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lf a penny from the Golden Tiger RAW novel - Chapter 61
미래가 바뀌다 (3)
뚝.
뚝.
뚜두두두두둑.
비가 내리는 하늘.
빗속을 뚫으며 안휘성 합비 북쪽에 있는 죽림을 내달리는 이들이 있었다.
‘무림맹 추격대.’
백색 장포를 두른 수십 명의 무사는 추격진을 펼치며 빠르게 신형을 날렸다.
탓!
그들을 이끄는 추격대주 현소운은 자신보다 한 걸음 뒤에서 따라오는 이를 힐끔거렸다.
‘군사 어른이 동행하라는 자가 백의검룡이었다니.’
경공을 펼치며 빠르게 나아가는 사이, 송삼현이 현소운에게 물었다.
“현 대주님, 천리추종향은 비가 오면 향이 옅어지니 지금보다 속도를 조금 더 높여야 하지 않을까요?”
추격대가 출발하기 전에 제갈귀호가 한 말이 있었다.
‘이런 일도 수백 가지의 계책 중의 하나였다. 어제 있었던 일로 조금 방심하긴 했으나 그렇다고 대비책이 없던 건 아니다.’
‘그러면?’
‘삼 년 전에 용천회 쪽에 심어둔 첩자에게 며칠 전, 천리추종향을 줬으니 그 흔적을 따라가거라. 나도 맹주님과 바로 뒤따라가겠다.’
그래서 지금 제일 앞에서 하늘을 나는 선무정의 품에는 천리추종향을 맡을 수 있는 추견(追犬)이 있었다.
“총 군사께서 직접 배합해서 새로이 만든 천리추종향이라 빗물에도 씻기지 않고 고스란히 그 자리에 남아 있을 겁니다.”
“그렇군요.”
송삼현이 말을 걸어준 덕분에 현소운도 궁금한 것을 물었다.
“한데 송 대협, 한 가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예, 물론입니다.”
“저 앞에 새처럼 날아다니는 자는 누구입니까? 누구기에 저리 신묘한 경공을 펼치는 거지요?”
현소운은 무림맹 추격대주로서 무림맹 최고 수준의 경공 고수였다.
그렇기에 앞에서 놀라운 경공을 펼치는 선무정의 정체를 궁금해했고 굳이 숨길 필요도 없어 송삼현은 바로 말해줬다.
“천음산보의 제자입니다.”
중원 경공의 최고수인 천음산보의 제자라는 말에 현소운은 깜짝 놀랐다.
“정말입니까?”
“예.”
천음산보는 경공을 익히는 이들에겐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런 사람의 제자라니 그는 부러운 시선으로 선무정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렇게 두 시진이 지나자 멀리서 신호가 들려왔다.
삐이이이이익!
그 소리를 들은 현소운의 눈빛이 변했다.
“추격대 전원! 산개하라! 신호가 온 지점을 향해 신속히 이동한다!”
추격대는 일선에서 적의 흔적을 찾아 후위로 오는 이들에게 길을 알리는 역할이었다.
자칫 적들의 함정에 빠져 죽을 수도 있는 위험부담이 큰 임무이기에 그들은 사전에 맞췄던 호흡대로 움직였으나 송삼현은 아니었다.
탓!
휘이이이이익!
마치 탄환을 쏘는 것처럼 단숨에 멀리 날아갔고 현소운은 그것을 보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 능공허도.”
*
용천회주 혁련서권과 서문가후, 그들을 따르는 이들이 뒤를 이었다.
“추귀! 우리가 가는 흔적을 절대 남기지 말거라!”
서문가후의 말에 추귀 허도운이 대답했다.
“네! 비도 오니 무림맹 녀석들이 쉽게 오지 못할 겁니다.”
추귀가 이끄는 암귀대는 이동하는 흔적을 지웠다.
그렇게 가던 중.
“누군가 옵니다!”
멀리서 느껴지는 인기척.
추귀가 접근을 막으려고 했지만, 선무정은 이미 그들의 머리 위로 나타났다.
“어? 주군! 여기입니다!”
