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lf a penny from the Golden Tiger RAW novel - Chapter 75
다시 시작되는 인연 (2)
어느덧 여기서 지낸 지도 사흘이 지났다.
몸의 상처도 아물기 시작해 아침에 눈을 뜨고서 제일 먼저 하는 것은 운기조식이었다.
스르르르륵.
기해혈부터 시작된 기의 흐름이 몸 전체를 훑었다.
‘내상도 거의 다 다스려졌다. 천하봉선의 의술이 정말 대단하구나, 회복까지 몇 달이 걸릴 부상이 이리 빠르게 회복되다니.’
특히 큰 상처는 오른쪽 가슴 쪽이었다.
독고룡의 천마신공이 남긴 마기를 아직 빼내지 못했다.
욱신.
그래서 그런가 상처 부위가 계속해서 욱신거렸다.
반 시진 정도 운기를 마친 뒤, 다음 할 것은 심상수련이었다. 가부좌를 튼 상태에서 두 눈을 감고 집중했다.
구체적인 상대를 떠 올렸다.
며칠 전, 나와 싸웠던 독고룡.
그가 다시금 내 앞에 나타났다.
‘후일에 다시 만날 때를 대비해, 지금보다 더 강해져야 한다.’
독고룡의 경지는 나와 비슷했다.
하지만 대대로 천마가 될 자만 배우는 천마신공의 기운은 나를 집어삼킬 만큼 강대했다.
스윽.
검을 쥐고 자세를 잡자 독고룡은 땅을 박차며 순식간에 내 앞으로 날아왔다.
그의 손에 둘린 천마신공의 기운이 내 목으로 들어왔으나 끝까지 시선에서 놓치지 않았다.
팟!
닿기 직전, 살짝 옆으로 피하며 검을 출수했다.
머리를 노리는 것처럼 하다가 기습적으로 변화를 주며 오른쪽 허리로 검로를 틀었다.
카가가가각!
그러나 독고룡의 호조수에 검이 긁히며 빗나가고 말았다.
반응이 빠르다.
그러면 더 빠르게.
‘천무 6식 검뢰.’
콰아아아아아앙!
그렇게 몇십 번의 합을 주고받았다.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고 독고룡은 거리를 벌리며 손끝에 심화를 피웠다.
‘천마광염무.’
지난번에 봤던 초식이었다.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한 뜨거운 열기, 그러나 피할 순 없었다.
‘풍표전격.’
신검합일에 들면서 깨달은 새로운 초식, 이것을 완벽하게 나의 것으로 만들어야 했다.
그때와 같은 감각이 몸을 휘감았다.
검이 내뱉는 호흡, 그리고 내가 내뱉는 호흡이 일정해졌다.
검 주위로 모인 푸른 바람이 거대한 소용돌이가 되어 독고룡에게 향했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앙!
땅을 죄다 휩쓸고 천마광염참을 집어삼킨 풍표전격 안에 담긴 검강들이 독고룡의 온몸에 상처를 냈고 피가 터졌다.
‘여기까지는 지난번과 같은 상황이다.’
만약 흑사회가 개입하지 않았다면 나는 독고룡을 죽일 수 있었을까?
탓!
생각을 멈추고 독고룡에게 신형을 날렸다.
독고룡도 무수히 많은 피를 흘리며 나에게 맹렬하게 신형을 날리며 초식을 출수했다.
쾅!
쾅!
쾅!
서로의 공격이 백합이 넘어갔고 호흡이 서서히 올라왔다.
지쳐가면서도 독고룡의 동작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틈이 보인다면 가차없이 쾌검으로 그의 목을 노렸다.
촤아아아악!
왼쪽 팔을 얕게 베었고.
촤아아아악!
독고룡이 지른 권격이 내 오른쪽 어깻죽지에 상처를 냈다.
오른쪽 어깨가 욱신거렸으나 내 검은 멈추지 않았다.
‘천무 1식 개벽.’
