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lf a penny from the Golden Tiger RAW novel - Chapter 90
아미의 여승들 (5)
“바, 방주님!”
흑천오방주 가헌도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송삼현의 손에 단숨에 제압되자 흑도들은 당황해서 뒷걸음질을 쳤다.
“벽력탄을 내려놓거라. 그 손을 베어버리기 전에.”
흑도들은 여분의 벽력탄을 가져와 두 번째 공격을 하려고 했으나 벌어진 상황을 보고 벽력탄을 땅에 내려놨다.
벽력탄을 내려놓고 흑도들이 물러나자 송삼현은 아미파 여승들 사이에 있는 선무정에게 말했다.
“벽력탄을 회수해라.”
“존명.”
선무정은 금세 벽력탄 다섯 개를 회수하곤 아미파 여승들이 있는 곳으로 갔다.
“으으으으! 강호의 균형을 깨트릴 심산이오!”
흑천오방주는 얼굴 절반이 바닥에 눌렸는데도 필사적으로 말했다.
“균형?”
“강호에는 균형이라는 게 있지 않소! 정사마! 그리고 관까지! 어느 한쪽이 무너진다면 혼란이 생길 거요.”
강호는 철저한 균형이 있었다.
정파가 있으면 사파가 있고 천산 산맥에는 마교도 있었다. 그들은 암묵적으로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고 균형을 유지했다.
허나 그것은 관아만 해당됐다.
정사마는 시대마다 전쟁을 일으켰고 지금도 어느 한 곳이 먼저 싸움을 시작해도 이상하지 않을 아슬아슬한 균형만 유지됐다.
“흑천오방이 사라진다고 무너질 균형이라면 애초에 무너졌을 거요.”
그러한 균형에서 흑천오방이 차지하는 비율은 전혀 없었다.
“흑천오방이 사라진다고 해서 무엇이 바뀔 것 같소?”
“….”
“바뀌는 건 전혀 없소. 흑사회는 오히려 다른 방안을 생각해뒀겠지.”
“그, 그럴 리가 없소! 우리가 매년 얼마나 많은 세를 주는데!”
“흑사회도 굳이 나설 필요가 없지. 필주에서 얻어먹을 게 뭐가 있다고? 어차피 다른 녀석들이 차지하면 그 녀석들한테 세를 받아먹으면 되는데.”
손에 내공을 집중해서 흑천오방주의 숨통을 끊으려고 했다.
그러자 흑천오방주가 다급하게 말했다.
“사, 살려주시오, 시키는 건 뭐든 하겠소!”
목숨을 구걸했다.
“살려달라고 했소?”
“그렇소! 흑천오방주로서 대협께 필요한 거라면 뭐든 도움을 드리겠소! 재물! 흑천오방의 재물을 모두 드리겠으니 목숨만은 살려주시오!”
흑천오방주의 말에 흑도들이 웅성거렸다.
“당신은 그런 부탁을 들어줬소?”
“예?”
송삼현은 오른손으로 어딘가를 가리켰고 흑천오방주의 시선은 자연스레 그곳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아미파의 여승들과 수많은 양민들이 있었다.
“저들의 가족들 벗들이 살려달라고 했을 때, 살려줬느냐고 물었소.”
“….”
대답하지 못했다.
흑천오방주는 필주의 패자로서 군림하며 많은 아녀자와 남성들을 죽였고 살아남은 이들의 고혈을 빨아먹어 사리사욕을 채운 자였다.
“한 세력을 이끄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목숨을 그리 쉽게 구걸하지는 않지, 단 열 명뿐인 방파의 방주도 자신의 신념이 확고하다면 목숨을 초개처럼 내던지는데 당신에게선···. 신념이라는 걸 찾아볼 수 없군.”
죽이려고 손을 든 순간, 흑도들 틈에서 누군가가 소리쳤다.
“뭣들 하느냐! 흑천오룡들은 방주님을 구하라!”
흑천오룡.
흑천오방의 정예들로 각 방파에서 뛰어난 이들을 일컫는 말이었다.
그렇게 사방에서 신형이 날아왔고 다섯 명의 무인들이 송삼현을 에워쌌다.
툭.
그 사이, 송삼현은 흑천오방주가 움직이지 못하게 점혈을 하곤 그들을 봤다.
“흑천오룡이라, 흑도들이 건방지게 ‘龍’ 자를 쓰다니.”
“….”
“흑천오룡이 아닌 흑천오견으로 불러주마. 오거라.”
그들은 고작해야 절정의 끝자락에 이른 이들이었다.
아무리 발악해도 송삼현을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었기에 망설였다.
“도, 동시에 들어간다!”