압도적인 경공으로 나무가 아닌 허공에서 나타난 그를 보고 용천회의 이들은 모두 놀랐고 서문가후가 외쳤다.
“저자는 천음산보의 제자다!”
추귀는 신형을 날려 선무정을 죽이려고 손을 뻗었다.
“으악! 깜짝이야!”
번개처럼 날아가 목을 움켜잡으려고 했으나 선무정은 허공에서 몸을 비틀며 피했다.
‘허공에서 저렇게 피하다니.’
허나 더는 선무정에게만 집중할 수 없었다.
멀리서 느껴지는 광오한 기운.
그 기운을 가장 먼저 눈치챈 것은 혁련서권이었다.
콰아아아앙!
푸른 검격이 날아오더니 거대한 나무를 쓰러트려 그들의 길을 막았다.
쓰러진 나무 위에 올라선 자의 오른손에는 푸른 청철로 빛나는 검이 있었다.
청철로 빛나는 검, 그리고 백의, 이 두 가지만 보고 혁련서권은 그자가 누구인지 바로 알아차렸다.
“최근에 소문이 무성한 후배로구나.”
나무에서 내려온 송삼현은 용천회를 홀로 마주 보며 섰다.
“무정아, 너는 이만 안전한 곳으로 가 있거라.”
“예! 주군! 아! 그리고 저기 얼굴에 주름 자글자글한 놈이 저 죽이려고 했습니다! 꼭 죽여주세요!”
선무정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냅다 내달렸다.
푹!
선무정이 멀어지는 사이, 송삼현은 왼손에 들고 있던 검집을 땅에 꽂았다.
“선배님, 비도 많이 오는 날에 그 육중한 몸을 이끌고 어딜 그리 내빼십니까.”
송삼현이 검집을 땅에 꽂는 걸 본 혁련서권은 호탕한 웃음을 터트렸다.
“검집을? 네 놈이 여기서 정녕 죽으려고 하는 것이구나.”
“죽는 것은 잘 모르겠으나···. 그것이 제 운명이라면 따라야지요. 그러니 전 전력으로 선배님의 길을 막을 겁니다.”
이대로 보내면 훗날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만일 이들이 흑사회와 손을 잡는다면 더 큰 적이 될 우려가 있으니 여기서 끊어내야 했다.
‘화경의 끝자락에 이른 인물···.’
가슴이 두근거렸다.
두려움 때문이 아닌 설렘 때문이었다.
‘내 검은 과연 이 자의 어디까지 통할까.’
*
“네가 나를 막겠다는 것이냐?”
혁력서권은 나를 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회주님이 나설 필요가 없습니다. 이곳은 용호대에게 맡기고 계속해서 길을···.”
혁련서권은 서문가후의 말을 듣고도 무시하고 걸어갔다.
“이렇게 도전을 해오는 후학을 두고 선배가 되어서 도망치면 되겠느냐. 기다리거라, 그리 길게 걸리지 않을 터이니.”
뒤이어 무림맹 추격대가 속속들이 도착하기 시작했다.
“송 대협!”
“저들의 상대는 저희에게 맡겨두시고 뒤로 피해계시지요!”
현소운만이 아닌 강호에 이름을 날린 다른 대주들도 있었다.
초절정의 반열에 오른 자들.
그들을 본 용천회에서 약간의 동요가 일어났고 송삼현이 추격대를 향해 말했다.
“제가 회주를 상대하겠습니다. 다른 이들을 부탁합니다.”
회주를 상대하겠다는 송삼현의 말에 무림맹 추격대는 모두가 놀랐다.
“예? 안 됩니다!”
그러나 그들이 말을 잇기 전에 커다란 소리가 들렸다.
“이놈들이! 감히 나를 앞에 두고 무슨 잡담을 그리하느냐!”
콰직!
진각을 밟자 혁력서권의 주위에 바람이 불어왔다.
그 바람은 곧 그의 팔을 휘감았고 걸쳐진 옷이 바닥에 떨어졌다.
그러자 보이는 팔에는 금빛으로 빛나는 권갑(拳鉀)이 채워져 있었다.
