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lf a penny from the Golden Tiger RAW novel - Chapter 80
혈심경 (2)
“어서 오십시오.”
영살 협곡의 입구.
그곳에는 미리 온 정파 세력들이 세운 천막이 있었다.
“사천당가에서 오셨군요. 안으로 모시겠습니다.”
밖에서 지키고 있는 무사의 안내를 받으며 천막으로 들어가자 정파 인사들이 대거 모여 있었다.
“곤륜파 태허진인(太虛眞人) 학표운 장문인을 뵙습니다.”
이곳에서 제일 높은 사람은 곤륜파 장문인이었다.
백발에 백염, 팔십이 넘은 그는 강호에서도 존경받는 명숙이었다.
“어서 들어오시게.”
자리에는 오악검파인 숭산파와 형산파를 비롯해 단목세가와 진주 언가까지 있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통솔하는 사람은 제갈세가에서 온 일장로 제갈우였다.
“제갈우 장로님을 뵙습니다.”
제갈우는 강호에서도 명망이 높은 자였다.
제갈귀호만큼은 아니지만, 그의 머리도 뛰어나 제갈세가의 중대사를 논할 때는 빠지지 않았다.
“사천당가의 당윤호 장로님이시군요.”
“예.”
“앉으시지요. 마침 회의를 시작하려고 했습니다.”
“알겠습니다. 수향아 너는 무사들과 나가서 쉬고 있거라.”
당수향이 밖으로 나오자 기다리고 있던 후기지수들이 그녀에게 인사를 했다.
후기지수들의 필두에 있는 삼호오화 중, 한 명.
그렇기에 많은 이들이 그녀와 인사를 하고 싶어 안달이 났다.
“저는 형산파 일대 제자 서윤이라고 합니다. 이리 독화를 만나 뵈어 영광입니다.”
“반가워요. 여기서 형산십검 중, 칠검을 뵐 줄은 몰랐습니다.”
서윤은 올해 서른의 나이로 형산십검의 일원이었다.
형산파 최고 정예들로 이뤄진 형산십검은 사파를 멸하고 양민들을 구제하는 협을 행하며 많은 이들에게 존경받는 무사들이었다.
“저에게 과분한 별호지요.”
“협을 행하시면서 얻은 별호가 과분하다니요.”
“백의검룡 대협에 비하면 전 아무것도 아니지요. 그분을 따라가려면 한 참 멀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백의검룡 송삼현을 존경하고 있었다.
사천당가의 장녀와 형산십검 서윤.
후기지수들은 그들 주위에 모여들었다.
“오랜만에요. 수향 언니.”
그녀에게 인사를 한 여인은 단목세가의 막내딸인 단목영이었다.
그녀도 범상치 않은 외모를 지녀서 그런지 주변에 있는 남성들이 힐끔거렸다.
“오랜만이구나. 그간 잘 지냈더냐?”
“그럼요. 그리고 오기 전에 소문을 들었습니다.”
“소문?”
“예, 백의검룡 대협이 살아계신다는 소문이요.”
그 말에 주변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것이 정말이에요? 언니와 만났다고 하던데.”
굳이 숨길 필요가 없기에 당수향은 솔직하게 말했다.
“사실이다. 이곳에 오기 전에 직접 얼굴을 봤으니까.”
그 말에 웅성거리는 소리가 더욱 커졌다.
죽었다고 소문이 파다했던 백의검룡이 다시 강호에 나타났다니.
눈에 띄게 당황한 이들을 뒤로하고 단목영은 이어서 말했다.
“그런데 정말 백의검룡 대협이 그리 강하십니까?”
“그게 무슨 소리냐.”
“아니, 백의검룡 대협이 싸우는 걸 두 눈으로 본 사람이 없잖아요. 전해 들리는 이야기만 있고.”
단목영의 말처럼 송삼현이 싸우는 것을 이 자리에서 직접 본 사람은 없었다.
