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lf Price Pawn Shop RAW novel - Chapter (29)_1
살구 (2)
가녀리기만 한 팔다리. 초점 없 는 눈과 창백한 안색.
모든 것이 위태롭다.
태식의 손에 끌려온 아이는 이 제 겨우 알을 깨고 나온 종달새 같았다.
“ 리즘이구나.” 이즘. 마족이 먹이로써 사육하 는 인간을 지칭하는 단어.
그리고 리즘. 식량으로써가 아 닌 그 외의 자원을 얻기 위해 사 육하는 인간.
리즘에게 진한 마기가 남아 있 는 게 특이한 점은 아니다.
태식은 살구를 어둠으로 감싸 그녀를 좀 먹고 있는 마기를 훑 어 냈다.
속이 꽉 체한 것 같은 기분은 나아졌을 것이다.
조금이나마 표정이 편해진다.
“저는 구원받은 건가요?”
“구원이라…… 그래, 그렇다고 하자. 너는 구원받았다.”
구원이라는 한마디에 심연 깊은 곳에 묻혀 있던 기억들이 와르르 르 쏟아져 나온다.
누군가가 갈망하던 삶과 희망 들. 아니, 그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내지르는 절규.
무뎌지고 무뎌져 미동조차 없을 거라 여겼던 그 눈빛들은 아무리 시일이 지나도 결국은 무뎌지지 않았었다.
“감사합니다.”
살구의 목이 힘없이 풀썩 떨어 졌다.
긴장이 한순간에 풀리면서 정신 을 잃은 것이다.
당장은 회복이 필요하다. 그것 도 강력한 회복이.
마족의 기운에 점거당했던 탓 에, 영혼이 갉혀 나간 게 느껴진 다.
포션이나 들이붓는다고 될 수준 이 아니다.
최대한 덧나는 것 없이 회복을 시키려거든 어둠속에서 천천히 마기를 빼내는 게 가장 좋다.
태식은 갓난아기를 포로 감싸 듯, 어둠으로 살구를 꽁꽁 싸맸 다.
“일단 푹 쉬어라. 그 안에서는 걱정 안 해도 되고 불안해하지 않아도 된다.”
태식은 살구의 고치를 심연 속 에 넣었다.
그 안에서 회복한다면 마기로 생긴 상처를 갈무리하는 데는 그 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후우-.”
태식은 담배 한 개비 입에 물곤 숨으로 연기를 피워 올렸다.
뉘엿뉘엿 해가 진다.
“오늘도 철야로 뛰어야 할 판인 가 모르겠네.”
어째 느낌이 그렇다.
일찍 끝나면 좋겠다만 딱히 일 찍 끝나길 바라며 움직이진 않는 다.
태식은 살구를 꺼내 온 좌표로 이동했다.
2층이 잘려 나간 2층 침대와 옻칠이 죄다 벗겨진 개다리소반.
그게 방에 있는 집기의 전부였 다.
그리고 철문.
“밖을 막은 거냐, 안을 가둔 거 냐.”
태식은 터덜터덜 걸어가 문을 당겨 봤다. 철커덩 거리며 걸쇠 부딪히는 소리만 난다.
안을 살필 수 있게 뚫어 둔 작 은 틈까지 쇠창살을 달아 놓은 것은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싶은 기분마저 불러일으 킨다.
“이럴 필요가 있나.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물리적인 구금을 위해서만 이런 장치를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심리적인 압박을 주기 위해서도 활용할 수 있다.
속이 메스꺼운 건 그 때문이다.
안 그래도 시달릴 대로 시달려 생명력이 꺼져 가는 아이인데, 심리적으로 몰아세우기까지 했어 야 하는 것일까.
어떻게 봐도 전략적인 필요에 의한 행동이라 볼 수 없다.
아무리 참작의 여지를 두려고 해도 그럴 여지가 없다.
이 방 안 가득 남아 있는 시큼 한 냄새가 그 약한 아이가 겪었 을 고난이 그려지게 만든다.
“이러면 뭐 참작의 여지는 전혀 없지.”
태식은 문을 잡아 당겼다.
빠득-. 요란한 소리와 함께 철 문이 통째로 뜯겨 나왔다.
태식은 그것을 무심히 던져 두 고는 방 밖으로 나갔다.
