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lf Price Pawn Shop RAW novel - Chapter (24)_4
귀환석을 사용했을 때와 같은 풍경이다.
어지러운 밤거리의 네온사인이 유성우 쏟아지듯이 지나쳐 가고 이윽고 환한 빛으로 가득한 공간 에 멈춰 섰다.
온통 하얀색에 강한 조명으로 가득 차 있는 방에는 흰색 테이 블과 의자 두 개만 덩그러니 있 었다.
“거기 앉아.”
유성은 순순히 의자에 앉았다.
“커피?”
“그래.”
“여기 커피 한잔 내려 줘. 믹스 안 된다. 이분이 전직 바리스타 거든.”
이지헌은 허공에 대고 말했다.
잠시 후 허공에서 한 사람이 커 피 잔을 들고 나타났다.
방공호 같은 벙커 시설에 더해 특형 제약이 걸려 있는 듯한데, 거기에 人!야 착란까지 있다.
“대체 몇 중으로 해 논 거야?”
“아아, 높으신 양반들이 겁이 많잖아. 하나씩 더하나 보니까 좀 거창해지더라고. 일단 목 좀 축여.”
유성은 커피 잔에 입술을 대었 다.
“먹을 만해?”
“너무 급하게 내렸네.”
“상황이 급하잖아. 너도 급했고, 나도 급했고. 그렇지?”
이지헌은 은근히 물었다. 본격 적인 심문 절차라고 봐도 무방하 다.
“니가 책임자인 거야?”
유성은 한번 비틀었다. 이지헌 은 한숨 푹 내쉬고는 답을 했다.
“현장 책임자 정도는 돼.”
“출세했네.”
“너도 출세했지. 7층 다이브 최 초 성공이면 출세 아니냐.”
이지헌의 시선 안에 어떠한 광 기가 물들어 있다.
처음 봤을 때부터 그랬다.
이지헌이 그런 눈빛을 할 때면 적당히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하다못해 아침으로 뭘 먹을까에 대한 부분에서도 저 눈빛이면 목 을 내놓고 싸울 기세로 달려들곤 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서로 간에 능력은 출중했지만, 성격적으로 맞지 않았다.
아니, 그 이전에 바라보는 곳이 달랐다.
둘 모두 자신의 목표에 전력을 다하는 이들이었으니 서로 다른 방향을 보는 이상 헤어지는 것은 정해진 결과였다.
“그 눈빛은 여전하네.”
“그럼 지금 상황이 어떤지 알겠 지? 옛정을 생각해서 점잖게 대 하는 거야. 사실 나도 그렇고, 다 른 팀도 그렇고 다들 짜증이 많 이 나 있어. 너 때문에 몇 달간 작업한 걸 다 놓고 들어온 거거 든. 국가비상사태라는데 어쩌겠 어.”
“국가비상사태씩이나-.”
“나도 우리 보스가 오버하나 했 는데, 돌아가는 꼴을 보니까 오 버가 아니더라고. 말해 봐, 루오 신이란 존재가 진짜 신이냐? 아 니면 트릭이냐? 7층에서 뭘 얻 은 거지? 너는 종결자가 된 거 냐, 아니면 종결자를 만난 거 냐‘?”
이지헌의 눈동자는 더욱 진한 광기로 번들거렸다.
특무원 (2)
유성은 의자를 뒤로 밀며 이지 헌과의 거리를 벌렸다.
부담스러운 탓이다.
“흥분하면 질문 쏟아 내는 버릇 은 여전하네.”
“그리고 폭력적으로 변하는 것 도 여전해. 그러니까 묻는 것에 답해. 너도 대화를 할 생각이니 까 순순히 따라온 것 아니냐.”
“당연하지, 일 키울 생각이 없 거든. 그러니까 목적에 맞는 질 문을 해. 헌터를 통합시킨 이유 가 뭐냐라든가, 다음 행보가 무 엇이냐라든가. 그게 걱정인 것 아닌가?”
“좋아, 좋아, 그래, 그렇게 시작 하자고. 헌터를 통합한 이유가 뭐냐?”
이지헌은 어금니가 보일 정도로 활짝 웃으며 물었다. 동공이 다 보일 정도로 히번덕 눈을 뜨고
있으니, 그 모습만으로도 공포 영화의 한 장면 같다.
