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lf a penny from the Golden Tiger RAW novel - Chapter 63
미래가 바뀌다 (5)
탓.
송삼현과 혁련서권이 싸운 장소로 무림맹 추격대가 도착했다.
“…. 원호야. 내가 보고 있는 게 맞는 것이냐?”
“보고도 믿어지지 않습니다.”
현소운이 이끄는 추격대는 서문가후가 펼친 진법에서 나오자마자 다른 이들에게 수습을 맡긴 뒤에 선발조를 구성해 송삼현이 있는 곳을 찾아왔다.
그리고 그들이 본 풍경은 입이 벌어질 만큼 충격적이었다.
들판처럼 베어져 있는 나무들.
메말라 있는 강.
산봉우리가 날아가며 경관(景觀)이 뒤바뀐 것을 보곤 입을 다물지 못했다.
“백의검룡 대협!”
멀리 누워있는 송삼현에게 가자 송삼현은 누워서 하늘을 보고 있었다.
“다치셨습니까?”
“조금이요.”
“우선 이 단약을 드십시오. 몸에 부족한 진기를 채워줄 겁니다.”
“감사합니다.”
단약을 먹는 송삼현을 보니 백의가 핏물로 물들고 거의 찢겨 상체가 절반쯤 드러났다.
싸움이 얼마나 치열했는지 안 봐도 알 수 있을 만큼 상처가 많았다.
“…. 용천회주와 일전이라니···. 무인으로서 진심으로 존경을 표합니다.”
현소운이 포권지례를 하며 소리쳤다.
“백의검룡 대협께 예를 갖추거라! 백의검룡 대협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혁련서권의 손에 죽었을 거다.”
모든 추격대원이 같이 예를 갖췄다.
“이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현소운이 송삼현의 옆에서 금창약을 발라줬고 수색을 하던 한 무사가 놀라며 소리쳤다.
“대주님! 여기! 서문가후의 시신입니다!”
그 말에 현소운이 빠르게 그쪽으로 갔고 거기서 반으로 갈라져 죽은 서문가후를 발견했다.
“…. 설마, 서문가후를 죽였단 말인가.”
서문가후는 적어도 초절정의 중간에 이른 고수였다.
그런 고수가 반으로 갈라져 죽었다니.
놀란 눈빛으로 다른 대원의 부축을 받는 송삼현을 바라봤다.
그 시선을 느낀 송삼현이 현소운을 보며 말했다.
“대어는 놓쳤지만, 그 정도면 허탕을 친 건 아니지요?”
*
구창룡이 이끄는 무림맹 후발대는 용천회 무사들의 시체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
상황은 정리가 됐고 순찰당주 요훈이 다가왔다.
“오셨습니까?”
“… 상황을 보니 주요 인사들은 빠져나갔나 보군.”
“죄송합니다. 서문가후의 진법에 갇히는 바람에···.”
“아니다. 내가 늦은 거지. 너희들의 잘못은 없다.”
구창룡은 반으로 갈라진 하늘을 보며 어디론가 걸어갔다.
“맹주님을 뵙습니다!”
지나갈 때마다 무림맹 무사들이 포권지례를 올리며 예를 갖췄고 구창룡의 발은 송삼현이 꽂아놓은 검집 앞에서 멈췄다.
“검집을 꽂아 뒀군.”
검객이 검집을 꽂고 간다는 것은 자신의 목숨을 내건다는 의미였으니 걱정스러운 마음이 앞섰다.
“혁련서권은 어디로 갔느냐?”
“혁련서권은 송삼현 대협과 저곳으로 갔고 저희는 서문가후의 진법에 빠져···.”
말을 다 하기 전에 멀리서 무언가가 걸어오는 게 보였다.
“누군가 옵니다!”
멀리서 걸어오는 사람.
그는 송삼현이었다.
오른손에는 청월을, 그리고 왼손에는 혁련서권의 잘린 왼팔을 들고 왔다.
그 뒤로는 무림맹 추격대 선발조가 있었고 그들은 서문가후의 시체를 들고 있었다.
