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lf Price Pawn Shop RAW novel - Chapter (29)_10
이 사람의 착한 천성 때문이 아 니라, 이런 순수함을 악용하는 것들이 판을 치고 있는 현실이 답답한 것이다.
그냥 놓아두면 앞날이 어떨지 뻔히 보여서 불안하기까지 하다.
많고 많지 않나.
순수한 시골 소녀가 딱한 사정 으로 방송을 탄 후에 후원금이 몰려들고, 그 후원금 때문에 꼬 인 온갖 똥파리들에게 더러운 꼴 을 당한 이야기 같은 것 말이다.
등장인물만 다를 뿐 그 클리셰 는 베껴 쓴 것만큼 똑같은 일이 허다하다.
어디 좀 약아 빠진 구석이라도 있어야 내놓지.
이러니 어디 내놓을 수가 있나.
“배는? 배는 고프지 않아?”
“괘, 괜찮아요.”
“그럼…… 음, 일단 옷이라도 좀 사러 가자.” 연지에게 옷 몇 벌 가져오라 해 서 입혀 두긴 했지만, 언니 옷을 입은 것처럼 맞질 않는다.
아니, 그 이전에 남이 입던 옷 을 입혀 두고 있는 게 썩 내키지 않았다.
지금까지 뭐 하나 자신의 것을 가져 본 적이 없는 아이라서 말 이다.
“움직이는 건 괜찮지?”
“네, 움직일 수 있어요.”
태식이 손을 내밀었다.
살구는 아기 오리가 어미에게 붙는 것처럼 찰싹 달라붙었다.
어떠한 경계심도 없다. 그저 믿 음과 신뢰뿐이다.
꿈속에서 수십 수백 번을 본 구 원자가 바로 태식이다.
살구에게 태식은 얼굴을 모르는 부모님을 대체할 수 있을 정도의 존재로 각인되기 충분했다.
태식은 살구와 함께 2층으로 내 려갔다.
“자, 인사들 해.”
“깨어났구나. 축하한다!”
“깨어난 거예요? 잘됐다! 안녕, 나는 연지라고 해, 이연지. 너보 다 언니고, 니가 지금 입고 있는 옷도 내 옷이야. 무슨 뜻인지 알 지? 나만 믿고 따라오면 된다는 거야.”
유성은 자기 일처럼 살구를 반 겼고 연지는 생글생글 웃으며 쫑 알거렸다.
살구는 다소 부담스러운지 태식 뒤에 슬쩍 기대었다.
“아, 안녕하세요. 살구예요.”
“살구?”
“이름이 살구야? 성은?”
“그냥 살구요.”
“그냥 살구가 뭐야. 별명이야?”
“뭘 그렇게 꼬치꼬치 캐물어. 애 부담스러워 하잖아.”
“방우, 너도 인사 좀 하지.”
태식이 병풍 뒤에 있는 방우를 불렀다.
“사, 사, 사, 사장님. 사장님?”
“왜 또.”
방우가 질린 얼굴로 나왔다.
“서, 설마. 설마 사장님께서 그 러셨습니까?”
“뭘 y”
“국회의사당요, 국회의사당!”
방우는 묵음으로 소리를 질렀 다.
“이 자식이 넌 니 사장 얼굴도 못 알아보냐.”
태식은 농담 툭 던지며 피식 웃 었다.
너울거리는 그림자에 가려지고 노이즈까지 잔뜩 섞여 있을 테니 화면만으론 얼굴을 알아보지 못 하긴 할 거다.
“사장님……
“뭐 별거라고 호들갑이야. 가게 나 봐. 나는 얘 옷 좀 몇 벌 사 줘야겠으니까.”
“그럼 저도 같이 가요!”
연지가 번쩍 손을 들었다.
“넌 좀 낄 데 껴라.”
태식은 달라붙는 연지를 밀어 내고 살구와 둘이 나섰다.
