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lf a penny from the Golden Tiger RAW novel - Chapter 99
누님, 죽지 마세요 (6)
남궁세가의 정문을 지키는 무사는 포권지례로 송삼현을 정중히 맞이하곤 정문을 열었다.
“들어가시지요.”
들어가기 위해 송삼현이 말에서 내리자 천하봉선도 마찬가지로 마차에서 내리려고 했다.
어떤 곳이나 문턱을 넘을 때는 마차에서 내리는 것이 예의였으니까.
그러자 무사가 황급히 제지했다.
“마차에서 내리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지만 남궁세가의 정문을 지나가려면 마차에서 내려야 하지 않소.”
송삼현의 말에 무사는 고개를 저었다.
“태상가주님께서 대협과 함께 오는 마차는 정중히 장원까지 안내하라고 특별히 지시를 내리셨습니다.”
남궁세가의 정문을 통과해 장원으로 들어갔다. 들어가자 보이는 것은 장원에 모인 사람들이었다.
“내가 떠날 때보다 장원에 사람이 많아졌소.”
송삼현이 묻자 무사가 말했다.
“소가주님의 혼례 때문에 오신 객들입니다.”
그들은 남궁세가와 금호장의 혼례를 보러 온 이들이었다.
길을 지나가려는데 그들이 하는 말이 귓가로 들려왔다.
“그게 정말인가?”
“그렇다니까! 금호장의 장녀께서 자객에게 당해 지금도 병상에 누워있다는구먼.”
“어쩌다 이런 일이···. 대체 금호장의 장녀분을 공격한 자객들의 정체는 무엇인가?”
그들은 자기들끼리 떠들다가 송삼현이 모습을 나타내자 당황했다.
“백의검룡 대협이시다!”
객 중에 한 사람이 하는 말에 장원에 모인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송삼현에게 쏠렸다.
상계의 거물은 물론 중원 곳곳에 영향력을 떨치는 세가의 후기지수들도 보였다.
송삼현은 그들의 인사를 받으며 지나가다가 한 사람을 보곤 전음을 보냈다.
[당 소저도 무사히 도착하셨소?]
당수향에게 전음을 보내자 당수향은 웃으며 포권을 취했다.
[소식을 전해 듣고 놀랐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연화가 다 나으면 그때 나누시지요.]
정문을 지키던 무사를 통해 천하봉선이 도착했다는 소식을 들은 남궁수천이 마중을 나왔고 남궁상룡도 뒤늦게 도착했다.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 순간, 마차가 세워지고 그 안에서 사월향이 먼저 내렸다.
그녀를 본 사람들의 말소리는 흥분에 가득 차 있었다.
“저 여인은 대체 누구야? 누구인데 미색이 저리도 곱지?”
그리고 천하봉선이 뒤이어 내렸다. 천하봉선이 마차에서 내리자마자 남궁상룡이 다가갔다.
“오랜만입니다. 천하봉선님.”
남궁상룡은 천하봉선을 보고 예를 갖췄다.
“태상가주님, 오랜만이네요. 건강해 보이셔서 제가 다 기쁩니다.”
“다 천하봉선님 덕분이지요.”
“규율을 깨고 이리 장원까지 마차를 몰고 들어올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천하봉선께서 오시는 데 당연한 조치이지요.”
“제 도움이 필요하신 분은 어디 계십니까?”
“이쪽입니다. 제가 안내해드리지요.”
천하봉선은 남궁상룡의 안내를 받으며 약당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남궁세가와 금호장의 사람들이 모두 모여있었다. 송우태는 남궁상룡의 안내를 받는 천하봉선에게 다가와 포권지례를 올렸다.
스윽.
“금호장주 송우태가 천하봉선님을 배알합니다.”
“대 금호장주님을 이리 뵈니 반갑습니다.”
송우태가 먼저 예를 갖추자 뒤이어 모두가 포권지례를 올렸다.
뭇 남성들은 힐끔거리며 천하봉선과 같이 온 사월향을 쳐다봤다.
사월향은 노골적인 시선에 익숙한지 아무렇지 않게 천하봉선의 옆을 걸었고 남궁상룡, 송우태의 안내를 받으며 송연화가 있는 방 안으로 들어갔다.
