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lf a penny from the Golden Tiger RAW novel - Chapter 74
다시 시작되는 인연 (1)
하북 북동쪽 끝자락, 난하 산맥에 있는 흑사회 본산.
처리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으나 천뇌의 온 신경은 한 곳에 있었다.
“백의검룡의 시신은?”
바로 송삼현의 죽음이었다.
유령골에 떨어졌다곤 하지만 완전히 죽었다는 확증이 필요했다.
“수색대가 찾고 있지만,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금호장을 비롯해 화산파도 계속해서 수색하는 실정이라···. 세밀한 수색이 불가합니다.”
금호장과 화산파의 수색.
그리고 이 소문이 더 퍼지면 무림맹까지 관여할 수 있었다.
“…. 수색은 끝마친다.”
“존명!”
보고하던 흑의인이 나갔고 천뇌의 머리는 빠르게 돌아갔다.
‘백의검룡의 죽음.’
이것으로 파생될 여러 가지를 생각해뒀기에 걸어갈 길은 명확했다.
“아직 전쟁을 일으키기는 이른 시기니 어서 빨리 ‘혈심경(血心經)’을 찾아야 한다.”
천뇌가 찾고 있는 것은 수십 년 전 중원을 공포에 빠트렸던 혈교주, 광천혈마의 비급이었다.
이런 말이 있을 만큼 많은 이들이 그 흔적을 찾았다.
그렇게 천뇌가 얻은 정보 하나.
운남 곤명의 남쪽에 있는 보이, 그곳에서도 꼬박 엿새는 가야 있는 ‘천혈곡’에 광천혈마의 무덤이 있다는 정보였다.
‘혈심경을 얻고 세력을 재정비해야 한다.’
백의검룡 송삼현에게 얻은 피해.
- 추혼마공서의 소실.
- 금선독룡.
- 흑검대의 전멸과 검마와의 관계 상실.
- 적수산 녹안도귀의 죽음과 정보책 무조 포섭 실패.
- 흑해도문 멸문.
- 무림맹에 뿌리를 내리고 있던 용천회의 몰락.
- 북검 마훈의 포섭 실패.
이로 인해 흑사회가 중심이 되어 천하를 뒤집을 시일이 점점 늦춰졌다.
“이번만큼은 방해하지 못할 거다.”
*
무림맹에도 송삼현이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중원 곳곳에 퍼진 천인부가 서찰을 올렸고 제갈귀호는 서찰 산에 파묻혀있다가 벌떡 일어났다.
“백의검룡 송삼현이 죽었다는 것이 사실이더냐!”
믿을 수 없었다.
송삼현은 홀로 용천회주 혁련서권과 맞설 정도로 무공이 뛰어난 자였다.
그런 자를 죽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예, 화산파에서 온 산화검이 그리 말했습니다.”
부군사가 고개를 떨구며 말했고 제갈귀호는 자리에 털썩 앉았다.
“화산파가 어째서 그 자리에 있었느냐?”
“백의검룡 대협이 흑사회에 쫓기던 일가족을 다른 쪽으로 보내며 스스로 미끼가 됐고 화산파에 도움을 요청해 매화검존을 비롯해 화산의 도사들이 나섰다고 합니다.”
“… 어째서 이런 일이.”
“그리고 혈전을 벌이던 백의검룡 대협이···. 벽력탄에 당했다고 했습니다.”
“벽력탄?”
“예!”
벽력탄이라는 말에 제갈귀호의 머릿속은 여러 조각이 맞춰졌다.
하북 일대에서 용천회의 그늘에서 벽력탄의 원석인 석회를 모으던 흑사회.
그들이 벽력탄을 제조할 것으로 생각은 했으나 이리 빠르게 그것을 공개적으로 들고나올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냐.’
제갈귀호는 머리를 저었다.
“당장 산화검을 봐야겠다. 그를 용호각으로 데리고 오거라.”
*
용호각 제일 높은 곳에 있는 맹주 집무실.
그 안에는 구창룡이 가장 상석에 앉아 있었고 그 옆에는 제갈귀호가 서 있었다.
정도 무림의 최고봉에 있는 그들을 본 유산해는 포권을 올리며 예를 갖췄다.
“백의검룡이 죽었다? 그것이 사실이냐?”
“벽력탄에 휘말려 유령골로 떨어지는 것을 제 두 눈으로 목격했습니다. 그리고 매화검존께서도 봤습니다.”
구창룡은 의자에 앉아 허탈한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 시신은?”
“이레에 걸쳐 수색을 했으나 찾지 못했습니다.”
“그러면 살아있을 확률이 있을 것이 아니냐.”
“그것이···. 유령골에서도 암맥에 떨어진 것으로 추정되옵니다.”
