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lf a penny from the Golden Tiger RAW novel - Chapter 65
환골탈태 (2)
생전 처음 경험하는 기운이었다. 저번 삶에서도 겪지 못했던 것.
‘… 나를 위협하는 기운은 아니다.’
오히려 포근하게 감싸주는 기운이었다.
기운은 내 몸을 한 번 휘젓더니 내공과 어우러지기 시작했다.
두근.
심장소리가 커졌다.
내공과 어우러지던 기운이 그대로 임맥과 독맥으로 퍼졌다.
두 맥은 서로 떨어져 이어져 있지 않았다.
그리고 그때, 두 맥 사이에 있던 얇은 막이 내공으로 뚫렸다.
‘생사현관 타통!’
떨어져 있던 임맥과 독맥이 서서히 맞닿더니 이어졌다.
그곳으로 내공이 원활하게 돌기 시작했다.
뚝.
정순한 내공에 밀린 탁기는 몸 밖으로 배출됐다.
검은 탁기가 땅에 떨어지자 악취가 맡아졌다.
점점 나오는 탁기가 적어질수록 몸이 가벼워졌다.
그리고 손톱과 발톱이 빠지고 몸에 털이란 털은 모조리 빠졌다.
빠각.
뼈를 부러트리고 재생하는 과정.
이 과정이 반복됐다.
그렇게 피부가 벗겨지고 새로운 살이 돋아났다.
스르르르르륵.
뚜두두두둑.
뼈들을 부수고 다시 붙이며 보다 튼튼해진 골격이 자리 잡아갔다.
방대한 내공을 담기 위한 그릇은 곱절로 커졌고 체격도 마찬가지였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동굴의 깊숙한 곳에 들어와서 빛도 들어오지 않았다.
생각할 시간도 없다.
몸에서는 수많은 변화의 소용돌이가 쳤다.
그리고 발에서 시작된 작은 파도는 몸을 한 번 휘감더니 내 머릿속으로 거대한 파도가 되어 몰아쳤다.
무아지경(無我之境)
내가 화경에 올랐을 때, 봤던 검의 바다가 눈앞에 펼쳐졌다.
검파를 밟은 발을 떼어 앞으로 한 걸음 내디뎠다.
저벅.
저벅.
저벅.
내가 발을 내디딜 때마다 거대한 검의 파도가 몰아쳤다.
내 몸을 씻겨가고 수많은 검들이 나의 발아래에 길이 되어줬다.
저건 뭐지.
수많은 검 사이에서 자신만 다른 세상의 것인 것처럼 빛나는 검.
그 검을 잡기 위해 손을 뻗었으나 잡기 전에 눈이 떠졌다.
스르르륵.
푸른 안광이 눈에 머물며 사라졌고 다시 눈을 감아 기해혈부터 시작된 기의 흐름에 집중했다.
예전보다 훨씬 빨라진 흐름, 막힘없이 흐르는 내공은 전보다 정순했고 질이 좋았다.
‘이 동굴의 기운이 내 단전에 자리잡혔다.’
생전 처음 본 기운.
그 기운이 단전에 자리 잡혔고 주먹을 쥐었다가 폈다.
뼈는 보다 단단해졌고 몸이 깃털처럼 가벼워졌다.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감각.
저번 삶에서 했던 환골탈태보다 이번 삶이 훨씬 잘 됐다.
‘기운이 넘친다. 현경은 아니고 화경의 끝자락에 도달한 건가.’
환골탈태를 마치며 새사람이 된 나는 지나간 시간을 동굴 안에 둔 채, 동굴 밖으로 나갔다.
*
송삼현이 동굴 안으로 들어가고 이틀이라는 시간이 흘러갔다.
쿵!
동굴 앞에 있던 바위가 밀리더니 안에서 송삼현이 걸어 나왔다.
걸어 나오는 것을 본 구창룡은 송삼현의 몸 밖으로 흘러나오는 기운을 봤다.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됐군.’
원래 미공자라는 소문이 있었으나 더욱 선명해진 이목구비, 환골탈태 과정에서 찢겨진 옷 때문에 그의 골격과 근육이 더욱 잘 보였다.
골격은 단단했고 근육은 탄탄했다.
수십 년을 조각만 한 조각사가 심혈을 기울여 판 조각상을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만큼.
“해냈구나.”
“예. 제가 들어간 지 얼마 만에 나온 겁니까?”
“이틀이다.”
“그렇군요.”
“그나저나 환골탈태를 하고 화경의 초입에서 끝자락이라···. 어느새 나와 같은 경지에 올라섰구나.”
현경이 아니라 화경의 끝자락.
저번 삶에서 올랐던 경지까지 오른 거였다. 이제 한 걸음만 더 나아가면 현경, 그 영역이 코앞에 있었다.
‘기운이 마치 살아있는 듯 꿈틀거리는구나.’
구창룡의 시야에 들어온 송삼현의 흘러내린 기운은 마치 자기 주인을 보호하려는 듯 무형의 기운으로 몸을 휘감고 있었다.
‘저것이 역대 맹주들이 말하던 무형의(無形衣)인가.’