백화점에서 한창 쇼핑에 열을 올리고 있는 중에 이린에게 전화 가왔다.
뻔한 내용이라 쉬이 넘겨 미루 었다.
“가 봐야 하는 거 아니에요?”
“괜찮아, 별거 아니야. 배고프 지, 밥 먹을까?”
태식은 혹여나 부담이 될까 죽 으로 점심을 먹었다.
그러곤 아이스크림도 하나 물었 다.
“백화점 아이스크림이라 그런가 비싼 만큼 맛있구만.”
“히이이-. 네, 맛있어요.” 살구는 순하게 웃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갓난쟁이가 웃 는 것과는 사뭇 느낌이 다르다.
다 큰 아이가 이리 순하니 불안 할 지경이다.
“그럼 머리 정리도 좀 할까?”
“머리요?”
“그냥 하자.”
태식은 살구를 미용실로 데리고 가 할 수 있는 건 다 해 달라고 했다.
푸석푸석한 게 손으로 훑기만 해도 툭툭 끊어질 정도라서 말이 다.
태식은 그 짧지 않은 시간은 넉 넉하게 기다렸다.
머리 쓸 게 많아서 딱히 지루하 지 않았다.
살구에게 어떤 핸드폰을 해 줄 까에 대한 것이라든가, 집으로 데려갈까, 가게에 둘까에 대한 고민이라든가, 저녁은 뭘 먹을까 와 같은 심도 높은 고민들 말이 다.
물론 아까 보고 지나쳤던 운동 화도 사는 게 낫겠다는 고민도 포함이 다.
“저 다했어요. 오래 기다리셨죠, 죄송해요. 처음 해 봐서 이렇게 오래 걸리는지 몰랐어요.”
살구는 또 순하게 웃었다.
“뭐가 오래 걸려. 여자 머리 하 는데 이게 기본이지. 일단 아까 봤던 운동화는 역시 사자.”
“ 또요?”
“교복도 아니고 어떻게 단화 하 나만 신냐.”
미주가 들었으면 슬리퍼 하나만 끌고 다니는 니가 할 말이냐 하 겠지만, 태식은 아랑곳 않고 쇼 핑 목록에 운동화를 하나 더 추 가했다.
그러자니 그 운동화에 맞는 옷 몇 벌 더 둘러본다.
욕심이 과했나 싶어 보니 양손 에 쇼핑백이 한 아름이다.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
마감 시간을 넘겼다.
태식은 가게로 전화를 걸어 퇴 근을 하라 일렀다.
“살구야, 저녁은 집에 가서 먹 자. 우리 엄마 요리 솜씨가 끝장 나거든.”
“네.”
살구는 아무래도 좋았다.
악인이여 오라 (3)
태식은 두 손 가득 든 쇼핑백을 들고 집으로 갔다.
“엄마, 아들 왔어요.”
“웬일로 니가 현관문을 열고 들 어오니.”
저녁을 차리던 미주가 태식을 돌아본다.
태식과 살구를 번갈아 보던 미 주의 눈꼬리가 파르르 흔들렸다.
“너 지금 엄마한테 시위하니?”
“응?”
“야 이노무 새끼야! 너 그거 범 죄야 범죄!”
밥풀 묻은 밥주걱이 날아든다.
“아, 엄마, 왜, 갑자기 왜 그러 는데!”
“너 임마! 엄마가 여자 만나라 고 잔소리를 좀 했기로서니! 어! 어디 중학생을 데리고 와! 이 미 친놈아!”
“아- 뭐야 진짜! 내가 그럴 사 람이야?”
“능구렁이 같은 게 실실거리면 서! 어! 아주 엄마를, 약을 바짝 바짝 올려! 이놈이! 어디 가!”
미주의 주걱이 거침없이 내려 그어진다.
“그, 그, 그러시, 시지 마세요!”
살구도 거침없이 그 궤적 안으 로 들어갔다.
따악-!
“악!”
