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lf Price Pawn Shop RAW novel - Chapter (18)
연지 (2)
“헤에-. 내가 하자고 했어요. 막 촬영된 거 보고 나니까 피가 끓는 거 있죠. 그래서 내가 먼저 제안했거든요. 확 던져 보고 싶 더라고요.”
“아이구, 우리 연지. 연기한다고 할 때는 까불거리는 건 줄 알았 는데, 정말 진심이었구나.”
이린이 연지의 머리를 쓰다듬었 다. 연지는 그 손길이 좋아 머리 를 비비적거렸다.
영화는 주인공들이 몰매를 맞으 며 통곡하는 장면, 그중에서 주 인공의 핏물 가득한 얼굴을 클로 즈업하는 것으로 끝이 났다.
“확실히 찜찜하다.”
“그렇죠? 의도대로 잘 빠졌죠?”
“응. 쿠키는? 쿠키가 더 중요하 잖아. 쿠키도 있는 거야?”
“네, 들어 있어요. 보세요.”
연지는 파일을 넘겨 쿠키 영상 을 틀었다.
클로즈업된 주인공의 눈에서 검 은 안광이 뿜어져 나오면서 쏟아 지는 빗물이 튕겨 나가는 장면이 었다.
쿠키 영상이라고 하기보다는 컷 신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짧은 편집이었다.
잠시 어두워졌던 화면이 다시 밝아졌다.
주인공은 이미 하늘로 날아올라 있는 상태다.
그의 시선을 따라 해상을 한번 비춰 주는데, 화면을 가득 메우
고 있는 어선들이 전부 뒤집어진 상태다.
주인공이 타고 있던 배인 양심 호만 그대로인 채다.
주인공이 먼 하늘을 보더니 빠 르게 날아간다.
그러곤 그대로 중국의 정찰 드 론을 박살 내 버린다.
중간중간 어설픈 화면은 아직 보정이 완전히 끝나지 않은 그래 픽 작업물이 섞여 들어간 탓이고 그렇지 않은 부분은 실제처럼 리 얼했다.
도대체 어떻게 저런 앵글로 찍 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의 화면들이다.
영상을 보던 이린의 입꼬리에 미소가 잔잔하다.
얼굴은 나오지 않지만 날아다니 는 뒷모습만 봐도 태식인 줄 알 아보겠다.
“여기 이 장면, 어때요? 대역 헌터지만 턱선이 정말 섹시하게 나오지 않았어요? 빗물 맺혀 있 는 게요.”
“후훗, 조금? 화면으로 봐서 그 런가 느낌이 다르긴 하네.”
“평소에는 어떤데요?”
“응?”
“여기 이 대역 헌터요.”
연지가 눈동자를 초롱초롱 빛내 며 물었다.
이린은 그제야 자신이 너무 쓸 데없는 티를 내었구나 생각했다.
연지라서 너무 편히 대한 탓이 다.
그런데, 그러고 보면 연지라서 편해도 되는 것 아닐까?
태식이 어디 얼굴 숨기고 다니 는 사람도 아니고 말이다.
그런 거 신경 쓸 사람이었으면 모르긴 몰라도 위장 신분 열댓 개쯤은 들고 다녀야 할 것이다.
“평소에는 좀, 편하달까?”
“ 편해요?”
“가벼운 건 절대 아닌데, 달리 표현할 말이 딱 안 떠오르네. 아 무리 가벼운 척을 해도 가벼워질 수가 없어서 가볍게 느껴지지 않 는 그런 느낌. 내가 말하고도 무 슨 말인지 모르겠네.”
“저는 대충 알 것 같은데요.”
“그래?”
“네. 엄청 잘생긴 영화배우가 예능 나와서 원숭이 흉내 내는 그런 느낌적인 느낌 말하는 거 아니에요?”
“으음…… 대충 비슷할지도?”
“그럼 진짜 대단한 사람인가 보 네요. 이모가 그렇게 생각할 정 도면요.”
“객관적으로 대단한 사람이지. 연지 너도 봤잖아, 그 사람이 얼 마나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는 지.”
이린은 말을 하면서 USB를 정 리했다.
그 탓에 이린의 얼굴이 가려진 다. 연지는 그게 아쉬웠다.
“그런데 그 헌터는 이름이 뭐예 요?”
“이름은 왜?”
“엔딩 크레디트에 올려야 되잖 아요.”
“주인공 대역으로?”