“반 각 안에 끝내주마.”
제갈귀호가 송삼현을 추격대와 같이 보낸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혁련서권과 합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은 구창룡을 제외하면 송삼현이 유일했으니까.
그리고 떠나기 전에 제갈귀호가 송삼현에게만 따로했던 말이 있었다.
‘조금이라도 불리하다고 여겨진다면 추격대를 이끌고 바로 후퇴해라. 누구도 죽어선 안 된다.’
하지만 저러한 상대를 보고 어찌 발을 돌릴 수 있겠는가.
무엇보다 혁련서권의 행보로 전쟁이 앞당겨질 우려도 있으니 더더욱 피할 수 없었다.
꽉.
검을 쥔 송삼현의 손에는 평소보다 힘이 더 들어갔다.
*
스르르르르륵.
권신이라 불리는 혁력서권이 쓰는 무공은 태룡신권(太龍神拳).
거대한 용이 꿈틀거리는 것 같은 기운이 사방으로 퍼졌다. 모든 걸 집어삼키겠다는 패도적인 기운이었다.
‘엄청난 기운이군.’
그 기운을 느끼고 있자니 속에서 무언가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이런 힘을 가지고 있었으면서···. 전쟁 때는 어찌 그리 뒤에 숨어있기만 했는가.’
저번 삶에서 마교 사파 연합과 정파가 힘겹게 싸울 때, 혁련서권은 전쟁에 관여하지 않았다.
뒤에서 지시만 내릴 뿐, 일선에 나오지 않았었다.
만약 당신이 가세했다면.
전쟁의 판도는 달라졌을 수도 있었거늘.
휘이이이익!
순식간에 들어오는 혁련서권의 첫 초식을 피했다.
그의 손에서 나온 권풍은 내 뒤에 있던 숲의 나무들을 통째로 날려버렸다.
탓!
초식이 빗나갔음에도 혁련서권은 멈추지 않았다.
손을 비틀며 내가 피한 왼쪽으로 권격을 날렸다.
첫 초식을 피하면서 균형이 한쪽에 쏠렸기에 곧바로 피하는 건 어려웠다.
콰아아앙!
검막을 두른 검으로 간신히 막아냈고 뒤로 일곱 장 정도 밀려났다.
‘…. 진짜 무식한 힘이네.’
힘으로만 따지자면 지금까지 붙었던 이들 가운데 가히 최고라고 해도 될 정도였다.
팔 척 가까이 되는 거구에 외공을 단련한 것처럼 보이는 단단한 육체.
휘이이이익!
그리고 그 육중한 몸을 깃털처럼 만드는 신묘한 보법.
‘온다.’
공격이 번개처럼 빨랐으나 끝까지 시선을 떼지 않고 길을 읽었다.
일 장에서 한 치.
그 거리에서 공격을 피했고 머리카락이 권격에 살짝 잘려 나가자 혁련서권은 놀랐다.
“허! 이형환위(移形換位)?”
휙.
아슬아슬한 간격으로 피한 것은 거리를 좁히기 위해서였다.
절대 피할 수 없게 최대한 거리를 좁힌 뒤에 쾌검으로 베어가려고 했으나 내 검 끝은 혁련서권의 왼쪽 허리를 스쳐 갔다.
‘다시.’
혁련서권이 피한 오른쪽으로 손목을 비틀어서 다시 베려고 했으나 혁련서권은 보법을 밟으며 뒤로 피했다.
“흑해도문을 홀로 없앴다고 하기에 조금의 과장도 있을 줄 알았으나 너의 검을 보니 모두가 사실인 것을 알겠구나.”
그리곤 계속해서 보법을 이어갔고 이내 신형은 허공에서 사라졌다.
그 거대한 몸집이 보이지 않을 만큼 빠른 속도, 처음 보는 보법이었다.
‘당황하지 말고 집중해야 한다.’
저벅.
땅에 있는 흙이 밟히는 소리로 예측해야 했다.
눈에 보이는 것으로 속으면 안 된다.