형체가 없는 기의 옷, 그것은 웬만한 검으로는 몸에 닿지도 않는 신성한 기운이었다.
스윽.
구창룡은 천지굴을 바라봤다.
‘아무래도 동굴의 선택은 내가 아니라 너였나 보구나.’
천지굴에서 나오는 영험한 기운, 오래전 역사에 기록된 이무기가 용이 되어 승천 될 때, 남기고 간 기운 일부가 동굴에 있다는 내용이 있었다.
그것이 거짓인 줄 알았으나 사실이라는 걸 송삼현을 보며 깨달았다. 그 영험한 기운이 송삼현의 것이 되어 그를 지켜주고 있었으니까.
구창룡은 송삼현을 보며 말했다.
“완전히 화경의 영역에 발을 들였으니 이제 무엇을 할 참이냐.”
송삼현은 고민했다.
저번 삶에서 겪은 전쟁을 말할까, 아니면 계속 혼자서 가지고 갈까.
찰나의 순간, 고민을 마치고 대답했다.
“맹주께 드릴 말이 있습니다.”
혼자서만 갖고 있던 고민.
정도의 정점에 서 있는 구창룡이라면 말해도 되겠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무엇이냐?”
“앞으로 수년 안에 큰 전쟁이 일어날 겁니다.”
혼자서 모든 것을 짊어지는 것보다는 혹시 자신이 막지 못할 사태에 대비하고자 했다.
그래서 구창룡에게 진실을 말했다.
“전쟁?”
“예.”
“… 총 군사도 전에 그런 말을 하긴 했었지. 흑사회가 마교와 접촉하려는 정황도 있었고.”
“이미 알고 계셨습니까?”
“확실하지 않았다. 하지만 혁련서권이 흑사회로 갔으니 전쟁이 일어날 공산이 커진 건 사실이지.”
무림맹에서도 흑사회의 동태를 허투루 보지 않았다.
‘역천사상.’
그것을 가지고 움직인다는 보고는 익히 들었다.
“그러는 넌 그 사실을 어찌 알았느냐.”
구창룡은 무림맹에서도 자신과 군사밖에 모르는 사실을 아는 송삼현을 놀란 시선으로 봤다.
“강호를 돌아다니다 보니 들리는 귀와 보는 눈이 있어서요.”
“… 귀한 인연을 얻었구나.”
뭔가 의심이 가긴 했다.
그러한 정보는 쉬이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그렇다고 캐물을 생각은 아니었다.
아군이라는 것이 증명됐고 무엇보다 정도를 제대로 걷고 있기 때문에 의심할 필요는 단 일도 없었다.
“예.”
“이곳의 일은 걱정하지 말거라, 용천회가 사라진 이상, 우리의 결정을 막을 존재는 없다. 보다 강한 무림맹을 만들어 훗날 일어날지도 모르는 전쟁을 대비하마.”
용천회의 방해로 무산된 일들이 태산처럼 쌓여 있었다.
그 중, 사파와의 전쟁에 대비해야 한다는 것도 있었다.
그렇기에 구창룡은 용천회가 사라진 지금, 무림맹주로서 정도 무림의 규율을 다시 세울 심산이었다.
“맹주님께서 그리 말씀하시니 믿음이 갑니다.”
“그건 그렇고 너의 걸음은 이제 어디를 갈 참이냐?”
구창룡의 물음에 송삼현이 대답했다.
“흑사회로 향할까 합니다.”
그 말은 즉, 흑사회를 없애겠다는 의미였다.
“… 힘들 거다. 네가 지금까지 상대한 어떤 적보다도.”
흑사회의 규모도 그렇고 닿아있는 끈이 길었다.
그들을 제거하려면 오랜 시일이 걸릴 거라는 말이었다.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흑사회의 손과 발이 될 곳부터 잘라내려고 합니다. 그렇게 전쟁을 조금이라도 막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송삼현에게는 남들에게 없는 것이 있었다.
‘저번 삶의 기억.’
그 기억을 통해 흑사회의 전력이 될 이들을 포섭하고 세력을 잘라낼 심산이었다.
“그러한 곳을 아느냐?”
“저에게는 천하의 모든 정보를 알아봐 주는 눈과 귀가 있으니까요.”
무조와 명월루.
정보책도 충분했기에 그들의 정보와 함께 흑사회의 팔다리를 하나씩 잘라나갈 생각이었다.
송삼현의 걸음은 이제야 시작된 거였다.
*
환골탈태를 마친 뒤에 내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제갈귀호에게 진법을 배우는 일이었다.
‘진법의 천재.’
그에게 배울 수 있는 건 하늘이 준 기회였다.
“진법에는 크게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첫 번째는 인진(人陳), 사람이 직접 참여해서 만드는 진과 두 번째로 기문진(奇門陳), 자연물이나 철제 기계물을 바탕으로 한 진법이다.”
단 한 자도 놓쳐선 안 됐다.
“인진은 기문진에 비해 파훼하는 게 쉽다. 사람이 만들어내는 것이니 약한 부분부터 노리면 쉽게 파훼할 수 있지.”