복도형 건물은 바닥의 마감만으 로도 건물의 연식을 알려 주는 듯했다.
여기저기 금이 가 있는 곳은 보 수가 되어 있지 않았고 페인트도 들떠 있거나 떨어진 곳이 많았 다.
특히나 나무로 된 창틀이 인상 적이다.
태식은 터덜터덜 복도를 거닐었 다.
건물은 군대 막사처럼 제법 규 모가 되어 보인다만, 지나다니는 사람이 딱히 없었다.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그제야 처음으로 사람을 마주쳤 다.
“신도님, 여기까지 들어오시면 안 돼요.”
태식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얼른 예배당으로 가세요!”
그녀는 신경질적으로 쏘아붙었 다.
그 눈에 가득 들어차 있는 것은 짜증이었고 그 바닥에는 피곤함 과 두려움이 잔뜩 깔려 있었다.
“어서요!”
그녀는 태식의 소매를 잡아당겨 건물 밖으로 몰아냈다.
“다시 말•씀드리는데, 여기는 신 도가 함부로 들어오면 안 되는 곳이에요. 한 번만 더 무단으로 출입하면 제명할 줄 아세요.”
“그것참 무서운 소리네.”
“뭐라고요?”
태식은 대꾸 없이 손을 내젓고 는 걸음을 옮겼다.
신도라고 했고 예배당이라고 했 다.
여러 가지 그림이 너무도 쉽게 그려진다.
“이 마족 놈이 신성한 한국 땅 에서 숭배회를 하고 있나.”
태식은 사이한 기운이 넘실거리 는 건물로 향했다.
절규와 같은 곡소리가 창문 틈 으로 흘러나온다.
방언이라 하기에는 그 목소리가 너무 기괴하다.
“주 예수를 잉태하신 성모의 이 름으로 이 땅에 강림하사, 성모 께선 이 세상의 모든 아픔과 질 병을 제 몸으로 녹이시어 구원을 바라는 어른 양에게 성령을 베푸 노니……
그냥 있는 대로 지껄이는 근본 없는 기도 소리가 좁은 통로를 가득 들어차 있다.
그 기도에 칡넝쿨처럼 엉켜 붙 어 있는 것은 자칭 신도라고 하 여 모여 있는 자들의 광기에 가 까운 욕망이다.
익숙하다.
이 분위기, 이 느낌, 이 목소리.
숭배회의 그것이다.
두근- 두근-.
괜히 심장이 뛴다.
“재미있구만.”
긴장감인가?
그럴 리가.
모든 마의 정점이자 근원인 마 왕을 소거한 태식이다.
적어도 마에 있어서 태식은 두 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그렇다면 상황에서 오는 긴장감 인가?
간파의 진을 왜 만들었고 그것 이 어떻게 전략적으로 유용되겠 나.
마족이 꼬이는 이들은 특정한 분류로 나눌 수 있는 이들이다.
선량하고 맑은 이들에겐 마족이 꼬이지 않는다.
그것은 정신력이나 의지, 능력 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마족이 가진 본능적인 끌림의 문제다.
마족에게 잠식당한 이들은 굳이 마족이 아니었더라도 타락할 만 한 그런 이들이다.
그렇기에 이 상황 자체가 걱정 인 것도 아니다.
태식의 심장이 약동하는 것은 어떠한 설렘이다.
마를 멸할 수 있다는 기대감 말 이다.
경험으로 각인된 반응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태식에게 마를 멸하는 것은 즐 거움이다.
수없이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마족과의 전쟁을 이 끌 수 있었던 것은, 그 즐거움이 기반하기에 가능했다.
쓰레기를 치우고 뿌듯한 보람을 느끼는 것처럼, 마를 멸하는 것 도 같다.
태식은 예배당의 문을 열고 들 어갔다.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붙 어 앉은 사람들은 양손을 머리 위로 치켜들며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을 토해 냈다.
거친 숨을 토해 내는 사람도 있 고 같은 말을 반복하는 사람도 있다.
알아듣지 못할 주문을 되뇌거 나, 괴성과 같은 비명을 질러 대 는 사람도 있다.
마족의 숭배회는 본래 이렇다.
“당신 뭐야? 어떻게 들어왔어?”