“백의검룡입니다!”
행색이 말이 아니었다.
겉은 천잠사로 만든 하얀 장포가 걸쳐져 있지만, 그 안에 백의는 너저분하게 찢겨 있었다.
송삼현은 걸어와선 땅에 꽂힌 검집을 뽑아 청월을 집어넣었고 제갈귀호가 다가왔다.
“괜찮은 것이냐?”
“죄송합니다. 최대한 잡으려고 했지만, 팔 하나가 한계였습니다.”
“팔? 서, 설마! 혁련서권과 싸우고 그의 팔을 베어버렸다는 것이냐!”
혁련서권의 팔을 베었다고 하자 모두가 놀랐다.
송삼현이 혁련서권의 거대한 팔을 건네주자 제갈귀호가 그것을 받았다.
돼지 한 마리 크기의 거대한 팔, 거기에 용천회주의 ‘龍’ 문양이 있었다.
“……”
화경의 끝자락에 오른 고수.
아무리 맹주 자리에서 내려와 강호에서 활약하는 게 없었다고 하더라도 그는 천하에서 손꼽히는 고수였다.
놀라는 그들을 지나쳐 구창룡이 송삼현에게 다가가 맥을 짚었다.
“내공 소모가 극심하구나. 상처도 많고.”
“괜찮습니다. 그보다 발목을 잡지 못해 죄송합니다.”
“용천회를 놓친 것은 아쉽지만, 그래도 누구도 죽지 않은 것으로 됐다.”
그들이 대화하는 사이, 현소운이 다가왔다.
“보고드립니다.”
“말하거라.”
현소운이 손짓하자 선발조 두 명이 서문가후의 시체를 가져왔다.
“서문가후의 시체입니다.”
그러자 제갈귀호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서문가후를 죽였단 말이냐?”
“… 저희가 아니라 송 대협이 한 일입니다.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혁련서권과 다른 용천회 무사들은 흔적을 감춘 뒤였습니다.”
천하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고수의 팔을 베어버렸다는 소식과 서문가후가 죽었다는 소식은 빠르게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
용천회의 악행이 낱낱이 밝혀졌다.
무림맹은 호법당을 움직여 그 일에 관여한 이들을 모두 잡아들였고 혁련세가와 서문세가는 멸문위기에 놓였다.
이러한 이야기들이 퍼지고 퍼져 양민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 중, 구할은 이와 관련된 이야기였다.
“들어도 들어도 믿을 수 없네. 어찌 그런 짓을 할 수 있는 거지?”
“네 해 전에 있었던 산검문 아는가?”
“알지. 산둥성 인근에서 왜구를 비롯해 사파들을 죽이며 양민들을 지킨 문파잖아. 하지만 불에 타서 없어졌지.”
“그게 용천회가 흑해도문을 끌어들여서 한 일이라더군.”
“그것만이 아니야. 여섯 해 전에 유한강에서 일어났던 목한검의 죽음, 세 해 전에 있었던 전 무림맹 순찰당주의 죽음 모두 용천회의 소행이라고 하던데.”
그 외에도 용천회의 악행이 드러났다.
정파의 탈을 쓴 악귀들의 만행, 양민들이 피해를 보고 마을 하나가 아예 통째로 사라지는 참혹한 이야기에 사람들은 용천회의 사람들을 모두 죽여야 한다고 했다.
그때는 모두가 그들에게 원한이 있는 사파의 소행이라고 생각했으나 무조가 가진 용천회의 정보를 송삼현이 제갈귀호에게 주며 모든 것이 명명백백하게 밝혀졌다.
‘이권.’
오로지 자신들의 욕심으로 인해 무고한 이들을 죽인 거였다.
사람들의 입에서 여러 말들이 오르고 내리는 시각, 서문가후의 시체가 보관된 영안실.
그곳에서 반으로 갈라진 옛 친우의 시신을 보는 제갈귀호의 눈빛은 안쓰러움이 가득했다.
“… 이것이 그렇게 자신했던 너의 길의 마지막이냐. 도망치다가 불명예스럽게 죽는 것이.”
