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lf a penny from the Golden Tiger RAW novel - Chapter 91
아미의 여승들 (6)
무공을 폐하는 것은 미시에 시작되어 해시가 되어서야 끝나갔다.
마지막은 부당하다고 외쳤던 젊은 흑도였다. 그는 송삼현을 노려보면서 짙은 살기를 퍼트렸다.
“… 평생을 저주할 거요. 당신이 혼인한다면 그 가족, 그리고 그 가족이 또 가족을 만든다면 그 가족까지도.”
“마음대로 하거라.”
머리에 오른손을 올린 뒤, 흑도의 몸 안으로 내공을 흘려보내 단전을 감쌌다.
그리고 한 번에 움켜잡으며 단전을 파괴하자 몰려오는 고통에 흑도는 정신을 잃을 뻔했다가 꾹 참고 다시 송삼현을 노려봤다.
입가에서는 피가 흘러나왔으나 눈빛의 기세는 조금도 사그라지지 않았다.
그 눈빛에는 원망이 짙었고 그것을 본 송삼현은 품에 있는 비도를 꺼냈다.
“너 같은 눈빛을 잘 안다.”
저번 삶에서도.
또 이번 삶에서도.
“그 눈빛을 한 이들은 후일에 꼭 일을 벌이지.”
“… 자, 잠깐! 무엇을 하려는 것이오!”
촤아아아악!
다리의 근맥을 잘라버렸다.
“억울해하고 분해하거라, 원망하려면 얼마든지 원망해라. 너희들이 그런다고 달라질 것은 없으니까.”
그렇게 흑천오방의 흑도들은 무공을 잃었고 독기가 가득한 이들은 근맥까지 잘리며 일이 마무리가 됐다.
*
동이 트는 이른 오전부터 흑천오방 본파의 앞에는 재물이 산처럼 쌓여갔다.
“그건 저쪽으로 가져다 놓으시오.”
“예!”
“항아리는 이쪽이오! 깨지지 않게! 조심해서!”
그 광경을 지켜보는 인파는 서서히 늘어났고 아미오승 장옥태를 비롯한 아미파 여승들이 현장을 통제했다.
“모두 줄을 서십시오! 그리고 흑천오방의 장부에 적힌 대로 피해를 본 이들을 확인하고 재물을 나눠 줄 것입니다!”
흑천오방의 막대한 재물은 아미파의 여승들과 선무정이 책임을 지고 나눠줬다.
장부를 확인하고 한 명 한 명 재물을 나눠줬고 한 남성이 가족들을 데리고 와 재물을 받으며 눈치를 봤다.
“저, 정말 아무런 조건이 없이 주시는 겁니까?”
“원래 그대들의 것이니 드리는 겁니다.”
“… 정말이요?”
“그럼요. 저의 주군께서 명하신 거니 그 누구도 개입하지 않을 겁니다. 줬다가 다시 뺏지도 않으니 너무 불안해하지 마세요. 주군은 이러한 재물이 없어도 평생 먹고 살만큼 돈이 많으시거든요.”
송삼현이 누구인가, 중원에서 돈이 마르지 않는 천하 3대 장원, 금호장의 아들이었다.
그런 그에게 이러한 재물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것이 당연했다.
그 말을 들은 모인 모두가 함성을 질렀다.
“와!”
“백의검룡 대협 만세!”
“협을 대표하시는 분다워! 난 앞으로 백의검룡께서 계시는 방향으로 매일 밤 절을 할 걸세!”
재물을 가져가는 양민들이 기뻐하는 것을 보자 아미파 여승들도 덩달아 기뻤다.
선무정은 미리 준비한 먹을 것을 어린아이들에게 나눠줬다.
“천천히 먹거라, 부족하면 얼마든지 더 줄 터이니.”
어린아이들은 양손에 만두를 들고서 허겁지겁 먹었다.
그런 그에게 주영약이 다가갔다.
“만두는 어디서 사 오신 거예요?”
“주군께서 이른 아침에 객잔에 가셔서 사 오신 겁니다.”
“대협께서요?”
“예. 굶주린 이들에게 나눠주라고요.”
“…. 대협께서는 지금 어디 계십니까?”
스윽.
선무정은 흑천오방 본파 전각 지붕을 가리켰다.
“아까부터 저기 계셨는데 모르셨어요?”
주영약은 전각에서 느긋하게 구름 구경을 하는 송삼현을 봤다.
자유로우면서도 엄격하고.
차가우면서도 따뜻한 모습.
‘내가 생각하던 협행을 걷는 분이구나.’
어머니의 손을 잡고 아미파의 제자로 들어갔을 때만 해도 송삼현처럼 협의를 꿈꿨었다.
허나.
재능이 부족했다.
사대 제자 중에서도 항상 벗인 주영설에게 밀리며 주영약의 검은 필두에 설 자질을 갖추지 못했다.
“부러우냐.”
장옥태가 멍하니 송삼현을 바라보는 주영약에게 말하자 주영약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나도 그렇구나.”
“이미 아미오승에 오른 사저가요?”
아미파에서 아미오승은 장문인 다음으로 강한 다섯 명에게 주어지는 별호였다.