온몸에 기감을 깨워 혁련서권의 움직임을 파악했다.
왼쪽.
오른쪽.
그러다가 뒤에서 기운을 느껴서 휙 돌았으나 혁련서권은 이미 자세를 잡고 있었다.
‘… 늦었다.’
콰아아아아아앙!
검을 들어서 막으려는 동작이 늦는 바람에 혁련서권의 권이 내 복부로 정확하게 들어왔다.
충격이 ‘금룡신갑’으로 흡수됐으나 권으로 화경에 오른 이의 공격을 전부 막을 순 없었다.
“쿨럭.”
입가에서 피가 나왔다.
스르르르르르륵.
다시 혁련서권의 왼손에 날카로운 기운이 돌았다.
짙은 살기.
나를 죽이기 위한 마음으로 가득 채워졌다.
자리에서 일어나 검에 내공을 흘려 검강을 만들었다.
“적인 것이 아깝구나.”
땅을 박차며 날아오는 혁련서권의 권격을 보며 나도 검을 뻗었다.
권에 둘러진 강기와 검에 둘러진 강기.
그것들이 충돌하며 주위를 울렸고 곧 혁련서권이 권을 거두더니 몸에 강기를 둘러 나를 향해 달려왔다.
‘이게 무슨.’
콰아아아아앙!
그 거대한 몸을 검으로 막았으나 가공할 위력에 우리는 그곳에서 벗어나 한 마리의 새처럼 허공을 갈랐다.
콰아앙!
날아가면서 작은 산의 봉우리 하나를 통째로 날려버렸다.
화경에 오른 고수들의 싸움은 일반 사람들은 가히 상상도 하지 못했다.
지형이 달라지는 것은 기본이고 그들의 싸움은 사람의 경계를 벗어나 하늘에 도달했다고 보는 이들도 있었다.
우리는 원래 있던 곳에서 삼리는 날아와 멈췄고 그와 동시에.
꽉.
난 이를 꽉 물며 내공을 검에 집중했다.
비릿한 혈향이 느껴졌고 혁련서권의 팔을 벨 기세로 검을 뻗었다.
‘유운 1식 운행.’
검이 바람에 흔들리는 구름처럼 이리저리 흔들렸고 왼쪽으로 들어가는 척하며 오른쪽으로 배어들어 갔다.
촤아아아악!
단단한 피부 때문에 얕게 베고 말았다.
그리고 조금 전의 충돌로 백의가 찢어져 금룡신갑이 드러났고 그걸 본 혁련서권은 놀랐다.
“…. 요물을 가지고 있구나.”
“이번에는 제가 가겠습니다.”
청월로 내공을 집중해 검강을 만들었다.
검을 휘감는 검강이 몸에도 퍼졌다.
곧 안광에도 푸른 기운이 스며들었고 자세를 낮추며 검은 왼쪽 허리 깊숙이 들어갔다.
마치 검집에 검이 들어간 형태.
‘천무 6식 검뢰.’
한 발을 내딛더니 신형이 사라지며 순식간에 혁련서권의 앞쪽에 도달했다.
촤아아아아아악!
번개 같은 속도로 혁련서권의 몸을 베었다.
그가 입고 있는 단단한 경갑옷이 깨어졌고 난 다시 그에게 검을 휘둘렀다.
아직이다.
낙뢰는 한 번만 떨어지지 않는다.
촤아아아아악!
두 번.
촤아아아아아아악!
세 번, 무수히 많이 떨어진다.
조금 전의 충돌로 내장 손상이 있었으나 멈추지 않았다.
단단한 피부가 베어지며 피가 나왔고 너덜너덜해진 혁련서권은 오른쪽 어깨를 짚으며 뒤로 열 장 정도 물러났다.
“그래···. 생각났다. 이 무식하고 강한 검···. 네 놈의 검은 그 녀석과 많이 닮았구나.”
누군가 떠올렸는지 나를 보며 말했다.
“너 유천과 무슨 사이냐.”
유천.
그 이름은 저번 삶에서 천무신검을 전수해준 사부님의 존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