옳은 길이라 여기며 자신의 신념을 말했던 친우의 마지막.
그 마지막을 보는 것은 씁쓸했다.
“욕심이 지나쳐 화를 입은 것이다. 죽어서도 그것을 잊지 말고 훗날에 다시 보자꾸나.”
천을 머리끝까지 덮어준 뒤에 제갈귀호는 밖으로 나왔다.
*
무림맹으로 돌아온 지도 어느새 하루가 지났다.
그때는 몰랐지만, 무림맹으로 들어오자 긴장이 풀려 외상의 통증이 올라왔고 피를 많이 흘려 정신을 잃었다가 방금 깨어났다.
“아직 무리해서는 안 됩니다.”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이게 제가 할 일인 걸요.”
약당에서 치료를 받는 데 문이 열리더니 구창룡을 비롯해 제갈귀호, 여러 대주들이 들어왔다.
“몸은 괜찮으냐?”
“예, 약당주님 덕분에 확실히 좋아졌습니다.”
“다행이구나.”
“맹주님의 보살핌 덕분입니다. 이리 앉아서 예를 올리는 것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됐다. 그리고 내가 호법을 서줄 터이니 운기를 해 내기를 다스리거라.”
그 말에 모두가 놀랐다.
다름 아닌 무림 맹주 구창룡이 한 말이었으니까.
“맹주님! 그런 일은 저희에게 맡겨주십시오!”
“맞습니다! 맹주께서는 군사 어른과 같이···.”
그들이 말하려는 사이, 구창룡이 말을 끊으며 말했다.
“아니다. 이 아이···. 아니지, 이 자와 할 이야기가 있으니 다들 열 장 밖으로 물러나라 하거라.”
맹주의 말에 다른 이들은 일제히 거리를 벌렸다.
주위에 아무도 없자 그제야 구창룡은 입을 열었다.
“너의 행보는 상상하지 못할 만큼 파격적이구나. 혁련서권은 물론 서문가후까지.”
“인연이 이어지니 여러 곳으로 걸음이 닿는 것이지요.”
“허, 말하는 거 보게. 정말로 반로환동을 한 노인이 아니냐? 알고 보니 나랑 나이가 같고?”
“농이 지나치십니다. 하하하하하.”
구창룡의 눈빛은 마치 손자를 보는 눈빛이었다.
“혁련서권은 천하에서도 열 손가락 안에 드는 고수다. 그런 고수를 상대로 팔 하나를 베었으니 너는 이제 중원 모든 이들이 주목하는 이가 됐다.”
“알고 있습니다.”
“그것이 안 좋은 방향이라는 것도 알고 있느냐?”
구창룡이 안 좋은 방향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하나겠지.
“적들이 많아진다는 의미지요.”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아군도 늘어나지만, 그만큼 악의를 품는 이들도 늘어난다.
시샘하는 이.
어떻게든 없애려는 이.
이용하려고 줄을 대려는 이.
여러 종류의 적들이 나오는 시기가 바로 지금이었다.
“잘 아는구나. 그리고 도망간 혁련서권과 용천회의 잔당들이 흑사회와 접촉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흑사회와 접촉했다는 것은 내가 아는 미래와 흐름이 달라진다는 거였다.
내가 그를 놓친 것이 과연 어떤 상황으로 미래가 펼쳐질까.
“그러니 너는 더더욱이 조심해야 할 것이다. 네가 아군이 되지 않으면 죽여 없애려는 이들이 발에 치일 만큼 많아질 터이니.”
“명심하겠습니다.”
“그리고 당분간은 무림맹에서 지내도록 조치를 해주마.”
“예?”
“몸을 충분히 회복하고 움직이라는 말이다.”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구창룡은 고민을 하더니 말을 꺼냈다.
“그리고 너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할 것이 있다.”
“제안이요? 무림맹에 들어오라는 건가요?”
구창룡이 나에게 할 제안은 무림맹으로 들어오라는 거 말고 달리 떠오르는 게 없었다.