그런 자리에 오른 장옥태도 송삼현을 부러워하자 주영약은 말을 쉽게 잇지 못했다.
“무공을 익혔다면 항상 강한 자를 부러워하는 마음이 있다. 그게 협의지심이 강한 자라면 더더욱.”
강자를 동경하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다. 장옥태도 그렇기에 송삼현을 동경하는 마음이 컸다.
“백의검룡 대협께서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시는 걸까요?”
“땅속의 개미부터 저 하늘을 나는 새까지 이 세상에 모든 이들이 각자의 고민을 품고 살아간다. 그러니 백의검룡께서도 홀로 고뇌할 무언가가 있는 것이겠지.”
“저리 강하신데도요?”
“강할수록 고민이 깊어지는 법이란다. 명심하거라.”
주영약은 송삼현을 보다가 시선을 거두고 장옥태를 봤다.
“사저.”
“왜 그러느냐.”
“그러면 저희의 일도 대협께 말씀드리면···.”
장옥태는 화들짝 놀랐다.
“절대 안 된다! 백의검룡 대협께 폐를 끼칠 순 없다!”
*
송삼현은 지붕에서 느긋하게 구름이 흘러가는 걸 보다가 누군가 걸어오는 인기척이 느껴지자 눈을 감으며 말했다.
“무슨 일이냐.”
그 사람은 마훈이었다.
“한 가지 여쭐 것이 있어서 왔습니다.”
“무엇을?”
“어째서 저들에게는 저에게 주셨던 것처럼 기회를 주지 않았던 겁니까?”
“저들은 너와 마음가짐 자체가 달랐기 때문이다.”
“마음가짐이요?”
“너는 그 검을 들고 단 한 번이라도 무고한 이들을 상하게 한 적이 있더냐?”
송삼현의 말을 듣고 마훈은 무언가 크게 한 방 맞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없습니다.”
“그게 차이다. 누구나 엇나가는 시기는 있다. 하지만 그 시기에도 초심을 잃은 자와 잃지 않은 자의 차이는 명확하게 갈리지. 넌 잃지 않았기에 내가 기회를 준 것이고 저들은 잃었기에 기회를 주지 않은 거다.”
사람들은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고 자신이 원하지 않는 길을 걸을 수 있었다. 하지만 모두가 그렇게 된다고 엇나가는 건 아니었다.
“내가 하는 행동이 정답인지는 나도 정확히는 모르겠다. 하지만.”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을 보며 말했다.
“옳은 선택이길 바랄 뿐이다.”
*
흑천오방의 재물을 피해를 본 양민들에게 모두 돌려주고 난 다음 날, 중식을 먹은 송삼현은 흑천오방 부방주와 함께 지하로 내려갔다.
“이곳입니다.”
그가 안내한 곳은 두꺼운 철문으로 된 창고 앞이었다.
끼익.
문을 열고 들어가 주위를 살폈다.
혹시라도 함정이 있을 수 있나 살폈으나 그런 건 딱히 없었다.
“생전에 흑천오방주가 따로 귀중한 것을 보관하기 위해 만든 철방입니다.”
괜찮은 물건들이 있으나 그다지 마음에 끌리는 건 없었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이 방 안에 다른 방이 하나 더 있습니다.”
부방주는 시키지도 않았는데 방의 오른쪽 벽으로 걸어가더니 벽돌을 꾹 눌렀다.
끼기기기기기긱!
그러자 기괴한 소음과 함께 바닥에 문이 열렸고 아래로 내려갈 수 있게 계단이 나타났다.
“….. 사파 놈들이 쓸데없이 치밀하군.”
“방주가 생전에 만든 기관입니다. 기관을 아는 사람들은 저와 방주뿐입니다. 들어가시지요.”
계단으로 내려가서 들어간 방 안은 그리 크지 않았다.
폭이 일장밖에 되지 않은 작은 방에 왼쪽, 정면, 오른쪽, 이렇게 세 개의 함이 있었다.
먼저 왼쪽 함에는.
“화웅심법.”
“전 방주의 비급서입니다.”
송삼현에게 필요가 없는 거였다.
그리고 오른쪽에는 다른 비급서가 있었다. 그것을 본 송삼현의 두 눈이 커졌다.
‘천월신궁(穿月神弓).’
천월궁귀의 비급서가 어째서 여기에 있는 거지?
“이 비급서는 무엇이냐.”
부방주에게 묻자 고개를 갸웃거렸다.
“소인도 자세한 건 모르오나 방주께서 이레 뒤에 누군가에게 전달해야 한다고만 했습니다.”
“누군가에게? 혹, 흑사회더냐?”
“아닙니다. 마교 쪽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 말에 송삼현은 웃었다.
천월궁귀(穿月弓鬼), 그는 흑사회가 아닌 마교쪽 사람이었다.
허나 그곳에서 핍박받고 제대로 설 자리가 없어 마교를 떠나 중원으로 나왔고 그때, 천월신궁을 익혀 천월궁귀로 이름을 날렸다.
‘이거 잘하면 천월궁귀까지 손에 넣을 수 있겠군.’
