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lf a penny from the Golden Tiger RAW novel - Chapter 7
진왕 전하 납시오! (3)
늦은 밤, 자시(23~01)가 지나고 축시(01~03)가 되자 하늘에선 비가 우수수 떨어져 땅을 적셨다.
많은 빗줄기에 길에는 금세 물이 고였고 내가 탄 말은 물웅덩이를 밟으며 바삐 내달렸다.
‘왕세자가 납치된 건 진왕 전하의 정적이 흑사회에 사주했을 공산이 크다. 그러면 송이현은 왜?’
끊임없이 납치한 연유에 대해 생각했다.
흑의인들이 납치한 연유를 알면 그만큼 추적이 쉬워지기 때문이다.
이것이 단순한 납치인지, 아니면 목적이 있어 계획된 납치인지.
만약 후자라면 추적을 하는 건 더 어려워진다.
왕세자를 납치한 연유는?
송이현을 납치한 연유는?
생각을 거듭하는 사이, 점점 강해지는 빗줄기.
멈출 순 없었다.
흔적이 빗물에 씻겨 내려가기 전에 그들의 꼬리를 잡으려면 한시가 급했다.
고삐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고 말은 쉬지 않고 풀숲을 가르며 빗속을 달렸다.
“공자님.”
“응?”
옆에서 나란히 말을 타고 따라오는 사람은 강 무사였다.
“말을 굉장히 잘 타십니다?”
“어릴 적에 승마를 배웠었다. 꼭 필요하다며 어머니가 가르쳐줬지.”
저번 삶에서도 말을 타 본 적이 많아서 이런 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제가 모르는 공자님의 모습을 최근에 많이 알게 됩니다.”
“사람은 하루가 다르게 달라지니까 그리 이상하게 보지 말거라.”
“그런데 정말로 장주님께 말씀 안 드립니까? 늦은 밤에 몰래 구용으로 가는 걸 알면 크게 호통을 치실 거 같은데.”
“호법당주에게 서신을 보냈다. 그가 알아서 장주께 알리겠지. 시각이 없다 더 빨리 달리자.”
“네, 공자님!”
만약 내가 원래의 몸으로 회귀했고 송삼현은 그대로 죽은 목숨이라면 이 길은 이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금호장이 두 사람을 구해낼 것이고 역사는 또다시 그렇게 기록이 되었겠지.
허나.
저번 삶의 기억이 나를 그곳으로 인도했고 그곳에는 내가 만나야 할 악귀가 있었다.
새겨질 역사는 저번 삶과 다를 것이다.
*
구용에 도착하자 위사들이 관문을 지키고 있었다.
늦은 시각이지만, 위사는 내가 가진 금호장 패를 보더니 들여보내 줬다.
“삼 공자님···?”
현장에서 나를 알아본 이는 호법당주 소속 적호대주 등위성이었다.
“등 대주.”
“삼 공자님을 뵙습니다. 이곳에는 어쩐 일이십니까?”
“작은 형님이 흑의인들에게 납치되었다는 소식에 가만히 있을 수 없어 달려왔네. 상황은 어떻게 되어 가는가?”
상관없는 내가 늦게 와서 이러니 좀 짜증이 나는지 미간이 좁혀지는 게 눈에 보였다.
그래도 내가 삼 공자라는 신분이 있으니 싫은 소리는 못 하고 상황을 보고했다.
“암부가 와 추적술로 흑의인들의 뒤를 쫓고 있습니다. 그들은 무청산으로 향했고 계속 이동 중이라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큰형님은 아직 정화원에 계시는가?”
“일 공자님께서도 호법당주님과 같이 추적 중으로 들었습니다.”
보고를 들은 후, 슬쩍 현장의 상황을 봤다.
핏자국이 빗물에 쓸려 거의 사라지고 없지만, 흔적은 남아 있었다.
누군가를 죽였다면 아무리 흔적을 숨기려고 해도 남는 법이었다. 전문적인 살수들이 아니라면.
“나도 잠시 들어가도 되겠나? 강 무사가 옆에 있어 줄 것이네.”
“… 잠깐만이라면 괜찮습니다.”
떨떠름한 표정을 짓는 등 대주를 지나쳐 무사들이 지키는 현장으로 조심스럽게 들어갔고 강 무사는 내 뒤를 따랐다.
주변에 싸움의 흔적들이 남아 있었고 벽에는 확실히 구절편으로 공격한 자국이 선명했다.
‘흔적 지우는 게 미숙한 걸 보니 사견 사은성은 없나 보군. 사은성이 있다면 이토록 허술하게 흔적을 지우지 않았겠지.’
더 상세히 흔적들을 살폈다.
추적에 필요한 요소는 발자국, 핏자국, 나뭇가지의 꺾임, 풀의 눌림 등 여러 가지가 있었다.
자객의 흔적을 찾는 일은 저번 삶에서 많이 해봤다.
마교의 살수들에게 표적을 구해주는 ‘구표.’, 적을 특정해서 죽이는 ‘살표’, 모든 것을 경험했기에 추적술은 알고 있었다.
모든 추적술의 시작은 현장에서 단서를 잡아야 했다.
현장에 단서가 없더라도 일어난 시각, 주변 지리를 통해 어디로 가는지 대략적인 파악이 가능했으니까.
“무청산(茂靑山)이라.”
처절하게 살아남으려는 자들이 벽을 짚으면서 돌의 틈새에 생긴 핏자국, 벽에 새겨진 검흔까지.
흔적의 꼬리들이 무청산을 가리켰다.
