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lf a penny from the Golden Tiger RAW novel - Chapter 78
재출발 (2)
봉호산을 다 내려오자 초입에서 익숙한 기운들이 느껴졌다.
그 기운들이 점점 가까워지자 말소리도 들렸다.
“무조! 주군은 언제 나오는 거요!”
“곧 나오니 기다리세요. 뭐가 그리 급합니까. 주인께서 어디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반년 동안 보지 못해서 그런 거 아닙니까!”
“그런 분 치고 조식으로 나온 만두를 다 먹어 치우시던데요?”
“그, 그건!”
이 말소리.
“주군.”
그리고 마침내 다 내려오자 보이는 익숙한 얼굴.
“모두 잘 있었느냐.”
선무정, 무조, 마훈이 초입 길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선무정은 나를 보더니 달려와 품에 안기며 눈물을 흘렸고 무조와 마훈은 포권지례를 올리며 나를 맞이했다.
“소인 마훈! 주군을 뵙습니다!”
“내가 말을 낮춰도 되겠소?”
“물론입니다. 저의 주군이시니 편히 말씀하십시오.”
“부인은 괜찮은가?”
“예, 독곡주님의 보살핌 덕분에 병을 이겨내고 있습니다. 두 해가 지나면 예전처럼 지낼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거 다행이군.”
“모든 것이 주군 덕분입니다.”
마훈은 한쪽 무릎을 꿇으며 진심으로 감사해했다.
“그러면 이제 어디로 가실 겁니까?”
“무조.”
“예. 주인이시여.”
무조가 대신 말했다.
“저희는 운남 곤명으로 갈 것입니다.”
“곤명이라면?”
“광천혈마의 무덤이 있다고 소문이 파다한 곳이 아닙니까.”
“예, 주인께서는 광천혈마의 무덤에 있는 혈심경이 흑사회의 손으로 넘어가는 것을 막고자 하십니다.”
그 말을 들은 선무정은 활짝 웃으며 말했다.
“역시 주군이십니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이들과 같이 마교와 사파를 멸하겠노라.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잘 들어라.”
*
봉호산에서 운남 곤명까지 가는 길은 상당한 시일이 걸렸다.
못해도 열흘은 걸리니 급하지 않고 여유 있게 이동했다.
“다들 그만 올라가서 쉬거라.”
“예, 주군.”
한적한 곳에 있는 객잔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로 했다.
피곤했는지 모두 올라갔고 난 아까부터 느껴지는 인기척에 객잔을 슬쩍 나와 뒷산을 올랐다.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 곳까지 올라가서 걸음을 멈췄다.
“그만 뒤를 밟으시고 나오시오.”
스윽.
그제야 뒤를 밟던 사람이 나왔다.
여인과 노인이었다.
“역시 대협의 눈과 귀는 속일 수 없나 보네요.”
“그렇게 대놓고 뒤를 밟으면 누가 모르겠소.”
“약조를 지키시는 게 늦으셨습니다.”
“미안하오.”
그 여인은 명월루주였다.
“재물은 주인들에게 잘 돌려주셨소?”
“당연하지요. 누구의 부탁이었는데요. 그런데 그 누구는 약조를 잊고 반년 만에 강호에 나타나셨네요.”
“사고가 있었소.”
“알아요. 흑사회의 함정에 빠졌다고요.”
명월루주는 말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내게 다가왔다.
“지금 차 한 잔은 괜찮지요? 마침 달이 예쁘게 떠 있네요.”
“구름에 가려져 안 보이오만.”
“원래 은은하게 보이는 달이 아름다운 법이지요. 그것도 모르셨습니까?”
“…. 앉으시오. 괜히 더 말했다간 내 입만 아프니.”
달이 잘 보이는 바위.
평평한 바위라 우리 두 사람은 그곳에 앉아 마주 보며 노인이 가져온 차를 마셨다.