“아니 그게 아니다.”
“그러면요?”
“이곳에서 환골탈태까지 마치고 더 높은 곳에 올라 볼 생각이 있느냐?”
언젠가 해야 하는 환골탈태.
아직 몸이 여물지 않았으나 혁련서권과 싸우면서 느낀 부분이었다.
천독불침의 경지에 오른 지금.
만일 환골탈태를 하면 천무지체에 도달할 수 있을 거다.
“하겠습니다.”
*
이틀이 지나고 상처가 어느 정도 회복이 되자 송삼현이 있는 방으로 누군가가 찾아왔다.
“송 대협.”
순찰당주인 백운철이었다.
“무슨 일입니까?”
“어젯밤부터 기다리고 계시던 분이 계셔서요.”
“그게 누구지요?”
“대협의 누이입니다. 혹, 들여보내도 될까요?”
“물론입니다.”
백운철은 예를 갖추고 나갔고 곧이어 송연화가 들어왔다.
“누님.”
송연화는 눈 주위가 부어있었다.
송삼현이 걱정되어 온종일 눈물을 흘린 흔적이었다.
“왜 이리 무모한 짓을 했느냐! 용천회주가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데!”
송삼현이 용천회주 혁련서권과 일전을 벌이며 그의 왼쪽 팔을 베었다는 소식은 후기지수 사이에 쭉 퍼졌다.
현장에서 직접 본 이들의 생생한 말을 들으며 송연화는 송삼현 걱정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제가 해야 할 일이었는 걸요.”
“아무리 그래도! 너의 모습을 보거라. 죽었다가 깨어난 사람처럼 되어 있지 않느냐!”
많이 다치긴 했어도 죽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그러는 누님의 안색도 좋지 않습니다. 식사는 하셨어요?”
“동생이 여기 누워있는데 어찌 먹겠느냐!”
“하하하하하···.”
송연화가 옆에서 잔소리를 퍼부었지만, 송삼현은 귀찮아하지 않았다.
진심으로 자신을 걱정해서 하는 말이라는 걸 알았으니까.
일 각동안 쉼 없이 잔소리를 퍼붓더니 그제야 진정했는지 숨을 골랐다.
그리고 밖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대협, 제갈소소입니다. 들어가도 될까요?”
“예. 들어오시지요.”
제갈소소는 약 그릇이 올려진 작은 소반을 들고 들어왔다.
“할아버님께서 밤새 끓인 탕약입니다. 몸 안의 진기를 회복해주고 상처 회복이 빠를 겁니다.”
“괜히 저 때문에 여러 사람이 고생이군요.”
“전혀요. 대협 덕분에 용천회의 치부를 만천하에 알릴 수 있었습니다.”
스윽.
“소저!”
제갈소소는 진심을 다해 예를 갖췄다.
“할아버님의 오랜 근심을 해결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만하시고 고개를 드세요.”
“예, 대협.”
“탕약은 감사히 먹겠습니다.”
제갈소소가 가져다준 탕약을 먹고 있자 송연화가 무언가 떠올랐는지 말했다.
“아! 탕약을 다 먹으면 잠시 밖으로 나가보거라, 네가 일어나길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으니.”
“저를요?”
“그래, 아마 깜짝 놀랄 거다.”
송삼현의 머리에서는 몇 사람이 떠오르지 않았다.
선무정?
아니면 다른 이?
탕약을 다 먹은 뒤에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자 많은 이들이 장원에 모여 있었다.
무림맹 무사, 시녀, 여러 사람들이었고 그들은 송삼현을 향해 일제히 포권지례를 올렸다.
“백의검룡 대협을 뵙습니다!”
천하 십 대의 반열에 오른 인물.
사실 그전까지만 해도 흑해도문을 멸문시킨 것에 누군가의 개입이 있지 않았을 까라는 의심의 눈빛이 많았다.
그러나 그 눈빛들은 이제 사라졌다.
의심이 아닌 동경의 눈빛.
송삼현은 천하 십 대의 반열에 당당히 올라섰다.