“네.”
“감독님이 알아 오라고 한 거 니?” “그건 아니지만, 그게 당연한 거니까요. 지나가는 행인 1도 이 름을 올려 주는데 이런 비중 있 는 역할에 이름을 안 올려요?”
“하긴, 그것도 그러네. 그런데 한번 물어보고. 영화 출연까지 욕심이 있는 사람은 아니니까.”
“그런 것치고는 정말 열심히 하 던데요?”
“스스로의 행동에 대한 책임감. 딱 거기까지. 이름을 알리려는 것도 아니고, 돈을 벌자고 하는 것도 아니고. 딱 거기까지인 사 람이야.”
“아〜. 그렇구나.”
연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요 근래, 아니, 지금까지 이린이 했던 누군가의 평가에 있어서 이 보다 더 후한 평가는 없었다.
“그러면 수정 사항은요?”
“딱히. 그래픽 어색한 것만 잘 보완하면 될 것 같은데. 지금은 시간이 없어서 간단하게 봤고, 비서실에 전달해서 제대로 분석 하게 할 테니까 이 감독에겐 미 리 말할 거 없어. 내가 할게.” “네. 그런데 시사회는 오실 거 죠?”
“시사회?”
사실 시사회는 딱히 생각이 없 었다.
최대 투자자인 것은 맞지만 신 분을 전부 드러내지 않았다.
이 감독이 눈치가 빠르다면 투 자자가 이린인 줄 알 수도 있겠 지만 대외적으로는 당일 그룹에 서 제작한 것으로 배포 될 것이 다.
그런 상황이니 굳이 시사회에 굳이 얼굴을 비칠 이유가 없다.
그런데 출연진으로 연지가 있다 면 조금 다를까 싶기도 하다.
“생각 한번 해 보고.”
“와 주세요. 어차피 저도 정체 가 탄로 나 버렸거든요. 할머니 가 그냥 확 말해 버린 거 있죠.”
“후훗, 그건 연지 입장에서는 좀 아쉽게 됐는걸?”
“그러니까요. 주인공으로 영화 찍기 전까진 밝히지 않으려고 했 는데! 그래도 이번에 연기가 엄 청 좋아서, 나쁘지 않은 것 같기 도 하긴 해요.”
“영화적으로 호재이긴 하겠다. 당일 그룹의 장손녀가 조연으로 출연하는 영화라고 하면.”
“거기에 상반신 노출까지. 아니 다, 상반신 노출이 아니라 파격 적인 노출로 해야 더 효과가 있 겠죠?”
“어이구, 홍보까지 직접 하려 고?”
“안 그래도 홍보 때문에 예능도 나가는데요. 다음 주 녹화예요/
“그러네. 요즘은 다 그렇게 하 지? 그것도 피곤하겠다. 연기만 한다고 끝나는 게 아니니까.”
“이렇게 해서 조금이라도 더 많 은 관객들이 보면 좋은 거죠. 그 래도 말할 거리가 많아서 크게 부담스럽지는 않아요. 쓸데없는 개인기 같은 거 없이 영화 이야 기만 해도 충분할 거 같아요.”
영화 촬영 중 중국 어선과 실제 로 충돌이 일어났다는 뉴스는 이 미 밑밥으로 깔아 놨으니 홍보에 미쳐서 있지도 않은 말을 지어낸 다는 소리는 듣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개인기 준비하긴 했는 데, 한번 볼래요?”
“네가 개인기를? 무슨 개인기인 데?”
“사오정 흉내요.”
“ 으응?”
연지는 입을 크게 벌리곤 나바 아앙-이라고 외쳤다.
이런은 이마를 짚었다.
“연지야, 소속사랑 상의한 거 지‘?”
“아니요. 안 했어요.”
“그럼 상의 한번 해 보지?”
“그럼 당연히 하지 말라고 하겠 죠. 우리 할머니 눈치 봐서, 망가 지는 건 절대 못 하게 하거든 요.”
“그럼 연지 생각에는 그게 맞 아?”
“네. 저 입 크잖아요. 그런데 진 짜 잘하지 않아요? 편집할 때 나 방 나가는 거 CG 넣어 달라고 하려고요.”
“괜찮겠어? 그래도 여배우인 데.”
“저도 여배우라고만 평가받았으 면 좋겠는데요, 뒤에 있는 언덕 이 너무너무 크잖아요.”
마미윤을 말하는 것이고 당일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대호를 말하 는 것이기도 하다.
