례하게 나오는데 내가 그대들의 말을 따라야 하오?”
“그러면 힘으로···.”
“힘? 어디 한 번 해보시오, 당신들이 전부 덤벼서 내 옷깃을 한 치라도 건드린다면 내가 개처럼 기어서 서문가후님을 보러 가지.”
“….”
“단, 죽을 각오로 해야 할 거요.”
그들은 머뭇거리며 움직이지 못했다.
그때, 누군가가 이곳으로 걸어왔다.
저벅.
“상당히 오만하구나.”
멀리서부터 느껴지는 묘한 기운.
“제갈귀호에게 우리의 정보를 넘긴 것이 너라는 것쯤은 알고 있다.”
저벅.
“용천회에 반기를 드는 녀석이 후기지수 중에 있을 줄이야. 놀랍구나.”
용천회의 이 인자, 서문가후가 나타나자 모인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예를 올렸다.
*
용천회의 이 인자.
중원에서 서문가후의 영향력은 컸다.
늘 혁련서권의 그늘에 가려졌지만, 그의 수완은 능히 한 개 문파의 수장을 하고도 남을 거라는 평이 많았다.
“제가 오만하다고 하셨습니까? 이리 주위를 포위해 억압하는 것은 오만이 아닌 예의입니까?”
“허허허허, 할 말이 없게 만드는구나.”
서문가후는 손을 저어 주위를 포위한 이들을 물리곤 자리에 앉았다.
“네가 안 온다면 내가 오면 되는 거 아니겠느냐.”
“….”
“와서 앉거라, 마침 향이 좋은 차가 있으니 대화를 나누기 좋겠구나.”
“예, 그러지요.”
갑작스러운 서문가후의 등장에 여인들은 한 발짝 뒤로 물러났고 송삼현은 서문가후가 마주 보며 앉았다.
이리 대놓고 찾아오다니 솔직히 놀랐다.
“서문가후님을 뵙습니다.”
“그래도 예는 갖춰주는구나.”
“하실 말씀이 무엇입니까?”
서문가후는 느긋하게 송삼현을 바라봤고 슬쩍 내공을 흘려 경지를 가늠해보려고 했다.
하지만 송삼현은 서문가후의 내공을 차단했고 서문가후의 눈빛은 더 흥미롭게 변했다.
“허, 내공을 차단해?”
“예? 무슨 말씀이신지.”
“발뺌하는 것이 영 어색하구나, 하하하하! 이리 찾아온 것은 너에게 제안을 하기 위해서다.”
“제안이라면.”
“용천회로 들어오거라, 후기지수 중에 권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거다.”
그의 발언에 주위에 있던 이들이 놀랐다.
얼마나 고요했는지 서문가후의 말소리는 연못 너머에 있는 시녀들의 귓가에도 들렸다.
그들은 송삼현이 무슨 말을 할지 봤고 곧 송삼현의 입에서 나온 말에 모두가 놀랐다.
“싫습니다.”
그 말에 서문가후는 크게 웃었다.
“하하하하하! 이런 미친놈을 봤나. 내 앞에서 이렇게 말하는 녀석은 네가 처음이다.”
“저는 제가 하고자 하는 일이 있습니다.”
“그 일에 우리가 도움이 될 수 있다.”
“하북에서 얻은 정보로 보면 용천회는 그런 도움을 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송삼현은 솔직하게 대답했다.
만약 전이라면 이러지 않았겠지만, 지금은 용천회의 치부를 낱낱이 알고 있었고 제갈귀호에게 덜미가 잡혀 언제 뿌리가 뽑힐 지 모르는 곳이기에 숙이고 들어갈 필요가 없었다.
때리면 똑같이 때린다는 생각을 가지고 말하자 서문가후의 호의적인 눈빛은 점차 굳어갔다.
“…. 당차구나. 무공만 믿고 강호에서 비명횡사한 고수들은 차고 넘친단다. 자신이 최고인 줄 아는 이들이 내일은 차가운 땅에서 죽어가지, 그런 곳이 강호고 우리가 사는 세상이다.”
서문가후의 말처럼 이 강호에서 무공만 믿고 오만방자한 이들은 쉽게 죽임을 당했다.
