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lf a penny from the Golden Tiger RAW novel - Chapter 82
혈심경 (4)
강시의 종류는 사강시와 활강시 두 가지가 있다.
일반적으로 죽은 사람으로 만드는 사강시는 그렇게 강한 편은 아니었으나 활강시는 달랐다.
살아있는 신체로 만드는 강시라 움직이는 것이 일반 사람들과 똑같았다. 아니, 그 이상이었다.
휘이이이익.
속도는 짐승처럼 빨랐다.
“마훈, 너는 뒤로 물러나 나서지 마라, 내가 처리한다!”
“존명!”
콰아아아아앙!
광천혈마의 손이 내 가슴께를 노렸으나 검 등으로 막았다.
‘혈심경의 기운이 고스란히 전해지는군. 사특한 기운이 가득하다.’
사람을 죽일수록 강해지는 마공.
그렇기에 더더욱 세상에 공개되면 안 됐다.
콰가가가가각!
검날을 눕히며 공격을 흘렸고 그대로 품으로 달려들며 검을 출수했다.
촤아아아아악!
복부를 베었으나 피가 나오지 않았다.
죽은 사람의 몸이니 피가 안 나오는 것이 당연했으나 조금 찝찝했다.
그렇게 몇 합을 주고받으며 빈틈을 찾아냈다.
강한 파괴력, 정확한 속도, 혈심경의 강함은 여실히 내가 든 검을 통해 전해졌다.
‘소림의 반야신공을 토대로 만든 것이 혈심경이라더니 그 말이 틀리진 않은 모양이다. 소림의 초식도 가끔 보인다.’
광천혈마에 대한 소문은 여러 가지였다.
그중 한 가지가 소림사의 제자였던 자가 살육을 일삼아 쫓겨났다고 들었는데 그것이 사실이었을 줄 이야.
콰아아아앙!
콰가각!
쿠우웅!
그러나 공격이 자연스럽게 연계되지 않았다.
공격과 공격의 사이에 작은 틈새가 있었고 나는 그것을 노렸다.
스르르르르륵.
광천혈마의 몸 주위를 휘감는 검고 붉은 기운.
그 기운에는 혈심경의 모든 것이 담겨 있었다.
중원을 혈겁으로 물들이고도 남을 만큼 사특한 기운.
그가 죽여온 사람들의 원망을 옷처럼 두르는 거였다.
‘살려주세요.’
‘제발 이러지 마세요.’
‘아아아아아아악!’
죽어간 이들의 환청이 광천혈마를 휘감은 기운을 통해 들려왔다.
기운은 수많은 손들의 형상으로 변해 나와 나의 옷깃을 붙잡았다.
살려달라며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
화악!
기운이 나를 덮쳐왔다.
질끈.
두 눈을 감자 내가 저번 삶에서 죽였던 이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들의 가족까지.
하지만 얼굴의 생김새는 없었다.
다 눈, 코, 입이 없었다.
“아버지! 아버지!!!”
적의 딸.
“왜 죽은 거야! 이렇게 우리를 두고 가면 우리는 어쩌라고! 말 좀 해봐!”
시체를 붙들고 울고 있는 적의 아내.
“자식이 부모보다 먼저 가면 어쩌자는 거니···. 차라리 나를 데려가고 우리 아들은 살려주지!”
적의 부모님까지.
그들은 모두가 내가 죽인 시체를 붙들고 울고 있었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 자리에 굳어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가만히 있는데 수많은 이의 얼굴이 동시에 나를 향했다.
주룩.
시체의 피는 그들의 눈이 되고 코가 되며 입이 됐다.
“너야, 네가 우리 가족을 다 지옥으로 내몰았어!”
아니야, 그자들은 죽어 마땅한 자들이었어.
“살려내!”
죽어간 이들은 내 동료를 죽이고 무고한 이들을 죽인 자들이었다.
작은 마을이 우리에게 물 한 잔을 줬다고 그곳을 모조리 도륙한 녀석들인데 왜! 나한테 왜 그러는 거냐고!
저벅.
“… 오지 마.”
저벅.
“저리 가! 가라고!”
겨우 세 걸음 안에 내 앞으로 온 그들은 더는 사람의 형상이 아니라 피 칠갑한 악귀의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으아아아아아악!”
*
“주군! 주군!”
나를 부르는 목소리에 눈이 떠졌다.
그리고 아까까지 나를 죽이려던 이들의 형상은 사라졌다.
“왜 그러세요? 제가 도울까요?”
스윽.
손을 들어서 막았다.
아무래도 혈심경에 당한 모양이군.
혈심경은 인간의 정신에서 제일 약한 부분을 건드린다더니.
‘…. 난 아직도 그때의 일을 잊지 못하고 있구나.’
무영단으로서 무수히 많은 피를 봤다.
죽인 이들의 숫자는 가늠도 되지 않았다.
사람을 죽이는 일.
그러한 일은 아무리 세월이 지나고 회귀를 했다고 해도 사라지지 않고 또렷이 기억이 났다.