“전쟁을 막기 위해서다.”
“뭐, 뭐? 파하하하하. 난세를 끝 내기 위해 전국을 통일했다는 말 이야? 이거 참, 무협지에서나 나 을 말을 현실에서 듣다니.”
“무협지가 아니라 역사서겠지. 역사적으로 전쟁을 끝내는 것에 있어서 통일보다 확실한 방법이 있었냐?”
“크흐하하. 맞아, 그렇고말고. 나도 그건 동의한다. 너무 반가 웠나 보다. 그러고 보면 그랬었 지, 너랑 나는 상극이면서도 같 은 점이 몇 가지씩 있었거든.”
이지헌은 다리를 꼬았다. 테이 블에 한쪽 팔을 괴곤 커피 잔을 빙빙 돌린다.
“너니까 믿으마. 내가 아는 너 라면 일신의 영달을 위해 움직이 는 녀석이 아니니까. 좋아, 그러 면 이다음은? 이다음 행보는 어 떻게 되는 거지? 오파츠를 사용 해 심계의 층간도 허물었다는데. 속 시원하게 말해 보라고.”
“그것은 심계 각층에서 벌어지 고 있는 흉악 범죄들을 몰아내기 위한 조치다. 물리적으로 가까워 야 통제가 쉽잖아.”
“그리고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쉽겠지.”
“그게 그 말 아닌가? 범죄자들 을 통제하려거든 영향력을 행사 할 수밖에.”
“그것을 빌미로 심계 전역에 걸 친 지배력을 갖추려는 것은 아니 고?”
“후우-. 답을 정해 놓고 유도를 하면 내가 답을 하는 의미가 있 는 거냐?”
“좋아좋아, 그래, 더 해 봐. 그 렇게 범죄자들을 소탕한 다음에 는?”
“그다음은 뭐?”
“그다음이 있어야 할 것 아냐.”
그다음은 없다.
태식에게 듣질 않았다. 아니, 애 당초 태식이 그다음을 생각이나 했을까?
유성은 무슨 말을 둘러댈까 골 몰하다 문득 한 가지 사실이 떠 올랐다.
‘아, 그건가. 히어로 협회……. 바자회 행사가 결국 그걸 위한 거였으니까……. 그렇게 되겠구 나.’
“무슨 고민을 그렇게 하시나? 거짓을 지어내는 거야, 아니면 진실을 숨기려는 거야?”
“딱히 숨기려 하지 않았어. 뭐 라고 설명을 해야 할지 정리한 것뿐이야.”
“그럼 설명을 해 봐. 그다음 은?”
“너도 얼마 전에 큰 산불 있었 던 거 기억하지?”
“강원도 산불 말하는 거냐?”
“그래, 그 산불. 그때 만약 헌터 들이 좀 더 유기적으로 대응했다 면 어땠을 것 같냐?”
“오오-. 이봐, 이봐, 유성이. 너 그거 아주 위험한 발상인 줄은 자각하고 있는 거냐?”
“그게 무슨 뜻이야?”
“말 그대로의 의미다. 아주 위 험한 발상이잖아. 일개 개인이 국가 단위의 재난을 막을 생각을 하다니. 그건 국가의 일이다.”
“재난 상황에서 국가 일 개인 일의 범주가 나뉘는 거냐? 그러 면 일반 사기업이 지원하는 건? 그것도 위험한 발상이라고 하 게?”
“그건 사건이 터진 다음에 지원 을 하는 거지, 처음부터 존재 목 적을 재난 대응으로 둔 게 아니 잖아. 지금 네가 하는 말은 국가 기능의 일부를 대체하겠다는 것 과 같은 개념이다. 너의 사조직 으로 말이야. 그리고 대부분의 쿠데타는 그런 사조직으로부터 일어나거든. 국가 기능을 대신하 고 있는 거대 사조직으로.”
이지헌은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입꼬리가 내려올 줄 몰랐다.
그래도 긍정적으로 해석할 만한 것은 눈동자의 광기가 좀 빠졌다 는 것이다.
“나는 그럴 생각 없다.”
유성은 덤덤히 말했다.
한 톨의 동요가 없는 순수한 진 실이다.
그럴 생각을 떠나 능력도 안 되 고 권한도 없다.