무엇보다 천월궁귀는 어느 한 세력에 속한 무인이 아닌 중립적인 존재였다.
정사마를 막론하고 그저 궁술의 극에 도달하고자 하는 사람, 전쟁 때는 정체를 드러내지 않고 무림맹을 뒤에서 몰래 도와준 자였다.
“이것은 내가 가져가겠다.”
“물론입니다! 이곳에 있는 모든 것은 다 대협의 것입니다!”
천월신궁의 비급서를 품에 갈무리한 뒤에 마지막으로 정면에 놓인 함을 열었다.
“이건.”
안에 있는 것은 영롱한 빛을 내는 붉은색의 삼이었다.
“혈삼이 아니냐.”
“맞습니다.”
“이 정도 크기면 적어도 수백 년은 되어 보이는군.”
“방주에게 듣기로는 오백 년은 되어 보인다고 했습니다.”
“한데 이걸 왜 복용하지 않은 거지?”
“천월신궁을 가져갈 이에게 준다고 들었습니다.”
송삼현은 자신이 생각하는 것이 맞아떨어지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된 거였군, 갑자기 중원에 나타난 천월궁귀의 시작점이 이곳이었을 줄이야.’
천월궁귀와는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다. 그래서 정보가 많이 없었다.
단지 서신으로만 몇 마디 주고받은 게 다였다.
저번 삶을 생각하며 송삼현은 혈삼이 든 함을 품에 갈무리했다.
“이것도 내가 챙기겠다.”
“그리하십시오.”
“그리고 이것을 가지러 오는 이에게 서신을 한 통 보내거라.”
“서신이라면 어떤?”
송삼현이 말을 해주자 부방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보내겠습니다.”
“아, 그리고.”
“말씀하십시오.”
“너는 필주의 상황을 잘 알고 있으니 후에 이곳을 관리할 자가 나타나면 잘 알려주거라.”
“여부가 있겠습니까. 이리 목숨을 살려주신 것만으로도 소인은 대협의 은혜에 감복할 따름입니다.”
무공이 폐해졌음에도 부방주는 원망 같은 걸 하지 않았다.
오히려 살려준 것에 대한 고마움.
그것이 커서 송삼현이 하는 말에 모두 복종했다.
“한데 어떤 분들이 필주로 오시는 겁니까?”
“내가 믿는 이들이지.”
창고를 나오고 밤이 깊어졌다.
부방주는 돌아가고 송삼현은 잠이 오지 않는지 밤 산책을 했다.
그러던 중.
“응?”
아미파 여승들이 지내는 처소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
며칠 후.
필주 대안현 거리에 마차가 나타났다.
그 주위를 호위하는 녹색 복장의 무사들과 긴 행렬에 사람들은 지나가다 말고 멈춰서서 구경했다.
펄럭.
가장 선두에서 휘날리는 기.
“왕 씨, 자네 오래전에 학당에서 허드렛일하면서 글을 배우지 않았는가. 어떤 분들이신가?”
그 기를 보고 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들은 어떤 이들의 행렬인지 눈치챘다.
“대단한 분들이 필주에 왔소.”
“뜸 들이지 말고 말해주게.”
“그게 말일세···.”
그 행렬은 흑천오방의 본파 앞에 멈췄다.
여전히 주위에 사람들이 많았고 흑천오방의 본파 앞에는 송삼현 일행이 마중을 나와 있었다.
“어! 저 문양은 설마.”
기에 새겨진 문양을 본 아미파 여승들도 어떤 이들인지 알아차렸다.
송삼현이 서서 기다리다가 마중을 나갔고 마차에서 내리는 이에게 정중하게 인사를 건넸다.
“행렬을 이끌고 먼 길을 오셨소. 당 소저.”
“이리 또 뵙네요. 대협.”
행렬의 마차에서 내린 여인, 그리고 그 여인 뒤로 휘날리는 기.
‘당(唐)’
이 근방에서 이 기를 쓰는 이들은 사천당가 뿐이었고 마차에서 내린 사람은 당수향이었다.
그녀가 입은 연보랏빛 비단옷이 바람결에 살랑였고 아름다운 미모에 남녀노소 구분할 것도 없이 모두가 입을 벌리곤 멍하니 바라봤다.
그녀가 걷는 모습은 마치 선녀가 내려와 호수를 걷는 것처럼 숨이 멎을 만큼 아름다웠다.
남들에게는 차가운 냉기를 풀풀 풍기는 당수향이지만, 송삼현에게는 꽃처럼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영살 협곡에서 그리 빠르게 헤어져서 아쉬웠습니다.”
“나도 그렇소.”
“알고 있어요. 표정에 드러나거든요.”
“티가 나오?”
“너무 나요.”
“거짓말이 늘었구려.”
“쳇, 그럴 때는 그냥 그렇다고 해주면 안 돼요?”
“거짓말을 못 하는 성격이라.”
“나중에 대협의 여인이 될 사람은 답답하겠어요.”
“그리 생각하오.”
“뭐 그것도 나쁘지 않겠네요.”
“예? 뭐라 했소?”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나저나 저희에게 부탁할 게 뭐예요? 서신에는 정확하게 안 쓰여 있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