“…..”
송삼현은 송연화에게 가까이 가지 않고 멀찌감치 서서 지켜봤다.
쌔액. 쌔액.
여전히 미약한 숨소리만 들렸다.
안색이 창백했고 천하봉선은 약당주의 이야기를 듣더니 송연화의 손목을 짚어 진맥했다.
스르르륵.
눈을 감고서 맥에 집중했다.
그녀의 내공이 송연화의 몸 안으로 들어가 이곳저곳 훑었다.
그리곤 서서히 눈을 뜨더니 말했다.
“약당주님의 보살핌으로 내상은 많이 다스려졌네요. 이 정도면 손을 쓸 수 있습니다.”
그 말에 모두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송삼현도 제일 뒤에서 다행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진맥을 끝낸 천하봉선이 송삼현을 보며 말했다.
“대협.”
“예. 말씀하십시오.”
“제가 준 단약을 쓰셨나요?”
“네, 그것밖에 도리가 없었습니다.”
씨익.
“대협 덕분에 누님분이 사셨네요. 단약을 먹지 않았다면 손을 쓸 수 없었을 거예요.”
그 말에 마음이 편안해졌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대협의 누이니 최선을 다해서 살리겠습니다. 그래야 저희 사이에 빚이 더 생기지요.”
천하봉선의 말에 송삼현은 조용히 포권을 올렸다.
*
촤아아아악!
흑사회 본산, 흑사회주의 거처에서 철패흉은 호조수를 날려 한충건의 한쪽 팔을 뜯어버렸다.
“어차피 머리를 쓰는 일이니, 손 하나는 굳이 필요가 없겠지?”
한충건의 왼쪽 팔은 바닥에 떨어졌다.
몰려오는 고통에 한충건은 이를 악물고 외쳤다.
“끄윽···. 회주님의 은혜에···. 감읍할 따···. 끅···. 름입니다!”
철패흉은 의자에서 일어나 한충건에게 다가가 물었다.
“그래, 천뇌가 계획하던 전쟁은 얼마나 준비됐는가?”
“적어도 다섯 해! 다섯 해 안에는 준비가 모두 끝납니다!”
원래 역사대로라면 전쟁이 일어나려면 스무 해 이상은 남았다.
허나 송삼현의 개입으로 그것이 점차 앞당겨졌다.
용천회.
마교와의 화합.
배후 묵왕의 지원.
여러 가지가 복합적으로 얽히고설키며 원래 일어나는 것보다 한참은 더 당겨졌다.
“현재 흑호검귀(黑虎劍鬼)가 직접 무사들을 수련시키고 있고! 각 세력에 침투한 첩보대가 매일 정파 세력의 움직임을 보고하고 있어 그것에 맞게 계획을 수정하고 있습니다! ”
흑사회는 전쟁을 빈틈없이 준비했다.
추혼마공서나 혈심경같은 무공서는 얻지 못했으나 다른 비급서들로 무사들을 수련시켰다.
“독수비단은?”
“새롭게 개량하고 있으나 아직 부작용이 심합니다. 그것이 제대로 된다면 전쟁의 시일을 더 앞당길 수 있습니다!”
사천당가는 독수비단 제조를 멈췄으나 이미 제조한 어마어마한 물량은 사파의 손에 넘어갔다.
그리고 그것을 흑사회 흑약당에서 개량종을 만드는 중이었다.
최대한 부작용을 없애고 효능을 증폭시키기 위해서.
“벽력탄은?”
“무기 제조부에서 더 파괴력이 뛰어나게 개량하고 있습니다. 한 마을을 날릴 정도의 화력을 갖춘다면 백의검룡이라도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입니다.”
흑사회가 전쟁 초반, 우위를 점할 수 있던 것은 벽력탄 때문이었다.
“마교와의 거래는?”
“사전에 천뇌께서 제안한 대로 마교측은 중원의 서쪽을! 그리고 흑사회는 동쪽의 지배권을 나눠 갖기로 했습니다! 마교에서 이를 수락했고 원활히 교류 중입니다.”