그 모든 것은 태식의 영역이다.
“니가 하는 말이니 수긍이 되긴 하는구만. 예전부터 그랬지. 너는 너무 똑발랐어. 죽었다 깨어나도 패도는 걷지 못할 녀석이 왜 이 런 난리를 피웠나 했더니 정도를 걷고 있는 거였구먼.”
“너야 말로 무협지에나 나올 소 리 한다.”
이쯤이면 이야기가 잘 풀리는 것 같다. 유성은 조금이나마 긴 장을 풀었다.
이지헌은 잠시 시선을 다른 곳 으로 보냈다.
아마도 통신을 하는 듯하다. 유 성은 미지근하게 식은 커피를 홀 짝였다.
“유성아, 내가 현장 책임자 정 도는 된다고 했잖냐.”
“그랬지.”
“더 정확한 서열로 따지면 공동 2위급이다. 내 위에는 특무원장 인 우리 선생님 한 명뿐이고, 나 머지 서열 2위들하곤 상호 존중 이거든.”
“그 나머지가 몇이나 되는데?” “나까지 해서 총 세 명이다. 나 는 동북아를 담당하는 천리마 사 업부의 부장이고 나머지는……. 그거야 차차 알아 가면 될 거 고.”
“그런데 아까는 동북아 팀이 따 로 있고 중국 팀도 따로 있는 듯 이 말한 것 같은데? 중국도 동북 아시아 아닌가?”
“그걸 또 기억하고 있는 거냐?”
“들었으니 기억을 하지.”
“조직 내규로 나누는 분류가 그 렇다는 거다.”
이지헌은 다시 먼 곳으로 시선 을 보냈다. 유성은 그 시선이 자 신에게 돌아올 때까지 차분히 기 다렸다.
“내가 이끄는 천리마팀의 주 타 깃은 북한이다.”
“북한?”
“그래, 지금까지 나는 북한에 소요 사태를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내 휘하 다른 팀 에선 북한의 소요 사태 발발 시, 중국군이 북한으로 진격하는 것 을 사전 차단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었어.”
유성은 이게 무슨 말인가 싶어 눈을 껌뻑거렸다.
“뭘 그렇게 맹꽁이 같은 표정이 야?”
“지금 북한에서 내전이나 쿠데 타 같은 것을 유도한다고 한 것 같은데, 내가 맞게 이해한 거 냐?”
“잘 이해했네.”
유성은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 었다만, 특무원이 국정원과 비슷 한 조직이라 했으니 아주 납득이 안 갈 일은 아니긴 했다.
“그런데 그걸 다 내팽개치고 급 히 들어온 거야. 너 때문에.”
“그건 좀 애석하게 됐네.”
“그러니 너도 도의적인 책임은 져야 하지 않겠냐?”
“어떤 책임?”
일이 잘 풀린다. 어느 정도의 협력을 요구하는 것이라면 얼추 들어주고 이야기를 일단락시킬 수 있을 것 같다.
“페가수스 유성. 특무원으로 들 어와라.”
그런데 이러면 영 틀린 이야기 가 된다.
다시금 광기로 번들거리는 이지 헌의 눈빛이 더욱 틀린 상황임을 말해 준다.
“선택지가 있는 권유냐?”
“선택지가 필요한 거냐? 너도 결국 이 나라, 대한민국의 안녕 을 위해 그런 난리굿을 폈다는 거 아니냐. 그럼 우리 특무원과 뜻이 같다.”
“그 뜻이 어떤 뜻인데?”
“부! 국! 강! 병! 나를 살찌우고 군사를 단련한다. 위정자가 되고 자 한다면 이만한 정도가 또 있 을까!”
어린이 표어 대회에서나 볼 법 한 외침이었다만 유성은 전혀 웃 을 수가 없었다.
그의 모든 것이 강렬한 열망으 로 들끓었기 때문이다.
“반만년 역사의 기틀 안에, 드 디어 우리에게도 기회가 온 거 다. 단군께서 터를 잘못 잡은 바 람에 반만년 동안이나 좃뺑이를 쳤지만, 결국 우리이게도 천재일 우의 기회가 왔단 말이다!”
“야, 좀……
이지헌은 테이블 위를 박차고 올라갔다.
