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lf Price Pawn Shop RAW novel - Chapter (13)_11
“그런 것 같습니다. 마침 감독 이 대기 중이니 이야기를 나눠 보시겠습니까?”
태식이 가장 싫어하는 게 말뿐 인 조언이다.
그래서 전장에 서지도 않으면서 주둥이만 나불거리는 국왕들은 하나같이 이빨을 다 털어 버렸었 다.
그러니 맨날 그리 사서 고생을 하는 거다. 가장 싫어하는 짓을 자신이 할 수야 없으니 말이다. 여기서 말을 더하려거든 조언으 로 위장한 간섭이 아닌, 실질적 인 도움이 되어야 한다.
“흡연 가능하신 방입니다.”
태식의 고민을 눈치챈 박 실장 이 눈치 빠르게 재떨이를 밀어 줬다.
뚜껑을 열어 보니 이미 담배꽁 초가 몇 개 놓여 있다.
태식은 담배를 물었다. 연기가 휙 말린다.
“이거 언제 공부하냐.”
영화 촬영은 잘 알지 못하는 분 야다.
알량한 지식으로 미숙한 조언을 하는 게 얼마나 꼴사나운 짓인 가.
전술을 책으로만 배운 것들이 사령관 회의에 들어와서 왈가왈 부할 때면 그놈은 무조건 최전선 으로 보내 버렸던 태식이다.
안 할 거면 눈을 감는 게 맞고, 할 거면 제대로 하는 게 옳다.
그게 다 일이다.
그런데 참아지지가 않는다.
이대로 가면 어떤 꼴이 날지 뻔 히 보인다.
신경 쓰인다.
신경 쓰여 죽겠다.
이대로 모른 척 집에 가면 밤에 잠이 안 을 게 뻔하다.
“그래그래, 교통정리만이라도 해 주면 도움이 되겠지. 감독님 좀 보죠.”
박 실장은 바로 이 감독을 불러 왔다. 그는 죄인처럼 고개를 숙 이며 들어왔다.
박 실장의 표정이 이미 구겨질 대로 구겨져 있었던 탓이다.
“뭐, 뭐가 잘못되었습니까?”
“반갑습니다, 감독님.”
이 감독은 장내의 눈치를 살피 더니 냉큼 태식의 인사를 받았 다.
“아, 예. 예, 안녕하십니까. 이현 상이라고 합니다.”
“힘드시죠?”
태식은 그렇게 첫마디를 떼었 다.
“아닙니다, 힘들긴요. 일인데 요.”
“마음대로 하라고 해도 쉬운 게 아닌데, 이것저것 조건까지 빡빡 하니 어떻게 안 힘들겠어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그냥 조아리기만 한다. 잔뜩 위 축이 되어 있다.
어쩌면 감독직도 반강제로 맡게 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 다.
협박을 하지는 않았겠지만, 왜 그런 거 있지 않나. 말 한마디
안 해도 거절하면 큰일 날 것 같 은 그런 분위기.
대호 그룹이든 당일 그룹이든, 대면하는 것만으로도 그런 오라 를 내기 충분하다.
시간은 빡빡하고 지켜야 할 건 많은데, 무조건 성적은 내야 한 다.
사실 성적을 내란 말보다 무조 건 1,900개 관 이상을 밀어붙인 다는 게 더 무서울 거다.
거의 독점으로 상영관을 끌어왔 는데 결과가 나쁘면 얼마나 욕을 먹을까.
흥행을 해 본 경험이 있다고 해 서 쉽게 감당할 수 있는 부담은 아닐 것이다.
더욱이 이 전작을 대차게 말아 먹었다면 말이다.
태식은 그의 책임을 덜어 주는 게 옳다고 여겼다.
“감독님, 스토리를 좀 바꾸죠.”
“스, 스토리를요? 어떻게 바꾸 면 되겠습니까?”
이 감독의 표정이 거무죽죽하게 죽어 간다.
조금 더 박진감 넘치게, 아니면 감동이 약하니까 조금 더 감동적 으로, 개그가 약하니까 빵빵 터 지는 개그도 좀 넣고.
이런 두루뭉술한 말들이 쏟아져 나올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여느 투자사의 돈줄들이 그렇듯 말이다.
“같이 짜 볼까요? 첫 장면부터 요.”
“첫 장면부터 말씀이십니까?”
