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lf Price Pawn Shop RAW novel - Chapter (16)
실화 (3)
“그럼 필름 한번 확인해 보시겠 습니까?”
“그러죠.”
태식은 이 감독의 선실에서 쿠 키 영상 촬영분을 확인했다.
“잘 나왔네요.”
“예. 이사님께서 준비해 주신 모형 비행기가 정말 완벽해서 따 로 그래픽 작업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그러면 엔딩 장면은 어떻게, 되겠어요? 그 정도는 그래픽 작 업으로 가능하죠?”
“예, 전투 신을 다루는 건 아니 니까요. 전투기와 대치하기만 하 는 모습이라 그렇게 품이 많이 드는 작업은 아닙니다.”
“그래요. 남은 촬영도 수고하시 고요.”
확인할 걸 다 했으니 일어날 참 이다.
“그냥 가시렵니까?”
“그럼요?”
“식사라도……
“그런 거 안 하셔도 됩니다. 편 히 드세요, 편히. 나는 어디까지 나 객원이니까.”
태식은 그리 말하곤 이린에게 넘어갔다.
“수고하셨어요.”
“사장님도 수고하셨어요. 급히 인력 섭외하느라 힘들었을 텐 데.”
“그게 뭐 별거라고요.”
“별거가 아니죠. 갑자기 그만한 여객선을 빌려 오는 게 어디 쉬 우려고요.”
“어렵지 않았어요. 돈이면 되는 걸요. 오히려 태식 씨가 몸으로 힘들게 일했죠. 정말 수고했어요. 이런 걸로 신경 쓰게 하고 싶지 않았는데……
“계속 그러시네. 내가 하고 싶 어서 나선 거라니까요. 그리고 이렇게 하는 건 나밖에 할 수 없 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어차피 내 일인 거예요.”
“네, 고마워요.”
“자, 그럼 마무리하시고, 저는 먼저 들어갑니다.”
“식사 안 하시고요?”
“비 쫄딱 맞아서 찝찝해요. 집 에 가서 편하게 쉴 거예요.”
“네, 그래요. 다음에 봐요.”
태식은 집으로 넘어왔다.
“후아〜 이제 좀 속이 풀리네.”
간섭을 한 부분에 있어서 도와 줄 수 있는 건 다 도와줬다.
스스로 말만 나불거렸다는 느낌 은 아니다.
태식은 찬물로 샤워를 하며 비 린내를 씻어 냈다.
아직 초저녁이지만 잠을 좀 자 려 한다.
새벽녘에 일찍 일어난 것과는 상관없다.
신경 쓰이는 일 잘 털어 냈으니 침대에서 뒹굴어야 하지 않겠나.
태식은 추리닝 중에서도 가장 낡은 추리닝을 입었다.
무릎이 나오다 못해 흘러내려 정강이에 닿을 지경이다.
오늘은 아무것도 안 하고 늘어 지겠다는 의지의 투영이었다.
“이것들이 전화를 안 받아!”
태식은 미주의 고함 소리에 잠 에서 깼다.
시계를 본다. 자정이 다 되어 간다.
“해 보자 이거지. 해 봐, 그래. 내가 오늘 밤새 전화 건다.”
태식은 부스스 거실로 나갔다.
“엄마, 무슨 일 있어?”
“전화가 계속 통화 중이야. 수 화기를 내려놓은 모양이라니까.”
“그러니까 누가?”
“누구긴, 방송국 놈들이지.”
“울 마마님이 방송국에 전화할 일이 뭐가 있어서?”
“피디노트 주제가 바뀌었잖아! 저번 주에도 예고를 했었는데, 어떻게 바로 이렇게 내용이 바뀌 어? 이게 외압이 아니고 뭐겠 어!”
“그런다고 방송국에 전화해서 뭐 해. 그 사람들도 당한 건데.”
“사장실로 전화하는 거야. 높은 놈들끼리 짝짜꿍해서 내리눌렀을 거 아니야?”
미주는 받을 리 없는 전화를 연 신 반복했다.
태식은 피식 웃으며 캔 맥주를 챙겼다.