살구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곤 그대로 허물어져 버렸다.
“아이고, 얘야!”
“ 엄마도!”
“너 이 화싱‘
0
}! 너 엄마한테 장 난질을 걸어도 아주 저질로 걸 어!”
“엄만 진짜 그 성질 좀 어떻게 해야 돼. 그런 거 아니라니까 그 러네. 살구야, 살구야, 괜찮아?”
태식은 살구를 안아 들고는 소 파에 누였다.
태식의 표정에 걱정이 뚝뚝 넘
쳐흐른다.
“아, 아니야?”
“아니야! 어후, 얘 혹 난 거 봐.
진짜.” “아니면 아니라고 말을 해야 지.” “말할 틈이나 줬나!” “전화로 미리 말을 했어야 될 거 아냐, 무슨 사정이 있으면 사 정이 있다고. 아침부터도 정작 싹 빼입고 나가는 게 여자 만나 러 갈 것처럼 해서는.” 태식은 볼을 긁적였다.
“엄마 오늘 TV 안 봤어?”
“오늘? 왜? 피곤해서 좀 잤어.”
“아니야, 안 봤으면 됐고.”
백화점에서도 딱히 난리 통인 분위기는 느끼지 못했었다.
별스럽지 않은 일이다.
북한에서 한 폭격에 민간이 사 상자가 나와 전쟁이 나니 마니 했던 때에도 평온한 곳은 평온했 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그 애는 누군데?”
“으음…… 당분간 좀 도와주고 싶어서.”
그제야 미주의 시선도 살구의 앙상한 몸을 담았다.
“어디 혹은 괜찮아? 그러게 뛰 어들기는 왜 뛰어 들어서. 애한 테 뭘 어떻게 해 줬기에 뛰어든 담.”
“그냥 좀 도와준 거지 뭘. 살구 야, 괜찮아?”
“아야야야, 네 괜찮아요.”
“많이 놀랐지? 우리 마마님이 좀 성격이, 알지? 좀 그래.”
“이눔이! 지 엄마 있는 데서 흉 봐!”
미주가 태식의 귓불을 확 잡아 챘다.
태식이 아야야 하는 모습에 살 구는 풋풋 웃었다.
“정말 좋아 보여요.”
“좋기는, 귀 찢어지는 줄 알았 네. 그만 괴롭히고 밥 줘요, 밥. 내가 얼마나 자랑을 해 놨는데. 우리 마마님 요리 솜씨가 세계 제일이라고.”
“이름이 살구라고? 이마는 미안 하다 얘. 그러게 겁 없이 막아서 고 그러니. 이놈 튼튼하니까 지 켜 줄 필요 없어.”
미주는 미안한 마음 담아 밥상 가득 상을 차려 줬다.
“먹고들 있어 봐. 요 앞에 약국 가서 약 좀 사 올 테니까.”
“무슨 약?”
“연고는 발라야 될 거 아냐.”
“집에 없어?”
“오래된 거야.”
“같이 먹어. 밥 먹고 내가 사 올게.”
“저 괜찮아요. 같이 드세요.”
“아휴- 됐다 얘, 내가 신경 쓰 여서 그런다. 금방 갔다가 올 테 니까 먹고 있으렴.”
미주는 앞치마를 벗어 던지곤 현관을 나왔다.
딱 죄진 사람의 뒷모습이다.
그 모습에 태식은 쿡쿡 웃었다.
“하여간 마마님 성격 참.”
“푸푸풋, 정말 좋아 보여요. 정 말요.”
“좋기는. 밥 먹어, 많이. 얼른 살 좀 붙어야지. 여기 고기, 고기 먹어라.”
태식은 고기반찬은 전부 살구 앞으로 밀어 줬다.
살구는 어색한 것 없이 수저질 을 했다. 태식이 함께 있으니 어 색할 게 없다.
밥공기를 얼추 비울 때쯤 벌컥 현관문이 열렸다.
