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lf a penny from the Golden Tiger RAW novel - Chapter 92
금호장으로 돌아온 삼 공자 (1)
당수향은 아미파 여승들과도 인사를 한 뒤에 나를 따라 흑천오방 장원 안으로 들어갔다.
“흑도들이다! 오행진을 펼쳐! 아가씨를 호위하라!”
아직 채 장원을 나가지 못한 흑도들에게 호위무사들은 극도의 경계심을 보이며 당수향을 에워싸곤 허리춤에 찬 검을 발도했다.
“그리 경계할 필요는 없소. 모두 무공이 폐해진 이들이오.”
무공이 폐해졌다는 말에 그제야 경계를 늦췄으나 아예 풀진 않았다. 뭐, 저 모습이 호위의 모습이니 상관하지 않았다.
“대협이 하신 거예요?”
“그렇소.”
“무공을 폐하는 것은 무사들에겐 죽음보다도 수치스러운 일이잖아요.”
당수향은 검을 들고 싸우는 무사는 아니지만, 무공을 폐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잘 알았다.
“그래서 그랬소.”
“예?”
“저들도 겪어봐야 하지 않겠소. 자신들이 어떤 죄를 저질렀는지.”
그 말을 하곤 걸어가는데 당수향이 넌지시 물었다.
“그런 분이 흑해도문은 단칼에 멸문지화를 시키셨어요? 그들도 이렇게 살릴 수 있었잖아요.”
흑천오방과 흑해도문.
모두 내 손에 멸문당했으나 결과가 달랐다.
흑천오방은 무공이 폐해지며 살아남은 이들이 있었으나 흑해도문은 단 한 사람도 남지 않고 죽임을 당했다.
어째서 그들은 다 죽이고 이들은 살렸는가.
그 질문에 내가 할 말은 하나였다.
“방법의 차이였소.”
“차이라면? 그들이 왜구 행세를 하고 약탈한 거요?”
“그렇소. 이들도 양민들을 죽이긴 했으나 그것은 소수요. 흑해도문은 흑천오방이 죽인 이들의 백 곱절은 죽였소. 그리고 납치한 이들을 인신매매로 왜국에 팔아넘기려고 했지.”
흑해도문이 왜구 행세를 하며 죽인 이들의 시체만 해도 바다 위에 섬을 만들 만큼 많았다.
흑천오방은 그래도 사람이라는 낯을 쓰고 있었지만, 흑해도문은 이미 살육에 물들어 변하기 힘든 짐승으로 변해 있었다.
만일 무공을 폐하고 살려준다고 해도 그 맛을 들인 짐승들이 할 것이라곤 또 다른 약탈뿐인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저번 삶에서도 똑같은 이들이 있었으니까.
“내가 한 일이 모두 옳은 것은 아니오. 흑해도문을 멸문시킨 일은 아마 내가 잘못 생각한 것일 수도 있지.”
“….”
“하지만 이미 행한 일에는 되도록 후회는 남기지 않으려고 하오.”
*
산세가 보이는 경치가 좋은 방으로 들어갔다. 그 안에는 다과가 마련되어 있었다.
당수향을 비롯해 아미파 여승들도 자리에 앉으며 대화가 시작됐다.
“그래서 하실 말씀은요?”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소. 이곳에 사천당가의 분타를 세우는 것이 어떻겠소?”
내 입에서 나온 말에 모두가 당황했다.
가장 당황한 것은 당수향이었다.
마시던 찻잔을 그대로 든 채, 나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사천당가의 분타를 필주에요? 이곳이 어떤 곳인지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정파 진출의 걸림돌이던 흑천오방은 처리했으니 사천당가는 그냥 발만 들이밀면 되오.”
필주는 사천, 운남, 귀주, 이 세 곳의 중심으로 상업이 많이 발달 되어 무수히 많은 재물을 얻을 수 있는 구조니 사천당가가 분타를 세우면 엄청난 이득을 얻을 수 있는 구조였다.