암맥.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어둠이 깔려 지옥의 입구라고 불리는 곳이었다.
“허어.”
구창룡은 유산해가 적은 서신을 읽다가 한 가지를 발견했다.
“마교인이 난입했다고?”
“예, 백의검룡이 말하는 것으로는 마교의 소교주라고 했습니다.”
마교의 소교주라는 말에 제갈귀호의 두 눈이 빛났다.
“소교주? 정녕 소교주라고 했다는 것이냐?”
“그리 들었습니다.”
“예삿일이 아니군, 마교가 십 년이 지나 다시 강호에 나타나다니. 그것도 훗날 마교를 이끌 소교주가!”
“총 군사, 이거 아무래도 그대가 말한 것처럼.”
“예, 하지만 섣부르게 단정을 할 수 없습니다. 천인부를 보내 더 확실하게 알아내겠습니다.”
제갈귀호가 유산해에게 물었다.
“왜 소문에는 마교인에 관련된 이야기가 없는 건가?”
강호에 퍼진 소문은 백의검룡 송삼현이 흑사회에 쫓기던 일가족을 구해주다가 흑사회의 함정에 빠져 죽은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이 소문의 어디에도 마교의 마자도 존재하지 않았다.
“마교가 나타났다면 동요가 심할 것 같아 우선 비밀에 부쳤습니다. 먼저 맹주님과 군사님께 알리고 결정하라는 것이 장문인의 뜻이었습니다.”
십 년 전에 사천 서쪽에서 혈겁을 일으켰던 천월신교.
그들이 다시 나타났다면 양민들이 동요할 것이 분명했기에 신중하게 접근해야 했다.
“참으로 잘하셨어.”
“그리고 맹주님께서 흑사회의 행동에 대해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 답을 얻어오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한 달 뒤, 대회의를 거쳐 결정하겠다고 전하거라.”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마교 건은?”
“마교 건 비밀리에 조사할 참이다. 이 일은 섣부르게 결정하면 안 되니.”
“….”
그 말을 들은 유산해는 무언가 할 말이 있으나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그가 입을 열지 못하자 구창룡은 왜 그런지 알아차렸다.
“백의검룡에 대한 수색은 무림맹에서도 나설 것이니 너무 심려치 말거라.”
바로 백의검룡 송삼현에 대한 일 때문이었다.
“예! 알겠습니다! 그러면 장문인께도 그리 전하겠습니다.”
유산해는 두 사람에게 포권을 올린 뒤에 나갔고 구창룡과 제갈귀호가 남아 이야기를 나눴다.
그렇게 일이 마무리되려고 하는 그때.
용호각 맹주 집무살의 창가로 하얀 매 한 마리가 나타났다.
“응? 설아?”
그 하얀 매는 구창룡도 익히는 아는 매였다.
벗인 유천이 키우는 매로 몇 번 봤던 기억이 있었다.
“다리에 무언가가 있습니다.”
설아의 다리에 묶여 있는 것은 서신이었다.
“이 녀석이 서신을? 지난 수 년간 서신 한 장 보낸 적이 없던 녀석이?”
제갈귀호가 설아의 다리에 묶여진 서신을 풀어 보았다.
그리고 그것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맹주님!”
제갈귀호가 건네준 서신.
그곳에는 송삼현이 살아있다는 소식이 적혀 있었다.
*
깊은 잠에 빠졌다가 벌떡 일어났다.
몸에는 깨끗한 천이 상처 부위에 둘둘 싸여 있었고 아직 여러 곳이 쑤셨으나 거동할 수 있어 밖으로 천천히 걸어 나갔다.
‘여기구나.’
사천성 광원에 북서쪽에 있는 ‘봉호산(峰虎山)’
저번 삶에서 강호에 나가기 전, 계속해서 살았던 곳.
연무장과 나무로 만든 집들이 눈에 보였다.
“일어났느냐?”
그런 나에게 다가오는 사람은 사부님이었다.
가슴이 뭉클했다.
회귀하고서 가장 보고 싶었던 사람이 눈앞에 있었다.
눈시울이 붉어졌으나 곧바로 포권지례를 올렸다.
“유령골에서는 미처 정신이 없어 제대로 인사를 드리지 못했습니다. 송가 삼현으로 강호에서는 백의검룡이라 불리고 있습니다.”
“잘 알고 있다. 저놈이 하도 너 이야기를 많이 해서 말이다.”
사부님이 가리킨 곳엔 신체를 단련 중인 천유현이 보였다.
“따라오너라, 너의 상처를 봐준 분이 계시니.”
“예.”
사부님을 따라가니 절벽 근처 평상이 보였다.
