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lf a penny from the Golden Tiger RAW novel - Chapter 96
누님, 죽지 마세요 (3)
흑사회 본산.
군사부에는 여러 단주가 모여 회의를 진행했고 한충건은 보고된 안건을 면밀히 살폈다.
“이 부분에는 설명이 조금 부족하군, 지금 우리에겐 명분이 없으니 움직여선 안 돼. 섣부르게 움직였다간 무림맹 녀석들에게 꼬리가 밟힐 수 있으니까.”
“말씀하신 대로 명분을 만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감숙성 무위로 간 삼웅(三熊)들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나?”
“예.”
“돌아오지 않았다면 서신을 보내 서북방의 상황을 더 면밀하게 살피라고 하게. 천월신교로 통하는 길도 개척해야 하니.”
천뇌가 없는 지금.
흑사회의 머리는 한충건이었다.
그렇기에 그의 결정은 곧 흑사회의 결정이었다.
“존명!”
회의가 끝나자 집무실에 있던 이들이 종종걸음으로 빠져나갔다.
한충건은 쉬지 않고 산처럼 쌓인 서신에서 하나를 집어 펼쳤다.
“흐음.”
서신을 보던 한충건의 곁에 흑매가 모습을 드러냈다.
“군사 어른.”
“무슨 일이냐.”
“강소성으로 보낸 흑살단이 일을 잘 처리할까요?”
흑매의 말에 한충건은 잠시 서신을 보는 것을 멈췄다.
“사람 죽이는 것을 밥 먹듯이 하는 녀석들이다. 특히 흑살단주는 남호촌의 자객이었으니 걱정할 것 없다.”
“남호촌이라면.”
“그들의 일 처리는 잔혹하고 확실하다. 그러니 기다리거라, 곧 내가 원하는 소식이 당도할 것이니.”
한충건은 흑살단의 성공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중원에서 잔악한 이들을 거르고 걸러서 선별된 이들인데 그들이 일을 망칠 공산은 적었다.
“흑살단이 너무 빨리 세상에 나온 것이 아닐는지요.”
“… 흑살단은 나중을 위해 숨겨야 했던 패지만, 이 일을 성사하려면 어쩔 수 없었다.”
예정대로라면 흑살단이 나설 자리는 이때가 아닌 전쟁이 일어나기 직후였다.
정파의 유력 인사들을 제거하면서 이름을 날리는 것이 수순이었으나 지금 시기는 조금 빨랐다.
한충건의 말에 흑매는 걱정되는 것을 말했다.
“혹시라도 그들이 실패하면 그다음은 어찌하실 생각이십니까? 흑살단은 오 년 동안 천뇌께서 키운 자객단인데 사라졌다는 것을 알면 회주님의 진노가 엄청날 것입니다.”
이 일은 한충건이 흑사회주 몰래 일을 벌인 거였다. 그러니 만약 흑살단이 실패하고 그들이 죽는다면 그 여파는 고스란히 한충건이 짊어져야 했다.
“실력은 확실하다. 그들의 실력은 구파의 장문인들도 죽일 수 있으니까.”
구파의 장문인들이 어떤 자들인가.
중원 무림의 대들보들인데 그들을 죽일 수 있는 실력을 지녔다면 웬만해선 일을 실패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한충건은 한 가지 불안 요소를 생각했고 그것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백의검룡의 방해만 없다면 성공할 것이다.”
송삼현의 방해만 없다면 이 계획의 성공은 확실했다.
“백의검룡이 개입한다면요?”
“그럴 확률은 낮다. 백의검룡이 개입하기 전에 흑살단이 빠르게 끝낼 것이니.”
한충건은 창밖을 보며 말했다.
“그래도 만약, 백의검룡을 만난다면 한 가지 수를 흑살단주에게 알려줬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거라.”
*
무수히 많은 빗방울 속에서 용 한 마리가 날아왔다.
“들어온다! 거리를 벌려라!”