저 스스로 감정에 복받쳐 입술 을 파르르 떤다.
“상상해 봐라! 북으로는 자금성 에 태극기가 펄럭이고 남으로는 대마도를 넘어 큐슈를 구주로 명 명하게 되는 날을!”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지 금 전쟁이라도 일으키겠다는
“안 되냐?”
“뭐‘?”
“안 되냐고 물었다. 반만년 역 사 동안 수없이 침탈당해 온 나 라인데! 우리는 안 되는 거냐? 중국에게 나라의 처녀를 빼앗긴 게 겨우 수백 년 전이고, 일본에 게 지배를 받았던 것은 불과 백 년도 되지 않았다. 우리는 그러 면 안 되는 거냐?”
“그러니까 그게 현실적으로 “우물 안에서 왕 노릇을 하고 있으니 세상 돌아가는 걸 모르 지!”
이지헌은 유성의 멱살을 거칠게 끌어당기며 면전에 대고 소리쳤 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저 아귀 새 끼들은 이 나라, 우리의 힘을 노 리고 있다! 너희들이 심계에서 소꿉장난을 하고 있을 때, 우리 가 그 적진 한가운데로 들어가 적의 공세를 막아 온 거다! 너의 업적도 우리의 피로 세운 장벽이 있기에 가능한 거란 말이다!”
“야, 이거 좀 놓……
“그러니 이제 너도 기꺼이 피를 흘려라. 그 피로 벽을 세워 이 나라, 우리의 조국을 보호해라! 앞으로 5년. 앞으로 5년만 버티 면, 세계의 패권은 우리에게 온 다. 유성, 특무원으로 와라. 네가 온다면 그 5년 중 1년은 단축시 킬 수 있다.”
“대체 무슨 정신 나간 소리를 하는 거냐니까.”
유성은 그의 손을 거칠게 뿌리 쳤다. 그러곤 뒤로 두어 발짝 물 러서며 거리를 벌렸다.
“능력자들을 군인으로 활용하겠 다는 거냐? 그래서 점령 전이라 도 하겠다는 거야?”
“못 할 것 뭐냐? 우린 이미 당 했는데, 우리라고 못 할 것 뭐냔 말이야.”
“그건 전쟁 범죄야.”
“범죄? 국가 간의 관계에서 범 죄란 단어는 없다. 오직 승자와 패자만 있을 뿐이야.”
“되지도 않는 소리 하지 말고. 일단 테이블에서 좀 내려와. 너
“아메리카 원주민을 학살한 미 국이 살인마라 불리냐? 국가를 상대로 아편을 뿌리고 대기근을 일으켜 수백만을 죽인 영국은? 그 놈들이 지금 악당이라 불리 냐? 히틀러가 자행한 홀로코스트 보다 처칠이 승인한 벵골 대기근 에 더 많은 사람이 죽었어. 누가 악이고 누가 선이냐? 애당초 국 가 단위에서 선악의 구분이 의미 가 있는 거냐?”
“그걸 말하는 게 아니잖아. 해 도 되냐 안 되냐를 말하는 거
다.”
“해도 되는 게 아니라! 해야만 하는 거다! 우리가 찢겨 나가기 전에, 먼저 적을 물어뜯어야 하 는 거라고!”
이지헌은 눈에 핏발을 세워 가 며 소리쳤다.
유성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뒤로 몇 걸음 더 물러났다.
그때도 이랬었다. 이런 모습에 질려 각자의 길을 택한 것이다.
그러니 이럴 때의 대응법도 잘 안다.
일단은 알겠다고 하는 거다. 답 을 정해 놓고 악다구니 쓰는 거 라 어쩔 수가 없다.
“알겠어, 알겠다고. 그러니까 일 단 흥분 좀 가라앉혀. 뭘 하려고 해도 서로 조율이 돼야 할 것 아 니냐.”
“그래, 잘 생각했다. 힘이 있으 면 바른 곳에 쓰는 게 옳은 것 아니냐. 그럼 조율을 해 보자고. 왜 그렇게 멀리 물러난 거야. 가 까이 와라.”
이지헌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제자리에 앉아서는 유성을 향해 가까이 오라 손짓했다.
유성은 또 한 번 고개를 흔들며 자리에 앉았다.