철패흉의 질문에 한충건은 막힘없이 대답했다.
그러자 철패흉은 한충건에게 다가가 무릎을 굽혀 쪼그려 앉았다.
“그렇게 하라는 말이다. 괜히 쓸데없이 흑살단을 이용해 백의검룡의 뒤통수를 칠 생각을 하지 말고.”
“명심! 또 명심하겠습니다!”
“흑살단을 잃은 것은 아쉽지만, 그렇다고 아예 잃은 것은 아니다. 수련 중이던 애들도 있으니 그들을 수련시켜 흑살단으로 만들 거라.”
“그리하겠습니다!”
“그만 나가보거라.”
“존명!”
한충건은 바닥에 떨어진 팔을 들고 방 밖으로 나섰다.
그리고 떨어진 팔을 꽉 쥐었다. 몰려오는 고통보다 더 큰 것은 속에서 타오르는 분노였다.
‘백의검룡···. 백의검룡! 이게 다 그 놈 때문이다!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내 전부를 걸고 반드시 죽여주마!’
*
천하봉선이 방에 들어간 지도 두 시진이 훌쩍 지났다.
난 어디를 가지도 못하고 약방 앞을 계속해서 서성였다.
괜찮을까?
무사히 정신을 차릴 수 있을까?
온갖 걱정이 머리를 지배했다. 그리고 슬쩍 시선을 돌리자 송우태와 송일현, 송이현도 마찬가지로 방 앞을 떠나지 못했다.
그들도 나와 마찬가지로 끼니를 거른 채, 송연화의 치료가 무사히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끼익.
꼬박 반나절이 지나고 나서야 방문이 열렸고 천하봉선이 걸어 나왔다.
그녀가 나오자 송우태가 자리에서 일어나 물었다.
“연화는 괜찮은 겁니까?”
“예, 정신을 차렸으니 들어가 보셔도 됩니다.”
금호장과 남궁세가의 사람들이 전부 방으로 들어갔으나 난 들어가지 못했다. 천하봉선은 멍하니 방을 바라보며 서 있는 나에게 다가왔다.
“상처는 전부 봉합했고 상처 안에 있던 고름도 다 긁어냈으니 곧 차도가 있을 겁니다. 다 나을 때까지 제가 곁을 지키도록 하지요.”
“감사합니다. 천하봉선께는 늘 폐만 끼치네요.”
“제가 말했잖아요? 이거 다 빚으로 남겨놓는다고요.”
“나중에 그걸 어떤 값으로 받아내실지 두렵습니다.”
“호호호, 저랑은 그만 농을 나누시고 안에 들어가 보세요. 누이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다시금 문이 열리며 사월향이 나왔다.
열린 문틈으로 방 안에 들어간 이들이 보이자 말했다.
“두렵습니다.”
내가 그 말을 하자 천하봉선은 물론 사월향도 멍하니 나를 봤다.
“두렵다고요?”
“…. 결국, 저 때문에 다치지 않아도 될 것을 다치게 된 것이니···. 어떤 얼굴로 누님을 뵈어야 할지 도저히 떠오르질 않습니다.”
내 말을 들은 천하봉선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일각이 지나며 들어갔던 이들이 하나둘씩 나왔고 천하봉선이 말했다.
“매서운 검술로 늘 사특한 무리를 망설임 없이 베던 대협도 결국에는 사람이셨군요.”
“….”
“나 때문에 다른 사람이 다치는 것은 큰 아픔이지요. 허나 대협, 그것이 강호를 살아가는 사람이 짊어져야 할 책임이 아닐까요?”
천하봉선은 강호를 숱하게 누비며 이러한 상황을 봐왔다.
“그러니 지금은 마음 가는 대로 행하세요. 아, 이것 하나만 말씀드릴게요.”
“….”
“대협의 누이께선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대협만을 찾으셨습니다. 그 어떤 원망 섞인 말도 하지 않고요.”
그 말에 더 마음이 미어졌다.
곧이어 안에 들어갔던 남궁세가와 금호장 사람들이 나오고 송우태가 나를 보며 말했다.
“들어가 보거라, 연화가 너를 찾는구나.”