문 옆을 지키고 있던 건장한 사 내가 태식의 앞을 막아섰다.
백색 법의엔 황금으로 검과 방 패를 든 천사가 수놓아져 있다.
코웃음만 나온다.
“문 열려 있으니까 들어왔지.”
“하하하하. 어디서 나온 기레기 인지는 모르겠지만, 여기서는 그 렇게 펜 가지고 장난칠 수 있는 곳이 아니야 이 양반아.”
호법이 태식의 쇄골을 움켜쥔 다.
쇄골 뼈에 손가락을 걸고 잡아 당기는 것만 봐도 사람을 제압하 는 법을 아는 놈이다.
태식은 간파의 진으로 그를 봤 다. 평범하다.
“너도 먹고살자고 하는 거겠지. 보디가드를 서는 거야 그렇다 해 도, 일자리는 좀 가려 가면서 해 야 되지 않겠냐.”
태식은 그를 밀어 벽 안에 집어 넣었다.
“그릇을 비워야 다시 담을 수 있습니다. 그릇이 클수록 비우기 어렵겠지만, 비우면 비울수록 더 많은 것을 담을 수 있습니다. 여 기 모여 있는 모든 신도 분들은 그와 같은 고행을 행한 분들입니 다. 모두가 성모의 은혜를 받을 수 있을 것이며, 모두가 극락정 토에 발을 들일 수 있을 것입니 다-!”
설교를 토하는 권 목사와 태식 의 눈이 마주쳤다.
어두운 실내였지만, 그의 눈이 똑바로 자신을 직시하고 있음이 느껴진다.
뱀과 같은 야행성의 눈으로 어 둠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어둠 그 자체를 볼 수 있는 마족의 눈 이다.
“재미 좋았겠네.”
“신성한 땅을 침범한 침략자의 말로가 어떻게 될지……
태식은 그를 우그러트렸다.
목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얼어붙었다. 그가 갑자기 설교를 멈추었어도 신도들의 기도는 멈 추지 않았다.
하지만 눈치를 보는 이가 몇 걸 린다.
신도들 사이사이 앉아 있는 이 들의 낌새가 단번에 바뀌었다.
사방을 분주하게 살피며 상황을 파악하려 한다.
신도들 사이에 사람을 심어 분 위기를 조성하는 것. 전형적이다.
사람 셋이 모이면 사람 하나 속 이는 건 일도 아니다.
약점을 후비며 들어와 결여를 충족시켜 주는 방식으로 꿰어내 면 그 누라도 당할 수밖에 없다.
한번 자리에 앉혀지면 그걸로 끝난다.
마기에 취한 사람은 자신의 의 지로 그것을 벗어날 수 없다.
이것도 시스템이다.
사람을 홀려 착취하기 위한 시 스템을 구죽했고 개미지옥처럼 결여를 가진 사람들을 홀려 잡아 먹는 곳이다.
역겨운 곳이다.
그대로 끓는 납물을 쏟아부어 버리고 싶은 기분이다.
태식은 미어터지는 사람들 사이 를 비집고 걸어갔다.
그 걸음이 나아갈 때마다 어깨 를 움찔거리는 이들이 하나씩 어 둠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언제까지 숨어 있을 거냐. 이 쯤이면 나와야지.”
태식은 연단 위로 올라 권 목사 앞에 섰다.
그럼에도 태식을 의식하거나 제 지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 었다.
“그대로 말라 죽겠다면 그것도 좋고.”
태식은 권 목사의 목을 움켜쥐 었다.
그 손에서 나온 어둠이 목을 타 고 퍼져 나간다.
머리가 먼저 검게 물들고 그다 음은 심장을 건너 손발 끝까지 빈틈없이 점거했다.
그럼에도 마족의 실체가 잡히지 않았다.
벌써 도망을 간 것은 아니다.
“하-. 너, 셰즘이구나.”
마족이 모시는 인간, 셰즘.
셰즘이 되는 경우는 대부분 둘 중에 하나다.
마기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을 정도의 압도적인 무력을 가지고 있거나, 그게 아니면 마족보다도 더욱 마족 같거나.
태식이 전자의 경우라면 권 목 사는 후자의 경우였다.
“그동안 즐거웠겠다.”
태식은 너털웃음을 지었다.
마족보다 더욱 마족 같은 인간 이 눈앞에 있다.