‘천무 2식 일도양단.’
‘천무 3식 만경창파.’
초식을 연계하며 계속해서 몰아붙였지만, 치명상을 입히진 못했다.
내 검으로 독고룡이 입은 옷이 넝마가 됐고 입 주위에서는 피가 흘러나왔다.
어느덧 싸운 지 반 시진이 지났다. 시간은 흘렀으나 아직 승부는 확실하게 갈리지 않았다.
후우.
후우.
호흡을 안정시키고 검을 눕혔다.
독고룡이 있는 곳으로 승풍파랑의 초식을 펼쳤고.
촤아아아아악!
오른쪽 다리에 상처를 입혔지만.
타아아앗!
독고룡은 어기충소로 하늘로 솟구쳤다.
무엇을 하려는 지 지켜보는데 깜짝 놀랐다.
독고룡의 주위에 폭풍이 불어왔다.
검은 기운이 그 바람에 스며들며 마치 악귀와 같은 형상을 띄었다.
‘천마멸풍(天魔滅風).’
천마신공의 절기를 모두 배웠었구나.
스윽.
난 초식을 준비했다.
양쪽 팔을 쭉 펴고 든 검 주위에 푸른 연기가 휘감겼다.
‘천무 10식 검해!’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검과 모든 것을 멸하는 바람, 그 바람이 내가 있는 곳을 휩쓸었고 내 검은 독고룡의 팔 하나를 자르는 데 그쳤다.
그리곤 내 목이 떨어지며 죽임을 당했다.
“… 여전히 괴물이구나.”
독고룡의 형상은 사라졌다.
그리고 가부좌를 틀고 있던 나는 눈을 뜨고 뒤로 쓰러지듯 누워버렸다.
이래선 저번 삶과 비슷하구나.
노력하고 또 노력해서 이곳까지 왔지만, 독고룡은 천마신공을 극성에 이르지 않았으면서도 여전히 괴물이었다.
앞으로 이것보다 더 괴물이 된다면 나 또한 괴물이 되어야 했다.
어떻게 해야 그자의 목을 벨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이보다 더 강해질 수 있을까.
마음속에는 수많은 고민을 품은 바람이 매섭게 몰아쳤다.
잡힐 듯하면서 잡히지 않은 목표.
하지만 괜찮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던 때와는 많은 것이 달랐으니까.
*
그렇게 독고룡과의 격차를 확인하고 손에 검을 쥐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독고룡은 현경에 도달하기 위해 수련을 하고 있을 테니 나 또한 단 하루도 허투루 보낼 순 없었다.
휙!
휙!
휙!
내가 검을 휘두르는 곳으로 한 사람이 걸어왔다.
“함부로 몸을 움직여선 안 됩니다.”
검을 멈추고 그곳을 보자 사월향이 탕약이 담긴 그릇을 가져다줬다.
“…. 고맙습니다.”
“운기까지는 가능하지만, 검술 수련은 아직 무리에요.”
“몸에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그러신 분이 어제 검을 잡으시다가 조모님께 혼나신 겁니까?”
“그, 그건···. 몸이 좀 찌뿌드드해서요.”
어젯밤에 남들이 다 자고 있을 시간에 슬쩍 검을 잡고 수련을 했었다.
그런데 그것을 밤 산책 중이던 천하봉선께 걸려 야단을 맞았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조모님의 말을 들어주세요. 그래야 대협의 몸도 더 빨리 회복될 수 있으니까요.”
“명심하겠습니다.”
탕약을 먹은 뒤에 주변을 둘러봤다.
마당에선 천유현이 땀을 흘리며 검을 휘둘렀다.
천무신공을 익히고 그다음 단계인 천무신검의 횡과 종 배기에 들어갔구나.
“잠시 조언만 해주고 오겠습니다.”
“예? 무공을 수련할 때, 이리 보는 것도 죽을 죄인데 알려준다니요.”
강호에서는 함부로 남의 무공을 엿봐선 안 됐다.