“그럴 거면 차라리 당일 그룹 회장실로 전화를 걸어. 거기가 가장 높잖아.”
“당일 그룹? 거기가 왜?”
“피디노트 방송사가 당일 그룹 거잖아. 몰랐어?”
“이름에 당일의 당 자도 없는데 어떻게 알아. 그리고 당일 그룹 은 식품 판매하는 곳 아니야?”
“요즘 그룹이 어디 하나만 하 나. 식품도 하고 방송도 하고, 그 런 거지. 어떻게, 전화 연결해 드 려?”
피쉬이- 캔을 따 미주에게 건 넨다.
“너어-.”
“응?”
태식은 어깨를 으쓱한다.
“너 뭐야. 뭐 했어?”
“했지. 저놈들 다 잘라 낸 거라, 이제 다른 거 하라고.”
“그럼 네가 방송 막은 거니?”
고리눈을 뜬다. 장난을 하는 투 가 아니다.
“방송을 막고 안 막고를 떠나 서, 시작 자체를 내가 했는걸.”
“시작을?”
“응, 시작을.”
“너-! 너!”
미주는 태식의 등을 찰싹찰싹
때렸다.
“그럼 뻔히 다 알고 있는 거면 서 모르는 척 의뭉 떨고 있었 어‘?”
“뭐 좋은 거라고 미주알고주알 떠들어. 그리고 물어봤나.”
“이눔이 이게-!”
“성 그만 내시고 맥주 한잔하셔 요. 이번 것도 재미있어.”
“이번 거? 철 지난 이야기하고 있는데 뭐가 재미있어?”
“뭐 나왔는데?”
“중국 이야기 나오더라. 한한령 이 뭐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나 어쨌다나.”
“그거 맞아. 그럼 맞게 나온 거 야.”
태식이 똘망똘망한 눈으로 미주 를 빤히 봤다.
“아이구, 머리야. 이 녀석이 뭐 하고 돌아다니는 거야?”
“뭐 하고 돌아다니긴, 착한 일 하고 돌아다니지.”
태식은 자기 몫의 맥주도 열어 시원하게 들이켰다.
“자, 자! 다음 거 보자고. 100 분썰전도 같은 거 할 거니까.”
-오늘 100분썰전의 주제, 지금 까지 이어지는 중국의 한한령에 대해, 우리 정부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로 썰전을 벌여 보 겠습니다.
사회자의 인사와 함께 보수 측 패널과 진보 측 패널이 마주 보 며 인사한다.
복싱 경기장 같은 세트에서 거 대한 모래시계 테이블에 앉아 혀 로 전투를 벌인다.
다른 공영방송의 점잖은 시사 토론과 달리 100분썰전은 그야 말로 세 치 혀로 상대를 죽이겠 다는 의지를 가지고 싸워 댄다.
은근한 반말과 비아냥거림은 기 본이고 심하면 외모 지적에 인격 모독까지 한다.
그러다 재킷을 벗어 내던지는가 하면 갑자기 벌떡 일어나 섀도복 싱을 하기도 한다.
그렇다. 말 그대로 쇼다.
프로레슬링과 비슷하다. 진짜처 럼 싸우지만 절반은 짜인 쇼인 것이다.
그럼에도 나름의 인기가 높은 것은 패널들이 서로의 진형에서 쏟아 내고 싶은 소리를 가감 없 이 속 시원하게 질러 주기 때문 이다.
-지금까지 그렇게 말을 잘 들 고 샤바샤바를 했으면 뭐 하냐 이겁니다. 아직도 한한령을 하고 있는데, 오히려 말 잘 듣는 강아 지 방치해 두는 꼴 아닙니까.
-그럼 뭐 물어뜯기라도 하자는 겁니까? 현실을 좀 보세요, 현실 을. 중국이 작정하고 경제 보복 을 하면 우리나라 중소기업은 다 물려 죽는 겁니다. 그리고 뭐 샤 바샤바요? 강아지요? 그게 나라 를 대표하는 공직자들에게 할 말 입니까?