빗방울 때문에 몸이 느려졌고 제일 앞에 있던 자객의 목이 송삼현이 뻗은 검에 베였다.
기세에 압도되어 인식이 뒤틀려 환각이 보였으나 흑살단주는 침착하게 자객 한 명에게 지시를 내렸다.
“꺼내거라!”
한충건이 알려준 한 가지 수.
그것은 역시나 벽력탄이었다.
“너희들은 변하질 않는구나.”
송삼현은 벽력탄의 폭발범위를 생각하며 신형을 날렸고 흑살단주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우리의 계획에 당신은 없었소. 그러니 노릴 건 하나지.”
벽력탄은 구르면서 송삼현이 아닌 사람들이 모인 곳으로 갔다.
송삼현은 허공에서 도약하며 벽력탄을 멈춰 세운 뒤, 내공을 흘려 기막을 형성했다.
그러나 그들이 굴린 것은 송삼현이 생각하는 일반적인 벽력탄과 달랐다.
“그 안에는 각종 암기가 숨어 있소, 부디 내 선물이 마음에 들었길 바라오.”
콰아아아아아앙!
커다란 폭발음과 같이 벽력탄의 파편과 그 안에 있던 암기들이 사방으로 튀었다.
‘암기가 들어간 개량탄, 이것들이 벌써 이 시기에 이것을 만들었단 말인가.’
기막 덕분에 다른 이들에게 피해가 가진 않았고 송삼현도 피해를 입진 않았다.
회심의 한 수였는데도 송삼현에게 생채기 하나를 내지 못하자 흑살단주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 뭐냐. 어째서 멀쩡한 거지? 그 폭발에 휘말렸는데도 어째서 멀쩡한 것이냐!”
“그딴 술수에 내가 당할 줄 아느냐? 암기를 숨겨서 화력이 일반 벽력탄보다 좋진 않구나.”
저번 삶에서 흑사회가 벽력탄을 개조해서 새로이 만든 것이 이런 암기가 들어간 폭탄이었다.
살상력이 엄청나서 송삼현은 이것에 고전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났다.
‘아직 완전히 만들어 내진 못해서 내가 아는 살상력은 나오지 않는구나. 그렇다면.’
콰직.
‘저것들을 죽여, 훗날 일어날 살상을 막는다!’
진각을 밟으며 신형을 날린 송삼현의 검은 빛처럼 빠르게 흑살단 자객의 복부를 베어버렸다.
촤아아아아악!
검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왼쪽으로 검을 휘두르며 검강을 얇게 실처럼 내뿜어 다른 자객의 몸을 휘감곤.
‘운룡회천.’
순식간에 숨통을 끊어버렸다.
흑살단주는 자객들이 죽는 것을 보곤 품에 있는 또 다른 탄을 바닥에 던져 터트렸다.
“보이지 않는다면 우리가 유리하다!”
조금 전에 행렬과 싸울 때, 터트렸던 검은 연기가 가득한 탄이었다.
그것이 바닥에서 터지자 검은 연기가 스멀스멀 사방을 뒤덮기 시작했다.
“거리를 벌려라! 백의검룡의 시야가 차단되면 일제히 공격한다! 목숨은 아니더라도! 팔 한 짝은 저승 가는 노잣돈으로 가져가야 하지 않겠느냐!”
자객들의 습성은 ‘집요함’이었다.
탄을 터트렸다면 도망가는 것을 생각할 텐데 그들은 그런 게 없었다.
어차피 임무에 실패한 자객에겐 죽음뿐.
이러한 말을 누구보다 잘 아는 족속들이니 기회가 생겨도 도망치지 않았다.
“만개야! 너무 이르다! 멈추거라!”
검은 연기가 퍼지며 송삼현의 시야가 차단될 때, 만개라는 자객이 다른 이들보다 먼저 신형을 날렸다.
번쩍.
‘응?’
검은 연기 안에서 빛이 일렁였다.
