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lf a penny from the Golden Tiger RAW novel - Chapter 71
재회 (3)
하늘에 별처럼 수놓아진 만 개의 암기들이 일제히 나에게 쏟아졌다.
‘저번 삶에서는 멀리서 지켜보기만 했던 초식이 지금은 내 눈앞에 펼쳐졌다.’
저번 삶에서는 구창룡이 상대하는 것만 봤었다.
구창룡의 검이 빠르게 허공을 가르며 무수히 많은 암기를 뚫고 흑사회주의 심장을 뚫을 때는 온몸에 전율이 일어났었다.
꽉.
찰나의 순간에 수많은 경우의 수가 머릿속에서 부딪치며 사라졌고 마침내 하나의 길이 보였다.
사부님이 했던 말이 순간적으로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콰직!
진각을 밟고 수많은 암기 사이로 뛰어들었다.
암기들은 허공에서 새 떼처럼 자유롭게 변화를 일으켰다.
암기들이 내 옷과 피부를 찢고 그 상처로 피가 나왔으나 무시했다.
오로지 내 손에 들린 검에만 집중했다.
검이 내뱉는 호흡.
그리고 내가 내뱉는 호흡.
그것들에만 집중하며 검에 내공을 흘려보냈다.
스르르르륵.
한 개의 초식에만 집중하지 마라, 초식들이 가는 길의 끝은 단 하나, 적의 죽음뿐이니.
‘천무 1식 개벽.’
먼저 하늘로 통하는 길을 만들고.
‘천무 2식 일도양단.’
그 길을 따라 강을 흐르게 하고.
‘천무 3식 만경창파.’
그 강이 마침내 바다와 합쳐져 거대한 파도가 되어 적을 덮쳤다.
천무신검의 묘리.
모든 초식은 하나의 고리처럼 이어져 있었다.
검에서 나온 가공할 만한 검의 파도.
원래 3초식 만으로는 이러한 위력을 내지 못하지만, 1초식, 2초식의 힘을 3초식에 실어 가공할만한 위력을 냈다.
콰아아아아아아앙!
세 개의 초식을 합쳐 만성연철을 깨트려버렸다.
오로지 전쟁을 막고자 하는 목표로 가려진 과거의 기억들.
화경에 올랐을 때도 그랬는데 과거의 기억을 내가 많이도 잊고 있었구나.
파도에 부딪힌 별들은 무수히 땅으로 떨어졌다.
*
“…. 저 무공은 대체 뭐란 말이냐.”
만성연철이 파훼 되자 철패흉은 누구보다도 놀랐다.
지금껏 상대한 이들 가운데 이렇게 깔끔하게 만성연철의 초식을 깨트린 자는 없었다.
‘저놈의 검은 예사 검이 아니다. 내 검보다 몇 수가 높다.’
검으로는 천하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철패흉이었으나 송삼현에게 상대가 되지 않았다.
‘또 온다.’
탓.
송삼현이 땅에 착지하면서 그 반발력으로 철패흉에게 검을 출수했다.
탄환처럼 올곧은 호쾌한 찌르기 동작에 철패흉은 분명히 피했으나.
휘리리릭.
푸른 연기가 검처럼 변하더니 왼쪽 어깨를 베이고 말았다.
촤아아아악!
베인 곳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그렇게 상처가 생긴 철패흉은 그제야 송삼현이 쓰는 검의 정체를 알아냈다.
“이 느낌 다르면서도 비슷하구나.”
“….”
“너의 검은 천무신검이로구나. 그 검에 미친 늙은이의 제자더냐?”
“제 검에 대해 아십니까?”
“알다마다.”
스으으윽.
가슴께에 새겨진 깊은 검흔을 보여줬다.
“내 몸에 이러한 상처를 낸 검법을 내가 잊을 리가 있겠느냐.”
“그렇군요.”
“그 망할 검을 이 자리에서 만나다니, 오늘 그 검의 명맥을 끊어버리겠다.”