“네. 제가 영화 엔딩 크레디트 에 이름 좀 한번 올리고 싶어서 요. 총괄 기획 뭐 이런 걸로요. 이런 빡빡한 가이드라인을 줘 놓 고 아무것도 안 하는 건 너무 뻔 뻔하잖아요. 나도 수저 좀 얹어 봐야죠.”
태식은 일부러 더 너스레를 떨 었다.
누가 보면 그야말로 돈질이고 갑질이라 할 만했다.
“안 돼요? 실장님, 이거 제가 기획하는 걸로 하죠.”
“아…… 박 실장의 시선이 잠시 이린에 게 갔다 왔다.
“예, 알겠습니다.”
그제야 이 감독이 태식의 가까 이 마주 앉았다.
긴 대화가 이어진다.
태식은 굳이 스토리나 시나리오 에 대해 묻지 않았다.
촬영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편 집은 또 어떻게 되는지. 관객이 보는 장면과 감독이 만들어야 하 는 장면 사이에서의 괴리감은 무 엇인지.
그런 것들을 물었다.
빈 커피 잔이 늘어서고 재떨이 가 채워진다.
방 안 가득 담배 연기가 들어찼 을 때쯤 되자, 이 감독은 첫 대 면 때와 다르게 자신감을 회복한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다.
태식은 그제야 스토리를 이야기 했다.
장르는 히어로 (4)
“아직 본격적인 촬영은 시작하 지 않았다니 그건 다행이네요.”
“예, 안 그래도 콘티 감수를 받 은 후에 진행하려고 하던 참이었 습니다. 이사님께서 이렇게 직접 와 주실 줄은 몰랐습니다.”
“더 늦지 않아서 서로 다행이라 고 생각해요. 자, 우리 이러자고 요. 이 콘티는 그냥 없다 치고, 처음부터 다시 해 봐요.”
“예, 알겠습니다.”
이 감독은 콘티 북을 뒤집어 버 렸다.
아까워하지 않는다.
본디 작품은 쓰는 것보다 버리 는 게 더 어렵다던데, 이 감독은 그런 부분에선 결단력이 모자라 지 않았다.
“너무 밋밋하게 가지 말자고요. 목적이 있는 영화이긴 하지만 그 래도 여름 극장에 걸리는 건데, 시원하게 터지는 맛은 있어야 하 지 않겠어요?”
“그럼 액션 신을 추가하자는 말 씀이 십니까?”
“액션 신이든 뭐든, 볼거리가 있으면 좋겠죠. 맥락 없이 여배 우 벗겨 대는 것만 아니면 말이 에요.”
“그렇게는 하지 않습니다. 더욱 이 이번에는 그렇게 하면 큰일 나죠.”
이 감독은 손사래를 치며 완강 한 거부의 의사를 표했다.
“자, 그러면 일단 스케일 큰 액 션 신을 추가하고, 등장인물 소 개와 어쭙잖은 신파는 빼고 한번 이야기를 짜 보자고요.”
“그러면 차라리 아예 주인공이 능력자라고 하면 어떻습니까? 고 발의 목적으로 진중한 톤을 쓴다 고 해도 개연성이 없다곤 할 수 없을 겁니다.”
한국에는 이미 초능력자들이 실 존한다.
당연히 개연성이 있는 묘사다.
“그렇게 하자고요. 초반부에 고 난을 그리고 후반부에 가서 각성 한 주인공이 화끈하게 쓸어버리 면 되겠네요.”
고난을 겪은 주인공이 힘을 얻 어 목표한 바를 쟁취한다는 스토 리는 그야말로 왕도다.
고대국가의 개국 신화라고 해서 다를 것 없고 요즘 나오는 히어 로 영화도 똑같다.
문제는 이걸 어떻게 풀어내는지 다.
“예. 어차피 오락 액션으로 방 향을 잡는다면 너무 복잡하지 않 은 게 오히려 좋다고 생각합니 다.”
“그러면 중간 부분은 어떻게 하 시겠어요?”
“진중한 톤으로 들어가면 될 것 같습니다. 어찌 되었든 목적하는 메시지가 있으니 중반부 과정을 조금 더 적나라하게 보여 줘도 될 것 같습니다.”
“엔딩에서 좀 풀어 주는 게 있 으니 더 진지해도 된다는 거죠?”
“그렇습니다. 시나리오 자체가 없는 말 지어내는 것도 아니니 까, 아예 다큐멘터리처럼 사실적 으로 묘사해도 괜찮을 것 같습니 다.”
“그거 좋네요. 사실감 진하게 넣어도 어차피 후반부에서 히어 로 영화처럼 빵빵 터질 테니까 좀 희석되겠어요.”
