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lf a penny from the Golden Tiger RAW novel - Chapter 85
혈심경 (7)
송삼현의 개입으로 전투는 정파가 우위를 점했다.
“뒤로 다섯 보 물러나며! 방어진을 구축해라!”
“좌측에서 열 명! 우측에서 일곱 명! 적귀대입니다!”
“원형진을 펼쳐라!”
정파는 무분별하게 달려드는 사파를 상대로 당황하지 않고 진을 구축하며 한 명 한 명 베어 나갔다.
그리고 태허진인은 사파의 우두머리인 천수마검을 상대했다.
태허도룡검법(太虛屠龍劍法)
한 마리의 용이 땅에서 똬리를 틀다가 하늘로 승천하는 모습을 담은 검으로 곤륜파 장문인이 되는 자들만이 익힐 수 있는 검이었다.
그 검은 집요하게 천수마검의 목을 노렸다.
채애애앵!
천수마검이 쓰는 검은 ‘천수검법’ 마치 천 개의 손이 검을 휘두르는 것처럼 변화가 극으로 담긴 검법이었다.
수많은 합이 오가며 점차 우위를 점하는 건 태허진인이었다.
천수마검의 호흡이 거칠어지자 기회를 잡은 태허진인은 오른쪽 아래로 허초를 던지며 순식간에 검로를 바꿔 왼쪽 상단으로 검을 뻗었다.
촤아아악!
날카로운 태허도룡검법의 초식이 천수마검의 왼쪽 어깨를 얕게 베어나갔다.
허나 천수마검이 노린 것이 바로 이거였다.
자기 어깨를 내주는 대신 팔을 취하겠다는 각오로 어깨가 베이는 것과 동시에 검을 출수했다.
‘걸렸다.’
몸을 비틀어 피했으나 천수마검의 검은 태허진인을 뱀처럼 쫓아갔다.
태허진인의 팔이 베어지기 직전, 곤륜파 도사들이 사파를 상대하다가 다급하게 몸을 날렸으나 거리가 멀었다.
태허진인이 호신강기를 발현하며 막으려고 할 때, 마훈의 검이 천수마검의 검을 튕겨냈다.
챙!
“북검!”
“그 악랄한 검은 여전하오.”
“어째서 흑사회에 오지 않은 거지? 네가 들어왔다면 우리는 더욱 강해졌을 거다!”
“모시기로 한 분이 계시기 때문이오.”
“백의검룡? 그 어린놈을 따라서 대체 무얼 하겠다고!”
콰아아아아앙!
마훈의 검은 그의 정수리를 노렸으나 천수마검이 뒤로 도약하며 땅에 매섭게 내리쳐졌다.
“나를 욕하는 건 상관없소, 허나 내 주인을 무시했다간 그 입부터 잘라낼 것이오.”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지 검을 나눠보자꾸나.”
두 사람의 검은 허공에서 맞붙었다.
태풍처럼 몰아치는 검격, 마훈과 천수마검의 대결에 많은 이들이 시선을 집중했다.
“그동안 내가 휘둘렀던 검이 부끄러웠소.”
채애애앵!
“허나 그분은 그 부끄러운 검도 자신이 품으려고 하시는 분이오!”
채애앵!
“난! 그래서 그분을 위해 이 한목숨 바쳐 그분이 이루고자 하는 일에 초석이 될 참이오!”
촤아아아악!
‘태산검법 2초식, 뇌성벽력(雷聲霹靂)’
검에 둘러진 검강이 늘어나며 벼락처럼 천수마검의 왼쪽 팔을 깊게 베어나갔다.
“그렇다고 네가 그동안 저지른 일이 사라지기라도 한단 말이냐? 정파 놈들은 어떻게든 너에게 죄를 물려고 할 것인 것을 정녕 모르는가!”
“그동안 잘못 살았으니 이제야 제대로 살기로 마음을 먹은 거요!”
“헛소리! 아무리 손을 씻는다고 그 손에 묻은 더러운 오물까지 씻기지는 않는다!”
호흡을 진정시킨 뒤, 양손으로 검파를 잡고 왼쪽으로 검을 눕혔다.
‘태산검법 4초식, 심산유곡(深山幽谷)’
천수마검은 깜짝 놀랐다.