향이 좋은 차였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흑사회가 파놓은 함정이 얼마나 교묘했기에 대협이 당한 거예요?”
“그리 교묘하진 않았소, 다만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함정에 빠진 거요.”
벽력탄.
이것은 사람의 힘으로 어쩌지 못하는 물건이었다.
“벽력탄이겠지요. 대협을 그 정도로 만들 정도면.”
“…. 잘 아는군.”
“흑사회가 벽력탄에 손을 대고 있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요.”
명월루도 중원의 정보를 다루고 있으니 소식을 들은 거겠지.
“반년 사이에 정말 많이 달라지셨습니다. 풍기는 분위기부터 생김새까지···. 열여섯이 아닌 스물다섯으로 봐도 믿겠는데요?”
“지금 제가 늙어 보인다는 거요?”
“말이 그렇다는 거예요~ 말이!”
농을 하며 웃는 명월루주를 보며 차를 한 모금 마셨다.
“그나저나 어디로 가시는 길입니까?”
“운남이요.”
“운남이라면 광천혈마의 무덤 때문이겠군요.”
“그렇소.”
“대협이 혈심경을 원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남들처럼 강함을 추구하시는 겁니까? 아니면 그것을 얻어 비싼 값에 팔려는 겁니까?”
혈심경을 노리는 이들 대부분이 강함을 추구했다.
정파에서는 그것을 없애려는 세력도 있으나 그것을 얻어 고가에 팔려는 세력도 있었다.
그야말로 혼돈.
광천혈마의 무덤 주위에 전쟁의 전조현상(前兆現象)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그저 막고 싶을 뿐이요.”
“막아요? 어떤걸요?”
“혈심경이 악한 이들의 손에 들어가는 거요.”
“흠.”
“왜 그리 보시오?”
명월루주의 시선은 찰나의 순간 나에게 머물렀다.
그리고 무언가 생각을 하더니 입을 열었다.
“전부터 생각한 거지만, 혹시 대협이 진정으로 원하시는 건 흑사회의 멸문입니까?”
“그렇소.”
“…. 그 길은 너무 먼 길 아닙니까?”
“아무리 먼 천리길도 결국, 한 걸음부터 시작되는 거 아니겠소? 그러니 내 발이 내디뎌지는 순간부터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됐소.”
처음부터 목표지점이 가까울 리는 없었다.
아무리 먼 길이라도 가기로 결정했다면 한 걸음을 내딛는 것이 중요했다.
“안 변하셨네요. 전이나 지금이나.”
“세월이 흘러 외모는 변해도 신념은 변해선 안 되는 거요.”
씨익.
“대협.”
“왜 부르시오.”
“달이 참 아름답지요?”
“그렇소.”
구름에 가려졌던 달이 슬그머니 모습을 드러냈다.
“대협이 바라시는 세상도 저리 아름다울까요?”
가만히 달을 보며 말했다.
“더 아름다울 거요.”
*
운남 곡정 인근의 황우산.
그 길의 중간쯤 지나갈 때, 길목을 지키고 있던 녹림채를 만났다.
그들은 길을 막고 통행세를 요구했다.
“한 사람당 은자 두 냥씩 내고 가시오.”
툭.
“가져가거라.”
허리에 차고 있던 전낭을 던져줬다.
그 안에는 은자 여섯 개가 있었다.
전낭을 든 무사는 안에 든 은자를 확인하고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멈춰라.”
통행세를 줬는데도 그들은 길을 막았고 주변에서 녹림채 궁수들이 우리를 겨누고 있었다.
“방금 통행세가 바뀌었다. 한 사람당 은자 열 냥으로.”
“농이 심하다! 갑자기 그러는 법이 어디 있느냐!”
“법은 이 산의 주인이 정하는 거다.”
선무정이 따지자 녹림채주로 보이는 자가 멀리서 신형을 날리며 다가왔다.
쿵!