서서히 다가오는 전쟁
며칠 후, 흑사회 본산.
흑사회주 철패흉과 용천회주 혁련서권이 흑사회 대전각 제일 높은 곳에서 술을 마시며 대화를 나눴다.
“그대가 이곳에 와서 얼마나 기쁜지 모르오.”
패잔병처럼 온 꼴이지만, 철패흉은 혁련서권을 제대로 대우해줬다.
“이리 반겨주어 고맙소. 흑사회와는 오래전부터 거래를 해와서 그런지 이리 한배에 올라타니 마음이 편하오.”
“팔은 좀 어떻소?”
송삼현에게 왼쪽 팔을 잃은 혁련서권의 왼쪽은 휑했다.
“흑사회 약당주의 실력이 뛰어나서 금방 나아질 것 같소.”
“신의라고 불렸던 자이니 믿을 만할 거요. 가끔 입이 험하지만, 말이오.”
혁련서권은 왼쪽 어깨를 짚었다.
왼쪽 팔을 잃었을 때의 감각이 아직 잊히지 않았고 팔을 앗아간 송삼현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꽉.
무엇보다 서문가후를 잃은 것이 뼈아팠다.
허나 슬픔은 묻어두고 앞으로 나아가야 했다. 이미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넜으니 끝까지 가는 것 말곤 다른 길은 없었다.
“그래서 계획은 어디까지 당겨진 거요?”
혁련서권의 말에 철패흉은 웃으며 자신의 잔에 술을 따랐고 대답은 옆에 있던 천뇌가 했다.
“원래는 몇십 년은 걸릴 일이었으나 용천회주께서 흑사회로 오셨으니 계획은 더 빨리 당겨질 겁니다.”
“아직 중요한 것이 하나 남아 있지 않소.”
“그렇지요.”
“마교와는 아직 이야기가 안 된 거요?”
흑사회가 꿈꾸는 새로운 세상을 위해선 마교의 압도적인 힘이 꼭 필요했다.
그래서 천뇌는 오래전부터 마교와 접촉하려고 노력했고 드디어 그 노력이 결실을 맺었다.
“곧 접촉할 겁니다. 보름 후, 사천 북쪽에 있는 요화강 인근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그렇군.”
“용천회주께서는 갚아야 할 빚이 있지 않습니까?”
“… 송삼현을 말하는 거요?”
“그렇습니다.”
“무슨 일을 꾸미는 거요?”
혁련서권은 천뇌를 바라봤다.
외적으로 풍기는 기운은 제갈귀호처럼 반듯했으나 내적인 기운은 서문가후보다 음흉한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이구나.’
강호에서 칠십 년의 세월을 보낸 그의 눈으로도 쉽게 파악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곧 천뇌의 입에서 나온 말에 술을 마시려던 손이 멈칫했다.
“우리의 일에 큰 후환이 될 싹을 제거해야지요.”
천뇌가 계획하고 있는 일 중, 중요도가 높은 것.
그것은 바로.
‘송삼현 습격.’
송삼현을 죽이는 거였다.
***
천월신교 신궁.
천월신교가 있는 천산 산맥의 제일 높은 곳에 ‘신궁’이 있었고 신궁의 제일 높은 곳에는 천마의 처소가 있었다.
넓이가 족히 열 장은 되는 복도를 홀로 거니는 독고룡의 맞은 편에서 한 사람이 나타났다.
“소교주님을 뵙습니다.”
“오랜만에 보는군요, 뇌마.”
암운뇌마 심우명.
그는 천월신교의 책사였다.
현재 천월신교 교주인 천마의 오른팔로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사람으로 그의 나이를 정확히 아는 사람은 천마를 제외하곤 아무도 없었다.
“교주께 가시는 길입니까?”
“그렇습니다.”
“그러면 제가 앞까지 모셔다드리겠습니다.”
두 사람은 나란히 복도를 거닐었다.
“폐관에 들어가셔서 화경에 오르셨다고 들었습니다.”
“예. 그리됐습니다.”