옆으로는 물길이 흐르고 산맥들이 어우러진 절경이 보이는 곳, 사부님이 제일 좋아하는 장소였다.
그렇게 그곳으로 가는데 평상에 사람이 앉아 있었다.
긴 백발에 남색 비단옷을 입고 있는 사람.
“일어났군요.”
이 얼굴을 안다.
신기에 가까운 의술을 지닌 ‘천하봉선(天下鳳仙) 여운비’ , 저번 삶에서도 한 번 뵀던 분이었다.
“송가 삼현이 천하봉선 여운비님을 뵙습니다.”
내가 이름을 말하자 천하봉선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저를 아나요?”
“이 세상에 천하봉선님을 모르는 이가 어디 있겠습니까. 의선을 넘어 신의라 불리시는 분을요.”
사부님은 그런 나를 보더니 천하봉선에게 말했다.
“과연 천하봉선이요. 이리 빨리 기운을 차릴 줄은 몰랐소.”
“송 공자의 신체가 타고났습니다. 하늘이 내린 천무지체니 회복이 빠른 겁니다.”
올해로 백 세가 넘은 그녀는 천독의선과 마찬가지로 천하 삼 대 의원 중 한 명이었다.
“벽력탄에 당하셨다고요?”
천하봉선은 상처만 봐도 어떻게 생긴 상처인지 알아낼 수 있는 의안(醫眼)을 지녔다.
“예.”
“유천님이 서신을 보내지 않았다면 그대는 무공을 펼치지 못할 몸이 됐을 겁니다. 아직 약관도 안 되신 분이 몸을 너무 험하게 다루는 거 아닙니까?”
“…. 유천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 은혜는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포권지례를 올렸고 천하봉선이 말했다.
“이리 앉아보세요. 진맥을 하겠습니다.”
“예.”
스윽.
맥을 짚은 손을 통해 따뜻한 기운이 몸 안을 휘저었다.
안정되는 느낌.
천하봉선의 진맥이 끝나자 감았던 눈이 떠졌다.
“회복 속도는 제가 여태껏 본 이들 가운데 제일 빠르군요.”
“모든 것이 천하봉선님의 치료 덕분이지요. 감사드립니다.”
“그건 그렇고 그 가슴께에 있는 상처, 그것은 마기가 가득하군요. 무엇에 당하신 겁니까?”
풍표전격의 초식을 펼치는 사이, 나를 뚫은 권격이었다.
욱신.
꽤 깊은 상처가 났는지 상처가 욱신거렸다.
“마인과 일전이 있었습니다.”
“허어, 그 나이에 마인과 일전이라?”
천하봉선의 두 눈은 커졌다.
“백의검룡이라는 별호는 최근 강호에 퍼지기 시작해서 들어봤으나 마인과 일전을 벌일 만큼 강할 줄은 몰랐습니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천하봉선은 품에 있는 작은 함에서 단약을 꺼내더니 내게 내밀었다.
“드세요.”
“이것이 무엇입니까?”
“천환단입니다. 모든 상처를 낫게 해주는 만병통치약이지요.”
천환단은 저번 삶에서도 듣기만 하고 보지 못한 영약이었다.
오로지 천하봉선 여운비만이 만들 수 있는 영약으로 이것을 먹으면 어떤 상처를 입었다고 해도 회복된다는 만병통치약이었다.
“온전히 회복하려면 적어도 보름은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니 괜한 짓은 하지 말고 얌전히 있으세요.”
“예. 명심하겠습니다.”
“월향아.”
“예, 할머니, 부르셨어요?”
뒤쪽에서 꾀꼬리 같은 목소리가 들려와 그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곳에는 여러 약초가 담긴 소반을 든 고운 자태의 미인이 있었다.
바람에 살랑이는 머릿결, 약초를 채집하려고 편하게 입은 옷에서도 아름다움이 흘러넘쳤다.
‘군주 마마만큼이나 아름답구나, 가히 경국지색(傾國之色)이라는 말이 아깝지 않을 만큼.’
그녀의 이름은 사월향.
천하봉선의 손녀이자 저번 삶에서 같이 전장을 누볐던 사람이었다.
나는 적을 죽이기 위해.
그녀는 아군을 살리기 위해.
각자가 싸우는 방식은 달랐으나 우리는 일평생을 전장에서 시간을 보낸 동료였고 그녀는 내가 감히 넘보지 못할 꽃이었던 여자였다.
“송 공자가 회복되기까지 옆에서 도움을 줘야겠구나.”
“그리하겠습니다.”
강호의 수많은 고수의 구애도 매몰차게 거절하며 오로지 환자를 치료하는 삶만 살았던 그녀.
‘화선(花仙).’
그렇게 불렸던 그녀가 내 눈앞에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