외모는 험상궂고 세월의 풍파를 정면으로 맞은 고수처럼 생겼지만, 기운은 딱 봐도 절정 수준이었다.
“이 산에서 녹림채의 행사를 방해하는 자들은 죽어도 그 원혼이 이 산을 벗어나지 못할 거라는 걸 모르는가?”
채주의 말에 내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옛 성현의 말씀에 지족불욕(知足不辱), 지지불태(知止不殆)라 하였다.”
“어린놈이 뭔 소리를 하는 것이냐!”
“이런 말도 모르는 거 보니 그냥 산에서 사는 벌레들이구나. 하긴 조금의 머리가 있다면 그냥 그 전낭만 받고 끝냈겠지.”
“이놈!”
녹림채주는 나에게 커다란 도를 휘둘렀다.
그 도에는 강기가 둘려졌다.
나를 죽이겠다는 의도가 가득 담겼다.
툭.
그러나 그 도의 움직임은 내가 뻗은 검지 끝에서 멈췄다.
“매, 맨손으로?”
도기가 깨지며 도에는 금이 갔고 곧.
콰아아앙!
도가 산산조각이 났다.
“잠깐만!”
녹림채주가 놀라며 뒷걸음질을 쳤으나 난 그에게 한 걸음 다가갔다.
“이런 식으로 많은 이들의 재물을 탐했겠지.”
“자, 잠깐!”
“그리 통행세를 받고 싶다면.”
촤아아아아아악!
“통행세는 너의 목으로 대신하마.”
검을 꺼내지도 않았다.
손을 휘감은 무형의 검강.
스르르르륵.
채주의 목을 벤 뒤에 검강은 몸속으로 사라졌고 머뭇거리는 녹림채 무사들을 보며 말했다.
“마훈.”
“예, 주군.”
“이들을 모조리 죽여라, 산이 이리도 아름다운데 벌레들이 산의 경관을 헤쳐놓는구나.”
“존명.”
스릉.
마훈은 검을 꺼냈고 그 주위에 녹색 빛의 검강이 둘러졌다.
‘태산검법.’
태산처럼 커다란 기운이 담긴 마훈의 검이 녹림채 무사들의 목을 베어나갔다.
‘가히 태산처럼 무거우면서 잔잔한 검이구나.’
태산검법은 하늘에 닿을 듯 높은 산을 보고 만든 검.
그 검에 맞게 산에 관련된 초식들이 많았다.
서른 명의 녹림채 무사들이 아무것도 하지 못했고 마훈의 신형은 나무 위를 새처럼 날아다녔다.
푹!
정확하고.
촤아아아악!
거칠고.
콰아아아아앙!
강대한 기운을 머금은 검법.
촤아아아악!
마지막 남은 녹림채가 바들바들 떨지만, 마훈은 피가 묻은 검을 들고 그에게 다가갔다.
“난 전부터 녹림채가 존재한다는 것이 싫었다.”
푹.
“산을 어찌 인간이 지배하려고 하는가. 산은 산군님의 것이거늘.”
*
다그닥.
다그닥.
산을 나와 말을 달려 도착한 항.
그 항에는 정파와 사파 세력들이 도강하기 위해 배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람들이 많군요.”
“괜한 시비에 휘말려선 안 된다. 사전에 말한 것처럼 변복을 한 뒤, 조용히 도강한다.”
“예, 주군.”
“명을 따르겠습니다.”
송삼현 일행은 쓸데없는 시선을 끌지 않기 위해서 최대한 기운을 숨기고 무림인처럼 안 보이게 변복을 했다.
“주군, 저기 철방회도 있습니다.”
철방회는 흑사회와 연관된 사파였다.
여러 무기를 사고, 파는 일을 하는 이들로 간악하고 잔인해 많은 이들에게 피해를 주는 자들이었다.
“오오오오!”
그때, 무언가 봤는지 사파 놈들이 감탄하기 시작했다.