“저도 오늘은 흑사회의 명맥을 끊어버리겠습니다.”
철패흉과 송삼현이 동시에 진각을 하며 서로에게 달려들었다.
양보는 없었고 오로지 서로를 죽이려는 살초들만이 수를 놓았다.
서로의 옷깃을 찢었고.
서로의 피부를 찢었고.
서로를 죽이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몇 백합을 주고받았는지도 모를 만큼 치열한 접전.
누구도 끼어들지 못하고 멀리서 지켜볼 뿐이었다.
콰아아아앙!
어느덧 그들이 있는 곳의 지대는 낮아졌다.
하늘에서 내리던 비는 어느덧 멈췄고 두 사람의 초식이 맞부딪치면서 생기는 바람이 먹구름을 몰아내고 구름 속에 감춰진 해를 드러나게 했다.
“… 천무신검만 익힌 것이 아니구나, 묘하게 다른 검이 섞여 있어.”
흑사회 무사들은 천하에서 검으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철패흉이 밀리자 당황스러운 표정이 늘어났다.
사파의 절대 지존인 그가 밀리는 건 있을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회주님. 이제 시간을 지체해선 안 됩니다.”
천뇌의 말에 철패흉은 더 싸우고 싶었으나 참았다.
그들의 계획은 최소한의 피해로 백의검룡 송삼현을 죽이는 거였으니까.
“…. 알겠다.”
천뇌의 말에 철패흉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 겨뤘으니 이미 충분히 합을 나눈 셈이었다.
사실은 두려움이 마음속에 퍼져있었다. 자신이 송삼현에게 패배하면 흑사회를 이끌 위엄이 떨어지니까.
“백의검룡은 회주님과 싸우면서 지쳤다. 일제히 흑멸마라진을 펼쳐라. 단숨에 저자의 목을 취한다!”
“존명!”
“흑매! 내가 알려준 대로 배치하라!”
“존명!”
철패흉이 밀리기 시작하자 흑사회 정예들이 일제히 신형을 날리며 흑멸마라진을 펼치려고 했고 천뇌는 그것을 조율했다.
송삼현은 고개를 들어 까맣게 변한 하늘을 봤다.
그때 까맣게 물든 하늘에 미세하게 밝게 빛나는 부분이 보였다.
씨익.
“… 왜 웃느냐?”
“주변에 경계를 서고 있는 이들에게 보고를 못 받으셨습니까?”
“뭐라?”
“아까 천뇌께서 말씀하셨지요? 계책은 여러 개를 둬야 한다고.”
“설마!”
천뇌는 그제야 내 시선이 향하는 곳을 올려다봤다.
흑멸마라진, 적의 시야를 차단하고 보이지 않는 공포 속에서 무참하게 죽이는 진법이지만, 그 사이에 틈새가 벌어졌다.
촤아아아악!
흑의인의 몸통을 베며 내 앞에 선 이들은.
“오랜만이오. 백의검룡.”
매화가 새겨진 하얀 도복을 입고 검을 휘두르는 도사들은 화산의 도사들이었다.
“서찰이 잘 도착했나 보군요.”
이곳으로 오기 전, 무무를 통해 화산으로 서찰을 하나 보냈다.
다행히 이곳은 화산에서 반나절밖에 걸리지 않는 거리라 화산의 도사들이 빠르게 도착해서 숨을 좀 돌릴 수 있게 됐다.
“죄송합니다. 이러한 일에 부르고.”
“… 됐다. 다 이유가 있는 것이겠지.”
대화를 나누는 이는 금선독룡을 죽이고 독곡으로 갈 때, 도움을 받았던 유산해였다.
유산해를 비롯해 그때 봤던 이들과도 눈인사했다.
“자네의 행보는 여전히 예측할 수가 없군. 홀로 흑사회주가 있는 흑사회 정예들과 일전을 벌이다니, 이 일은 또 떠들기 좋아하는 이들의 입에 오르고 내릴 것이네.”