“무림맹이나 금호장도 있잖아요. 대협의 이름이라면 그곳에서도 가만히 있지 않을 텐데 왜 굳이 사천당가에 부탁하시는 거예요?”
“내가 믿는 사람에게 맡기고 싶었소.”
말을 들은 당수향은 미소를 지었다.
“기분 좋은 말씀을 하시네요. 사실은 귀주성과 먼 무림맹이나 금호장보다 가까운 사천과 연결이 되어야 빠르게 안정을 찾기 때문이잖아요.”
무림맹과 금호장이 큰 세력이긴 하지만 필주의 지역 이점을 생각하면 사천당가만큼 괜찮은 곳이 없었다.
말을 달리면 이틀 거리.
그 거리라면 어떤 일이 있어도 즉각적인 대응이 가능했다.
그렇기에 사천당가만큼 필주에 어울리는 곳은 없었다.
“…. 눈치가 빠르오.”
“어릴 때부터 그랬어요.”
당수향은 차를 한 모금 마시더니 이어서 말했다.
“저희에겐 나쁘지 않은 제안이네요. 필주에 분타를 세우는 건 조부님때부터 생각했던 일이니까요.”
“그리고 부탁이 하나 있소.”
“부탁이요?”
“그 분타의 무사들로 아미파 여스님들을 고용해주길 바라오.”
내 말에 장옥태가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
“예? 그게 무슨.”
“며칠 전, 했던 말이 있지 않소. 아미파의 재정이 좋지 않다고.”
“그, 그걸 어찌.”
“며칠 전, 밤 산책을 하다가 들었소. 미안하오, 엿들은 게 아니라 들렸소.”
장옥태의 얼굴이 붉어졌다.
며칠 전, 잠이 오지 않아 밤 산책을 하던 도중 아미파 여승들이 하는 말을 들었다.
아미파에 문제가 있다는 말을 듣고서 무조에게 서신을 보내 전말을 알아보게 했고 어젯밤 답신을 받았다.
[아미파의 제자가 급작스럽게 늘어나고 그 일대가 기근이 들면서 곡식값이 뛰어 금전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몇몇 제자들이 근처 객잔을 보호해주며 보호세를 받고 있긴 하지만 그것으로 생활하기는 빠듯하니 오래전부터 인연이 있던 남궁세가에 도움을 청하는 길로 파악됩니다.]
그 보고를 듣고서 생각을 한 것이 사천당가의 분타에 고용되는 일이었다.
당황하는 장옥태를 보며 말했다.
“사천당가는 믿을 만한 곳이오, 그리고 여기 있는 이 소저는 내가 믿는 몇 안 되는 사람이고.”
사천당가의 대답이 중요했다.
그들이 원하지 않는다면 안 되니까.
당수향은 웃음을 지었다.
“저희야 협심이 가득한 아미파 분들과 연을 맺을 수 있다면 그보다 기쁜 일은 없지요.”
“그러면 됐군.”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어요. 그러면 아미파 분들이 분타를 세우는 게 낫지 않아요? 굳이 저희를 통해서 세우는 이유라도 있나요?”
“경험의 차이요.”
“아.”
당수향은 단번에 이해했다.
“아미파 여스님들의 무공은 뛰어나지만, 속세의 경험은 현저히 부족하오. 그렇기에 사천당가가 그 길을 도와주길 원하는 거요.”
아미파가 무공으로 인정받는다곤 하지만 아미산에만 있었기에 속세의 경험이 부족했다.
그래서 곁에서 강호에서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줄 사람이 필요했고 난 그걸 사천당가에 부탁한 거였다.
“당가에서도 밑지는 장사는 아니지 않나요?”
“예?”
“무공이 뛰어난 아미파 여스님들과 함께라면 필주 거리는 더 단단히 사천당가의 규율대로 흘러갈 겁니다.”
사천당가도 거절할 이유가 없었기에 당수향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대협의 뜻대로 아미파 여스님들과 함께 이 필주를 꾸려나가 보지요.”
*
이틀 후, 나는 떠날 채비를 끝내놓곤 마지막으로 선무정, 마훈과 같이 거리를 둘러봤다.
