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lf a penny from the Golden Tiger RAW novel - Chapter 98
누님, 죽지 마세요 (5)
송우태는 송삼현의 입에서 나온 천하봉선이라는 이름을 듣고선 놀랐다.
“…. 네가 그분을 어찌 아느냐?”
천하봉선은 천하에서 의술이 뛰어난 세 명 중에서도 제일이라 불리는 사람이었다.
권세를 잡은 고관대작들도 만나고 싶다고 하여 만날 수도 없는 존재라 천하 삼 대 장원인 금호장의 장주인 송우태도 아직 만난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제가 흑사회의 함정에 빠져 죽을 뻔했을 때, 저를 구해주신 분입니다.”
송우태의 물음에 대답을 한 송삼현은 약당주를 보며 말했다.
“천하봉선님이라면 누님이 살 수 있는 겁니까?”
약당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럴 공산이 크지요.”
“제가 반드시 천하봉선님을 모셔오겠습니다. 그때까지 누님이 버틸 수 있겠습니까?”
“처음에 백의검룡께서 처치를 잘해주신 덕분에 버티는 것은 문제가 없지만, 상처가 곪기 전에 치료가 시작되어야 합니다. 적어도 한 달 안에는···.”
“모시고 올 테니 누님을 잘 부탁드립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약당주와 이야기를 마치고 나가려고 할 때, 송우태가 물었다.
“아직 이곳에 온 지 일각도 지나지 않았다. 조금 쉬었다가 출발을 해도···.”
“어머니 때처럼 누님도 잃을 순 없습니다.”
그제야 송삼현이 왜 급하게 행동하는지 모두가 이해했다.
금호장 청월 부인의 죽음.
그 일은 중원 전체에 큰 충격을 안겼다.
송우태는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하고 약당주에게 금호장이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을 테니 꼭 낫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금호장의 약당주도 있었기에 송삼현은 방 밖으로 나왔다.
“어?”
방 밖으로 나오자 그곳엔 남궁세가 사람들이 있었다.
남궁수천과 부인인 월화 부인, 치료를 받던 남궁효우도 몸에 붕대를 칭칭 감은 채로 부축을 받으며 서 있었다.
그리고 남궁상룡이 말했다.
“천하봉선님을 안다는 것이 정말이냐?”
방 안에서 한 말은 밖에 있던 사람들에게도 들렸다.
“그렇습니다.”
“어디에 계시는 지도?”
“예. 한번 찾아오라고 계시는 곳을 알려주셨습니다.”
“… 별일이구나, 그분이 그렇게까지 말하는 사람이 있다니.”
원래 천하봉선은 방랑자 같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천하봉선의 정확한 위치를 아는 사람은 없었다.
“이만 출발해도 되겠습니까?”
“잠깐 기다리거라.”
“예?”
“한철아, 가서 흑영마를 가져오너라.”
“예!”
미리 준비했는지 무사는 금방 말 한 필을 데리고 왔다.
거친 움직임으로 무사의 손길을 거부하는 검은 말은 기운이 엄청났다.
‘지금까지 봤던 말들과는 다르다.’
말을 데려온 한철은 남궁상룡에게 말의 고삐를 넘겼고 남궁상룡은 그 고삐를 송삼현에게 내밀었다.
“하룻밤에 천 리를 간다는 흑영마의 순수혈통이니 너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흑영마(黑怜馬)는 명마 중의 명마였다.
황제가 남궁세가에 하사한 말로 남궁상룡이 고삐를 내어주는 흑영마는 자신의 말이 낳은 자식이었다.
“이 귀한 말을 어찌 저에게···.”
“자고로 영웅에겐 명마가 필요한 법, 우리 손주와 손주 며늘아기, 그리고 남궁세가의 다른 무사들을 살려줬으니 주는 선물이다.”
남궁상룡은 공과 사가 확실한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자기 가족을 구해준 대가로 흑영마를 내어주는 거였다.