분명히 풀 한 포기 나지 않은 영살 협곡이거늘 지금 자신의 눈앞에는 울창한 숲이 펼쳐졌다.
‘내가 이 자의 기운에 압도된 건가.’
나뭇잎이 바람에 스치는 소리.
그것은.
촤아아아악!
검이 자기 팔을 스치는 소리였다.
오른팔의 절반쯤 잘렸을 때, 황급히 팔을 빼며 뒤로 도망쳤다.
‘다시 재정비를···!’
그러나 마훈은 틈을 주지 않았다.
숲에 들어온 먹잇감을 노리는 호랑이처럼 매섭게 검을 펼쳤다.
땅을 박차며 오 장 이상 벌어진 거리를 단숨에 좁혔다.
그리고 검을 오른쪽으로 크게 펼쳤다.
‘태산검법 5초식, 낙산수월(落山水月).’
“그대들이 뭐라고 할지라도 내 검은 그분과 함께 나아갈 것이오! 그곳이 지옥일지라도!”
촤아아아아아아악!
천수마검은 검막을 펼치며 검을 막으려고 했으나 순간 마훈의 검에서 빛이 일렁이더니 사라졌다.
그리곤 천수마검의 목에 검흔이 새겨졌다.
“자, 잔상···. 내 인식을 뒤틀었단 말인가.”
“죽기 전에 한 가지 알려주자면 태산검법은 인식을 뒤트는 검, 그러니 보이는 것을 마냥 믿지 않는 것이 좋소.”
곧 피가 분수처럼 솟구치며 천수마검은 앞으로 고꾸라졌다.
그 피를 비처럼 맞으며 선 마훈은 두 눈을 감고 숨을 크게 내쉬었다.
머릿속에서는 그동안 자신이 걸어온 길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어째서 검을 잡았고 그 검으로 무엇을 하려고 했는지 떠 올랐다.
첫 걸음은 협의지심(俠義之心)으로.
두 번째 걸음은 가족을 위해서.
그리고 마지막 걸음은.
스윽.
“저분을 위해서.”
[잘했다.]
들려오는 전음.
그건 사파를 도륙하고 있는 송삼현이 보낸 전음이었다.
주륵.
눈물이 났다.
척.
마훈은 송삼현이 있는 쪽으로 큰절을 올렸다.
그리고 송삼현의 걸음이 멈춘 것은 사파의 시체로 산이 이뤄진 뒤였다.
정파 – 600명
사파 – 1,030명
전투 후.
정파 – 10명 사망, 60명 부상.
사파 – 660명 사망, 300명 부상, 70명 도주.
압도적인 승리였다.
*
전투에서 패한 사파의 잔당들은 도망쳤고 정파는 수색대를 꾸려 그들을 뒤쫓았다.
시체는 한곳에 모아 태우고 부상자들은 의술을 아는 이들이 치료하며 상황이 정리되자 제갈우가 나에게 다가와 포권을 했다.
“백의검룡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정파는 큰 혼란에 빠졌을 거요. 이들을 대표해 감사 인사를 드리오.”
“아닙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영락없이 대협이 죽었다고만 들었는데 이리 살아있는 모습을 보니 참으로 다행이오. 형님께서도 크게 기뻐하실 거요.”
대화를 나누는 사이, 후기지수들은 쭈뼛거리며 나에게 다가오지 못했다.
사파와 싸우기 전에 무림 공적을 운운하며 나에게 한 말 때문이겠지. 그때, 나에게 큰 소리를 냈던 숭산파 도사가 앞으로 나왔다.
“백의검룡 대협께 사죄드립니다!”
그 말 이후, 마훈의 일로 나에게 쏘아붙이던 후기지수들 모두가 바닥에 넙죽 엎드렸다.
“됐으니 모두들 일어나십시오.”
“저희의 결례를 부디 용서해주십시오.”
“알겠으니 일어나세요.”
내 말을 듣고 나서야 후기지수들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은 나를 물끄러미 바라봤고 그 틈에 당수향이 나에게 다가왔다.
“자요.”
“그게 무엇이오?”
“제가 직접 만든 금창약이에요. 거기 팔이요. 긁혔잖아요.”