살려달라고 울부짖는 소리도.
죽음을 받아들이는 눈빛도.
잊히지 않았다.
그저 난 그 세월을 견디고 기억들로 버티는 거였다.
오히려 경험했으니까, 얼마나 엿 같은 세상인지 아니까 다시 만들고 싶지 않았다.
내가 목표로 하는 모두가 웃으며 행복한 세상, 그것은 정파에 한한 것이 아닌 사파와 마교를 비롯한 모두가 똑같이 누려야 하니까.
스윽.
검을 잡은 손에는 힘이 들어갔고 푸른 기운이 흘러나오며 검강을 만들었다.
과거는 과거대로.
미래는 미래대로.
그렇게 난 한 걸음 나아갈 것이다.
‘천무 1식 개벽.’
사부님께 다시금 배운 기억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개벽은 새로운 세상을 연다는 생각으로 만든 초식이다. 하지만 무조건 강대한 기운만을 머금어선 안 된다.’
‘그러면요?’
‘협소한 장소에서는 그에 맞는 간격이 있어야 한다. 검술에서의 승부는 얼마만큼의 강함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간격’에서 나뉘니까.’
촤아아아아아아악!
고간부터 시작되어 정수리를 훑고 지난 푸른 검격.
예전 같았다면 하늘에 닿아야 했으나 정확하게 정수리를 지나 사라졌다.
쩌억.
반으로 갈라진 시체.
그 시체 사이에서 죽어간 이들의 원혼이 빠져나가 사라지는 것이 보였다.
그렇게 그들의 원혼이 사라지고 나서 보인 것은.
혈심경(血心經).
“… 이 미친 늙은이가 이걸 자기 몸속에 보관하고 있던 거야?”
*
운남 보이.
‘흑월 객잔’
사파들이 자주 출입하는 객잔에 흑사회 전력들이 집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을 이끄는 사람은 천뇌였다.
“….”
그 앞에 묵묵히 앉아 있는 사람은 흑검대주 장평하였다.
초절정의 끝자락에 있는 고수.
소검마 만큼이나 검술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었다.
“넌 언제나 말이 없구나.”
“죄송합니다.”
“아니다, 그것이 너의 장점이라 이리 가까이 두는 것이니.”
객잔에서 차를 마시던 천뇌는 영살 협곡에 미리 보냈던 흑사회 수색대원에게 보고받았다.
“보고드립니다.”
“말하거라.”
“… 제일 먼저 조사하라 하셨던 백의검룡의 생존은 사실로 판명됐습니다.”
꽉.
“…. 그 녀석은 대체 어떤 존재이기에 이토록 하늘의 사랑을 받는 건가.”
벽력탄에 휘말려 유령곡에 떨어지자마자 죽음을 확신했다. 비록 시신을 찾지 못했더라도 죽어야 마땅한 곳이니까.
그러나 멀쩡히 살아서 다시 나타났다니 경악을 금치 못했다.
“협곡 상황은?”
“영살 협곡에서는 정파와 사파가 휴전을 맺고 싸움을 멈췄다고 합니다.”
“그것이 무슨 말이냐.”
“이틀 뒤에 다시 전쟁을 시작할 거라 하옵니다.”
예상했던 것과 다른 흐름이었다.
원래라면 정파와 사파가 충돌하면서 협곡 안에는 죽음이 가득 해야 했다.
그러려고 일부러 정보까지 흘려 그들을 영살 협곡으로 모은 거니까.
그러나 휴전을 맺었다면 세워둔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는 거였다.
“심어놓은 간자들은 무엇을 하기에 보고가 이리 늦는 것이냐. 내분을 일으키고 의심의 싹을 피우는 것이 그들이 할 일이거늘!”
“아직 보고가 없습니다.”
천뇌는 찻잔 위에 떠 있는 잎을 보며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백의검룡이 다시 우리 일을 방해하도록 둬선 안 된다. 속히 영살 협곡으로 간다.”
“존명!”
그로부터 하루 뒤, 잠도 자지 않고 신형을 날린 천뇌는 마침내 영살 협곡 안에 있는 광천혈마의 무덤에 도착했다.
“이곳인가. 광천혈마의 무덤이.”
“그렇습니다.”
주변 상황을 살폈다.
심어놓은 간자들을 통해 영살 협곡 내에 정파와 사파가 있는 지점을 알았고 어떤 식으로 근무를 서는지도 알아냈으니 접근하는 것은 어려움이 없었다.
무덤 입구에는 정파와 사파 무사들이 지키는 것이 보였다.
‘그냥 들어가지는 못하겠군. 그렇다면.’
“암월객.”
그 말에 두 명의 흑의인이 신형을 날렸다.
나이가 들어 보이는 이들이었다.
“저들을 재울 수 있겠소?”
“일도 아니지. 그런데 우리쪽 놈들도 같이 재워?”
“그렇게 하는 편이 의심을 피하는 것이니 부탁하오.”
암월객의 두 노인은 신형을 날렸고 품에서 전낭을 꺼냈다.