“거리가 안정됐구나.”
“사천당가의 입김이 강하긴 하군요. 흑도가 지배했던 곳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할 만큼 사람들의 기운이 밝아졌습니다.”
처음과 달리 사람들의 웃는 낯이 많아지고 아이들이 거리를 활기차게 뛰어노는 것을 본 선무정도 놀라워했다.
이러한 변화가 가능했던 것은 당수향의 지휘하에 사천당가가 세운 규율 덕분이었다.
그 규율 중에서도 흑도들의 지배를 받던 이들은 보호세를 면제해준다는 것에 크게 기뻐했고 같이 온 사천당가 무사들이 일을 거들어주면서 필주 거리가 활기차졌다.
“그만하고 가자. 시일이 많이 지체되었구나.”
“예! 주군.”
우리는 다시 길을 나서기 위해 말에 올랐고 아미파 여승들도 곁으로 걸어왔다. 그리곤 장옥태를 비롯해 아미파 여승들이 포권지례를 했다.
“대협의 은은 죽어서도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그만하고 고개를 드세요. 그런데 다른 이들은요?”
여섯 명의 여승들에서 지금은 세 명뿐이었다.
“저는 계속해서 영약과 지유를 데리고 대협과 남궁세가로 갈 것이고 이곳은 아미파의 다른 사매들이 올 때까지 영설이가 남기로 했습니다.”
“그렇군요···. 그러는 소저는?”
이들과는 어차피 동행하기로 했으니 더 물을 것이 없었으나 한쪽은 달랐다.
금실로 수놓은 아름다운 궁장차림의 당수향이 말에 올라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가 내 물음에 나를 봤다.
“왜요? 저랑은 같이 못 가시나요?”
“그런 게 아니오. 남궁세가에 이미 사천당가의 축하 사절이 가지 않았소?”
“예, 아버지와 제 아우 만우가 갔습니다.”
“… 그러면 굳이 소저가 갈 필요가 있소?”
“남궁유유가 저의 벗입니다. 그런데 제가 안 가는 게 말이 될까요?”
“알겠소. 같이 갑시다.”
말이 출발했고 아미파 여승들은 승마를 배운 적이 없어 말을 타지 못한 채, 종종걸음으로 따라왔다.
“그런데 이대로 가다간 혼례일에 늦을 겁니다.”
“알고 있소. 그러니 어서···.”
“제가 지름길을 압니다.”
“그거 다행이군.”
필주를 벗어나자 당수향이 무언가 떠올랐는지 나에게 물었다.
“아, 대협.”
“왜 그러오?”
“생각해보니까 대협은 남궁세가가 아니라 금호장으로 가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금호장? 혼례는 남궁세가에서 하는 게 아니었소?”
“원래 혼례 때는 두 가문이 직접 만나지는 않아요. 혼례가 끝나고 혼례연 때 만나는 거지요.”
“….”
이번 삶에서도 그렇고 저번 삶에서도 혼례를 경험한 적이 없으니 뭘 알겠나.
“그러면 난 먼저 금호장으로 가보겠소.”
“예? 대, 대협!”
“혼례연 때 다시 봅시다!”
난 황급히 말을 달리며 그들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
이십 일 뒤.
강소성 남경.
금호장은 나뭇잎들이 붉게 물든 ‘현무호(玄武湖)’를 끼고 위엄 넘치는 궁처럼 자리 잡고 있었다.
끝도 없는 인파가 마치 장강의 물결처럼 흐르며 금호장으로 이어졌다.
기다리는 인파들은 붉은 잎들이 만발한 금호장의 외관을 보며 나지막히 감탄사를 뱉었다.
“남궁세가와 금호장의 혼례라서 그런지 강호 전체가 움직이는 것 같구먼.”
“그것도 그렇지. 무의 정점에 있는 남궁세가와 재의 정점에 있는 금호장이 뭉친다면 황궁도 부럽지 않은 영향력을 누릴 수 있으니까.”
