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lf a penny from the Golden Tiger RAW novel - Chapter 93
금호장으로 돌아온 삼 공자 (2)
말발굽 소리가 거리를 울렸고 금호장 앞에 모인 사람들은 그곳을 쳐다봤다.
세 필의 말이 먼지바람을 일으키며 금호장으로 오고 있었다.
“저들은 누구인데 감히 대 금호장 앞에서 말을 타고 있지?”
“금호장 앞에선 하마(下馬)하라는 금언을 모르는 자들인가? 목이 달아나고 싶어 환장했군.”
명부를 확인하던 무사가 말을 타고 오는 이들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다가 말을 탄 사람의 얼굴이 서서히 가까워지자 화들짝 놀랐다.
금호장의 사람들이라면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잊을 리가 없는 얼굴, 삼 공자 송삼현이었다.
“사, 삼 공자님! 공자님이시다! 어서 길을 여시오! 어서!”
무사가 하는 말은 금호장으로 들어가기 위해 기다리던 이들의 귓가로 들렸고 웅성거리는 소리가 커졌다.
“백의검룡 대협이시다!”
“뭐라고? 백의검룡 대협? 저분이 금호장의 삼 공자님이시라고?”
“눈처럼 하얀 백의! 백의검룡 대협이 확실해!”
말발굽 소리가 멈추자 송삼현이 말에서 내렸고 무사가 달려와 포권지례를 했다.
“삼 공자님을 뵙습니다!”
“내가 너무 늦었구나. 누님은 이미 금호장을 떠났느냐?”
“아직 계십니다!”
“알겠다. 그러면 말을 맡기겠다.”
“예!”
말의 고삐를 받은 무사를 뒤로하고 금호장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자 인파들은 양 갈래로 갈라져 송삼현이 지나갈 수 있는 길을 만들었다.
“감사합니다.”
송삼현이 그들에게 공손히 인사를 한 뒤에 그 길을 따라 금호장의 입구로 갔다.
입구를 지키던 무사들이 송삼현을 보더니 일제히 포권지례를 하며 말했다.
“삼 공자님, 다시 금호장으로 오신 걸 환영합니다.”
오랜만에 오는 금호장.
안으로 들어가자 보이는 경관은 변한 것이 없었고 지나다니는 시비들도 마찬가지였다.
‘이곳은 변함이 없구나.’
선무정과 마훈은 금호장의 장원을 보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 주군은 이곳을 버리고 강호를 누비셨던 거군요.”
“실컷 봐두거라, 또 언제 올지 모르니.”
송연화가 혼례를 하면 금호장에 올 일은 아예 사라지게 되니 이번이 마지막 방문이 될 터였다.
장원을 가로지르려고 하자 검을 찬 무사 한 명이 다가왔고 송삼현은 그 얼굴을 보곤 미소를 머금었다.
“청운대 중급 무사 강승유가 삼 공자님을 뵙습니다.”
“오랜만이군. 강 무사, 그새 하급에서 중급으로 올랐는가?”
“다 공자님의 가르침 덕분이지요.”
“더구나 청운대(靑雲隊)라니, 성공했구나.”
청운대는 금호장의 문을 지키는 이들로 구성된 부대였다.
워낙 중요한 일이었기에 금호장에서도 충심으로 인정받는 이들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이었다.
“다시 금호장으로 돌아오셨군요.”
“돌아온 것이 아닌 잠시 온 거다. 누님의 혼례인데 내가 빠지면 안 되지.”
“그렇군요. 그러면 뒤에 있는 이들은···?”
“강호행을 하면서 사귄 벗들이니 강 무사가 이 자들을 대접해주겠는가?”
“물론입니다.”
그들을 강 무사에게 맡긴 뒤에 장원을 거닐었다.
그러자 전각에서 누군가가 나왔고 송삼현은 그를 보며 포권을 했다.
“장주님을 뵙습니다.”
송우태와 송일현, 송이현이었다.
“드디어 왔구나.”
“오다가 여러 일이 있어서 늦었습니다.”
“들었다. 필주의 패자를 자처하는 흑천오방을 없애고 필주 거리를 사천당가에게 줬다더구나.”
“그렇습니다.”
“어째서 그랬느냐?”
“필주 거리와 가까운 곳에서 강호에 영향력이 있는 가문은 사천당가가 유일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보다 빨리 거리가 안정되고 양민들이 평화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으니까요.”
“강호를 돌아다니더니 아주 현명해졌구나.”
송우태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자 뒤에서 말이 들려왔다.
“삼현아!”
그곳을 보며 포권을 올렸다.
“누님.”
붉은 꽃처럼 화사한 웃음을 짓는 그녀는 송연화였다.
*
섬서성 시안.
흑사회의 문양이 새겨진 장포를 걸친 이들이 궁궐처럼 호화로운 곳으로 갔다.
‘묵왕부(黙王部)’
정문에 걸린 팻말에도 위엄이 있는 그곳은 묵왕의 거처였다.
흑의인들은 정문이 아닌 후문으로 향했다.