“이 정도는 해야죠. 이러나저러 나 언젠가는 이력이 들킬 텐데, 그때 가서 공주님이니 금수저가 취미로 연기하니, 하는 소리는 듣기 싫어요. 뭐, 아무리 그래 봐 야 듣긴 듣겠지만.”
“그래서 일부러 망가지려고?”
“더 망가져야죠. 그렇게 해서 관객들이 좀 편하게 느낀다면, 더 망가질 수 있어요. 스타킹도 뒤집어쓰고 밀가루도 맞고. 그런 것들 다 할 수 있어요.”
“아휴-. 우리 연지.”
이린은 연지의 등을 토닥여 줬 다.
“그래, 잘하고 있어. 네 진심,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알지.” “그러니까요. 그러니까 시사회 와 주세요. 조연이긴 하지만 그 래도 지금까지 맡았던 배역 중에 는 가장 큰 배역이란 말이에요. 꽃다발까지는 바라지 않을게요.”
이린은 스케줄을 체크하지 않았 다. 조절하면 그만이다.
“그래, 알았다. 우리 연지가 이 렇게 부탁하는데 가서 응원해 줘 야지.”
“ 약속요.”
연지는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어리광을 피운다.
맨날 사고 치고 까부는 민우를 봐서 그런가 이린은 이런 애교 많은 연지가 좋았다.
“그래, 약속.”
“히이-. 약속하신 거예요.”
“그렇대도.”
“그럼 가 볼게요.”
연지는 이린에게 한번 폭 안기 고는 사장실을 나왔다.
연지가 나가고 이린은 태식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 사장님.
“태식 씨 바빠요?”
-제가 바쁠 리가요. 빈둥거리면 서 만화책이나 보고 있죠.
“그럼 잠깐 넘어와 주실 수 있 어요?”
이린은 후훗 웃었다.
예전 같았으면 파일을 챙겨서 달려갈 생각을 했을 텐데, 이젠 이렇게 부르는 것도 가능하다.
-지금 넘어가면 돼요?
“네.”
그 앞으로 바로 공간이 갈라진 다.
“어서 오세요.”
“무슨 일 생긴 건 아니죠?”
“영화 촬영한 것 편집본을 받았 어요. 그래픽 작업을 빼면 전체 적인 공정률은 80% 정도 된 듯
해요.”
“그래요? 그럼 한번 봐야죠. 파 일 주세요. 건너가서 보게요.”
“같이 봐요. 저도 훅훅 넘기면 서 봐서요.”
“사장님 일 많을 텐데, 시간 돼 요?”
“급한 일은 거의 다 해결했잖아 요. 서해는 늘 하던 대로 안정권 이고, 군산팀도 생산량 맞추고 있고, 보궐선거는 오빠가 준비하 는 거고, 신약 판매 담당은 민우 가 하고 있고요.”
이린은 손가락을 꼽아 가며 이 야기했다.
“그리고 요즘 호텔 계열사들은 업무 이관을 생각하고 있거든 요.”
태식은 TV가 마주 보이는 소파 로 와서 앉았다.
이린의 옆자리다.
“사업 손 떼려고요?”
“아무래도, 이쪽 일이 더 커지 면 물리적으로 안 될 것 같아서 요. 지금 계획대로면 한한령이 더 심해질 건데, 그런 상황에서 면세점 사업에 더 몰두한다고 해 서 가닥이 나올 것 같지는 않거 든요.”
“사장님이 손해가 말이 아니네 요.”
“손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빠 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빠르게 적 응하는 것이야말로 경영자의 자 질 아니겠어요?”
이린은 씽긋 웃으며 플레이 버 튼을 눌렀다.
첫 시작은 작은 해상 충돌부터 였다.
중국 어선과 한국 어선 몇 대가 시비가 붙어서 서로 욕설을 하는 장면에서 주먹다짐까지 이어진 다.
그러다 출동한 해경에 의해 상 황이 종료되긴 하지만, 해경의 대응은 불합리하기만 했다.
그걸 따져 봐야 매뉴얼이 그렇 다는 말밖에 돌아오질 않는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영화적 색 채가 아닌 다큐멘터리적 색채로 풀고 있다.
솔직히 초반부는 조금 지루한 느낌이 없잖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주인공의 특형이 각성하여 간다는 떡밥을 조금씩 뿌리면서 기대감을 높이는 구상 을 했다.
