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lf a penny from the Golden Tiger RAW novel - Chapter 79
혈심경 (1)
“백의검룡이라고?!”
“그럴 리가 없잖아. 백의검룡은 분명···. 반년 전에 죽었다고.”
“하지만 저 모습은 뭐로 설명할 건가!”
“철방회주가 저리 쉽게 죽을 자는 아니지 않은가!”
원래 조용히 지나가려고 했던 계획이 무산됐다.
무기를 뽑지 않았다면 그냥 두고 볼 일이었으나 공개된 곳에서 발도했으니 선을 넘은 거였다.
“회, 회주님!”
“네 이놈! 백의검룡! 철방회를 적으로 돌릴 셈이더냐! 철방회를 적으로 돌리면 흑사회를 적으로 돌리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면 이곳에 있는 모든 사파를 상대해야 하는 데 감당이 되겠느냐!”
철방회의 잔당들이 분노에 찬 눈빛으로 노려보며 살기를 분출했다.
“이런 장소에서 그것도 사파가 정파를 상대로 발도를 했다면 죽이든가 죽임을 당하든가 둘 중 하나라는 걸 그대들은 정녕 몰랐소?”
객잔 안에 있는 사파들이 움찔거렸으나 내공을 퍼트려 모두를 짓눌렀다.
“움직이는 걸 허락하지 않았다.”
그들은 아무도 움직이지 못했다.
“크윽!”
“당신들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죄를 지었소.”
촤아아아아아악!
“그러니 이 강호에서 사라지는 게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일 아니겠소?”
철방회를 비롯해 사파들 전부가 덤벼도 상관없었다. 이길 자신이 있었으니까.
그런 나에게 당수향이 말을 걸어왔다.
“대, 대협? 정말 송 대협이세요?”
보고도 믿기지 않는 표정.
죽었던 내가 다시 나타났으니 당연한 반응이긴 했다.
“괜찮으시오?”
“저는 괜찮은데 대협은 어찌 된 일이에요! 강호에 죽었다는 소문이 파다했는데!”
“어? 독곡주님께 살아있다는 서신을 보냈는데 소식을 못 들으셨소?”
“… 으으으으! 숙부님! 저에게 말을 안 해주셨습니다!”
내가 기운을 풀어주자 사파들은 내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한 번 기운을 경험하게 해줬으니 눈치가 있는 이들이라면 섣부르게 덤비지 못하겠지.
“아무래도 나가서 이야기하는 게 좋겠소. 이곳에는 보는 눈이 많소.”
“그러지요.”
사천당가는 나와 같이 밖으로 나갔다.
“먼저 일장로님께 인사를 드리지 못한 점 죄송합니다. 상황이 워낙 급박한 나머지 결례를 했습니다.”
“아닐세, 이리 강호에 소문이 자자한 백의검룡을 보니 내 영광이네.”
일장로와 인사를 끝내자 그때를 기다렸다는 듯 당수향이 말을 꺼냈다.
“대협이 이곳에 온 건 광천혈마의 무덤 때문인가요?”
“그렇소.”
“….. 그걸 원하는 이유는요?”
“무림맹과 같은 이유일 거요.”
혈심경을 없애고 싶은 것은 무림맹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그들의 부탁을 받은 사천당가도 당연히 그러겠지.
“그러면 저희와 동행하시는 건 어떻겠습니까? 저희를 비롯해 뜻을 함께하는 문파가 모이고 있습니다.”
일장로의 물음에 고개를 저었다.
“그것은 불가합니다.”
사천당가와 함께 움직이는 건 불가능했다.
내 대답이 이해되지 않았는지 당수향이 물었다.
“어째서요? 목적이 같으면 동행을 하는 것이 낫지 않나요?”
“미안하오, 우리는 따로 가야 할 길이 있어서.”
“어디로요?”
“그런 게 있소. 그리고 우리랑 붙어 있다간 그대들도 위험에 휘말릴 거요.”
사파들이 모인 곳에서 내가 정체를 드러냈으니 이른 시일 내로 흑사회 쪽으로 정보가 들어갈 거다.
그렇게 되면 흑사회는 다시 나를 죽이기 위해 수를 쓸 것이니 사천당가를 그런 위협에 끌어들일 수는 없었다.
“…. 흑사회 때문이에요?”
“그렇게만 알고 계시오.”
“그러면 또 만날 수 있는 거지요?”
“당연하오. 목적이 같으면 만나게 되는 것이 이 세상의 순리 아니겠소?”
배를 타고 도강한 뒤에 우리는 사천당가와 헤어졌다.
*
운남 곤명.
인적이 드문 곳, 폐가가 즐비한 곳으로 하나의 신형이 빠르게 들어왔다.
그곳에는 흑사회 지부가 있었다.
“멈춰라.”
어둠이 깔린 길 한 복판.
그곳에서 말이 흘러나왔다.
“하늘은.”
“옳은 뜻을 가진 자들의 손으로 암흑으로 물들지니.”
그들만의 암호를 주고받았다.
끼이이익.
