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lf a penny from the Golden Tiger RAW novel - Chapter 67
북검을 잡아라 (2)
재문당주는 밤새 말을 달려 운성 강우현에 도착했다.
이른 새벽, 아직 사람들이 잠에서 깨지 않은 시각에 강우현 외곽에 있는 집 앞에 말을 세웠다.
“오셨습니까. 당주님.”
도착한 곳은 그들이 비밀리에 사용하는 안가였다.
이곳에 마훈과 그의 가족이 지내고 있었다.
“북검께서는 어디 계시는가?”
“가족분들과 안채에 계십니다.”
“알겠네.”
말을 묶어놓고 안으로 들어간 재문당주는 마당에 섰고 곧 마당으로 마훈이 걸어왔다.
“당주께서 어쩐 일로 오셨소.”
칠척이 넘는 거대한 체격에 얼굴을 비롯해 몸에 새겨진 수많은 상처.
그가 얼마나 힘들게 살아왔는지 눈으로만 봐도 알 수 있었다.
털썩.
재문당주는 울먹이며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어찌 이러시오!”
“저희 좀 구해주십시오! 백의검룡이 재문당으로 쳐들어와 저희의 재물을 강탈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 백의검룡? 그자가 어째서 재문당의 재물을 강탈한단 말이오.”
“저도 그것이 궁금합니다! 이대로면 재문당의 모든 재물을 빼앗길 겁니다!”
마훈은 백의검룡이라는 별호를 알고 있었다.
용천회주 혁련서권과 일전을 벌이며 천하 십 대의 반열에 올라선 고수의 소문은 강호 일대에 퍼지며 듣기 싫어도 들리고 있으니까.
“그 자라면 제가 어찌하지 못합니다. 화경에 오른 고수지 않습니까.”
마훈의 경지는 초절정이었다.
화경의 고수를 상대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시간만 끌어주십시오. 현령이 돌아오면 해결이 될 것입니다.”
재문당주가 바라는 건 시간을 끄는 거였다.
요도현을 다스리는 현령이 온다면 어떻게든 탈출구가 있을 거니까.
“….”
마훈이 쉽게 말을 하지 않자 재문당주가 말을 덧붙였다.
“저희가 약재와 지낼 곳을 마련해드렸는데 이런 부탁쯤은 들어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정중하게 부탁하는 태도지만, 실상은 그게 아니었다.
쫓기는 자신을 받아준 재문당을 위해 더러운 오물에 발을 담가야 했다.
“… 알겠소.”
내키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아픈 부인과 어린 딸을 위해서라도 안전하게 지낼 곳이 필요했으니까.
*
요도현 화월 객잔.
정오가 됐는데도 아무런 이야기가 들려오지 않는 걸 보니 재문당이 내 제안을 거절한 모양이군.
“재문당이 조용하네요. 주군의 제안을 무시한 거 아닙니까?”
나는 가만히 있는데 선무정이 화를 냈다.
“아마 북검을 만나러 갔을 거다.”
“북검이요?”
“그자가 나의 발목을 잡는 동안 뒤에서 다른 활로를 찾으려는 심산이겠지.”
“아무리 북검이라도 해도 주군의 발목은 커녕 옷깃을 건드리지 못할 텐데 참으로 머리가 나쁜 자들이네요.”
그들이 이렇게 나온다는 건 어느 정도 예상 범주에 있었다.
어쨌든 내가 재문당을 건드린 이유 중, 제일 큰 건 마훈을 만나는 일 때문이었으니 오히려 잘된 일이었다.
허나.
이대로 그냥 물러나는 건 내 방식이 아니었다.
“무정아, 넌 재문당의 동태를 살피거라.”
“알겠습니다. 그 녀석들이 재물을 다른 곳으로 빼돌리지는 않은지 감시하라는 거지요?”
나랑 자주 다녀서 그런지 눈치가 늘었다.
“… 눈치가 빨라졌구나.”
“주군이랑 같이 지내다 보니 저절로 늘었지요!”
“그러면 어서 가보거라.”
“예! 주군, 조금이라도 이상한 낌새가 있다면 바로 보고하겠습니다.”
선무정을 보내고 가만히 앉아 차를 마셨다.
홀로 객잔에 있자 곧 흉악하게 생긴 무사들이 객잔을 채우기 시작했다.
‘어제 봤던 재문당 무사들이군.’
그들은 자리에 앉아서 주문하더니 나를 보며 경계를 하기 시작했다.
저벅.
저벅.
저벅.
누군가가 나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백의검룡 송삼현 대협이오?”
내게 말을 건 사람은 내가 찾던 마훈이었다.
“그대는 누구요?”
“부끄럽지만, 북검이라는 별호로 불리고 있습니다.”