사천당가의 일장로 당윤호가 제일 앞에서 들어왔고 그 뒤로 들어오는 여인에게 온 남정네들의 시선이 갔다.
‘당 소저, 그대도 있었군.’
운남과 사천 땅은 맞닿아있어서 비교적 가까운 사천당가가 무림맹의 요청으로 혈심경을 회수하는 임무를 수행 중이었다.
스윽.
“철방회주가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철방회주 사도철.
키는 작았으나 팔과 다리가 두꺼워 능히 사람 두 명은 가볍게 든다는 괴력을 소유한 자였다.
“강호에 소문이 자자한 독화를 이리 보다니 영광이오.”
그는 당수향에게 찝쩍거렸다.
“… 예.”
그러나 당수향은 그런 자에게 시선을 줄 사람이 아니었다.
“까탈스러운 것도 참으로 곱소. 당신 같은 여인은 이런 거친 곳보다 부드러운 침소가 더 어울린다고 생각하는데 안 그렇소?”
명백한 희롱이었다.
그 말에 사파인들은 키득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옆에 있던 당윤호는 가져온 철선을 꺼냈다.
“다시 한번 그딴 말을 지껄였다간 오늘 너의 제삿날이 될 것이다.”
“왜 그러시오? 내가 독화와 혼인을 하면 그대들과 가족 사이가 될 터인데.”
“이놈이 그래도!!!”
퍼어어어어억!
당윤호가 나서기 전에 먼저 당수향이 철방회주에게 독장을 날렸다.
“그 더러운 입을 열지 말거라, 악취가 풍기지 않느냐.”
냉기를 풀풀 풍기는 말투였다.
“독장이라.”
“그 더러운 혀를 뽑아주마.”
“그 입으로 뽑아주면 더 좋겠구나.”
여전히 비웃음을 짓는 철방회주는 품에서 도를 꺼내더니 당수향에게 휘둘렀다.
“무림에 소문이 자자한 독화는 무슨 맛일지 궁금하구나!”
사파의 고수들은 초절정에 이른 이들도 더러 있었다.
그의 일격에 사천당가 무사들이 막아섰으나 철방회의 무사들이 개입했다.
촤아아아악!
사천당가의 무사가 철방회 무사가 휘두른 검에 깊은 상처를 입으며 쓰러졌다.
당윤호도 마찬가지로 철선으로 철방회 무사의 팔에 깊은 상처를 남겼고 다른 무사의 목에 철선을 가져다 댔다.
그런데도 철방회는 당황하지 않고 웃으며 말했다.
“회주님, 그러면 독화가 회주님의 부인이 되는 겁니까?”
“하하하하! 부인은 무슨! 첩실이지!”
사천당가의 호위무사들을 죽이고 당수향을 취하려고 했으나 검 하나가 들어와 철방회주의 도를 날려버렸다.
콰아아아앙!
도는 천장을 뚫고 나갔고 당수향의 앞에 선 자의 인상착의가 보였다.
변복한 옷이 스르륵 흘러내리며 드러난 진짜 복장. 그것을 보자 주변에 있던 이들이 당황하기 시작했다.
“하얀 옷에 푸른 검···. 백의검룡?”
“뭐라? 백의검룡? 백의검룡은 반년 전에 죽었다고 했잖아!”
백의에 청철로 된 검.
그 검을 들고 연기에서 나오는 송삼현의 검은 가차 없이 철방회주의 목에 검을 댔다.
아까까지 오만하던 철방회주는 자신의 목에 검을 댄 자의 정체를 알고선 바들바들 떨었다.
“여인에게 그런 식으로 하면 안 되는 거요.”
“대, 대협! 살려주시오!”
촤아아아아악!
“내가 전부터 누누이 이야기했소. 살려달라는 말을 할 거면 검을 뽑기 전에 하라고.”
철방회주의 목이 땅에 뚝 하고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