“네, 그렇습니다. 그러면 캐릭터 도 너무 작위적으로 가지 않아도 됩니다. 상황이 격해지면 사람 감정은 더 쉽게 터지니까 부차적 인 사연 설명 같은 건 다 빼도 될 겁니다. 초반부에 중국 어선 이랑 접전을 한 번 넣고, 여기서 캐릭터마다 누구는 싸우고 누구 는 도망가고 누구는 겁에 질려 있고, 이런 식으로 한 번에 성격 들을 보여 주면 될 것 같습니 다.”
“해경은요? 바다에서 일어나는 일이면 분명 해경이 있어야 되는 데 언급만 한번 되고 말더라고 요.”
“그건……. 이게 이슈가 민감하 기도 하고 포커스를 좁히려고 그 렇게 한 겁니다.”
“포커스를 좁혀요?”
“예. 해경들이야 사실 위에서 하라는 대로 하는 거고 명령이 안 떨어지면 어쩌지 못하는 건 데, 그렇게 타고 올라가다 보면 결국 정치인을 탓하게 되지 않겠 습니까?”
“탓? 탓이 아니라 사실 아니에 요?”
“그거야 그렇긴 하지만……. 그 럼 그냥 이건 삭제할까요?”
“다큐처럼 하자고 했잖아요. 있 는 그대로 보여 주자고요.”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러면 주인공이 힘을 각성한 후에 다크 히어로 콘셉트로 가는 건 어떻습 니까? 아무래도 억눌린 감정이 폭발하는 장면이니까 그게 맞을 것 같습니다.”
“그건 상관없는데, 제발 묵직하 고 멋있게. 그렇다고 너무 중2병 걸린 것처럼 느껴지지 않게 했으 면 하거든요.”
태식은 순간 자신이 너무 뭉뚱 그려 이야기한 것 아닌가 했다.
“그러면 슈퍼맨의 피지컬에 배 트맨 같은 아우라면 어떻습니 까?”
그런데 바로 알아듣는다.
이런 사람이 왜 전작은 그렇게 찍어 놨는지 궁금할 지경이다.
“그러면 괜찮겠네요.”
태식이 고개를 끄덕이니 이 감 독의 눈도 초롱초롱해진다.
“그렇게 되면 주인공이 다 때려 부수는 장면이 나와야 될 건 데…… 쓰으, 아, 이게 참.”
“그렇게 해요. 이왕 부수는 거 화끈하게 부숴야 시원하죠. 슈퍼 맨 영화 보면 도시 하나 통째로 날려 버리고 하잖아요. 이왕 할 거면 눈요기 제대로 시켜 주는 쪽으로 가는 게 맞죠.”
“스토리상이 아니라 촬영이 현 실적으로 가능할지 모르겠습니 다. 클라이맥스 부분은 해상 신 이라, 촬영에 어려움이 큽니다. 그러면 대부분 그래픽 작업을 해 야 되는데, 그게 인력도 인력이 지만 시간도 오래 걸리는 거라서 요.”
시간이 촉박하다.
도시를 날려 버릴 정도의 그래 픽 작업은 돈을 아무리 많이 바 른다고 해도 물리적으로 불가능 한 일정이다.
“요즘 관객들의 눈높이가 상당 히 높지 않습니까. 그 정도 눈높 이를 맞출 수 있는 그래픽 회사 는 사실 전 세계적으로도 몇 곳 없습니다. 그런 회사들은 항상 일정이 차 있는 편이고요.”
태식은 턱을 쓸던 손으로 다시 담배를 찾았다. 불도 붙이지 않 고 길게 빨아들인다.
“후우-. 아아……
“그, 그래도 제가 어떻게든 최 대한 섭외를 해 보겠습니다.”
“아니요, 안 되는 걸 되게 하라 는 게 아니고요. 내가 이렇게까 지 하는 건 너무 오버하는 거 아 닌가 싶어서 그러는 거예요.”
“예? 어떤 점이……
“내가 촬영을…… 도와준다고 하면 감독님이 기분이 나쁠까 요?”
“예? 촬영을요? 이사님께서 직 접요?”
이 감독은 박 실장을 보았다. 박 실장은 엄한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예, 예! 그러실 수 있죠. 그러 실 수 있습니다.”
“내가 감독 일을 하겠다는 건 아니고요. 나 솔직히 영화 촬영 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라요. 카메라 버튼은 전원 버튼밖에 모 르고요.”