무를 대표하는 남궁세가.
재를 대표하는 금호장.
이 두 세력이 하나로 합쳐지는 것이니 어떻게든 연을 데려는 이들로 북적였다.
금호장주 송우태는 장원으로 나와 찾은 객들을 직접 맞이해줬다.
금색으로 된 장포를 걸치고 위엄을 뽐내는 그는 한 마리의 호랑이처럼 엄청난 기운을 내뿜었다.
송우태를 처음 본 이들은 자연스레 그 기세에 압도되었다.
“다들 어서 오시오, 먼 걸음을 해주어 고맙소.”
“이렇게 금호장주님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금호장의 경사에 저희 팔도상단이 빠질 수가 있겠습니까. 축하드립니다.”
“동강 상단도 축하 인사를 드립니다.”
“경운 상단도 축하 인사를 드립니다.”
“창천 상단도 축하 인사를 드립니다.”
중원 굴지의 상단주들을 비롯해 무가에서도 찾아왔다.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장주님, 잠시.”
대장궤가 다가와서 말을 하자 송우태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이 있어 잠시 자리를 비우겠습니다.”
그렇게 찾은 객들에게 포권을 한 뒤에 전각으로 들어갔다.
그 안에는 송일현과 송이현이 있었다.
“아버지. 이제 곧 연화가 떠날 시각인데 삼현이가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기다리거라, 금호장을 미워하는 아이라고 하지만 제 누이의 혼례를 모른 척하지는 않을 것이니.”
“사람을 보내 다시 알아보겠습니다.”
“그렇게 하거라, 그리고 일현이와 이현이는 무가에서 온 이들을 맞이하거라.”
“예, 그리하겠습니다.”
*
붉은 잎들이 떨어지는 청월각.
주인이 없는 그곳을 바람에 떨어지는 붉은 잎같이 붉은 옷을 입은 송연화가 시녀들과 함께 거닐었다.
‘이곳에 참 많은 일들이 있었지.’
어릴 적부터 송삼현과 보낸 기억들이 아른거렸다.
송삼현이 처음으로 꽃을 따서 선물로 준 것.
같이 떡을 만들어 먹었던 곳.
달구경을 했던 곳.
검을 휘두르며 수련을 했던 곳.
탄생일 때, 선물을 준비하지 못했다며 나중에 꼭 달처럼 아름다운 선물을 주겠다고 약조하던 어린 아이의 모습.
눈을 감으니 아직 그때의 모습들이 눈에 선했다.
옛 추억에 잠기며 우수에 찬 눈빛으로 청월각을 바라보는 송연화의 눈에는 슬픔이 담겨있었다.
‘오지 않는 것이냐.’
며칠 전, 송삼현에게서 조금 늦을 것 같다는 서신이 오긴 했으나 혼례 당일에는 꼭 온다고 했었다.
그러나 금호장을 떠나려는 지금까지 나타나지 않았다.
“하아.”
송연화가 한숨을 쉬자 곁에 있는 시녀들도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러다가 한 시녀가 오더니 말을 했다.
“아가씨, 이제 가셔야 합니다. 남궁효우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알겠다. 가자꾸나.”
시녀가 말하자 송연화는 청월각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 소월아, 삼현이는?”
시중을 드는 시녀들 옆에 소월이도 있었다.
“아직 소식이 없으십니다.”
“그렇구나.”
“그래도 너무 상심하지 마세요. 공자님은 절대 약조를 어길 분입 아니시잖아요.”
“그렇긴 하지만 아쉽구나. 떠나기 전에 삼현이 얼굴을 보고 가고 싶은데.”
그때, 멀리서 누군가가 황급하게 뛰어왔다.
“아, 아가씨!!!”
“무슨 일인데 그리 호들갑이냐.”
“백의검룡이십니다! 삼 공자께서 금호장으로 돌아오셨습니다!”
금호장을 떠난 지 일 년이 넘는 시간.
드디어 송삼현이 금호장으로 돌아왔다.
이 소식은 반각도 되지 않아 금호장 장원 전체로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