다 사람들을 통해 전해 들은 이야기들 뿐이었다.
“…. 넌 변하지 않았구나, 언제나 의심과 욕심이 많았지.”
“예?”
“흑해도문을 멸문시킨 것은?”
“다른 이들의 도움이 있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호화회에서 모용두 선배를 이긴 것은?”
“… 운이 따랐겠지요. 모용두 선배는 그 전에 가문에서 큰 벌을 받아 지친 상태였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용천회 사건은? 서문가후를 죽인 것은?”
“그 일에 무림맹의 초절정 고수들이 대거 투입됐다고 들었습니다. 그들의 도움을 받은 것이 아닐까요?”
단목영은 그저 백의검룡에게 자그마한 흠집을 내 백의검룡과 친분이 있는 당수향에게 망신을 주고 싶은 욕망이 가득했다.
“그러면 넌 강호의 어르신들이 다 거짓말을 했다는 것이냐?”
그러나 그런 수준 낮은 수에 넘어갈 당수향이 아니었다.
“그, 그것은 아니지요!”
무림의 정점에 있는 맹주가 인정한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건 후기지수로서 큰 결례였다.
“대협을 의심하지 말거라, 네가 상상하지 못할 만큼 대단한 분이니.”
“…..”
스윽.
단목영의 귓가에만 들릴 만큼 작게 말했다.
“혹시 모르잖니, 대협이 너의 오만방자한 태도에 화가 나서 흑해도문과 용천회처럼 단목세가도 강호에서 사라지게 할지.”
당수향은 단목영에게 휘둘리지 않았다.
송삼현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두 눈으로 직접 봤으니까.
‘송 대협은 대체 어디로 가신 걸까.’
*
영살 협곡의 북쪽.
절벽에는 다리가 없고 옛날에 다리를 이었던 이음새들만 듬성듬성 있었다.
도저히 사람들이 지나가지 못할 곳을 우리는 경공을 펼치며 아래로 내려갔다.
“이곳이오.”
그렇게 한 식경 정도 암영살귀의 뒤를 따라간 곳은 돌밖에 없었다.
“돌 뿐이군.”
“정녕 그렇게만 보이시오?”
“술식의 냄새도 짙게 맡아지오.”
“맞소. 광천혈마가 죽기 전에 자신의 비급을 숨길 장소로 이곳을 고른 것도 술식을 하기 용이한 장소였기 때문이었소.”
그저 평범해 보이는 돌들.
암영살귀가 돌 네 개를 순서대로 누르더니 어둠에 감춰졌던 입구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 안이 광천혈마의 무덤이오.”
이곳이 그곳이구나. 혈겁의 시작점이 되는 곳.
“안에는 갈림길이 많소, 그곳마다 여러 함정이 있으니 조심하는 게 좋을 거요.”
“어떤 갈림길로 가야 하는지는 아시오?”
암영살귀는 고개를 저었다.
“길은 계속해서 바뀌는 구조요. 어떤 날은 북쪽 길이라면 또 어느 날은 남쪽 길이오, 그리고 마침내 제대로 된 길을 찾았다면 그곳을 지키는 수호자들이 있으니 조심하시오.”
“수호자?”
“그들을 해결하지 못해 내 걸음이 그곳에서 멈춰졌으니 조심하시오.”
“고맙소.”
“약조나 지키시오, 광천혈마의 모든 것을 사라지게 한다는 약조요.”
“물론이오, 꼭 그러겠소.”
암영살귀를 뒤로 하고 가려다가 무언가 생각이 나 걸음을 멈췄다.
“아, 그리고 이것 좀 제 벗에게 전해주시오. 영살 협곡 북쪽, 제일 높은 나무 위에 있을 거요.”
송삼현이 건넨 것은 서찰이었다.
“알겠소. 그러면 무운을 빌겠소.”
광천혈마의 무덤으로 들어갔다.