-최소한의 국격이란 게 있다 이겁니다. 같이 간 기자가 두들 겨 맞고 와도 말 한마디 제대로 못 하면 그게 강아지지, 호랑이 대접이라도 받은 줄 알았습니까?
-지금 그쪽이 하는 말은, 내 새 끼들 키우려고 더러워도 참고 아 니꼬워도 참으며 고개 숙이는 이 나라의 가장들을 전부 모욕하는 언사예요! 상처받았을 가장들에 게 사과하세요!
“쟤들은 맨날 저렇게 쓸데없이 싸우더라.”
“그 맛에 보는 거잖아, 그 맛 에.”
“이것도 네가 한 거야?”
“원래 피디노트랑 100분썰전이
랑 묶어서 가잖아.”
-우리 정부가 제대로 처신을 못하니까 중국인들도 우리를 우 습게 아는 겁니다. 당장 서해만 해도 어선 수백 척이 우리 영해 를 침범해 들어와 물고기를 싸그 리 잡아간다 이거예요. 우리 정 부가 이런 것부터 강력하게 항의 하고 대응하지 못하니까 이런 일 이 계속 벌어지는 거 아닙니까!
-해경이 이미 대응하고 있습니 다. 여기서 뭘 더할까요? 러시아 처럼 어선을 폭파시키기라도 해 야 됩니까?
-우리라고 못 할 건 뭡니까. 하 면 되지.
-입으로 뱉는다고 다 말이 아 닙니다. 그러다 전쟁 나면? 어쩌 려고요. 막말로 같이 죽자고 덤 벼도 우린 핵무장이 안 되어 있 지 않습니까. 좀 다리 뻗을 자리 봐 가면서 뻗자는 말입니다. 제 말이 어렵습니까?
-그럼 우리도 핵 만들어! 우리 가 기술력이 없어 뭐가 없어! 우 리도 핵 만들자고! 핵 만들면 되 지! 우리나라 핵 기술도 세계에 서 알아주는데!
-자, 자! 홍 코너께선 오늘 주 제에 일치하는 발언만 해 주시기 바랍니다.
토론의 내용이 산으로 가면 사 회자의 중재가 따른다.
그런데 가만 보면 이렇게 산으 로 가는 것같이 한 번씩 내던지 는 말들도 중요한 정치 논쟁거리 들인 경우가 태반이다. 그리고 그 주제로 다른 회차에 서 논쟁을 하기도 하고 말이다.
모르긴 몰라도 저런 흐름도 전 부 대본이 되어 있을 거라 본다.
“나는 이거 정신없어서 못 보겠 더라. 소리는 왜 저렇게 질러.”
“원래 반은 예능이잖아. 저렇게 난리 피우는 거 보려고 보는 건 데.”
“저번엔 소리를 하도 질러서 헛 구역질까지 하더라.”
“돈 버는 게 어디 쉽나.”
미주는 100분썰전에 별 흥미가 없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게?”
“김샜어. 바보 같은 엄마는 잘 나신 아드님이 하는 건 줄도 모 르고 괜히 열만 풀풀 냈네.”
미주는 반쯤 남은 맥주 캔을 싱 크대로 던져 넣고는 방으로 들어 갔다.
삐쳤다거나 그런 건 아니다. 말 그대로 김이 새서 그런 것일 뿐 이다.
태식은 귀로는 텔레비전 소리를 들으며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포털 사이트의 뉴스 탭으로 들 어간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있다.
[이현상 감독, 차기작 촬영 중 중국 어선과 실제 충돌]
내용의 골자는 서해 해상에서 영화 촬영 중이었던 촬영팀이 한 국 영해에서 불법 조업을 하고 있던 중국 어선들과 예상치 못한 충돌로 무력시위까지 이어질 뻔 했다는 것이었다.
내용이 자극적이다 싶었지만 반 웅은 그저 그랬다.
댓글도 하나 없고 싫어요만 두 개 찍혀 있을 뿐이다.
뉴스가 올라온 지 얼마 안 돼서 그런가 생각하기에도 너무 적다.
이게 당연하다.
본래 사람들은 이런 시사 뉴스 에 그다지 관심이 없다.
아쉬워할 것도 아니고 일부러 사람을 써서 이슈화시킬 필요도 없다.