당수향이 금창약을 꺼내 내 오른쪽 팔에 살짝 난 생채기에 발라줬다.
“… 괜찮소. 그보다 뺨이 상했소.”
“어떤 무모한 분이 혼자서 들어가기에 따라가다가 그랬어요.”
“미안하오.”
“아니에요. 덕분에 많은 사람이 목숨을 구했어요. 대협께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당가는 피해가 없소?”
“두 명이 다치긴 했지만, 가벼운 정도에요. 생명에 지장이 없고요.”
“그거 다행이오.”
상처에 약을 전부 바르자 태허진인이 다가왔다.
“백의검룡, 우리는 따로 이야기를 나눠야 할 것 같소만.”
“그러시지요.”
*
우리는 장소를 옮겼다.
천막 안에는 나와 제갈우, 그리고 태허진인과 마훈, 이렇게 네 사람이 있었다.
“…. 자세한 이야기를 부탁드려도 되겠소?”
“예. 어떤 것부터 듣고 싶으십니까?”
“먼저 혈심경이오.”
“알겠습니다.”
송삼현은 광천혈마의 무덤이 다른 곳에 또 있다는 것과 그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설명해줬다.
그 이야기를 듣는 제갈우와 태허진인의 표정이 계속해서 변화했다.
“… 광천혈마 자신이 활강시가 됐다라, 참으로 놀랍소.”
“그리고 그자를 없앤 백의검룡의 무학 또한 대단하오.”
그렇게 모든 이야기를 끝내자 제갈우의 시선은 마훈을 향했다.
“백의검룡께서 혈심경을 회수한 것은 알겠으나 북검에 관한 것은 논외요. 북검이 저지른 죄가 많소”
“…. 알고 있습니다.”
적도 왕소의 일 말고도 마훈이 저지른 일은 많았다.
그것이 이유가 있다 하더라도 다른 이에게 피해를 준 것이니 옳고 그름을 따져야 했다.
털썩.
그때 마훈이 무릎을 꿇었다.
“저의 죄는 훗날 반드시 지겠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주군의 곁에 있게 해주십시오.”
“….”
“주군이 이루고자 하는 세상이 오면 제 죄는 무림맹으로 가서 제대로 지겠습니다.”
태허진인이 한 걸음 걸어 나오며 말했다.
“죄를 짓기는 쉬워도 죄를 인정하는 것은 어렵소.”
“예?”
“그대의 검이 과거에는 그릇된 것일지는 몰라도 현재는 옳은 곳에 쓰이고 있으니 무조건 죄를 묻기는 어렵소.”
태허진인은 눈을 감아주려고 하는 거였다.
마훈이 비록 무림 공적으로 많은 이들에게 쫓기고 있지만, 그의 검에 담긴 의지가 악하지 않다는 걸 천수마검과 싸우는 것을 보며 알았을 테니까.
“그대의 문제는 내가 무림맹에 잘 이야기해 보겠소. 허나 무림맹으로 와서 옳고 그름은 따져야 할 거요.”
“물론입니다!”
“그리고 혈심경은···.”
내가 말을 잇기 전에 제갈우가 말했다.
“혈심경은 백의검룡께서 회수한 거니 마음대로 처리하시오.”
“그래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오, 다만 한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소.”
“무엇입니까?”
“혈심경을 확실히 없앨 거요?”
제갈우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려고 찾아낸 겁니다.”
“그러면 됐소.”
“그렇게 쉽게 답을 하셔도 되나요?”
“백의검룡께서 혈심경을 악용하지 않을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소. 없애지 않을 거라면 애초에 혈심경을 회수했을 때, 이곳으로 오는 게 아닌 다른 길을 갔을 거 아니오?”
“듣던 대로 현명하십니다.”
척.
“부디 다음에 다시 보길 바라겠소.”
그렇게 천막을 나오자 모여 있던 모두는 나에게 포권을 올렸다.
그들 사이로 당수향이 걸어왔다.
“다시 길을 가실 겁니까?”
“그렇소.”
“바쁘시네요.”
“워낙 일이 많은지라.”
“다음에는 더 길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면 좋겠어요.”
“나도 그렇소, 그리고.”
스윽.
“천하봉선께 얻은 금창약이오, 여인의 뺨에 흉이 지면 안 되니 그걸 사용하시오.”