“예.”
“허나 기문진은 다르다. 기문진에는 복잡한 구조가 있기 때문이다.”
제갈귀호의 입에서 나오는 기문진에 관련된 건 여러 가지였다.
음양.
삼재.
사방
오행.
육합.
칠성.
팔쾌.
구궁.
십익.
자연과 수리, 여러 방향에서 만드는 기문진은 펼치기도 어려울뿐더러 파훼하는 것은 더 힘들었다.
“시범을 하나 보여주마.”
제갈귀호가 부적 몇 장을 하늘로 흩뿌렸고 그 부적은 나무들로 붙었다.
그러더니 거대한 발이 허공에 나타났고 나를 밟으려는 것처럼 느껴졌으나 아무런 충격이 없었다.
“환영이다. 술식만 이용할 줄 알면 쉽게 할 수 있는 거지.”
“… 이게 쉽다고요?”
“나는 쉬운데 애들은 어렵다고 하더구나. 이 부적만 있으면 할 수 있는 것이 이러한 환영 진법인데.”
환영진법이라고 해도 제갈귀호가 하는 환영진법은 실제와 흡사했다.
“어떠냐. 진법의 세계가?”
“복잡합니다.”
“복잡하고 어렵지, 하지만 한 가지만 알면 쉽다.”
“그게 무엇입니까?”
“모든 것의 근원은 오직 하나다. 어떤 진법이든 술식을 펼치기 위한 도구가 있다. 그 도구만 찾으면 파훼하는 건 어렵지 않지.”
그게 말이 쉽지, 진법에 빠지면 그것을 찾아내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한 번 경험해보겠느냐?”
제갈귀호는 품속에서 작은 옥돌을 꺼냈다.
그리고 그것을 튕겼고 나무에 부딪친 옥돌이 땅에 떨어지자 연못에 떨어진 것처럼 파동을 일으켰다.
스르르르륵.
안개가 시야를 가리기 시작했고 제갈귀호가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지기 전에 말했다.
“한 번 파훼해 보거라. 무공이 아닌 머리로.”
그렇게 사흘 동안, 제갈귀호의 진법에 갇히며 혹독한 수련을 해야만 했다.
*
다시 길을 떠나기로 한 날, 해가 지고 달이 중천에 뜬 늦은 밤에 떠날 채비를 했다.
무림맹 별문.
그곳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늦은 시각에 길을 나서는구나.”
제갈귀호가 말하자 송삼현이 대답했다.
“보는 이들이 많으면 제가 가는 길이 적들에게 알려질 위험이 있으니까요.”
“그래, 그런 신중한 성격이 강호에서 보다 오래 살아남을 수 있는 법이란 것을 명심하거라.”
구창룡과 제갈귀호, 그리고 남궁효우를 비롯한 삼호 오화도 있었다.
“명심하겠습니다.”
우물우물.
“그리고 너.”
구창룡은 옆에서 만두를 씹고 있는 선무정을 바라봤다.
“꿀꺽, 저요?”
“나중에 천음산보 그 늙은이를 만나면 산에 그만 처박히고 무림맹으로 좀 오라고 이르거라. 이건 뭐, 산에서 내려오질 않으니 얼굴을 다 까먹겠구나.”
“예! 꼭 전하겠습니다!”
삼호 오화에게 포권을 올리자 당수향이 나에게 다가왔다.
“이거 받으세요.”
당수향이 준 것은 작은 목함이었다.
그것을 여니 안에는 작은 단약 세 개가 있었다.
“이게 뭐요? 해독제요?”
“단번에 알아보시네요. 아무리 천독불침이라고 해도 하나쯤은 가지고 계세요. 혹시라도 필요할지도 모르잖아요?”
“고맙소, 유용하게 쓰도록 하겠소.”
환골탈태로 천무지체를 얻고 독이 통하지 않는 신체를 가졌다곤 하지만 이것은 귀한 선물이었다.
내가 아니더라도 다른 이에게 쓸 수도 있었으니까.
그리고 차례차례 포권을 올리고 송연화를 마주 봤다.
“누님, 이만 가보겠습니다.”
“긴말하지 않으마, 내가 하고 싶은 말은 하나다. 몸조심하거라, 언제나.”
“예.”
말 위에 올라탔고 송연화는 선무정에게 신신당부했다.
“부탁하네. 혹시라도 저 아이가 위험한 일을 하려고 할 때는 꼭 말려주게.”
“예! 주군의 안위는 저에게 맡겨주십시오!”
두 사람이 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멀리서 이곳을 바라보는 송우태와 시선이 마주쳤다.
[항상 몸조심하거라.]
[예.]
길게 할 말은 없었다. 송우태도 마찬가지인지 다음 말은 하지 않았다.
선무정까지 말을 타고 구창룡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면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렇게 나와 선무정은 말을 달리며 무림맹에서 떠났다.
호화회.
서문가후의 죽음과 용천회의 몰락.
달라진 미래.
천하 십 대의 반열.
많은 일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고 그렇게 무림맹을 떠나 새로운 길에 올라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