후문의 옆 샛길에는 사람 한 명이 지나갈 정도의 작은 별문이 있었다.
끼익.
문이 열리자 두 눈이 보이지 않는 노인은 인기척만 느끼곤 인사를 했다.
“오셨습니까.”
머리를 감싼 장포를 벗자 한충건의 얼굴이 드러났다.
“묵왕께서는 어디 계십니까?”
“집무실에 계십니다.”
“제가 온다고 기별을 드렸는데 지금 바로 뵈어도 될까요?”
“왕야께서 아직 집무를 보시는 관계로 저를 따라오시지요.”
노인은 눈은 보이지 않았으나 지팡이로 땅을 두드리며 능숙하게 길을 찾았다. 그렇게 따라간 곳은 별채였다.
“이곳에서 기다리십시오.”
“알겠습니다.”
흑사회와의 만남은 철저하게 비밀에 부쳐야 했다.
그래서 묵왕의 측근 말고는 흑사회와의 관계를 아는 이들은 없었다.
한 시진.
시간이 흐르며 달이 구름 너머로 저물어갈 때쯤, 방문이 열리며 한 사람이 들어왔다.
팔 척의 키, 암녹색의 장포를 걸치고 우락부락한 체격을 가진 이는 묵왕이었다.
‘천뇌께 들은 대로 용 한 마리를 마주하는 것 같다.’
압도적인 위엄.
왕의 기운을 품은 자가 어떤 자인지 한충건은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바닥에 넙죽 엎드렸다.
“새로이 흑사회 총 군사가 된 한충건이 묵왕전하를 뵈옵니다!”
묵왕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방의 상석으로 걸어가 털썩 앉았다.
‘무림과 관은 예로부터 불가침의 영역.’
그러나 묵왕이 흑사회의 뒷배에 서며 그러한 기틀을 무너졌다.
강력한 무공을 가진 이들로 군대를 만들어 궁을 전복하는 것, 흑사회의 뒷배는 서북의 패권을 쥔 묵왕이었다.
“천뇌가 죽었다고 들었는데 맞느냐?”
“그렇습니다! 전하!”
“허어, 그자가 죽었다니 쉬이 믿어지지 않는군, 나보다도 오래 살 이무기처럼 보였건만.”
원래 흑사회와 묵왕의 사이는 천뇌가 잇고 있었다.
천뇌가 죽었으니 이제 그 일은 한충건이 해야 했다.
“그래서 그대가 들고 온 계책이 무엇인가? 그냥 빈손으로 나를 만나러 온 것은 아닐 테고.”
묵왕의 말이 떨어지자 한충건은 바닥에 넙죽 엎드린 채로 가져온 서신을 펼쳤다.
“묵왕께서 한 해 전에 부탁하신 진왕이 북방의 성벽을 건설하는 것에 대한 정보입니다.”
묵왕이 손을 까닥이자 어둠 속에서 신형이 나오더니 한충건에게서 서신을 받아 묵왕에게 전달했다. 그리곤 다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으음.”
서신을 보던 묵왕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말할 건?”
“북방의 성벽 건설은 오랑캐들을 침범을 막기 위해 황상께서도 신경을 쓰시는 일이라 들었습니다. 그 일을 틀어지게 하면 자연스레 황상의 분노는 진왕을 향할 거라 사료되옵니다.”
“그런 것쯤은 나도 알고 있다. 게획까지 자세히 고하라. 난 그리 인내심이 강한 편이 아니니.”
한충건은 자신이 가져온 계책을 모조리 말했다.
진왕을 어떤 식으로 몰아내어 묵왕이 관의 패권을 쥐게 할지.
이야기를 듣는 묵왕의 입가에는 호선이 그려졌다.
“좋군, 그렇게 하면 진왕의 세력을 약화시킬 수 있겠어.”
“그러하옵니다.”
“흑사회에서 나에게 부탁할 건?”
“묵왕께서 흑사회의 뒤를 봐주고 있으나! 요새 강호에 소문이 자자한 무림인이 하나 있습니다.”
“백의검룡이라고 했지?”
“그러하옵니다.”
“벽력탄도 개발할 수 있도록 관을 구워삶아 도와주고 있건만···. 너희들은 고작 무림인 하나를 처리하지 못하는구나.”
한충건은 말을 하지 못했다.
“계속 말해보거라.”
“일을 꾸미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어떤 일이지?”
“강호를 발칵 뒤집을 일이지요.”
“흥미롭구나. 강호를 뒤집을 일이라니, 어떤 것인지 자세히 고해보거라.”
“곧 남궁세가와 금호장의 혼례가 있다는 소문은 들으셨습니까?”
“어찌나 소문이 파다한지 무슨 황궁에서 혼례를 하는 줄 알았다.”
“그래서 금호장에서 남궁세가로 가는 길목에서 금호장의 장녀를 죽일 생각입니다.”
묵왕의 눈빛이 빛났다.
“금호장의 장녀를?”