나무 문이 열리며 신형을 날린 이가 안으로 들어갔다.
“지부장님은 어디 계시오.”
“안에 계십니다.”
“알겠소.”
그렇게 안으로 들어가자 지부장은 등불 하나에 의존한 채, 서찰을 쓰고 있었다.
“무슨 일이냐.”
늦은 시각, 이렇게 찾아올 정도면 예삿일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했다.
“급히 본산으로 보낼 정보가 있습니다.”
“본산으로? 지부에서 해결할 일이 아니고?”
“그렇습니다.”
“말하거라, 그것이 무엇이냐.”
흑의인은 숨을 한 번 들이키더니 말했다.
“백의검룡 송삼현! 그가 살아있습니다!”
서찰을 쓰던 지부장의 손이 멈췄다.
“…. 그럴 리가 없다. 반년 전, 섬서에서 절벽으로 떨어지는 것을 내가 분명히 봤다.”
반년 전, 흑사회의 주전력들이 나서며 송삼현 죽이기를 했을 당시, 지부장도 말단으로 그 자리에 있었다.
그리고 분명히 봤었다.
송삼현이 벽력탄에 당해 절벽 아래로 추락한 것을.
“사실입니다! 철방회주 사도철의 목을 단숨에 베어버리는 이가 어디 흔합니까?”
“….”
“백의에 청철로 만든 검! 분명히 백의검룡 송삼현이었습니다!”
눈앞에 있는 자가 거짓을 고할 자가 아니라는 걸 알기에 지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으니 나가보거라, 본산에는 내가 알리겠다.”
“예!”
흑의인이 나가자 지부장은 잠시 고민을 하더니 창가에 앉아 있는 검은 매 다리에 서신을 달았다.
그 서신을 단 매는 어두운 밤하늘을 날아 사라졌다.
*
우리가 이틀 동안 말을 달려서 도착한 곳.
그곳은 광천혈마의 무덤이 있다는 영살협곡이었다.
휘이이이잉.
깊은 골짜기 아래에서 불어오는 바람.
그 바람에는 음산한 기운이 가득했다.
“…. 주군, 들어가는 게 많이 꺼려지는 곳이네요.”
이곳은 동식물이 살지 않는 협곡이었다.
“무정아.”
“예, 주군.”
“내가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라고 했지?”
“… 지옥에 가서 염라대왕의 목을 벨 기세로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래, 그런 각오가 없으면 성사하기 힘든 일이다. 지금 이 일도 그렇고 앞으로 우리가 할 일도 그렇고.”
“명심하겠습니다.”
“주변 동태를 살피고 이곳에서 야영한다.”
“예!”
그렇게 하루를 협곡의 제일 높은 곳에서 보냈다.
동이 트고 이 협곡으로 혈심경을 노리는 많은 세력이 속속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정파와 사파의 경계.
수 백명의 사람들이 협곡을 채우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이군요. 저들이 이 협곡 안에서 격돌이라도 하면···. 끔찍한 일이 벌어지겠습니다.”
“이 판은 그렇게 되길 원하는 흑사회가 만든 판이다.”
“예?”
“그게 무슨···.”
나도 얼마 전까지는 확신을 가지지 않았다.
저번 삶에서는 이 일과 아예 관여가 없었으니 더더욱.
그러나 며칠 전, 무조가 가져온 정보로 그 생각이 달라졌다.
‘흑사회가 일부러 광천혈마의 무덤이 영살 협곡에 있다는 정보를 흘렸습니다.’
이것을 듣고 확신했다.
“그 녀석들은 자중지란을 일으키려고 하는 거다. 혼란을 일으킨 뒤, 그사이에 미리 각 세력에 심어놓은 간자들이 혈심경을 회수하는 거고.”
그렇게 도달한 결론이 이거였다.
“난 그 녀석들의 판에 놀아날 생각이 없다.”
그 결론대로 일이 흘러가는 걸 가만히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그러면 먼저 해야 할 것은 그 간자들을 알아내는 건가요?”
“간자들은 아마 오래전부터 저 세력들 사이에 끼어 있을 확률이 높다.”
“허나 언제 일을 진행하는지 정하려면 우선 만나야 하잖아요.”
선무정의 말 대로였다.
“…. 안 본 사이에 제법 머리를 굴릴 줄 알게 됐구나.”
“독곡주님과 생활해보셨잖아요. 얼마나 들들 볶는지 으으으으!”
“하하하하, 그것도 그렇지.”
세력들이 움직이는 것을 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정아, 넌 이곳에 남아 수상하게 행동하는 이들을 확인해라. 간자들이 만나는 것은 주로 밤이 될 거니 그때를 놓치면 안 된다.”
“알겠습니다.”
경공이 뛰어난 선무정이라면 간자들의 눈에 띄지 않게 정보 수집하는 것이 가능했다.
“마훈, 넌 나와 이동한다.”
*
선무정을 영살 협곡의 초입에 남겨두고 우리는 뒷길을 통해 협곡 안으로 들어갔다.