송삼현이 무릎을 살짝 굽히면서 취한 반검의 자세, 그것으로 하는 초식은 하나였다.
‘천무 1식 개벽.’
아래에서 위로 베는 참격.
검격에 휘말린 만개의 몸이 반으로 갈라졌고 검은 연기는 단숨에 사방으로 날아가며 사라졌다.
쉽게 날리지 못했던 검은 연기가 아무렇지 않게 사라지자 제검대를 비롯해 모두가 놀랐고 송삼현은 흑살단이 모인 곳으로 검을 겨누며 말했다.
“누구의 시야를 가리겠다고?”
*
그 사이, 남궁효우는 송연화의 상태를 살폈다.
“부인! 부인 괜찮으시오?!”
싸우면서 자객들에게 당한 상처 때문에 피가 흘렀으나 남궁효우의 온 신경은 송연화에게 가 있었다.
“정신을 좀 차리시오! 제발!”
의식이 없는 송연화를 보며 울부짖는 남궁효우의 곁으로 시비 한 명이 다가갔다.
“지금 주무시고 계십니다.”
“잔다고?”
“예, 삼 공자님이 주신 약을 드시고선 곤히 주무시는 중입니다. 피도 멎었으니 어서 의원에게 상처를 보여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아무리 송삼현이 손을 썼다고 해도 무사한 것이 아니었다.
이대로 시간이 지체됐다간 상처에 병균이 들어가 다른 쪽에서 문제가 생길 수 있었다.
“허나.”
흑살단이 주위를 포위하고 있어 빠져나갈 기회를 보지 못했다.
그러던 중, 서서히 송삼현이 우위를 점하기 시작하자 흑살단에서도 약간의 틈이 만들어졌고 그것이 남궁효우의 눈에 들어왔다.
“어?”
흑살단의 무리가 포위망을 풀어 송삼현에게만 신형을 날렸다.
채애애앵!
흑살단 자객들은 송삼현에게 가까이 접근하지 않고 적정 거리를 유지하며 암기를 날렸다.
송삼현은 검으로 암기를 쳐내며 한 명 한 명 베어나갔다.
촤아아아아악!
투박하면서도 치명적이고.
촤아아아아악!
화려하면서도 묵묵한 송삼현의 무위에 다른 무인들은 시선을 빼앗겼다.
그때.
“주군! 제가 늦었습니다!”
마훈이 신형을 날리며 현장에 도착했다.
“싸움에 개입하지 말고! 저들을 지켜라!”
“존명!”
송삼현은 보이지 않는 사각에서 기이하게 몸을 비틀며 단도를 휘두르는 자객의 복부에 보지도 않고 손만 뻗어 천무장을 날렸다.
퍼어어어억!
자객의 신형이 죽림에 박히자 송삼현은 남궁효우에게 전음을 보냈다.
[매형.]
[… 저 무리를 상대하면서 전음을 할 여유도 있는 것이냐?]
[제가 길을 열 것입니다. 그러니 누님을 모시고 어서 황죽림 밖으로 가십시오. 지금쯤이면 남궁세가에서도 의원을 대동해 출발했을 거니 한시라도 빨리 누님을 의원에게 데려가 주십시오.]
[이 일을 세가에 알렸느냐?]
[제 벗 중에 경공이 뛰어난 자가 있습니다. 그자를 보냈으니 지금쯤 남궁세가에도 이 소식이 알려졌을 겁니다. 그리고 금호장에도 이곳으로 오기 전, 소식을 알렸으니 곧 이곳에 당도할 것입니다.]
전음을 끝내자 남궁효우가 살아남은 이들과 다친 이들을 빠르게 수습했다.
반각.
일각이 지나자 남궁효우는 떠날 준비를 끝내고 송삼현을 봤다.
“처남!”
“서남쪽! 샛길이 있습니다. 그곳으로 그들을 데리고 내려가십시오! 이들을 처리하고 가겠습니다!”