“역시 소교주님의 무재는 가히 천하제일입니다. 그리 이른 시일에 초절정에서 화경이라니, 곧 현경에도 오르시겠군요.”
“천하제일이라···. 아직 아버지를 뛰어넘으려면 멀었지요.”
그렇게 두 사람은 대화를 나누며 천마가 있는 곳으로 갔다.
거의 도착할 때가 되자 암운뇌마는 잠시 걸음을 멈추더니 독고룡에게 마지막으로 한 가지를 물어봤다.
“소교주님이 원하시는 세상은 어떤 세상입니까?”
독고룡은 걸음을 멈추고 창밖의 세상을 바라봤다.
맑은 하늘 아래 초목이 자유로이 흔들리는 것을 보며 입을 열었다.
“이곳의 사람들이 억압되지 않고 자유롭게 사는 것이 내가 원하는 세상입니다.”
사특한 마공을 익힌다고 중원에서 버림받은 이들이 모인 곳이 천월신교였다.
수백 년의 역사가 깃든 곳.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여러 이름으로 바뀌며 지금은 천월신교로 명명됐다.
이곳에 사람들은 척박한 땅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했으나 기근 때문에 많은 이들이 죽어 나갔다.
어린 아이들은 굶어 죽고.
어른들은 식량을 구하러 나갔다가 정도를 걷는 이들을 만나 죽임을 당하고.
관군들은 천월신교의 사람을 중원에 발을 들이지 못하게 했다.
그래서 그들이 원하는 것은 단 하나였다.
‘중원 진출’
이곳을 벗어나 더 넓고 쾌적한 곳으로 가고자 하는 욕망이 그들의 내면에서 불씨처럼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그렇군요.”
암운뇌마는 차분하게 대답했다.
그러한 사상은 지금까지 교주에 오른 이들이 모두 가진 생각이었다.
‘다른 분들과 다르지 않으시구나.’
하지만 독고룡은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그러나 내가 바라는 것은 그 이상의 것입니다.”
“….”
“마도천세(魔道天世).”
그 순간 암운뇌마의 눈동자가 동요했다.
“무림은 강자존이니 누구보다 강해져 중원을 내 발아래에 둘 거요. 그러면 자연스레 이곳의 사람들이 자유롭게 사는 세상이 만들어지니 그것이 바로 내가 원하는 것입니다.”
“…..”
“저는 아버지가 하지 못한 저 하늘을 베는 존재가 될 겁니다.”
암운뇌마는 천월신교에서 지금까지 세 명의 교주를 모셨다.
그 교주들도 모두 자신의 신념이 있고 중원 진출을 하기 위해 전쟁을 벌였으나 결과가 좋지 않았다.
“소교주께서 그 뜻을 실현할 세상이 올 때까지 이 늙은이가 살아 있어야 하는데요.”
독고룡이 한 말은 한 시대를 지배할 ‘천마’다운 말이었다.
“죽지 않을 겁니다. 내가 만든 천하에서 뇌마께서 할 일이 많으니까요.”
천마가 있는 곳으로 들어가기 전, 독고룡은 무언가 생각이 났는지 암운뇌마를 바라봤다.
“며칠 후에 흑사회를 만나러 사천으로 간다고 들었습니다.”
“예, 그렇습니다.”
독고룡을 예전부터 하고 싶은 말을 꺼냈다.
“한 가지 부탁을 해도 될까요?”
***
사천 북쪽 홍가현에서 더 위로 올라가면 나오는 요화강.
척박한 지대에서 흐르는 강이라 깨끗한 물이 아닌 모래가 섞인 물이 흘렀다.
요화강의 하류에는 정자가 있었고 천뇌가 앉아 하늘에 뜬 달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저벅.
그때, 발소리가 들렸다.
“기다리게 했군, 미안하오.”
흑사회 천뇌가 앉은 정자에 삿갓과 녹색 장포를 걸친 이가 들어왔다.
암운뇌마였다.
“선배님을 뵙습니다.”
“예는 됐소.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지.”
“예.”