“처, 천하봉선이요?”
천하봉선 이라는 이름은 의술을 아는 이들이라면 모르는 이름이 아니었다.
“그분은 대체 어찌?”
“인연이 닿았을 뿐이오.”
“대협은 이제 제가 상상도 못 하는 일을 하시는군요.”
“항상 그러지 않았소. 그러면 그 약을 잘 쓰시오.”
“… 고마워요.”
신형을 날리며 그 자리를 떠났다.
*
신형을 날려 간 곳은 암영살귀가 지내는 거처였다.
그 거처에는 선무정이 기다리고 있었고 암영살귀가 나를 보더니 앉아있다가 일어났다.
“오셨소.”
“그대의 말대로 혈심경을 찾았소.”
“이자에게 들었소, 정말···. 정말 감사하오.”
암영살귀는 진심으로 고마워했다.
선무정은 혈심경을 다시 나에게 줬다.
스윽.
“주, 주군! 그것을 왜 암영살귀에게 주는 겁니까!”
그리고 난 혈심경을 암영살귀에게 내밀었다.
“… 이걸 어찌하여 나에게 주는 것이오.”
“내가 없애려고 했으나 그대가 없애야 할 것 같았소.”
“….”
“길을 알려준 답례니 개의치 말고 받으시오.”
혈심경을 그냥 내 손으로 불태울 수 있으나 그것은 도리가 아니었다.
이것으로 가족을 잃고 평생을 쫓던 사람이 있었으니까.
그래서 난 암영살귀의 손으로 혈심경을 없애게 해줬다.
꽉.
혈심경을 쥔 암영살귀의 손에 힘이 쥐어졌다.
눈시울이 붉어지고 눈물이 뺨을 타고 흘렀다.
그리고 그는 모닥불이 피어오르는 곳으로 걸어가 혈심경을 그곳으로 휙 던졌다.
화르르르륵.
저번 삶에서도 혈겁의 시발점이 됐던 혈심경이 불탔다.
혈심경은 검은 재가 되어 하늘로 사라졌고 암영살귀의 눈물은 땅에 뚝 떨어졌다.
“…. 고맙소. 내 평생의 한을 이리 푸는구려.”
*
송삼현에게 당한 천뇌는 영살 협곡에서 벗어나 외진 산골로 들어갔다.
흑매는 주변을 정찰하곤 정파의 수색대가 따라오지 않는 걸 확인한 뒤에 천뇌의 상태를 살폈다.
오른쪽 어깨는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이 너덜너덜 했고 복부에는 심한 관통상 때문에 지금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주군! 어서 빨리 의원에게 모시겠습니다.”
“… 됐다.”
“예?”
“내 몸은 내가 제일 잘 안다. 이미 틀렸다는 것도.”
“아닙니다! 지금 매를 띄었으니 곤명까지만 가면 의원들이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몸이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급히 지혈하긴 했으나 피를 너무 많이 흘렸다.
주르르륵.
의식이 희미해졌다.
죽음이 다가오는 거였다.
“흑매.”
“예, 주군!”
“충건이에게 전하거라, 내가 죽으면 그다음 걸어갈 길을 알려뒀으니 그대로 걸으라고.”
“아, 안 됩니다! 주군이 세운 길이지 않습니까!”
“내가 세웠으니 누군가는 이어야 하지 않겠느냐···. 그것이 충건이고.”
“주군···.”
노을이 지는 하늘.
그것을 보며 천뇌의 눈은 서서히 감겼다.
“결국에는 내가 그토록 원하던 세상을 보지 못하고 끝났다···. 흑매, 넌 나 대신 그것을 보고 오거라.”
지금의 하늘을 뒤집고 새로운 하늘이 탄생하는 새로운 세상.
그 세상을 손에 쥐는 것이 꿈이었거늘.
손을 뻗어 노을을 잡는 시늉을 해보지만, 노을은 잡히지 않고 손을 빠져나갔다.
“… 꿈을 꾼 지 오십 년이 흘렀지만, 내 꿈은 여전히 손에 잡히지 않는구나. 마치 저 노을처럼.”
스르르륵.
천뇌의 손은 낙엽처럼 땅에 힘없이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