상대방이 허락하지 않은 이상은.
만약 허락하지도 않았는데 몰래 봤다간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큰 죄였다.
저벅.
괜찮았다.
아까부터 지붕 위에서 은신한 채, 우리를 보는 시선이 있었으니까.
[무엇을 하려는 것이냐?]
사부님의 전음이 들려왔다.
[실례가 안 된다면 제가 몇 가지 알려줘도 되겠습니까?]
[네 몸에서 천무신공의 기운이 느껴졌는데 그게 내 착각이 아니었구나.]
[….]
[너에게는 궁금한 것도 많으니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하자꾸나. 검은 봐줘도 된다, 너의 검은 천하에서도 손꼽히니 저 아이에게도 큰 가르침이 되겠지.]
사부님의 허락이 떨어졌으니 이제 내가 하는 행동을 막을 자는 없었다.
그렇게 천유현에게 다가갔다.
원래 나였기에 얼굴을 마주 보는 건 아직 적응되지 않았다.
“두 번째 초식에서 오른쪽 상단을 벨 때는 검을 두 치 정도 더 눕혀야 한다.”
내 목소리가 들리자 천유현은 뒤로 돌아보며 활짝 웃었다.
“나으리! 몸은 좀 괜찮으십니까?”
“난 괜찮으니 검술 수련에 집중하거라. 천무신검에서 중요한 것은 검의 흐름을 느끼는 것이다.”
“천무신검을 어찌 아십니까?”
“내가 펼치는 검과 유사하니 길을 아는 것뿐이다.”
내 말을 들은 후에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아직 배운 지 얼마 되지 않아 동작이 어색했으나 내가 잡아줬다.
“엉덩이를 왜 그리 빼느냐. 중심을 잡아야지!”
“손목에 힘을 주고, 천무신검은 흔들리는 검이 아니다. 그렇게 흔들렸다간 어린 애도 네 검을 피할 거다.”
“시선은 검 끝, 항상 적을 바라보고 있어야 한다.”
저번 삶에서 내가 익히기 어려워했던 부분을 일일이 가르쳐줬다.
한 식경 정도 검을 봐주자 몸의 동작이 유연해졌다.
“여기까지만 하자.”
“예! 나으리, 근데 사 소저랑은 잘 되어가고 계십니까?”
“…. 그게 무슨 소리더냐.”
“요새 두 분이 잠잘 때만 빼고 항상 붙어 계시지 않습니까.”
“그거야 소저가 내 상처를 돌봐주니 그러는 것이 아니겠느냐. 헛소리 그만하고 검이나 쥐어라, 유천님의 불호령이 떨어지기 전에.”
“혹시 나중에 두 분의 인연이 이어지면···.”
음흉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천유현을 뒤로하고 사월향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
평상으로 간 우리는 나란히 앉았고 사월향은 내 팔에 시침을 했다.
혈액 순환을 원활하게 해주기 위한 시침이라 회복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했다.
“검을 많이 잡으신 손이네요.”
손에는 수많은 굳은살과 상처들이 있었다.
“조모님과 세상을 돌아다니며 백의검룡 대협의 소문을 익히 들었습니다.”
“…..”
“강호에 진정한 협객이 나타났다고요.”
사월향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내가 지금껏 해온 일들이었다.
“대단하세요. 그 어린 나이에.”
사월향의 나이는 나보다 네 살이 많았다.
열아홉인 그녀가 나를 보는 시선에는 약간의 부러움이 담겨 있었다.
‘저번 삶에서도 이야기를 나눌 때, 자유롭게 강호를 주유하는 것이 꿈이라고 했었는데.’
그녀의 시침이 끝났고 여전히 나를 칭찬하는 그녀에게 내가 할 말은 딱히 없었다.
“… 아닙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을 했을 뿐입니다.”
“그 일 때문에 목숨을 거는 사람은 절대 흔치 않지요.”