“사방에서 들어가면 제 아무리 백의검룡이라도 놓치는 검이 있을 터! 들어간다!”
다섯 명의 무인들이 일제히 검을 날렸다.
‘… 굳이 검을 출수할 필요도 없군.’
움직임이 느렸다.
현경과 절정의 끝자락.
그들의 격차는 하늘과 땅이 아닌 땅을 파고 들어갈 만큼 컸다.
스윽.
첫 번째 검은 정면에서 왼쪽 어깨를 노리고 들어오기에 슬쩍 피했다.
푹!
그 검은 송삼현의 뒤에서 오던 무인의 가슴을 뚫었다.
“으윽.”
그리고 그자의 검도 마찬가지로 정면에서 오던 이의 가슴을 찌르며 서로 찌르는 형국이 됐다.
휘릭.
옆으로 오는 검을 피하자 오른쪽에서 오는 자와 왼쪽에서 오는 자의 검이 서로를 찔렀고 송삼현은 위에서 내려오는 검을 손가락으로 잡았다.
“이런 검술이라면 견이라는 별호도 아깝겠다.”
빠각.
잡은 검이 반으로 동강이 나고 송삼현은 그의 복부에 천무장을 날렸다.
퍼어어어억!
복부에 천무장을 맞은 이가 흑천오방의 전각으로 날아가 그대로 처 박혔다.
“또 올 녀석들이 있느냐.”
팔백 명이 넘는 흑도 무리.
그중에서 아무도 나서는 이가 없었다.
송삼현은 그들을 한 번 둘러보더니 바닥에 쓰러져서 꿈틀거리는 흑천오방주에게 다가갔다.
살아남기 위해 발악하는 흑천오방주의 다리 근맥을 끊어버렸다.
촤아아아악!
“사, 살려주시오! 제발! 제바아아알!”
촤아아아아악!
이번에는 양 팔의 근맥을 자른 뒤, 마지막으로 그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그저 손만 올렸을 뿐인데도 흑천오방주의 눈이 풀렸다.
아미오승의 장옥태가 무엇을 했는지 눈치챘다.
“설마, 무공을 폐하신건가.”
그녀의 말처럼 송삼현은 흑천오방주의 단전을 파괴하며 무공을 폐했다.
무공을 폐하는 것은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상대의 단전을 파괴할 만큼 내공이 뛰어나야 했으며 단전이 파괴되어 나오는 내공을 허공에 흩어지게 하는 것은 고도의 집중력이 있어야 했다.
“끄으으윽. 끄윽.”
근맥이 잘려 손과 다리를 움직일 수 없고 단전이 파괴되어 무공도 쓸 수 없기에 거리의 거지보다도 못한 폐인이 된 흑천오방주는 입에 거품을 물었다.
툭.
송삼현은 혈을 짚어 정신을 잃지는 않게 했다.
“죽이는 것은 내가 할 일이 아니오.”
죽이는 것을 할 수는 있으나 송삼현은 자신의 손으로 하지 않았다.
질질질.
흑천오방주의 뒷덜미를 잡고 바닥에 질질 끌고 어디론가 갔다.
그리곤 양민들의 한복판에 던져줬다.
양민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데 송삼현이 말했다.
“그대들이 마음대로 하시오.”
흑천오방주에게 피해를 본 이들.
그들에게 처분을 맡기는 것이 최선이었다.
송삼현이 보는 앞에서 양민들은 하나둘씩 폐인이 된 흑천오방주를 에워쌌다.
“이 놈 때문에! 이 놈 때문에!”
“쳐 죽일 놈!”
“내 딸은 어디로 팔아먹었냐! 이 쳐 죽일 놈아!”
“너 때문에 우리 어머니가 제 때 치료를 받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울분에 찬 이들은 시신을 마구 구타하기 시작했다.
필주를 지배하는 흑천오방.
그곳의 정점에 군림하며 수많은 고혈을 빨아먹고 사리사욕을 채운 자.
퍽!
주먹으로 때리고.
퍽!
발로 밟고.
퍽!
몽둥이로 때리고.
퍽!
돌을 던지며.
퍽!
흑천오방주의 의식은 흐려졌고 곧 그의 숨소리는 들리지 않게 됐다.
“그러면.”
송삼현은 남은 흑도들을 쳐다봤다.
“방주가 죽으면 다음으로 이곳을 이끄는 자가 누구요?”
*
“차 맛이 참으로 좋군요.”
흑천오방의 장원, 제일 높은 곳에서 송삼현은 태연하게 차를 마셨다.
그의 앞에는 아미파의 여승들도 있었다.
“대협.”