안 그래도 약국 다녀오는 게 오 래 걸린다 싶었는데, 미주의 표 정이 심상치가 않았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계주가 날랐어!”
“응?”
“계주가 날랐다고, 계주가!”
“그게 무슨 소리야 갑자기? 약 국 간 거 아니었어?”
“갔는데, 전화가 왔잖니! 조은이 엄마한테! 자, 얘 약 발라 줘!”
미주는 약봉지를 던져 주곤 안 방으로 들어갔다. 뭔가 우당탕하 는 것 같더니 가죽 장갑을 챙겨 나온다.
“장갑은 왜?”
“내가 이년 옥수수를 다 털어 버려야지. 감히 누구 돈을 들고 날라! 내가 왕년에! 어! 집 보고 있어! 엄마 원정 갔다가 올 테니 까!”
미주는 현관문을 쾅 닿고 나가 버렸다.
태식은 괜히 이마를 긁적였다.
“음…… 살구야, 우리 마마님이 좀 열정적이야. 그러니까 이런 모습이 평소에 자주 있는 게 아 니란다.”
“네, 알아요. 그런데, 가 봐야 되는 거 아니에요?”
“내가 간다고 뭐 있나.”
“그래도요. 정리는 제가 할게요, 다녀오세요.”
음성에 불안함이 없다. 괜찮지 싶다.
“그래, 그럼 편히 있어 봐. 금방 다녀올게.”
태식은 미주를 따라 나갔다.
이미 1층 입구에 상형 아줌마와 조은 아줌마도 모여 있었다.
다들 등산복에 워커 차림이다.
누가 보면 꽃놀이라도 가는 줄 알겠다.
“당장 가자고!”
우르르 몰려서 104동으로 향한 다.
눈에 독기가 차 있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이건 살기다, 살기.
그야말로 서슬 퍼런 살기였다.
“태식이 엄마, 조은이 엄마. 야 밤에 무슨 일이야?”
“계주가 날랐어!”
“계주? 우리 계주?”
“그렇다니까!”
“어머머, 그걸 왜 지금 말해!”
“나도 이제 알았어. 이년이 갑 자기 핸드폰이 먹통이잖아 글 쎄!”
“어째 분위기가 싸하다 했지, 싸하다 했어. 요 근래 눈깔이 맛 탱이가 가서 며칠씩 집도 비우고 그러더니!”
여기저기 전화가 돈다.
버선발로 뛰쳐나온다고 했나. 사람이 모이는 건 정말 금세였 다.
다만 그게 반기는 투가 아니라 잡아 죽이려는 투라 분위기는 더 없이 흉흉했다.
근 30명이 104동 로비를 거쳐 엘리베이터 앞으로 갔다.
한 번에 다 타지도 못한다.
13층 현관문을 두드려 보지만 응답이 없다. 초인종을 눌러 봐 도 마찬가지다.
“아저씨, 지금 이게 보통 문제 인 줄 알아요? 어서 문 따 달라 니까요!”
그 닦달은 경비실로 향했다.
그사이 모인 사람이 50명을 넘 어선다.
“작정하고 해 처먹고 날랐구 만.”
미주가 있는 계만 해 먹고 나른 게 아니었다.
돌리고 있는 계만 해도 크고 작 은 것 다 합쳐서 여섯 개나 되었 고 개인적으로 돈을 빌린 액수도 상당했다.
“열쇠가 없으면 문짝이라도 부 수든가요! 아파트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는데 두 손 놓고 있는 게 말이 돼요!”
흰머리 가득한 경비 할아버지는 이성을 잃어버린 아주머니의 등 살을 이겨 낼 재간이 없었다.
결국 문이 열렸다.
세간살이가 휑하다.
“날랐네! 날랐어! 아주 작정하 고 날랐어!”
“이 썩을 년! 나한테 그렇게 형 님 형님 하더니, 이럴 작정이었 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