그들이 다루는 것은 독이었고 꺼낸 것은 수면 독이었다.
허공에 살포하자 정파와 사파 무사들 열 명이 한 번에 쓰러졌다.
“역시 암월객들이오. 세월이 지났어도 솜씨가 여전하군.”
“이 정도는 누워서도 할 수 있는 일이지.”
“깨어나는 건 언제요?”
“반 각, 너무 오래 재우면 이상하게 생각할 터이니 짧은 수면 독으로 했다.”
“잘하셨소. 그러면 들어가자.”
그렇게 천뇌가 이끄는 흑검대가 무덤 안으로 들어갔다.
*
털썩.
내 검에 광천혈마의 몸이 양쪽으로 갈라지고 나서야 모든 것이 끝났다.
그 안에서 혈심경이 나오자 놀라서 제대로 말이 나오지 않았다.
“…. 괴팍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라더니, 몸속에 이것을 감춰놨을 줄이야. 어쨌든 찾았으니 다행인 건가.”
호흡을 한 번 내뱉은 뒤에 청월을 검집에 넣었다.
“활강시는 살아 있을 때보다 한 단계 높은 수준의 무공을 발현할 수 있다더니 그게 정말이었구나.”
죽어서야 이룰 수 있는 다음 경지.
활강시와 싸울 때, 조심해야 하는 것이 바로 그거였다.
초절정의 고수가 화경의 경지에 오를 수 있으니.
그리고 마훈을 보니 마훈은 정중하게 포권을 올렸다.
“저는 주변을 경계하겠습니다. 마음 편히 살펴보십시오.”
“알겠다.”
시체에서 나온 혈심경을 들어 품에 갈무리했다.
그리고 단상 위로 올라가 아까 못 열었던 상자를 열었다.
그 상자에는 영약이 들어있었다.
‘잠깐, 이건.’
광천혈마의 모든 진전이 있다더니 사실이었군.
“혈옥단, 이게 있을 줄이야.”
기록에 따르면 혈옥단은 사특한 기운을 머금은 영약으로 복용하면 내공이 적어도 반갑자 이상을 흡수할 수 있었다.
‘이것도 품에 넣고.’
무기들도 여러 가지였다.
검부터 시작해서 활, 창, 도끼, 구절편까지 있었다.
다른 무기는 굳이 필요 없었고 검 한 자루가 눈에 띄었다.
‘이 검이 여기에 있었군, 저번 삶에서는 소검마가 휘두르던 검인데.’
검 한 자루를 잡았다.
“마훈.”
“예, 주군.”
휙.
“앞으로 이 검을 들어라.”
내가 마훈에게 건네준 검은 명검 ‘운하(雲河)’였다.
“이, 이건.”
“전국시대 때, 최고의 대장장이인 강두가 만든 검이다.”
전국시대 때, 촉나라 대장군 이염이 들고 다녔던 검으로 천하의 오대 명검으로 뽑히는 검이었다.
“어찌 이 귀한 걸 저에게 주십니까! 주군께서 쓰시는 것이···.”
“난 이미 내 벗이 있으니 됐다. 그리고 언제까지 그 철검에 의지할 거냐.”
마훈이 들고 있는 것은 싸구려 철검이었다.
아마 가족들과 도피 생활을 할 때, 기존에 가지고 있던 검을 팔아버린 거겠지.
척.
“앞으로도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그렇게 챙길 것을 다 챙긴 뒤에 들어왔던 길과 반대쪽으로 갔다.
“응? 그런데 주군, 어찌하여 벽에 그리 검흔을 새기는 겁니까?”
가면서 벽에 검 끝으로 작은 틈새를 만들었다.
“그럴 일이 있다. 조만간 알게 될 터이니 기다리거라.”
그렇게 한참을 걸었다.
밖에서 빛이 들어오지 않는 동굴 안이니 며칠이 흐른 지는 이제 가늠이 되질 않았다.
저벅.
우리의 발소리만이 들려왔다.
그리고 그때, 기감을 넓힌 곳에서 무언가가 느껴졌다.
‘벌써 무덤에 들어온 건가.’
슬쩍 옆을 보니 마훈도 무언가 느꼈는지 발을 멈췄다.
“주군, 2리 앞에 인기척이 느껴집니다.”
“… 그것이 느껴지더냐?”
“예, 제가 무림 공적이 되면서 쫓길 때, 하도 도망을 다녀서 그런지 기감이 넓어졌습니다.”
“어찌하겠느냐. 이대로 가겠느냐, 아니면 돌아가서 우리가 들어왔던 곳으로 나가겠느냐?”
“더는 이곳에 있기 싫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나가고 싶습니다.”
“그러면 가자.”
“예, 주군, 주군의 앞을 가로막는 것들은 제가 다 베어 넘기겠습니다.”
일각 정도 걷자 서서히 윤곽이 보였다.
그리고 곧 보이는 얼굴.
“오랜만입니다. 천뇌.”
우리의 길을 막은 사람은 흑사회, 그것도 천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