“예측할 수 없는 길이 재미있지 않겠습니까.”
“그만큼 위험이 동반되는 길이기도 하지, 지금처럼.”
“그래도 어쩔 수 없지요. 제가 걷기로 한 길이니, 그에 따른 책임도 제가 짊어질 수밖에.”
“…. 가만히 보면 자네는 약관도 안 된 어린아이처럼 안 보이는군.”
“많은 분들이 그런 말을 하셨지요.”
유산해는 검을 들어 흑사회를 바라봤다.
그리고 한 사람이 내가 있는 곳으로 천천히 걸어왔고 나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익숙한 얼굴, 저번 삶에서는 육십이 넘는 이였으나 지금은 마흔을 갓 넘긴 얼굴이었다.
스윽.
난 일어나서 포권지례를 올렸다.
“송가 삼현이 화산파 일장로 님을 뵙습니다.”
“오, 나를 아는가?”
“그럼요. 강호에 명성이 자자한 매화검존님을 몰라볼 리가 없지요.”
매화검존(梅花劍尊) 곽수환.
훗날 화산파 장문인이 되어 전쟁을 치르는 인물이었다.
“신기한 기운을 품고 있구나.”
“강호를 돌아다니다 보니 이런저런 인연이 닿아서요.”
“그러한 인연도 너의 복이지. 맹주께서 정도 무림의 홍복(洪福)이라더니, 그 이유를 알겠구나.”
대화를 나누면서 흑사회를 바라봤다.
매화검존은 화경에 이른 고수니 흑사회도 섣부르게 움직이지 못하겠지.
스윽.
슬쩍 천뇌의 표정을 보자 당혹스러움이 가득했다.
그런 우리에게 한 도사가 걸어왔고 기골이 장대한 그의 얼굴은 또 낯이 익은 사람이었다.
“사백, 일제히 방어 검진을 펼쳤습니다.”
“알겠다.”
무철···.
너를 이곳에서 보는구나.
내가 저번 삶에서 이끌었던 무영단의 단원 중 한 명.
뛰어난 검술로 화산 제일 검이라 불렸던 그가 앳된 모습으로 내 눈앞에 나타났다.
*
“어서! 주인께 가야 한다!”
무조는 호위를 하는 이들과 매섭게 신형을 쏘았다.
자신이 알아낸 정보.
‘흑사회와 동행하는 마교의 인물을 알아내라.’
송삼현이 내린 지시로 그 정체를 알아낸 지금, 어서 송삼현에게 가야 했다.
‘흑사회와 동행하는 마교의 인물이 마교의 소교주, 독고룡이라니! 그자가 어째서 강호에 나타난 것이냔 말이냐!’
천월신교는 강호에 나타난 적이 십 년 전이 마지막이었다.
그 뒤로 강호에 천월신교의 그림자조차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기에 이건 예삿일이 아니었다.
만일 흑사회가 마교와 협상을 해 손을 잡았다면? 강호에 엄청난 피바람이 불어올 것이 자명했다.
어서 송삼현과 접촉해서 대안을 세워야 했다. 독고룡의 등장으로 강호가 전쟁의 소용돌이 빠지기 전에.
*
화산의 도사들이 개입하자 흑사회 무사들은 흑멸마라진을 거두고 움직임을 멈췄다.
“저자는 매화검존이 아닌가, 어찌 저자가 여기에.”
“다른 화산의 도사들도 절정 수준 이상이야. 이러다가 같이 공멸하겠군.”
천뇌는 섣부르게 지시를 내리지 못했다.
‘백의검룡이 화산과 인연이 있다는 건가? 왜 그것을 몰랐지.’
흑멸마라진을 펼칠 때만 해도 송삼현을 죽이는 것에 아무런 부족함이 없다고 느꼈으나 화산의 도사들이 개입하니 상황이 달라졌다.