이 정도 흔적이면 금호장의 암부들이 쉽게 찾아낼 수 있을 터, 그렇다면 대체 칠견은 저번 삶에서 그 포위망을 어찌 빠져나간 것이지?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는 게 분명하다.
“… 진짜 계속 따라올 거냐?”
현장을 나와 무청산으로 어떻게 들어갈까 고민하는데 강 무사는 옆에서 강아지처럼 졸졸 따라다녔다.
“전 공자님의 호위입니다! 어딜 가시더라도 제가 옆을 지키는 것은 당연한 본분입니다.”
이대로라면 진짜 계속 따라올 것 같다.
칠견 무리를 상대하려면 강 무사가 있는 건 솔직히 방해되니 어떻게든 따돌려야 했다.
그러던 내게 객잔이 보였다.
“저기 객잔에 묵을 터니 방을 두 개 잡거라. 한 곳은 내가 묵고 다른 한 곳은 네가 지내거라.”
“…. 정말이십니까?”
“날 못 믿는 것이더냐?”
“아닙니다! 그러면 제가 가서 방을 잡아 놓을 테니 천천히 오십시오!”
잠시 후, 난 강 무사가 잠든 틈에 피풍의를 입고 삿갓을 쓴 채, 무청산으로 경공을 펼쳐 입산(入山)했다.
*
무청산의 초입에서 흔적을 찾았다.
스윽.
고개를 숙여 땅에 손을 가져다 댔다.
여러 개의 발자국이 비에 씻겨가도 진흙에 돌이 박힌 것은 씻겨가지 않고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빗물이 흘러 자연스럽게 생긴 것이 아닌 분명히 사람이 밟고 지나간 것의 흔적이었다.
‘추적조도 이곳을 지나갔구나. 그러면 이 흔적을 따라 가보자.’
빠르게 경공을 펼쳐 산의 중간 정도 오르자 양 갈래 길이 나왔다.
왼쪽 길과 오른쪽 길 모두 나뭇가지가 꺾여있고 풀이 눌려있는 걸 보고 이상한 낌새가 들었다.
‘양동계를?’
흑의인들은 이곳에서 두 갈래로 흩어졌고 뒤쫓던 추적조도 여기서 두 갈래로 갈라진 것이 명확했다.
길을 선택해야 할 순간.
‘어, 잠깐.’
오른쪽 길에서 왼쪽 길과 다른 이상한 부분이 보였다.
왼쪽 길은 추적조가 지나가면서 생긴 흔적이라면 오른쪽 길은 추적조가 지나가면서 생긴 흔적이라고 보기에는 어려웠다.
‘이곳까지 올 때, 추적조는 뒤따라오는 이들을 위해 나뭇가지를 부러트려 흔적을 만들었다. 하지만 오른쪽은 나뭇가지가 경공으로 부러진 것이 아닌 검으로 베어버린 것처럼 깔끔하다.’
일부러 유인하는 것처럼.
만약 내 예상대로라면 왼쪽으로 왕세자와 송이현을 데려간 것으로 보였다.
그렇다면 어차피 그들은 금호장의 무사들이 찾아서 구할 것이니 내가 할 것은 단 하나.
“웬 놈이냐.”
흑의인들이 직접 나를 찾게 만드는 거였다.
나뭇가지를 밟고 경공을 펼치며 오른쪽 길로 들어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무 위에서 말이 들려왔다.
그들은 나 혼자라는 걸 알고서 나무 위에서 내려와 내 앞에 섰다.
두 명.
얼굴은 복면으로 가렸지만, 경지는 대략 일류 수준의 무인들이었다.
“물었다. 누구길래 이 야심한 시각에 이곳을 지나는 것이냐···. 혹여 금호장 사람인가?”
“형님, 금호장 추적조는 이미 이 길을 지났습니다. 금호장 사람은 아닌 듯싶습니다.”
“하긴···. 그렇지. 그러면 혼자서 이곳을 지나는 연유가 무엇이냐. 바른대로 말하는 게 좋을 거다.”
이것들은 이곳으로 금호장 무사 일부를 유인하고 숨어있었군.
“그것을 왜 묻지? 너희들이 이곳에 통행세를 받는 녹림채더냐?”
그들은 경계하며 위아래로 나를 훑는데 오른쪽 무인의 시선이 내 허리춤에 있는 검에 꽂혔다.
“… 무림인이구나.”
날 바라보는 눈빛이 순식간에 바뀌었다.
그들은 당장이라도 나의 목을 칠 기세를 맹렬하게 내뿜었지만, 그 기세에 눌릴 내가 아니었다.
저번 삶에서 상대했던 수많은 고수와 비교하면 이들은 그들의 발끝도 따라가지 못할 수준이니까.
“묻겠다. 칠견은 어디 있느냐. 아, 이리 말하면 모르나, 사추도는 지금 어디 있지?”
척.
척.
칠견의 본명인 사추도라는 이름을 듣자마자 두 명의 무인은 곧바로 검을 꺼내 나를 겨누었다.
“추적자구나. 그런데 어찌 사추도님의 이름을 알고 있는 거지?”
“형님! 그것은 팔다리를 분질러 놓고 물어보는 게 빠를 겁니다.”
무거운 중검을 든 흑의인이 나를 보곤 소리쳤다.
“고작 어린놈 혼자서 우리를 감당할 성싶으냐!”
스릉.
나는 허리춤에 있는 검집에서 검을 뽑았다.
빗방울이 검날에 맞아 땅에 떨어졌고 난 삿갓을 쓴 채로 그들에게 다가갔다.
저벅.
“너희들에게 볼일은 없다.”
저벅.
“사추도, 그놈이 어디 있는지만 알려주면.”
저벅.
“최대한 괴롭지 않게 죽여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