이건 그저 밑밥이다.
촬영이 모두 끝나고 나면 배우 들이 영화 홍보차 예능을 돌 것 이다.
그 자리에서 이 이야기를 맛깔 나게 풀어 주면 된다.
실제 충돌이었고 그 장면이 영 화에 그대로 쓰였다고 하면 흥미 가 돌 만하지 않겠나.
그럼 그때 이 뉴스가 제대로 조 명될 것이다.
그즈음 해서 시사 프로그램에서 중국 어선의 불법 조업에 대해 몇 번 더 언급한 후에 영화가 개 봉되면 얼추 분위기가 맞아떨어 진다.
그 정도면 초반 이슈 몰이는 어 느 정도 될 거다.
내용은 둘째 치더라도 볼거리는 충분히 만들어 놨으니 여름철 볼 만한 오락 영화란 평은 들을 거 고, 그러면 상영관을 독점한 것 에 대해서도 수상쩍은 밀어주기 라는 식의 눈초리는 피할 수 있 을 거다.
“그러면 이놈들이 어떻게 나오 려나.”
태식은 특유의 톤으로 열을 올 리는 홍코너와 전매특허 같은 멸 시의 표정을 짓는 청코너의 만담 을 보며 맥주를 홀짝였다.
머릿속으론 중국의 다음 수를 헤아려 본다.
처음에는 서해에 미세먼지 관련 해서 연결되어 있는 의원을 통해 압박을 넣었는데, 그 의원이 사 고를 당해 병원에 드러누운 상태 다.
그다음으론 당 차원으로 압박을 했다.
그러자 이번엔 한국 정치계에서 매일 초대형 스캔들이 터져 나왔 다.
제집 지붕이 불타고 있는 마당 이니 다른 것에 신경 쓸 틈이 없 겠거니 하고 넘어가기엔 시기가 미묘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 을 것이다.
그러니 자체적으로 영공까지 침 범해 가며 정찰 드론을 활용한 것일 테다.
그런데 그 정찰기가 사라지고 한국 내에서는 연일 반중감정을 일으키는 미디어가 쏟아져 나온 다?
그리고 거기서 이번 영화를 중 국 관계자가 보게 된다면.
더욱이 그 안에서 사라진 줄로 만 알았던 정찰 드론이 폭발하는 걸 확인했다면.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
피치 못할 사정이 생겨서 말을 못 듣는 게 아니라, 내부적으로 무언가 다른 생각이 생겨서 수를 쓰고 있다는 식으로 말이다.
현 정부에서 아무리 친중 노선 을 걷고 있다고 해도 더 이상 그 말을 믿지 못하게 될 거다.
아니면 말해 봐야 소용없다고 여길 수도 있다.
통제를 하라고 해 봐야 통제를 못하니 말이다.
중국은 이번에도 독자적으로 움 직이려 할 거다.
그 답은 뻔하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한한령을 더욱 강력하게 밀 어붙일 것이다.
자국 내의 한국 기업을 몰아내 고 한국 기업의 자국 진출을 막 고.
한국 연예인과 배우의 활동을 막으며 자국민의 한국 여행을 통 제한다.
어디 그뿐인가.
자국 내 기업의 한국산 상품에 대한 무분별한 카피와 모방에 대 해 무조건적인 보호를 하고, 하 물며 한국을 사칭하는 것까지 관 망한다.
국제 상식적인 상표권에 대한 인식마저 깡그리 무시하는 행태 를 국가에서 나서서 자행하는 거 다.
지탄받을 행동인 줄 모르고 하 는 게 아니다.
알고도 그리하는 거다. 해도 되 니까. 해도 크게 탈 날 것 없으 니까.
막대한 시장을 기반으로 한 돈 으로 타국의 경제 자본을 잠식하 여 목줄을 쥐고 있으니 그 정도 배짱이 나오는 거다.
“이왕 하는 거 화끈하게 무력 도발까지 가 주면 좋겠는데 말이 야.”
일이 착착 진행돼 가는 느낌이 다.
태식은 후훗 웃으며 맥주 캔을 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