“북검이라, 풍천삼악을 죽인 대협이었군요.”
“대협이라니요. 당치 않습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합석을 해도 되겠습니까?”
“앉으세요.”
스르륵.
마훈이 내 맞은편에 앉았다.
“이리 쥐새끼들을 데리고 나를 찾아온 거면 재문당에 관련된 일 때문이구려.”
마훈은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재문당의 일에 손을 떼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들이 어떤 짓을 하는지 알고 있으면서도 손을 떼달라는 거요?”
마훈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마 자신이 생각해도 재문당이 하는 일은 선을 넘었다고 생각하는 거겠지.
“저는 정도를 지향합니다. 그리고 그 정도에 양민의 고혈을 빨아먹는 재문당이라는 곳은 존재해선 안 됩니다.”
“대협은 금호장이라는 풍족한 환경 속에서 그렇게 올바른 생각으로 자랐을지 모르지만, 이 바닥에선 그들 나름대로 살아가는 방식이 있습니다. 대협은 그 방식을 깨트리는 거고요.”
내가 풍족한 환경에서 자랐다고?
이 몸은 물론 그렇겠지만, 내 정신은 아니었다. 저번 삶에서 난 거리에서 구걸하며 살았다.
가난이라는 것을 느껴볼 새도 없이 살기 위해 발악했던 때였다.
그다음에도.
또 다음에도.
검을 들고 강호에 나와 아무리 힘이 들어도 신념이 꺾이는 일이 생겼어도 나의 검이 향하는 곳은 언제나 같았다.
“좋지 않은 환경이라도 옳은 길을 걸을 수 있습니다. 지금 그대가 저들과 걷는 것은 명백한 사도입니다.”
“…. 이런 환경에 살다보면 살기 위해 바쁩니다. 지켜야 할 사람들도 있고요.”
“분명히 다른 길이 많을 것입니다. 저들은 물론 당신이 선택한 건 그저 쉬운 길일 뿐입니다.”
“금호장이라는 풍족한 환경에서 살아온 대협이 어찌 아십니까! 제가 이 자리에 오기까지 얼마나 힘들었는지!”
마훈의 말에 나는 차분하게 대답했다.
“그러면 그대는 내가 이 자리에 오기까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십니까?”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가 제일 힘든 줄 안다.
다른 이들은 어떤 고통을 이겨내며 살아온 줄도 모르고.
“…..”
“나도 그대가 상상하지 못할 고난을 겪고 온 겁니다. 그러니 남의 삶을 함부로 재단(裁斷)하지 마십시오.”
마훈은 말을 잇지 못했다.
나를 물끄러미 바라봤고 난 그에게 말했다.
“풍족하다고 모두가 행복한 건 아닙니다.”
“그래도 가지지 못한 이들보다 많은 기회가 있지 않습니까!”
“금호장에서의 내 삶이 행복했을 거라고 보십니까?”
“….”
“저는 그곳에서 스스로 기회를 찾았습니다. 모두의 외면을 받으면서.”
송삼현이라는 존재는 애초에 많은 이들의 기대를 받지 못한 금호장의 반푼이었다.
그 반푼이가 지금 이 자리까지 온 거였다.
아무리 환경이 풍족하다고 해도 그만한 고충이 따르는 법이었다.
“사람들은 저에게 손을 내밀지 않았고, 첩의 자식인 저를 어떻게든 죽이려고 독까지 먹였습니다.”
“….”
“저도 그대처럼 엇나갈 기회는 있었으나 그러지 않았습니다. 내 몸은 얼마든지 더러워진다고 하더라도 마음속에 품은 정도를 더럽히고 싶지 않았으니까요.”
“….”
“이 자리는 그렇게 도달한 곳입니다.”
아직 쉽게 입을 열지 못하는 마훈에게 계속해서 말했다.
“이것이 정녕 그대가 원하는 겁니까? 환경을 탓하며 스스로 구덩이에 빠지는 것이?”
“….”
“당신의 가족을 지키려고 다른 가족을 고통에 내모는 것이 옳은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
“… 허나 제가 살아갈 길이 이 길밖에 없습니다.”
뒷배도 없고 홀로 강호를 살아가는 그에게 있어 이러한 일은 그가 살아가는 방식이었다.
그런 마훈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그러면 다른 길이 있다면 그 길로 가보겠습니까?”
“다른 길이라니요?”
이들이 정파와 사파들의 눈을 피해 숨어 있을 법한 장소가 내게 있었다.
“말 그대로요. 다른 길을 제안할 터이니 내 손을 잡겠습니까?”
마훈을 끌어들이기 위해서 내가 제안할 것은 이곳이 아닌 다른 안전한 장소를 제공하는 거였다.
허나.