“우리와 손을 잡고 싶다는 것이 정말이오? 백여 년 전만 해도 정파와 사파가 손을 잡고 마교를 겁박하지 않았소.”
마교가 계속해서 흑사회의 요구를 무시한 것은 역사가 그렇게 만든 거였다.
정사 연합으로 마교와 전쟁을 일으켰고 마교는 언제나 척박한 땅으로 밀려났으니까.
“과거를 부정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러면?”
“미래를 결정 짓고 싶다면 과거를 공부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저는 그래서 과거를 토대로 미래를 건립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우리와 손을 잡는 이유다?”
“그렇습니다.”
암운뇌마는 천뇌의 눈을 뚫어져라 봤다.
각자의 진영에서 머리로 천하를 논한다는 두 사람이었으니 주변에는 침묵만이 감돌았다.
“천월신교도 준비하고 있지 않습니까? 중원 진출을.”
천월신교가 오래전부터 바라고 바라던 일.
‘중원 진출.’
그것만 할 수 있다면 더는 바라는 게 없을 정도였다.
“그것을 그대들이 이루게 해줄 수 있다는 거요?”
“예, 길을 저희가 만들겠습니다. 천월신교는 그 길을 따라서 걷기만 하십시오.”
매력적인 제안이었다.
고생 없이 중원 진출을 할 수 있는 기회였으니까.
허나.
암운뇌마는 탐탁지 않았다.
먹기 좋은 고기일수록 잘 살펴보고 먹어야 했다. 안 그러면 탈이 나니까.
“쉽게 받아드릴 수는 없는 제안이오. 사파가 뒤통수를 치는 게 어디 하루 이틀 있는 일이오?”
사파는 철저하게 이익을 추구하는 집단이었다.
그렇기에 나중에 조금이라도 자신들에게 이익이 없다면 계획을 틀 공산이 컸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해관계를 확실히 정립하면 되니까요.”
“그대들이 원하는 것은 어떤 거요?”
“천하지요.”
“천하? 천하를 논하기 전에 천하를 지배하는 황궁을 어찌 상대한단 말이오? 강호와 황궁은 엄연한 경계가 있소, 어찌하여 서로의 영역에 침범하지 않는지 잘 알지 않소?”
“그렇습니다.”
강호인은 한 명 한 명이 뛰어난 무공을 가지고 있었고 황궁은 십만 대군이 있었다.
그러한 두 세력이 붙으면 공멸하기 때문에 서로의 영역에 손을 대지 않는 거였다.
“황궁을 맡아줄 사람이 있습니다.”
“황궁을?”
“예.”
“그게 누구요?”
“묵왕, 황궁은 그 사람이 처리해줄 것입니다.”
진왕의 정적으로 황제가 잘못되면 황위 계승의 세 번째 순위인 자였다.
묵왕은 암운뇌마도 잘 알고 있었다.
본래 시기 질투가 많으며 권력욕이 대단한 인물로 지금은 사천, 청해, 운남, 감숙을 기반으로 서쪽 세력을 구축한 사람이었다.
‘황궁을 맡아줄 자가 있다면 계획은 한층 수월하겠군.’
차를 마시더니 대답했다.
“묻겠소.”
“말하시지요.”
“모든 계획이 수립되면 천월신교를 국교로 해줄 수 있소?”
국가를 대표하는 교로 인정해달라는 말이었다.
“물론입니다.”
너무 쉽게 대답하자 의아했으나 천뇌의 눈빛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즉, 거짓이 아닌 사실이라는 말이었다.
“천월신교쪽에서 그것을 제안할 줄 알고 이미 묵왕 쪽과 이야기는 끝내놨습니다.”
“흑사회에 천하의 흐름을 보는 지괴가 있다더니 헛소문은 아니었군.”
“과찬이십니다.”
“그러면 이 일로 하여금 흑사회가 얻는 것은 정확히 뭐요? 천하라는 구름이 아닌 열매 말이오.”
암운뇌마는 흑사회에서 모든 걸 해주고 정작 얻어가는 게 없자 의아했다.