“…. 예.”
힘없이 대답하고 들어가려고 하자 송우태가 말했다.
“어깨 펴거라, 네가 아니었다면 연화는 이리 살지도 못했을 것이니.”
그 말을 듣곤 방 안으로 들어갔다.
드르륵.
방문이 닫히며 방 안은 나와 송연화만 있었다.
나는 송연화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한 채, 제자리에서 굳어버렸다.
“가까이 오거라···. 멀리 있으니 동생의 잘생긴 얼굴이 잘 안 보이는구나.”
저벅.
“난 괜찮으니 어서.”
침상 옆에 놓인 의자에 가서 앉았다.
송연화는 침상에 기대어 앉은 다음 손을 뻗어 내 얼굴을 쓰다듬었다.
아직 몸이 다 회복되지 않아 온기가 적고 찬기가 많았으나 세상 그 무엇보다 따뜻한 손길이었다.
“괜히 마음고생시켜서 미안하구나.”
내 탓은 없었다.
온화한 미소로 나를 보는 눈빛에는 죽은 어머니의 상냥함이 담겨 있었다.
마음이 저렸다.
미안했다.
내가 행동한 책임의 화살이 어째서 송연화에게 향했을까.
차라리 화를 내지 그것마저 포용하는 송연화를 보니 시야가 흐려졌고 곧 눈물 한 방울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주르르륵.
“…. 죄송합니다. 저 때문에 누님께서···.”
내가 흑사회의 일을 방해하는 바람에 당하지 않아도 될 일은 당한 거였다.
“그런 말 말거라, 네 덕분에 내가 산 것이 아니더냐.”
송연화가 내민 것은 내가 준 청철 비녀였다.
비녀는 반으로 부러져 있었고 내가 넣은 내공은 흔적만 남고 사라진 상태였다.
“네가 준 혼례 선물이 반으로 갈라졌구나···. 미안하다.”
“제가 또 하나 드리겠습니다.”
“정말?”
그 뒤로도 여러 이야기를 나눴고 송연화는 아직 안색이 창백했다.
긴말을 나누고 싶었으나 이제 그만 쉬어야 했기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전 이만 나가보겠습니다. 편히 쉬세요.”
“벌써 가느냐? 말동무 좀 해주지.”
“자기 전에 또 들리겠습니다. 그리고 누님이 괜찮아지면 저자 구경 가요. 그때 누님이 원하시는 혼례 선물을 사드리겠습니다.”
“정말이냐?”
“그러니 얼른 나으십시오. 약이 쓰더라도 참고 잘 드시고요.”
“알겠다! 약조한 것이다!”
“예, 물론입니다.”
활짝 웃는 송연화에게 편히 쉬라고 한 뒤에 방을 나왔고 송삼현은 그곳에서 벗어나 한 걸음 한 걸음 사람들이 없는 곳으로 갔다. 그리고 생각에 잠겼다.
흑사회.
저번 삶에서도 끝도 없이 악행을 저지르고 결국, 종국(終局)에는 마교를 끌어들여 전쟁을 일으킨 자들.
‘추혼마공서.’
그 일부터 시작되어 흑살단을 죽이는 것까지 흑사회의 영향력은 저번 삶과 차원이 다를 만큼 악화되었다.
하지만 아직 끝이 아니었다.
저번 삶과 다른 흐름이지만, 흑사회는 ‘역천(易天)’이라는 세상을 목표로 뭉친 세력이기에 분명히 다른 방도를 찾아 전쟁을 일으킬 것이 확실했다.
한 걸음.
한 걸음.
한 걸음.
바닥에 내 발자국이 새겨질 때마다 생각 또한 짙어졌다.
그리곤 걸음을 멈춰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봤다.
이제 내가 나아가야 할 길은 하나였다. 생각을 정리하곤 허공에 대고 말했다.
“무무야.”
무무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곳에 오는 길에 천하봉선이 상처를 봐준 덕분에 금세 기운을 차린 모습이었다.
“무조에게 전서구를 보내라. 지금 즉시, 날 보러 오라고.”
흑사회 멸문.
이제 그 길을 걸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