“그렇습니다. 그리고 이 일이 벌어지면 파장이 커질 것입니다. 그 파장을 묵왕께서 잠재워주시길 간청드립니다.”
“그러면 너희들이 나에게 해줄 것은?”
진왕의 성벽 건설 건은 전부터 명을 한 것이니 흑사회는 묵왕에게 무언가 다른 제안을 해야 했다.
한충건은 이미 그것을 준비해왔는지 거침없이 말했다.
“진왕을 엮어서 들어갈 구멍을 더 만들겠습니다.”
“?”
“성벽 사건으로 황제와의 신뢰를 무너트리고 반역으로 몰고 가는 겁니다.”
“반역으로? 그게 말이 되느냐?”
“충현관.”
충현관(忠賢館)이라는 말이 나오자 묵왕의 입가가 움찔거렸다.
“충현관은 천하의 인재들이 모여드는 곳으로 금호장에서도 매년 후원을 하는 곳입니다.”
“잘 알지. 진왕이 황상의 명을 받아 인재들을 모아 선별하는 기관이니.”
“그 기관은 신분을 막론하고 인재를 선별하는 곳으로 명성이 자자합니다. 그리고 현 황궁에 불만을 품은 이들도 있지요.”
“그래서?”
“충현관에 저희 사람을 심어놨습니다. 지시를 하면 곧바로 행동에 옮길 것입니다.”
”그거 흥미롭구나, 알겠으니 물러가보거라. 내일 다시 이야기를 나누자꾸나.“
한충건이 물러나자 묵왕은 옆방을 보며 말했다.
“어르신은 어떻게 보십니까?”
묵왕이 존칭을 쓰는 사람.
옆방 문이 열리며 한 사람이 들어왔다. 굽은 허리에 초승달처럼 휜 수염, 주름이 자글자글한 그는 사마현으로.
‘제부(帝傅)’
전 황제의 스승이었던 자였다.
“나쁘지 않은 제안입니다. 왕야의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 이이제이(以夷制夷)할 수 있는 묘책입니다.”
“저도 그리 생각합니다. 일이 틀어지더라도 우리에게 피해가 오는 것이 없으니까요.”
“저들의 조건을 들어주면서 일을 진행하면 될 것 같습니다.”
묵왕의 입가에는 초승달처럼 긴 호선이 그려졌다.
*
금호장에 온 뒤로 다른 이들과 인사를 나뉜 뒤에 송연화와 나란히 거리를 거닐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조금 더 일찍 오려고 했지만, 일이 있어서요.”
“들어서 알고 있다. 그래도 늦지 않아서 다행이구나. 너를 못 보고 남궁세가로 가는 줄 알았다.”
송연화와 간 곳은 청월각이었다.
어릴 적부터 지냈던 곳.
내가 이 몸으로 회귀한 것은 열넷의 나이였으나 그 전의 기억들과 감정은 온전히 내 가슴 속에 있었다.
“기억나느냐, 네가 이곳에서 이현이에게 맞은 뒤에 나에게 와서 울었던 것이?”
“…. 어린 시절입니다.”
“당과를 먹으면서 내 품에 안겨 울먹이던 아이가 어느덧 이리 큰 사람이 되었구나.”
송연화의 눈빛에는 대견함이 있었다.
어릴 적에 무시만 당했던 동생이 어느덧 모두가 우러러보는 존재가 되었으니 기쁜 것이 당연했다.
우리가 걷다가 앉은 곳은 달 구경을 하던 정자였다.
청월각의 주인이 없어졌는데도 관리를 했는지 연못에는 여전히 잉어들이 있었고 연못 주위에 화사한 꽃들이 많았다.
“삼현아.”
“예. 누님.”
“네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 죄송합니다.”
“아니다. 네가 더는 보호를 받아야 할 사람이 아니고 누군가를 보호해야 할 사람으로 성장했으니 위험한 일을 겪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송연화는 계속해서 말했다.
“하지만 너의 누이로서는 걱정이 되는구나···. 다음에는 절대 무리한 일을 하지 말거라. 할 수밖에 없는 일이라면 최대한 싸우지 않는 방법을 알아보겠다고 약조해주겠느냐?”
“약조하겠습니다.”
“대답이 시원해서 마음에 드는구나.”
송연화도 어렴풋이 알고 있을 거다.
다음번에도 위험한 일을 할 거라는 걸.
하지만 크게 잔소리를 하지 않았다.
그것이 내가 걷는 길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으니까.
스윽.
“혼례 선물입니다.”
“이게 무엇이냐?”
내가 품에서 꺼내 준 것은 청철로 된 비녀였다.
“누님께 잘 어울릴 것 같아서 샀습니다.”
“참으로 아름답구나.”
은은한 빛을 내는 비녀는 밤 하늘의 별을 담은 것처럼 신비로웠다.
“혼례를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누님.”
원래하고 있던 금비녀를 빼고 내가 선물해준 비녀를 끼는 송연화는 나를 보곤 화사한 웃음을 지었다.
“고맙다. 지금까지 받은 혼례 선물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선물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