그리곤 곰곰이 생각해봤다.
이것으로 흑사회가 얻는 것이 무엇일지.
그들이 바라는 것이 무엇일지.
그렇게 찰나의 순간 사이, 암운뇌마의 머릿속에 한 가지가 떠올랐다.
“흑사회가 바라는 것은 무림맹을 없애고 중원 무림의 주인이 되고자 하는 거군.”
“선배님의 눈도 가히 천하를 지켜보는 혜안을 지니셨습니다.”
“중원의 주인 자리라 그러면 천월신교가 설 자리는?”
“천월신교는 사천을 비롯한 인근 서쪽 지방을 가지시고 저희는 이쪽 안휘를 중심으로 한 동쪽을 지배할 겁니다.”
천뇌의 머릿속에는 이미 세상을 바꿀 지도가 있었다.
“이미 모든 걸 생각해두고 있었군. 대체 언제부터 계획한 일이오?”
“이십 년 전, 천월신교의 문을 처음 두드렸을 때부터지요.”
천뇌는 한 번 뜸을 들인 후에 말했다.
“저희의 제안은 어찌 생각하십니까? 천월신교가 손을 빌려준다면 시일을 더 앞당길 수도 있습니다.”
“아주 매력적인 제안이오, 하지만 지금 당장 뭐라 확답을 드리긴 어렵소.”
“충분히 고민을 하고 답을 해주셔도 됩니다.”
여기서 섣부르게 손을 잡을 순 없었다.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에서 묘한 견제가 시작됐고 서로의 마음을 꿰뚫어보려고 했다.
‘이 늙은이가 이무기를 품었다고 하더니 마음을 읽는 것이 쉽지가 않아.’
‘흑사회의 능구렁이라, 그렇게 부를 만하군. 그러한 계획을 표정 변화도 없이 아무렇지 않게 말하다니.’
그렇게 이야기가 끝나기 전에 암운뇌마가 말을 꺼냈다.
“제안은 긍정적으로 검토하겠소, 그리고 한 가지 부탁을 드려도 되겠소?”
“어떤 거지요? 저희가 들어줄 수 있는 부탁이라면 뭐든 들어드리겠습니다.”
암운뇌마는 천뇌의 말을 듣고서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렸고 그러자 검은 무사가 신형을 날렸다.
그리곤 자리에서 일어나 객을 맞이했다.
“인사하시오, 우리 교의 소교주님이오.”
소교주라는 말에 천뇌는 화들짝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나 예를 올렸다.
“소교주님을 배알합니다!”
독고룡, 그가 천산 산맥에서 내려와 사천 땅에 발을 디뎠다.
곧 암운뇌마가 천뇌를 바라보며 말했다.
“한 달 동안 소교주님이 강호를 돌아다니는 것을 흑사회 쪽에서 도움을 주었으면 하오.”
“강호행을 하시는 겁니까?”
“그렇소. 훗날을 위해 강호의 흐름을 몸소 느끼고자 함이니 강호에 대해 많은 것을 알려주시오.”
암운뇌마의 말에 천뇌는 넙죽 엎드렸다.
“물론입니다. 최선을 다해 소교주님을 보필하겠습니다.”
“잘 부탁하네.”
독고룡의 한 마디.
그 한마디에는 거대한 내공이 담겨 있었고 사람을 짓눌렀다.
천뇌는 그런 독고룡의 기운에 억눌려 쳐다도 보지 못했고 무언가 떠올랐는지 입을 열었다.
“소교주님, 한 말씀 드려도 될까요?”
“고하라.”
천뇌는 침을 삼키며 말했다.
“강호에 이름을 날리는 젊은 검객이 있습니다. 최근 천하 십 대의 반열에 오른 고수지요.”
천하 십 대에 오른 고수라는 말에 독고룡은 눈을 번쩍였다.
“저희가 곧 그를 상대하려고 하는데 무례가 되지 않는다면 소교주님께 도움을 청하고 싶습니다.”
저번 삶보다 훨씬 이른 송삼현과 독고룡의 만남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이때까지만 해도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