송삼현이 남궁상룡에게서 고삐를 건네받자 남궁유유가 화들짝 놀랐다.
“조부님, 그 말은 조부님 말고 다룰 줄 아는 이가 없었습니다. 아무리 백의검룡이라고 해도···!”
거친 숨을 내뱉으며 금방이라도 사람을 들이박을 것 같던 흑영마는 송삼현의 손길이 닿자 거짓말처럼 얌전해졌다.
푸르르릉.
“잘 부탁한다.”
안장을 잡고 올랐다.
남궁상룡은 처음부터 이런 걸 예상했는지 입가에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다녀오거라.”
“예!”
흑영마를 탄 송삼현은 남궁세가의 정문을 통해 밖으로 나갔다.
남궁세가를 나간 송삼현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남궁유유가 남궁상룡에게 물었다.
“… 아버지랑 오라버니도 다루지 못했던 말이 어째서 대협의 손길에 저리 순해진 거지요?”
남궁유유의 말에 남궁상룡이 말했다.
“원래 명마라는 놈들은 말이다. 워낙 까다로워서 자기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주인으로 인정을 하지 않는다.”
일반 말이 아닌 명마.
그들은 일반 말보다 빠르면서 기묘한 재주까지 있어 요물이라고도 불렸다.
“이 짧은 순간에 흑영마가 백의검룡을 주인으로 인정을 한 것이지.”
*
호남성 사명산 동쪽에 있는 소양현, 그곳에는 길이가 30리나 되는 소동강이 있었다.
“한 씨! 여기서 잠시 쉬어가자고.”
“사명산을 넘으려면 잠깐 쉬는 게 좋지. 오, 저기가 좋아 보이는군.”
사명산을 넘기 전에 여러 사람들이 강 옆에서 쉬었다.
그들은 주먹밥을 먹고 경치 구경을 하며 산을 오르기 전에 잠깐의 힘을 비축했고 그때.
다그닥, 다그닥.
멀리서 말발굽 소리가 들렸다.
“응?”
“한 씨, 뭔가 보여?”
“먼지가 일렁이긴 하는데 사람은 아직 안 보여. 군대라도 지나가나?”
멀리서 신형이 아른거렸는데 엄청난 속도로 거리가 좁혀졌다.
휘이이이이잉!
누구인지 확인할 겨를도 없이 바람처럼 사라지는 말을 보며 사람들은 주먹밥을 먹으면서 그대로 굳어버렸다.
“…. 방금 우리가 뭘 본 거지?”
“말이었지?”
“저렇게 빠른 말을 난생처음 보는군.”
그들을 지나쳐 사명산에 들어선 것은 송삼현이었다.
그동안 타고 다녔던 말들은 금호장 역참에서 빌린 말들이었는데 흑영마는 차원이 달랐다.
‘이렇게 빠를 줄이야. 이러면 굳이 경공을 쓰지 않아도 되겠군.’
탓!
땅을 박차는 느낌.
휘이이익.
바람을 가르며 달려가는 흑영마는 괜히 명마라고 불리는 게 아니었다.
‘어서 빨리.’
마치 송삼현의 마음이라도 아는 듯.
‘천하봉선님께 가야 한다.’
흑영마는 거친 숲길로 거침없이 내달렸다.
*
광동성 담강 해묵현.
드넓은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언덕 위에는 커다란 향월 객잔이 있었다.
끝없이 펼쳐진 바다와 숲의 절경을 보러 오는 이들이 많아 늘 사시사철 인산인해를 이뤘다.
“이곳인가.”
객잔 앞에 도착한 송삼현이 말에서 내려 향월 객잔으로 들어갔다.
안은 웃음꽃을 피운 사람들로 북적였다. 술을 마시고 음식을 먹으며 사는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은 송삼현이 꿈꾸는 세상과 많이 닮아 있었다.
“어서 오세요!”