“그, 그러시면 대체…… 어떤 촬영을……
“그런데 내가 하늘을 날 수 있 거든요.”
“예? 하늘을 날 수 있다고요?” 태식은 잠시 몸을 둥실 띄웠다.
이 감독은 눈을 껌뻑이더니 짝 박수를 쳤다.
울상이었던 표정이 확 살아난 다.
“능력자십니까!”
“보시다시피. 그러니까 내가 앵 글을 이리 잡아라 저리 잡아라 그런 걸 하겠다는 게 아니고요. 공중촬영 같은 건 내가 해 줄 수 있다, 그런 말이에요. 그런데 카 메라를 만져 본 적이 한 번도 없 다 이거죠.”
“자,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제가 가져오겠습니다.”
이 감독이 후다닥 방을 나갔다.
“태식 씨, 괜찮겠어요?”
지금까지 뒷자리에서 가만히 앉 아 있던 이린이 걱정스레 물었 다.
“이 오지랖이 병이라니까요, 진 짜.”
“어쩌시려고요?”
“뭘 어째요. 공부해야죠.”
닫혔던 문이 벌컥 열린다. 태식 은 얼른 자세를 고쳐 잡았다.
“이사님, 이게 촬영용 카메라입 니다. 야, 야, 홍민아! 빨리 그거 입고 와 봐, 인마. 왜 이렇게 오 래 걸려?”
홍민은 몸에 뭘 주렁주렁 달고 왔다.
“지금 얘가 착용하고 있는 건 짐벌입니다. 카메라가 흔들리지 않게 해 주는 장치인데요, 여기 에 카메라를 결합해서 촬영을 하 는 겁니다. 한번 입어 보시겠습 니까?”
이 감독은 대놓고 신나 있었다.
“그래요. 한번 입어 보죠.”
이 감독과 홍민이 태식의 짐벌 착용을 도왔다.
“어떠십니까? 이 상태로도 나실 수 있습니까?”
태식은 몸을 둥실 떠올렸다. 그 러곤 카메라를 이리저리 움직여 봤다.
“그, 그러면 실례지만 비행 능 력이 어떠신지…… 곡예비행이나 저공비행 같은 거 있지 않습니 까. 아니면 정지 비행 같은 거도 가능하십니까?”
“그런 건 다 문제없죠.”
“속도는…… 그러니까 이게, 그 런 장면 있지 않습니까. 날아가 는 화살이나 그런 걸 줌인으로 찍어서 역동적으로 보이게 하는 장면요.”
“뭔지 알아요. 사극영화에서 한 번씩 나오잖아요.”
“예. 그래픽으로 만들면 꼭 티 가 나서요. 실제로 찍으려면 레 일을 설치해서 카메라를 화살하 고 같은 속도로 이동시키면서 해 야 합니다. 말이 쉽지 사실 불가 능에 가까운 거거든요. 요즘은 드론 기술이 발전했다고 하는데, 그래도 불가능에 가깝죠.”
“그러니까 날아가는 화살을 따 라가면서 근접 촬영할 수 있냐는 거죠?”
“예. 이게 어선에서 대형 새총 을 두고 쇠막대기 같은 걸 날린 다고 들었습니다. 그럴 때 한번 사용해 보기 좋지 않겠습니까?”
“그 정도는 되죠.”
“아, 그렇습니까? 그러면 수중 촬영도 가능하십니까? 그러니까 이게, 앵글이 하늘에서 시작하는 겁니다. 야, 홍민이 뭐 하냐, 인 마! 너 빨리 여기 누워 봐.”
이 감독은 홍민을 잡아다 테이 블 위에 누였다.
“여기 홍민이가 배입니다, 배. 전투가 벌어지는 상황에서 누가 물에 빠졌다, 그러니까 주조연급, 주인공 여자 친구나 동생이면 되 겠죠? 그때 카메라가 하늘에서 위에서 내려찍듯 떨어지면서 활 강을 하는 거죠. 배에서 고함치 는 사람들 얼굴이 스쳐 지나가 고, 그대로 입수하면서 물에 빠 진 여자 친구 얼굴 싹 스치고 내 려가면서 위로 앵글 딱 올렸을 때 주인공이 다이브를 탁 치는 장면까지. 그리고 다시 앵글이 위로 쓱 올라오면서 주인공이 물 위로 올라가는 장면을 같은 속도 로 딱 찍어서 올라오는 겁니다. 이걸 원 테이크로!”