인적이 드문 곳, 마훈은 내 뒤에서 따라오며 말을 걸었다.
“그런데 주군, 왜 이곳으로 오신 겁니까? 사람들이 없는 곳인데.”
“만날 사람이 있다.”
“영살 협곡에서요?”
“저기다.”
영살 협곡에 동식물이 살지 않는다고 사람이 살지 않는 건 아니었다.
저번 삶.
내가 무영단에 있을 당시, 한 노인이 곤륜파에 붙잡히는 일이 있었다.
그 노인이 붙잡히자 중원은 물론 황궁까지 발칵 뒤집혔다.
‘천하에 그보다 암살 기술이 뛰어난 자는 없다.’
‘늙은 노귀라고 해도 그의 눈은 여전히 날카롭다.’
천재적인 암살 기술로 황궁의 담까지 넘었던 존재.
씨익.
집 밖, 평상에 앉아 느긋하게 두 눈을 감고 있던 그를 보고 입을 열었다.
“암영살귀(暗影殺鬼).”
허리가 굽은 노인.
팔십이 넘어 보이는 노인은 나를 보더니, 신형을 어둠 속에 감춰 손을 뻗어 나를 제압하려고 했으나.
스르르륵.
내게 모든 움직임이 보였다.
내 뒤를 잡으려는 암영살귀의 뒤를 잡아 청월로 목을 겨누었다.
“많이 늙으셨소. 과거에 황궁까지 들어가 암살을 했던 분이.”
반항하지 않고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
“뉘시기에 어찌 이곳을 찾았소?”
“쉽지 않았소. 그대가 여기에 있을 거라는 확신이 없었거든.”
“…. 나를 죽이러 온 거요?”
“아니오. 도움을 받을까 해서 왔소.”
“도움? 내 목을 가져가면 황궁에서 금은보화를 내려줄 터인데 안 가져간다고?”
아직도 황궁은 암영살귀에게 어마어마한 현상금을 내걸고 있었다.
이 자를 잡아가면 삼 대는 무슨, 적어도 수백 년은 먹고살 재물이 내려지니 눈에 불을 켜고 찾는 이들도 많았다.
“금은보화는 그닥 취향이 아니라서 말이오.”
“참 이상한 젊은이를 보는군, 금은보화를 싫어하다니···. 그래 나에게 부탁할 것이 무엇이오?”
“길 안내를 받을까 해서 왔습니다.”
“길 안내?”
“광천혈마의 무덤으로 가는 길, 그 길을 알려주시오.”
암영살귀 왕오산.
그는 과거에 광천혈마의 수족이었던 자였다.
“… 이유는?”
무시무시한 살기가 뿜어졌다.
“혈심경.”
쾅!
진각을 밟더니 나에게 금방이라도 달려들 태세를 했으나 내 말은 끝나지 않았다.
“그것을 없애려고 왔소.”
그러자 풍기던 살기가 암영살귀의 몸 안으로 갈무리되어 들어갔다.
암영살귀가 광천혈마의 수족이 되는 과정, 난 그의 이야기를 저번 삶에서 알고 있었다.
“그대도 그걸 위해서 이곳에 있는 거 아니요?”
“….”
“그대의 가족들을 위해서.”
암영살귀는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광천혈마 때문에 온 가족이 몰살당한 것 때문에 혈심경을 없애려고 하는 거 아니요. 아예 이 세상에서 광천혈마의 흔적을 없애기 위해서.”
광천혈마가 혈심경의 강함을 시험하기 위해서 수많은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 암영살귀의 가족들이 지내는 마을도 희생양이 됐다.
그래서 암영살귀는 복수를 위해 광천혈마의 수족임을 자청하고 그를 죽이기 위해 평생을 살아왔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광천혈마가 죽자 영살 협곡에 머물면서 그의 마지막 진전인 혈심경까지 찾아 없애려고 했다.
“… 없앤다? 그게 가능하다고 보시오? 지금껏 수십 년이 흘러도 그것을 이룬 자들이 없소. 나도 매일 같이 무덤을 헤매고 있으나 찾아내지 못했단 말이오.”
혈심경은 광천혈마가 죽기 전에 남긴 비급이었으나 형체가 없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아직 누구도 그것을 두 눈으로 확인하지 못했으니까.
“가능하오. 그러기 위해 내가 이곳에 온 것이니까.”
그러나 난 그들이 모르는 걸 알고 있었다.
혈심경이 실존한다는 걸.
그리고 그것이 흑사회의 손에 넘어가 광천혈마가 일으킨 혈겁보다 더한 혈겁의 계기가 된다는 걸.
“믿어도 되겠소?”
“믿으시오, 내 모든 걸 걸고 그것을 없애 드리리다.”
내 말을 들은 암영살귀는 가만히 나를 응시했다.
그러더니 뒤를 돌았다.
거절인가.
허나 그 뒤로 들려오는 말은 입꼬리를 올라가게 했다.
“따라오시오. 혈심경의 정확한 위치는 몰라도 무덤의 입구는 알려주도록 하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