점소이가 송삼현을 맞이해 자리를 안내해주려는 그때, 이 층에서 사람이 내려오더니 송삼현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씨익.
그 사람은 사월향이었다.
사월향을 본 사람들은 그녀의 미색에 눈을 떼지 못했다. 평복을 입었음에도 밖으로 뿜어져 나오는 미색은 전혀 감춰지지 않았다.
객잔 안에 있던 선비 한 명이 넋을 놓고 한마디 했다.
“폐월수화(蔽月羞花)···.”
달이 구름 뒤에 숨고 꽃이 부끄러워 고개를 숙인다는 절세미인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녀는 사람들의 시선에도 송삼현에게 곧장 다가왔다.
“백의검룡 대협이 아니십니까!”
백의검룡이라는 말이 나오자 주위의 시선이 송삼현에게 향했다.
송삼현은 주변에 사람이 많은 것을 보곤.
[천하봉선께서는 어디 계십니까?]
전음으로 말했다.
“이쪽으로 오세요. 경치가 좋은 방이 있는데 그곳으로 안내해드릴게요.”
“… 감사합니다.”
향월 객잔은 총 오 층까지 있는 커다란 객잔이었다.
찾아온 객들에게 허락된 곳은 삼 층까지였고 사 층은 각종 약재와 서책들, 그리고 오 층은 천하봉선의 가족들이 지내는 곳이 마련되어 있었다.
사 층을 지나 둘만 남게 되자 송삼현이 말했다.
“이제 말해도 되겠군요.”
사월향은 웃으며 말했다.
“안 그래도 조모님께서 대협이 언제 오시나 물어보셨거든요.”
“정말입니까?”
“예, 향월 객잔에 천하봉선이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은 중원 어디에도 없으니까요. 아, 유천님과 대협을 제외하곤요.”
계단을 올라가면서 창밖으로 보이는 경치는 천하에서도 손꼽히는 절경이었다.
걸음이 멈춘 곳은 오 층에 있는 천하봉선의 거처였다.
“조모님, 백의검룡께서 오셨습니다. 안으로 들어가도 괜찮을까요?”
“들어오거라.”
허락이 들리자 사월향이 문을 열었고 안에서 천하봉선이 백의를 입고 서책을 보다가 송삼현을 쳐다봤다.
“어서 오세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연락도 없이 이리 찾아와 죄송합니다.”
포권지례를 올리며 예를 갖췄다.
“오실 때부터 급한 건 알고 있습니다. 무슨 일이신가요?”
사월향이 마침 차를 가져왔고 송삼현과 천하봉선은 나란히 마주 앉아 차를 마셨다.
“제 누님께서 자객들의 습격을 받아 생사를 오가고 있습니다. 부디 천하봉선님의 의술로 누님을 살려주시길 간곡하게 부탁드립니다.”
고개를 숙였다.
거절해도 어쩔 수 없었다.
황제의 요청도 거절할 정도로 명망이 높은 인물이니.
그러나 그녀는 송삼현의 부탁에.
“가시지요.”
질문도 하지 않고 단번에 수락했다.
“월향아, 너도 떠날 채비를 하거라.”
“예! 조모님.”
망설임 없는 대답에 오히려 송삼현이 당황했다. 그것을 천하봉선이 눈치챘다.
“제가 이렇게 빠르게 수락할 줄은 몰랐지요?”
“그렇습니다.”
“사람을 살리는 일에 거절이 있을 수 있나요?”
“…..”
“제가 지금껏 여러 핑계를 대며 가지 않은 곳은 크게 제가 필요하지 않은 곳들입니다. 그냥 고뿔에 걸리고 골절이 되고 가벼운 상처···. 제가 굳이 필요 없는 곳은 갈 필요가 없지요.”
천하봉선은 신념이 뚜렷한 사람이었다.
고관대작들이 진맥을 한 번 받아보려고 하는 걸 거절하고 천하를 주유하는 것도 자신의 손길이 필요한 이들을 살리기 위해서였다.