이 감독은 숨 한 번 쉬지 않고 단번에 내뱉었다. 입꼬리에 침방 울이 맺힌 채 숨을 헐떡거린다.
“말이 너무 빨라서 제대로 다 못 알아들었는데, 여하튼 하늘에 서 바다까지 한 번에 왔다 갔다 할 수 있냐는 거죠?”
“그렇지요! 제 말이 그 말입니 다.”
“그런 거라면 되죠.”
“그러면 실례지만, 최고 속도가 어느 정도까지 나오십니까?”
“무슨 100문 100답 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안 되는 거 없다고 생각하시고 편하게 짜 보세요. 봐서 안 될 거 같으면 안 된다고 이야기해 줄 테니까.”
“아…… 예, 알겠습니다. 그러면 이 폭발 장면이나 그런 건 어떻 게 되겠습니까? 아무래도 상당히 위험한 신이라 방호복이나 이런 게 잘 구비가 되어야 할 텐 데……
“그냥 마음껏 상상하세요, 마음 껏. 나도 정리할 게 있으니까 오 늘은 이쯤 하자고요.”
“아, 예, 알겠습니다. 제가 귀한 시간 너무 뺏은 거 아닌가 모르 겠습니다. 그러면 다음 일정은 언제로 할까요? 제가 그때까지 콘티를 완성해 두겠습니다. 대본 새로 빼고 대본 리딩할 때 말씀 드릴까요?”
“나중에요, 나중에.”
태식은 이 감독을 진정시키곤 방을 나왔다.
나머지는 박 실장이 알아서 해 줄 거다.
차에 올라탄 태식은 의자에 푹 늘어졌다.
“아이고, 골치야.”
오늘은 잠 잘 자긴 글렀다. 벌 써부터 촬영에 대한 것들이 머릿 속에 그려진다.
그래 봐야 아는 게 없다. 그래 서 더 짜증 난다.
아는 게 정말 하나도 없어서 뭐 부터 찾아봐야 할지도 모르는 그 런 상황 말이다.
그런데 눈은 또 높아서, 직접 한 결과물이 마음에 안 들면 용 납이 안 된다.
“미안해요.”
“사장님이 미안할 게 뭐예요.”
“제가 부족해서 태식 씨를 나서 게 만든 것 같아요.”
“그런 소리 마세요. 이건 그냥 내 병이에요, 병.”
태식은 허공에 발길질을 하며 벌떡 일어났다. 확 꽂혀 버리니 성질 급하다.
“오후 일정 더 있어요?”
“아니요. 딱히…… 없어요.”
“그럼 호텔 좀 같이 가죠.”
“네, 네.”
태식은 차 안에서 공간을 갈랐 다. 바로 이린의 집무실이다.
“괜히 또 못 참고 나서 가지고 일 키우네, 이거. 사장님, 내가 큰 부탁 좀 해도 돼요? 공짜로 해 달라는 건 아니고요. 나중에 갚을게요.”
“갚기는요. 편히 말씀하세요. 어 떤 일인데요?”
“일단 한 100평 정도 되는 자 리 마련해 줄 수 있어요?”
“용도는요?”
“공부방으로 쓸 거예요.”
“공부방……요? 네, 알겠어요. 방이 여러 칸으로 나뉘어 있어야 되나요?”
“아니요, 하나로 연결되어 있어 야 돼요. 용도를 물어봐서 공부 방이라고 한 거지, 공장 같은 구 조면 돼요.”
“그래도 공부방인 거면 태식 씨 가 그 안에서 집무를 본다는 거 잖아요.”
“용도가 그렇다는 거죠.”
“흐음…… 크기가 반드시 100 평 이상이어야 되는 건가요?”
“조금 더 작아도 상관은 없어 요. 다만 바닥이 정사각형 모양 으로 나와야 돼요. 거기에 돔 구 조물이 들어가야 돼서요.”
“그러면 천장도 꽤 높아야겠네 요‘?”
“그러면 좋죠.”
“잠시만요.”
이린은 아예 집무실 밖으로 나 갔다.
잠시 뒤에 돌아온 이린은 태식 을 안내해 호텔의 연회장으로 이 동했다.
“이 정도면 어때요? 천장이 조 명 시설 때문에 조금 낮아 보이 긴 하는데, 철거하려거든 다 철 거할 수 있어요.”
“여기를 쓰라고요? 호텔 내에 자리 만들어 달라고 한 거 아니 에요. 공장 부지 같아도 충분해 요. 나는 왕래하는 데 제약이 없 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