우리가 들어가자 바위가 입구를 막으며 불빛이 사라졌다.
“주군.”
“고맙다.”
마훈은 미리 준비한 횃불 하나를 나에게 주고 앞장서서 걸어갔다.
“한데 암영살귀에게 건네준 서신이 무엇인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쓸데없는 희생을 피해고자 함이다.”
그렇게 말을 한 뒤에 반 각 정도 걷자 내려가는 계단이 있었다.
그곳으로 발을 내딛자.
쐐애애애액.
“주군! 조심하십시오! 함정입니다!”
벽면에서 화살이 나오며 내 옆을 지나갔다.
기감을 확대하고 있었으니 이런 조잡한 함정에 당할 리는 없었다.
바닥에 꽂힌 화살을 뽑아 살폈는데 화살촉에 독이 발라져 있었다.
“입구부터 이런 함정이라니, 무덤의 주인이 참 괴팍한 성격을 가졌구나.”
“위험하니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됐으니 뒤를 따르거라.”
화살 함정을 피하며 계단을 내려가자 큰 광장 같은 곳에 광천혈마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길이 갈라져 있었다.
그것도 네 갈래로.
“우선 오른쪽으로 가보자.”
“예, 주군.”
내려간 길은 막힌 길이었다.
그리고 무수히 많은 함정, 화살을 비롯해 창살과 독 연기가 주를 이루는 함정이 가득했다.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가는 것도 꼬박 반나절이 걸렸다.
“참으로 깊구나, 대체 얼마나 깊게 파놓은 건지.”
이틀을 걸쳐, 세 곳의 길을 헤맸다.
“이제 마지막 길이구나.”
“… 무슨 무덤을 이리 만들어놨는지! 함정도 이렇게 많은 곳은 처음입니다!”
진법은 없었다.
기관술식도 없고.
광천혈마가 그런 것을 할 만큼 머리가 비상한 자가 아니었으니 어느 정도 이해는 됐다.
그냥 무공에만 미친 미치광이였으니.
“허.”
그렇게 마지막에 도달했으나 또 막힌 길이었다.
“대체 무엇이 맞는 길인 건가.”
막혔다고 생각하고 다시 위로 올라가려는 그때.
‘응?’
스윽.
벽 너머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기에 손을 가져다 댔다.
“… 물소리?”
다른 길에서는 들리지 않았던 소리.
그 소리를 따라간 곳에는 숨겨진 작은 길이 있었다.
*
며칠이 흐른 시각.
광천혈마의 무덤을 찾기 위한 정파와 사파의 수색은 밤낮없이 진행됐다.
그 과정에서 희생도 따랐다.
“사파 놈들! 이곳이 너희들의 무덤이 될 것이다!”
정파의 검에는 사파가.
“죽는 것은 너희들이다!”
사파의 검에는 정파가.
그렇게 서로에게 검을 겨누며 적지 않은 희생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제갈우는 잠도 자지 않고 실시간으로 보고를 받았다.
“구 조가 수색 도중, 용문파를 만나 습격을 당했습니다.”
“… 계속해서 희생이 늘어나는구나.”
“사파 쪽도 마찬가지입니다. 현재 우리 쪽, 사망자는 열넷에 부상자는 스물입니다.”
시간이 흐르고 그로부터 정확히 이틀이 지난 밤, 제갈우가 지내는 처소 앞에 한 사람이 걸어왔다.
“어?”
그를 처음 발견한 것은 후기지수들과 있던 당수향이었다.
제갈우 처소를 지키던 호위무사는 처음 보는 사람이 다가오자 허리춤에 차고 있던 검을 꺼냈다.
스릉.
“웬 놈이냐!”
그는 선무정이었다.
“늦은 밤, 결례를 용서해주십시오. 소인은 천음산보의 제자이자 백의검룡 대협을 모시고 있는 선가 무정이라 합니다.”
천음산보와 백의검룡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안에 있던 제갈우가 나오며 무사들에게 검을 거두라고 했다.