들려오는 대답은.
“모두에게 비난받는 내 손을 어찌 대협같은 분이 잡으시려고 합니까.”
“잡을 수 있소.”
스윽.
내가 내민 손을 보던 마훈은 내 손을 무시하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괜히 저 같은 자와 손을 잡으면 대협의 명성에도 흠이 갈 것입니다. 그러니 그 제안은 듣지 않은 것으로 하지요.”
*
송삼현을 만난 마훈은 거리를 둘러보곤 안가로 돌아왔다.
자기 딸과 같은 나이의 아이들이 거리에서 배를 곯고 잠을 자는 것을 보니 마음이 아팠다.
‘이러고 싶지 않았다.’
‘나도 백의검룡처럼 정도를 위해 검을 쓰고 싶었다.’
‘그러나 환경이 달라졌다.’
‘돈을 벌어야 했다.’
‘먹고 살려면 내게 필요한 것은 돈이었다.’
‘내가 걷는 길이 틀렸다는 걸 알았지만, 다른 길을 걸은 용기가 없었다. 이미 이 길에 익숙해졌으니.’
자식에게 가난을 물려주기 싫어 들었던 검 때문에 가족을 고통 속에서 살게 한다는 것이 계속 마음에 걸렸었다.
그래서 송삼현이 했던 말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때 정말 그의 손을 잡았다면 뭔가가 달라졌을까.
허나 이내 고개를 저었다.
이미 더럽혀진 자신의 손을 잡아봤자 송삼현의 명성에 흠이 가는 거니까.
“무슨 걱정이 있으세요?”
방에 있던 부인이 마당으로 나오며 묻자 마훈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오.”
“… 표정을 보니 뭔가 고민을 하는 거네요.”
“부인의 눈은 피할 수가 없구려.”
“혹시 재문당이 무모한 제안이라도 하는 건가요?”
“그리 무모한 것은 아니니 걱정하지 마시오.”
부인은 무언가 곰곰이 생각하더니 말했다.
“저는 십 년 전 가가를 처음 만났을 때가 아직도 잊히지 않아요.”
처음 강호에 출두했을 때, 신주에서 만났던 두 사람은 지금 부부가 됐다.
“그때는 사파무리들로 부터 양민들을 구하고 협객을 꿈꿨잖아요.”
부인의 말을 듣고 마훈은 씁쓸해졌다.
검을 처음 잡았을 때, 스승에게 반드시 중원 제일의 협객이 되겠다고 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가족이 생기며 꾸던 꿈은 색이 바랬다.
“가가.”
“왜 그러시오.”
“저희는 괜찮으니 마음이 가는 대로 하세요. 그렇게 슬픈 표정을 짓지 마시고요.”
협을 외치던 그때로 돌아가고 싶었으나 이미 너무 많은 길을 건너왔다.
스윽.
“저희 때문에 가기 싫은 길을 억지로 갈 필요는 없어요.”
그 말은 마훈의 가슴을 크게 뒤흔들었다.
부인은 마훈의 손을 자신의 두 손으로 따뜻하게 감쌌다.
“죄송해요. 제가 몸이 약해서 가가의 짐이 되고 말았네요.”
“그런 말 하지 마시오, 부인이 건강해야 내가 사는 거요.”
하늘에 떠 있는 달이 오늘따라 더욱 슬프게 보였다.
*
다음 날, 마훈은 딸 소연과 꽃길을 거닐었다.
“소연아.”
“예, 아버지.”
올해로 일곱 살이 된 아이의 눈은 참으로 맑았다.
“… 이곳에서 지내는 것이 마음에 드느냐?”
“저는 어디든 상관없어요. 아버지와 어머니가 가는 곳이라면요.”
한 창 어리광을 부릴 아이가 고된 삶 때문에 이리 빨리 철이 들자 마훈은 마음이 아팠다.
“다시 길을 나서실 건가요?”
“아마 그래야 할 것 같구나.”
“전 어디든 상관없습니다! 그러니 아버지의 마음이 편한 대로 하세요!”
다 큰 성인도 고된 길을 일곱 살 아이가 견디기엔 버거울 거다.
그런데도 힘들다는 이야기를 단 한 번도 하지 않은 소연을 보며 마훈은 미소를 지었다.
“이번에 가는 길이 정답이길 바라자꾸나.”
마훈은 꽃을 보며 해맑게 웃는 소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번에는 자신이 가는 길이 옳은 길이기를 바라며.
‘백의검룡 대협께 민폐를 끼칠 수 없으니 내 길은 내가 걸어야 한다. 일단, 이 나라를 떠나고 다른 나라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자.’
그리고 다음 날.
마훈은 이곳의 일을 끝맺기 위해 재문당을 찾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