어느덧 열 명으로 줄여진 자객들이 그들을 잡으려고 신형을 날렸으나 송삼현의 검은 그들을 놓치지 않았다.
촤아아아아악!
제일 가까이 다가간 이의 목을 베고 그다음으로 접근하는 이의 다리를 베며 경공을 펼치지 못하게 했다.
“어딜 그리 급히 가느냐.”
쫓으려고 했던 자객들이 한 호흡에 모두 베어지자 쫓으려는 움직임이 멈췄고 몰래 어둠 속에 몸을 숨기며 쫓으려는 녀석이 있으면.
휘리리리릭.
무무가 붕대를 풀어 잡아냈다.
[삼현아···. 미안하구나.]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지기 전에 남궁효우가 마지막으로 전음을 날렸고 송삼현은 차분하게 대답했다.
[꼭 누님을 살려주십시오.]
마훈의 호위를 받으며 시비들까지 모두 빠져나가고 이제 이곳엔 남은 자들은 흑살단과 송삼현뿐이었다.
스윽.
송삼현은 죽은 흑살단 자객의 시신으로 갔다. 그 모습을 본 흑살단주가 큰 소리를 냈다.
“어찌 사람이 되어서 죽은 이의 시신을 훼손하려고 하는 것이냐!”
“너희들은 죽은 시신에 화골산을 뿌려 아예 없애면서 나는 안 되느냐?”
“이, 이놈!”
휙.
시신 훼손이 아니라 시신의 오른쪽 어깨 쪽을 살핀 거였다.
그곳엔 ‘흑살(黑殺)’이라는 표식이 있었다.
“예상대로 흑살단이구나···.”
송삼현의 입에서 흑살단이라는 이름이 나오자 흑살단주가 놀랐다.
“그 이름을 어찌 아느냐.”
“모를 리가 없지. 흑사회의 개들을.”
송삼현의 머릿속에선 저번 삶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들의 암살 때문에 많은 고수가 무참히 죽어 나갔다.
그렇게 전쟁 초반, 기세를 빼앗겨 더 많은 희생자가 생기게 된 계기가 흑살단의 암살 때문이었다.
스릉.
청월이 푸른 빛을 일렁이며 ‘우우우웅’ 공명음을 내기 시작했다.
그리곤 빛과 함께 신형마저 일렁이더니 흑살단주의 옆에 있던 자객의 목이 순식간에 베어졌다.
촤아아아아악!
“내 가족을 건드린 죄는 죽음으로 갚거라.”
목에 검이 들어온 흑살단주는 두 눈을 감고 무언가를 입에 물었다.
까득.
그리고 그것을 씹자 풍겨오는 악취.
“….. 독수비단!”
흑살단주가 먹은 것은 사천당가에서 부작용 때문에 제조를 하지 않는 독수비단(毒水沸丹)이었다.
내공의 폭발적인 증진이라는 장점은 있으나 단점도 명확했다.
수명이 줄어든다는 거였다.
꿀꺽.
흑살단주는 독수비단을 삼키고 외쳤다.
“모두! 독수비단을 먹어라!”
남은 자객의 수는 여덟.
일제히 독수비단을 먹자 눈에 실핏줄이 다 터지며 붉게 물들었다.
이러한 부작용은 독수비단의 섭취 방식에 따라 달랐다.
첫 번째, 운기조식을 통해 천천히 섭취하는 것.
일반적인 방식으로 이렇게 섭취를 해도 수명이 줄어든다는 부작용이 있었으나 몇십 년을 사는 예도 있어서 이 방식을 선택하는 흑도들이 대부분이었다.
두 번째, 운기조식을 하지 않고 일반적인 단약처럼 단숨에 효능을 내는 방식.
첫 번째 방식과 달리 두 번째 방식은 절대 쓰지 않았다.
그 이유는 이 방식으로 섭취하면 필히 죽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흑살단이 선택한 방식이 바로 이 두 번째 방식이었다.
“이곳에서 목숨을 버리겠다는 거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