차를 마시던 주영약은 송삼현을 보며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제일 먼저 흑천오방주를 잡은 것은 다른 이들을 죽이지 않기 위해서지요?”
주영약의 말에 다른 여승들의 시선도 송삼현을 향했다.
“그렇습니다.”
“…. 어째서요?”
“수십 명의 흑도들이라면 모를까, 수백 명을 베는 것은 무분별한 살육이지요.”
“저들의 처리는 어찌하실 겁니까?”
스윽.
송삼현은 장원을 쳐다봤다.
흑천오방의 장원에는 살아남은 팔백여 명의 흑도들이 무릎을 꿇고 있었다.
인원수가 많아 장원만으로는 모자라서 흑천오방의 전각에도 빼곡하게 찼다.
“이미 많은 피를 보았습니다. 더 피를 봤다간 필주 전체의 균형이 무너지며 저들이 더한 고통에 빠질 것입니다.”
“고통이요?”
“필주 근방에는 호시탐탐 흑천오방의 영역을 노리는 사파들이 들끓는건 알고 있습니까?”
필주에 영향력을 행사했던 흑천오방이 무너지면 근처에 있던 다른 이들이 이권을 차지하기 위해 침범할 것이 분명했다.
“흑천오방이 사라지고 우리도 그냥 가버리면 근방에 세를 떨치던 이리 떼들이 이곳에 들어와 서로가 정점에 서기 위해 양민들의 고혈을 더 빨아먹을 것입니다.”
“그러면 저 자들에게 다시 이곳의 권한을···.”
“그건 절대 아닙니다. 살려는 주지만, 저지른 죄에 대한 합당한 처벌을 내려야지요.”
주영약과 대화를 하던 사이, 흑천오방의 정문으로 마훈이 피 칠갑한 채 들어왔다.
“주군!”
마훈은 장원을 가로질러 송삼현이 있는 곳으로 와 포권지례를 올렸다.
“명령하신 대로 필주 내에 있는 흑천오방의 도박장을 모조리 정리했습니다.”
“수고했다.”
찻잔을 내려놓은 송삼현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흑도들은 바들바들 떨었다.
“아까 저에게 저들을 어찌 처리할 것이냐고 물으셨지요?”
“예.”
“강호라는 곳의 규율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잘 보십시오.”
저벅.
저벅.
저벅.
송삼현이 걷는 모습을 모든 이가 지켜봤다.
그리고 부방주가 무릎을 꿇고 있는 앞으로 가서 말했다.
“흑천오방의 재물은 피해를 본 이들에게 공평하게 배분하게.”
“그리하겠습니다!”
흑천오방이 거둬들인 막대한 재물.
그것을 양민들에게 주는 것이 첫 번째 순서였다.
그리고 두 번째 순서, 그것이 송삼현의 입에서 나왔다.
“너희 모두를 죽이진 않을 거다. 그렇게 되면 너무 많은 피를 흘리게 되니까.”
“….”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는 사실에 몇몇 흑도들의 눈빛이 빛났다.
“그러나 무공을 폐할 것이다.”
그러나 이어지는 말에서는 그 누구도 웃지 못했다.
무인의 무공을 폐한다는 것은 곧 ‘죽음’과 같은 의미였다.
분해서 바들바들 떠는 이들도 있었으나 어쩌겠는가 이것이 그들이 선택한 길에 대한 책임인 것을.
“너희들이 저지른 죄는 죽어 마땅하나 무공을 폐하는 것이 가장 올바른 처사라고 여겼으니 받아들인다면 자리에 가만히 있고 아니라면 스스로 자결할 기회를 주마.”
벌떡.
그때 무리에서 젊은 흑도 한 명이 일어났다.
“과한 처사입니다! 무인에게 무공을 폐하게 하다니요!”
그러나 송삼현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바닥에 떨어진 누군가의 검을 차서 그의 발 아래로 줬다.
“내가 오순도순 이야기하자고 하는 것으로 보이느냐? 그것이 싫다면 스스로 자결할 기회를 주지 않았느냐.”
“그, 그래도! 무공을 폐하면 저희도 전 방주처럼 매 맞아 죽으라는 거 아닙니까!”
송삼현의 입가에 웃음이 지어졌다.
“그렇다.”
“… 예?”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말을 아느냐?”
“….”
“사람들은 경험해본 적이 없으면 쉽게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니 역으로 경험해봐야 당하는 입장이 얼마나 엿 같은지 알지.”
꿀꺽.
송삼현의 싸늘한 음성에 젊은 흑도는 두려움에 마른 침을 삼켰고 송삼현은 모두에게 말했다.
“너희들이 그동안 해온 패악질을 똑같이 당해보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