“과찬이십니다.”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게 뭔지 아세요? 대협은 이렇게 다쳤어도 결국에는 다시 그 길을 나아가실 거잖아요. 같은 적을 만나도 더 강한 적을 만나도 또 싸우면서요.”
“… 나아가야지요. 제가 원하는 바를 이루기에는 아직 많은 것이 부족하니까요.”
내가 원하는 것은 전쟁을 막는 것.
그렇게 해서 많은 이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나게 하는 거였다.
그 목표를 위해 걸어왔으나 그 길은 아직 한 참 남았다.
“그 길을 따라 걷다가 죽는다고 해도요?”
“그것이 운명이라면 따라야지요.”
내 대답이 답이 되었는지 사월향의 입가는 기분 좋은 호선을 그렸다.
“바람이 좋네요.”
“… 비가 오는데요.”
오전부터 먹구름이 끼더니 어느덧 약한 빗줄기가 땅을 적시고 있었다.
“저는 원래 비가 오는 날을 좋아하거든요. 비바람을 맞으면 모든 고민이 씻기는 기분이에요. 대협도 가만히 쉬면서 바람이랑 빗소리를 느껴보세요. 그러면 마음이 편안해질 거예요.”
바람을 타며 습한 기운이 심했으나 이렇게 맞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그렇네요.”
“며칠은 검을 잡지 말고 쉬시는 건 어때요? 세워놓은 목표로 나아가는 것도 좋지만, 대협은 뭔가 조급해 보여요.”
“제가요?”
“예, 뭔가에 쫓기는 사람처럼 보인다고 할까요?”
뜨끔.
뭔가 마음에 걸렸다.
“잠시 멈추는 것도 그 길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사월향의 말을 듣고서 잠시 생각에 잠겼다.
잠시 멈춘다라.
그렇게 내가 생각을 하고 있자 사월향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는 드실 탕약을 준비하겠습니다.”
“괜히 저 때문에 의원님이 고생이 많군요.”
소저가 아니라 의원이라고 하자 사월향은 놀랐다.
저번 삶에서도 소저라는 말보다는 의원이라는 말을 더 듣고 싶어 했었지.
“… 금방 다녀오겠습니다.”
종종걸음으로 가는 사월향의 입꼬리가 올라간 것이 보였다.
그렇게 홀로 앉아서 절경을 바라봤다.
폭포소리, 바람이 살갗을 스쳐 가는 느낌.
빗방울이 ‘톡, 톡’하고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니 마음이 편안해졌고 사월향이 한 말이 메아리처럼 머리를 울렸다.
“잠시 멈추는 것도 내가 나아갈 길에 도움이 된다라···.”
저번 삶에서도 쉬어본 적이 없었다.
매일 임무에 임무를 거듭하고 수련만 했기에 어떻게 쉬는 지도 까먹었다. 그래서 불안했다.
내가 쉬면 남들에게 뒤처질까 봐.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는 그때, 천하봉선이 나에게 다가왔다.
“몸은 괜찮나요?”
“천하봉선님 덕분에 많이 좋아졌습니다.”
난 자리에서 일어나 천하봉선에게 포권을 올리며 예를 갖췄다.
“그렇군요. 그러면 잠시 이야기를 해도 될까요?”
스윽.
“그 상처 때문에요.”
“예.”
천하봉선은 내 가슴께에 남은 상처를 가리켰다.
“마기가 쉽게 사라지지 않네요. 일전을 벌였다던 마인이 보통 마인이 아니었나 보네요.”
“욱신거리긴 하지만 몸을 움직이는 데 불편함은 없습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마기는 없애야 합니다. 정순한 무공을 익힌 자들에게는 마기가 치명적인 독이니까요. 아무리 만독불침이라도 그러한 마기는 쉽게 다스려지지 않으니 명심하세요.”
“예.”
“그래서 한 가지 생각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닫혀있던 천하봉선의 입이 열렸다.
“벌모세수(伐毛洗髓), 몸 안의 노폐물을 모두 빼내는 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