“그것은 저에게만 해당하는 말이 아니라 여겨집니다.”
그러나 그것이 송삼현에게만 해당하는 말이 아니었다.
용천회도 얼마든지 그 대상이 될 수 있었다. 그 말 뜻을 이해한 서문가후는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참으로 재미있는 녀석이구나. 이러니 제갈귀호 그 늙은이가 너를 개인적으로 본 것이겠지.”
“칭찬 감사합니다.”
“용천회와 손을 잡으면 천하를 호령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그리 만들어줄 수도 있고.”
“….”
“적어도 약관, 아니 이립의 나이에 접어들면 천하는 너의 발아래에 놓일 것이다.”
천하를 호령한다는 말에 주변에서 놀란 기색이 보였다.
천하를 호령한다.
참으로 멋진 말이고 남자의 가슴을 뜨겁게 만드는 말이었다.
“좋은 말이군요.”
“우리는 그럴 힘이 있으니까.”
서문가후의 말에는 자신감이 담겨 있었다.
무림맹을 넘어 정도 무림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떨치는 곳이니 거절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곧 들려오는 송삼현의 말은 그의 예상과 전혀 달랐다.
“허나 천하를 논하는 것도 누구와 하느냐가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 그것이 용천회는 아니다?”
서문가후의 말에 곧바로 대답했다.
“지급지 인불능수지 수득지 필실지 (知及之 仁不能守之 雖得之 必失之)라는 말이 있습니다.”
“…..”
“지혜가 넘치더라도 덕이 없다면 권력을 얻어도 반드시 잃을 것이라는 말이지요.”
즉, 용천회에겐 덕이 없다는 것을 돌려서 말하는 거였다.
“꽤 재미있는 말을 하는구나.”
그러나 서문가후는 그 말을 듣고 곧바로 자신들에게 하는 말이라는 걸 눈치챘다.
“옛 성현의 말씀 중에 버릴 것은 하나도 없다는 걸 강호행에서 느꼈습니다.”
“…..”
“명분이 없는 욕심에 동조할 마음은 없습니다.”
말을 잇지 않고 서로를 가만히 쳐다봤다.
눈을 피하지 않았다. 서문가후는 송삼현의 눈빛을 봤다.
‘흔들림이 없군. 자신이 한 말에 전혀 거짓이 없다는 거다.’
“하하하하하!”
서문가후는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
그가 웃음을 터트리자 주변에 있던 이들이 모두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역시 이래야 우리에게 이를 드러낸 녀석답지!”
“….”
“그러나 명심해야 할 것이야. 개가 호랑이를 물면 어떻게 되는지.”
“서문가후님께 제가 감히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송삼현의 말에 서문가후는 자리에서 일어나 가려던 걸음을 멈췄다.
“하북에서 돌아다닐 때, 마을 사람들이 하는 말이 있었습니다. 자기가 호랑인 줄 알고 짖는 개는 결국, 호랑이에게 잡아먹힌다는 말이지요.”
“…. 내가 개라는 거냐?”
“아닙니다. 제가 개일 수도 있지요. 그러니 마지막에 서 있는 자가 호랑이가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말을 곱씹어 본 서문가후가 대답했다.
“좋은 말이다. 그리고 각오하는 게 좋을 거다. 하룻강아지가 범에게 발톱을 들이밀면 어떻게 되는지.”
서늘한 살기가 주변을 진동시켰다.
바닥에 놓인 돌까지 흔들릴 만큼 두 사람이 내뿜는 내공은 허공에서 충돌했다.
허나 송삼현의 내공이 밀리지 않았다.
정순한 내공이 쭉 뻗어나갔고 서문가후는 가벼운 내상을 입으며 입가에 피를 머금었다.
“그 정도 각오를 하지 않고 어찌 이리 대답하겠습니까.”
“….. 가자.”
서문가후가 돌아갔고 여인들이 송삼현에게 말을 걸려고 할 때, 송삼현은 은신한 무무에게 전음을 보냈다.
[용천회에 대한 모든 정보를 가져오거라.]
무무가 사라지는 것을 본 후에 서문가후가 사라진 곳을 쳐다봤다.
‘용천회와 싸움이 예상한 것보다 조금 빨리 시작될지도 모르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