“그래서, 나더러 뭘 어떻게 하 라는 거냐? 진짜로 헌터들을 군 대로 양성하라는 거야?”
“너의 쓰임은 선생님이 정해 줄 거다. 하지만 분명 지금 하는 일 보다 더욱 값진 일이 될 것임은 장담할 수 있다. 아, 혹시 네 아 내는 아직도 한빙곡에 있는 거 냐?”
“야, 이지헌이-.”
유성의 눈빛이 대번 가라앉는 다. 이번엔 지헌이 손사래를 치 며 한 발 물러났다.
“시비 거는 거 아니다. 선생님 의 능력이면 아마 네 아내를 구 해 줄 수 있을 거다. 어쩌면 복 중의 아이까지도.”
“구할 수 있을 거라고. 선생님 의 능력이면.”
“그, 그러냐?”
“그렇다니까. 그러니까 지금 바 로 선생님을 뵙고 앞으로의 길을 받아라.”
유성은 지금까지 오간 수많은 대화보다 이 짧은 몇 마디 대화 에서 더 많이 놀랐다.
이 제멋대로인 놈이 진심으로 존경을 담은 대상이 있다는 것이 놀랍고, 아내를 구할 수 있을 거 라 확신하는 것에 또 놀랐다.
말하는 것을 보아하니 어떠한 조직의 힘이 아닌 개인의 능력으 로 고쳐 줄 수 있다고 하는 것인 데, 그와 같은 능력자가 태식 말 고 또 있을 거라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 선생이라는 사람, 특무원장 이라고 했지?”
“그래, 천명으로 우리를 이끄는 분이다. 너도 대면한다면 분명 따르게 될 분이라고 장담한다.”
“그, 그러냐……?”
“그렇다니까. 이 나라에서 선생 님의 뜻을 거스를 수 있는 사람 은 없어. 심계가 처음 열렸을 때 부터 그랬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스스로를 숨기며 오롯이 부여받 은 천명에만 신명을 다하시는 분 이다.”
“뭔가 좀 이해가 안 되는데. 특 무원이 국가조직이 아닌 거야? 국정원 같은 거라며?”
“스스로 낮추어서 국가조직에 소속되어 있는 거라고. 이게 어 려워?”
“아니다. 어렵다는 건 아니고. 천명이라고 하니까 좀 어색해 서.”
“나도 처음에는 그랬다. 무슨 사이비 종교쟁이같이……. 아아, 이건 취소. 못 들은 걸로 해라. 그때 그랬다고. 처음 만났을 때.”
이지헌은 횡설수설 당황했다.
무의식적으로 뱉어 낸 말로도 죄스러움을 느낄 정도의 존경이 라니.
직접 보고 있으면서도 믿기지 않는 광경이었다.
“그래, 못 들은 걸로 할게. 그러 면 얼추 이야기는 끝난 것 같은 데, 이만 가도 되는 거지?”
“아니, 아니, 무슨 소리야. 이왕 이렇게 함께하기로 했는데 선생 님께 인사는 드리고 가야지.”
“지금? 너무 늦은 시간인데.”
“괜찮아, 선생님은 항상 깨어 계시거든. 아직 답하지 않은 질 문도 선생님께 하면 될 거다.”
“답하지 않은 질문? 어떤 거?”
“루오신에 대한 것 말이야. 얼 렁뚱땅 넘어갈 생각이었냐?”
“야, 그래도 너무 늦었잖아. 사 람이 예의가……
유성은 그를 말리려 했지만 이 미 늦었다.
이지헌이 뽑아낸 빛의 실이 유 성을 휘감았다.
유성은 이 자리에 온 때와 같 은 풍경을 지나쳐, 새로운 공간 으로 이동했다.
그곳은 어둡고 차가웠다. 은은 한 향내와 함께 물 흐르는 소리 가 옅게 들린다.
“자네가 아니로군.”
유성은 단지 그 목소리만으로도 깊은 호수에 첨벙 빠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특무원 (3)
“자네가 아니야.”
“저, 저는……
목소리가 사방에서 울리는 듯하 다.
아니다. 밖에서 들리는 게 아니 었다.
머릿속에서 울리고 몸으로 퍼진 다.
유성은 그 자리에서 허우적거렸 다.
깊은 물속으로 가라앉는 기분이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