마지막 클라이맥스 신은 생각한 그대로 나왔다.
초반의 지루함과 답답함을 충분 히 해소시켜 줄 만한 스케일과 전개였다.
“나쁘지 않네요. 취향 안 맞는 사람은 어차피 별로라고 하겠지 만, 적어도 시간 아깝다는 평까 진 안 듣겠어요.”
다른 건 다 차치하고 주인공이 희화화되지 않는 게 좋았다.
그 행동에 공감될 요소가 있고, 힘을 발현하는 모습에서도 우스 꽝스럽지 않게 자연스러웠다.
히어로 영화에서 이것만 해도 충분하다.
“따로 지적할 만한 건 없어요?”
“굳이 찾자면 여배우 노출이랄 까요?”
“너무 심한가요?”
“좀, 너무 찝찝하잖아요. 싸우다 가 옷이 찢어진다거나 늘어져서 언뜻언뜻 비치는 정도면 모를까, 저렇게 상의를 다 벗기는 건 좀 과한 것 같은데요.”
“그, 그렇죠? 조금 과해 보이긴 하죠.”
이린의 톤이 조금 이상하다. 그 걸 못 느낄 태식이 아니다.
“왜요? 일부러 의도한 거예요?”
“아니요. 그건 아니고요. 저 배 우가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라서 요.”
“ 친해요?”
“친하죠. 오촌 조카거든요.”
“ 으응?”
태식의 고개가 사선으로 기운 다.
“일부러 꽂은 거예요?”
“아, 아니에요! 연지가 오디션 봐서 합격한 거예요. 연지 입장 에서는 자기 할머니가 직접 지휘 하는 영화라고 생각해서 오디션 을 본 거구요.”
“그럼 집안 내력은 비밀이고?”
“네. 지금까지는 그랬어요.”
“지금은 아닌가 보네요?”
“고모님이 말을 했나 보더라고 요.”
태식은 기억에 있는 촬영장 분 위기를 떠올려 봤다.
이 감독이 연지를 조금 더 배려 해 주는 인상이 있긴 했다.
그렇다고 연지가 버릇없게 군다 거나 배역 이상의 권리를 요구하 는 행동이 있었던 건 아니다.
신경 쓰지 않으면 특이 사항을 느끼지 못할 수준이다.
“고모님은 제가 연관된 걸 알고 있으니까요. 사전에 말 안 한 건, 괜히 태식 씨까지 연지를 특별 대우해 줄까 해서요. 위험한 촬 영 장면이 있었잖아요.”
“이야-. 우리 사장님 독하네. 액션 신 촬영 때 운 나쁘면 큰 사고 났을 수도 있었던 건데. 미 리 말을 하지 그랬어요.”
“자기가 제 발로 그렇게 들어간 건데 특별 대우 바라면 안 되죠. 그리고 태식 씨가 하는데 사고가 날 리 없다고 생각했어요. 저도 나름 준비 철저히 했고요.”
태식은 이제 됐다는 듯이 고개 를 끄덕였다.
그런 걸 치면 자진해서 저리 노 출 신을 감행했다는 게 제법 놀 라웠다.
재벌가의 여자로서 혼사에도 민 감하게 비칠 요소이니 말이다.
“그럼 저 부분은 조금 덜어 낼 까요?”
“동생이 저렇게 당하면 당연히 오빠 입장에서야 눈이 돌아갈 만 하긴 한데, 너무 과하게 대놓고 보여 줄 필요까진 있나 싶어요. 오락 영화면 가족 단위로도 많이 봐야 되는데 과하게 불편하잖아 요.”
“그거야 그렇긴 하네요.”
“사장님은요? 뭐 마음에 안 드 는 거 없어요?”
“제가 영화에는 딱히 조예가 없 어서요. 마지막 장면이 화려한 건 괜찮은 것 같아요. 아, 그런데 제일 마지막에 나온 비행기 있잖 아요. 그래픽으로 만든 전투기 말고요.”
“정찰 드론요?”
“네. 그거 진짜 중국 거예요?”
이린은 혹시나 해서 물었다.
“네. 저번에 둘러볼 때 눈에 보 여서 챙겨 놨죠.”
“아……. 그런데 이렇게 대놓고 쓰면 중국에서도 알아보지 않을 까요?”
“당연하죠. 알아보라고 한 건데 요.”
태식은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 이, 오히려 그래 줬으면 좋겠다 는 투로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