오히려 마족이 기생하여 원정을 공급받는 인간이 말이다.
악마가 고개를 숙여야 할 정도 의 인성을 가진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망각하고 있던 것은 아니다.
다만, 조금 멀었다고 생각했다.
지금까지도 그런 놈들을 적잖이 경험했으면서 그랬던 것 같다.
어쩌면 막연한 바람이었던 건지 도 모른다.
적어도 현대화된 이곳에는 이런 악마성을 표출하는 놈들이 없을 거라는 그런 생각 말이다.
보통 그런 놈들은 자신의 기운 을 뻗치고 싶어 하고 그럼에도 간섭을 받지 않으려 하니 오지로 숨어드는 경향이 있어서 말이다.
그게 바로 심계 아니겠나.
인프라와 공권력이 닿지 않은 무법의 오지 말이다.
그래서 심계 안에서는 그토록이 나 단호하게 대처했던 것이었다. 그런데 결국 심계 안이나, 밖이 나 별반 다를 게 없다.
이곳에서도 사람의 눈을 피할 곳은 얼마든지 있고 사람들의 눈 을 가릴 방법도 많다.
“아주 재미있었겠어.”
답을 들을 필요 없는 질문이다.
마찬가지로 알고 싶은 것을 듣 기 위한 질문도 필요 없다.
태식은 권 목사의 기억을 뽑아 냈다.
가장 최근의 것에서부터 뽑아낼 수 있는 가장 깊은 곳에 있는 것 까지.
사람의 정신을 속박하여 마음껏 유린하는 장면들이 연속적으로 펼쳐진다.
평범한 부부를 홀려 스스로 제 딸을 벗겨 방에 들이게 하려거든 대체 얼마나 더러운 과정이 수반 되어야 하는 걸까.
차라리 권력과 돈으로 거래를 하고 폭력으로 억압한다면 이처 럼 역겹지는 않을 것이다.
영혼을 속박하여 상처 입히고 좀먹게 하는.
누군가의 타락을 있는 그대로의 타락으로 즐기는 그 모습이 참을 수 없는 환멸을 불러온다.
태식은 간단한 손놀림으로 권 목사를 흩어 버렸다.
조각으로 흩어진 그는 그림자조 차 남기지 못했다.
“이런 놈들은 대체 왜 사라지지 않는 거냐. 때가 어느 땐데, 왜 이런 놈들을 예방하지 못하는 거 냐고.”
변변한 CCTV며, 인터넷도 없 는 시대라면 그렇다 하지만, 지
금이라면 예방할 수 있는 시스템 을 구축할 수 있는 것 아닐까.
그럼에도 하지 않는 것은 재화 가 없는 걸까, 의지가 없는 걸까.
아니면, 우선순위에서 밀려나서 그런 것일까.
정말 그렇다면 이런 인간성을 말살하는 사건을 막는 것보다 더 큰 우선순위는 무엇일까.
“이거 하루 이틀 철야 가지고 될까 싶네.”
아직 해가 다 떨어지진 않았으 니 오늘 내에 가닥은 잡을 수 있
지 싶다.
태식은 움직였다.
내가 해도 될까? (1)
태식은 권 목사의 기억에서 본 거점 예배당으로 향했다.
거점 예배당에서 사람을 선별해 본 예배당으로 오게 되고 그곳에 서 다시 선별된 사람은 성지로 보내진다.
뻔하디 뻔한 피라미드 시스템이 다.
어차피 오늘 내에 전부 무너트 릴 피라미드지만 당장 그 밑동 먼저 찾아가는 것은 먼저 잡아야 할 놈이 있기 때문이다.
[성모재림예수회]
태식은 언뜻 봐도 사이비 냄새 가 풀풀 풍기는 간판 앞에서 휘 파람을 휘이 불었다.
마족 특유의 유황 냄새가 풀풀 풍긴다.
권 목사가 셰즘인 것은 권 목사 에게 종속되어 있는 마족이 존재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가 마기를 다룰 수 있는 것이고 그 기운이 살구에게 까지 전이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놈이 모르는 척을 하네.”
태식은 몸에 밴 것처럼 담배를 입에 물었다.
본래 이 담배를 만든 목적이 마 족의 향내를 걷어 내기 위한 것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