“그러면 가볼까요? 남궁 세가도 오랜만에 가보네요.”
*
콰아아아앙!
흑사회 본산, 대 연무장에는 많은 무인이 모여 검법 수련에 한 창이었다.
그들은 땀을 흘리며 검을 휘둘렀고 또 다른 이들에게 상처를 입히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다.
촤아아아악!
다들 독기로 똘똘 뭉쳤다.
한충건은 제일 높은 단상 위에서 그들이 훈련하는 걸 지켜보다가 흑의인 한 명이 다가와 보고하는 걸 듣곤 주먹을 꽉 쥐었다.
“흑살단이 전부 당했다고? 누구도 살아남은 자들도 없이?”
“그렇습니다.”
‘흑살단 전멸.’
이 소식에 한충건은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흑살단은 암살에 특화되고 만약 불리한 상황이 생기면 섣부르게 행동하지 않는 이들이었다.
그런 그들이 죽었다면 알 수 있는 답은 하나였다.
“…. 백의검룡이 개입했느냐?”
흑의인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예. 송연화를 죽이려는 찰나 백의검룡이 개입해 흑살단을 모조리 죽여버렸다고 하옵니다.”
“분명히 금호장에 있었다고 하지 않았느냐, 어떻게 그리 빠르게 개입할 수 있었지?”
“감시조에게 듣기로는 전서구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아마, 송삼현을 도와주는 정보책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 말에 한충건은 딱 하나를 떠 올렸다.
천뇌가 흑사회로 끌어들이려고 했던 세력.
‘그 녀석들의 정보가 있다면 우리의 계획은 몇 해는 더 빨라질 것이다.’
천뇌의 말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며 그들의 이름이 입 밖으로 나왔다.
“무조. 그놈들이구나···.”
한충건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또 백의검룡! 백의검룡! 그놈은 왜 사사건건 우리가 하려는 일을 방해하는 것이냐!”
추혼마공서부터 이어진 악연.
흑살단까지 이용해 이번에야말로 송삼현의 소중한 것을 앗아가려고 했으나 흑살단을 모조리 잃으면서 실패하고 말았다.
“우리가 개입했다는 흔적은 없겠지?”
“그렇습니다. 흑살단은 애초에 중원에 드러난 적이 없는 자들이니 그들에게서 흑사회를 연결 짓는 일은 불가합니다.”
흑살단이 나설 때부터 흑사회와 연결되는 흔적을 전부 지웠으니 송삼현이 흑사회가 한 짓을 알아내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허나 안심해선 안 된다. 감시조들에게 말해 백의검룡의 일거수일투족을 더 면밀하게 살피도록 전하거라.”
“존명!”
흑의인이 신형을 날렸고 옆에서 흑매가 나타났다.
“군사 어른.”
“왜 그러느냐.”
“… 회주님께서 찾으십니다.”
“보고가 올라갔나?”
“추격대주가 보고를 올렸다고 합니다. 회주님께서 진노하시어 군사 어른을 찾으셨다고···.”
후우.
한충건은 반각 정도 무사들이 훈련하는 것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가 걸음을 옮겼다.
“귀나 팔, 오늘 어디 하나 떨어져 나가겠구나.”
*
구일 뒤, 남궁세가 정문.
무사들이 지키고 있는 그곳에 흑영마를 탄 송삼현이 도착했다.
멀리서부터 맹렬한 기세로 온 송삼현을 본 무사는 누구인지 물어보려고 했으나 옆에 있던 무사가 황급히 포권지례를 올렸다.
“백의검룡 대협을 뵙습니다!”
무사들이 예를 갖추며 정문을 열어줬고 송삼현은 그곳을 통과하며 말했다.
“태상 가주님께 전하세요. 천하봉선님을 모셔왔다고.”
마침내 천하봉선이 남궁세가에 당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