“…. 저 능구렁이 같은 놈이 여러 계책을 세워놨구나.”
흑사회의 숫자는 족히 사십 명이 넘었고 화산파의 도사들은 스무 명이었다.
숫자는 흑사회가 우위에 있었으나 개개인의 무공은 화산파가 높았다.
그렇다고 해도 화산파가 압도적인 우위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송삼현은 유산해에게 전음을 보냈다.
[제가 신호를 주면 화산의 도사분들을 데리고 가십시오. 화경의 끝자락에 이른 이들입니다. 이기지 못하니 시선을 돌려 도망치는 데 주력해야 합니다.]
[…. 서찰 마지막에 적힌 내용대로군.]
[저들의 걸음을 잠시 멈출 정도면 됩니다. 이곳에서 화산의 도사님들은 단 한 명도 다치면 안 됩니다.]
[알겠다. 이야기는 이 일이 끝나고 화산으로 가서 하자꾸나, 장문인께서 너를 꼭 보고 싶다고 하셨으니.]
[네, 알겠습니다.]
전면전을 펼쳐선 안 된다.
철패흉이 운기를 통해 회복하고 혁련서권이 개입하면 화산파 도사들이 피해를 볼 수 있었다.
최대한 시간을 끌면서 이들과 함께 이 자리에서 벗어나야 했다.
그때 천뇌가 앞으로 나서 매화검존 곽수환에게 포권을 올렸다.
“매화검존을 여기서 뵙는군요.”
“흑사회의 천뇌를 뵈오.”
“어찌 흑사회의 길을 가로막는 것입니까. 저희는 화산과 아무런 원한을 맺은 것이 없습니다.”
천뇌의 말에 곽수환은 느긋하게 대답했다.
“화산의 근처에서 행패를 부리는 것을 그냥 두고 보라는 거요? 흑사회가 언제부터! 화산의 영역에서 그리 행패를 부린단 말이오!”
스윽.
“화산의 도사들은 들어라! 화산의 영역에서 검을 들고 무고한 자를 죽이려는 간악무도한 흑사회를 멸하라!”
화산의 도사들은 일제히 신형을 날렸다.
챙!
챙!
챙!
교전이 시작됐다.
화산파의 도사들은 일제히 검진을 펼치며 매화검법으로 흑사회의 무사들을 상대했다.
촤아아아아아아악!
숫자는 흑사회가 월등했으나 화산파의 검 앞에 맥없이 쓰러져갔다.
무엇보다 송삼현의 눈을 사로잡는 것은.
‘매화검존 곽수환’
이 사람이었다.
그가 쓰는 이십사수 매화검법은 내가 그동안 봐온 화산의 검과는 결이 달랐다.
촤아아아아악!
구름 위를 거니는 신선처럼 그의 몸은 가벼웠고 검은 날카로웠다.
“사백님의 뒤를 따라라!”
그리고 그 뒤를 지탱하는 무철, 무영단에서 유독 나를 잘 따랐던 녀석이었다.
화산 제일 검이 될 그의 검은 곽수환과 닮아 있었다.
검이 완전히 만들어지지 않아서 아직 미숙했으나 화산의 후기지수들 사이에선 월등했다.
그렇게 흑사회를 몰아세우는 그때.
“모두! 뒤로 물러나십시오!”
어디선가 거대한 기운이 느껴졌다.
먼 거리였으나 호흡을 세 번 내쉴 때, 그 거대한 기운은 이미 허공에 도달해 있었다.
해에 가려져서 누구인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콰아아아아아아앙!!!
철패흉의 기운보다 더 짙은 기운이 피부를 찔렀다.
적어도 화경, 아니 현경이 이른 자란 말인가.
연기가 걷히고 서서히 보이는 얼굴.
“….. 네 놈이 어찌 여기에 있는 것이냐.”
스무 살이 갓 지난 얼굴에 어울리지 않는 하얀 백발.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없구나.
“독고룡.”
독고룡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