“정녕 천음산보 어르신의 제자라고?”
“증명할 패입니다.”
천음산보를 증명하는 패를 보여주자 제갈우의 경계심은 낮아졌다.
“늦은 밤에 이리 나를 찾아온 이유가 무엇이냐?”
스윽.
품에서 얼마 전, 암영살귀에게 받은 서신을 꺼냈다.
“저의 주군께서 제갈우님께 보낸 서신입니다.”
“… 내가 이곳에 있는 줄 어찌 알고?”
“주군의 곁에는 중원의 모든 걸 알려주는 눈과 귀가 있거든요.”
“참으로 대단한 자구나.”
제갈우는 서신을 읽어보더니 표정이 바뀌었다.
“이것이 사실이더냐?”
“그렇습니다.”
“어째서 혼자 움직이는 것이냐. 같이 움직이는 것이 실패할 공산을 낮추는 것임을 모를 리가 없을 터인데.”
“그것이 쓸데없는 희생을 줄이는 길이라 하셨습니다.”
제갈우는 서신을 읽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하지만 우리도 모든 것을 백의검룡에게만 맡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충분히 이해합니다.”
“네가 내 입장이라면 온전히 모든 것을 믿겠느냐?”
선무정은 단 한 순간도 지체하지 않고 대답했다.
“예.”
“어째서?”
“제 목숨을 바쳐도 모자랄 정도로 대단한 일을 하실 분이니까요.”
제갈우는 내공을 퍼트려 선무정을 시험했다.
그런데도 선무정의 눈빛은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확고했다.
송삼현에 대한 확고한 믿음.
그것이 제갈우의 마음을 흔들었다.
“알겠다. 이 말대로 하지, 그러나 실패했다간 책임을 져야 할 것임을 명심하거라.”
“알겠습니다. 주군께 그리 전하겠습니다.”
떠나려는 선무정을 붙잡은 것은 제갈우가 아닌 다른 이의 음성이었다.
“잠시만요.”
당수향이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송 대협과 같이 다니시는 선무정 소협 맞지요?”
“그렇습니다.”
“지금 송 대협은 어디에 계시는 겁니까?”
“다른 길을 찾아 그곳을 걷는 중이십니다.”
후기지수들은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당수향은 곰곰이 생각하더니 말했다.
“… 대체 송 대협이 하시는 일이 무엇입니까?”
선무정은 당수향과 그 근처에 있는 후기지수들을 보며 말했다.
“세상을 구하려 하십니다.”
“세상을 구해요?”
“깊은 이야기를 드리지는 못합니다. 자세한 것은 주군께 여쭤보십시오. 그러면 전 이만.”
선무정은 땅을 박차고 하늘을 걸으며 사라졌다.
“허, 허공답보라니!”
그것을 본 후기지수들은 놀랐고 당수향은 선무정이 사라진 곳을 보다가 발걸음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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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각.
광천혈마의 무덤 안에서는.
“드디어 찾았군.”
송삼현이 꼬박 나흘에 걸쳐 거대한 돌문 앞에 도착했다.
“주군, 저기 있는 것들이 설마.”
“암영살귀가 말한 수호자들인가 보구나.”
십 척은 넘어 보이는 크기의 돌상.
그것들은 갑옷을 입은 무사 모습을 띠고 있었다.
스윽.
돌상에 손을 가져다 대도 움직이지 않았으나 돌문을 열기 위해 손잡이에 손을 가져다 댄 순간.
우우우우웅.
거대한 울림이 동굴 안을 가득 채웠다.
‘기관도 아니다, 진법도 아니고 그렇다면 주술?’
남만 지역에서 부족들이 사용한다는 것만 들었지 실제로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스르르르륵.
돌상의 가슴 부분에서 시작된 하얀 빛줄기들이 팔다리로 퍼지자 돌상의 감겼던 눈이 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