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lf Price Pawn Shop RAW novel - Chapter (29)_2
태식은 좁은 계단을 올랐다.
그 느낌이 가게의 계단과 사뭇 흡사하다.
녹슨 철제문은 겉으로 봐서는 봉제 공장 창고 문과 다름이 없 다.
문손잡이를 돌린다.
잠금으로 걸려 있는 것은 힘으 로 뜯어내면 그만이다.
울음 섞인 괴성을 지르며 기도 를 토해 내는 신자들의 모습은 흡사 약에 취해 있는 것과 비슷 했다.
너무도 많이 본 광경이라 딱히 특별할 것도 없다.
“야, 마몬-.”
태식은 익숙한 이름을 불렀다.
그 한마디에 장내에 가득 차 있 던 마기가 출렁였다.
-맹약을 다시금 각인해 줘야 하냐?
태식이 연단 위의 남자를 향해 마족어로 뇌까렸다.
남자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더니 검붉은 핏물을 토해 냈다.
그럼에도 장내의 사람들은 누구 하나 그것을 신경 쓰지 않고 괴 성 섞인 기도에만 열중할 뿐이 다.
-마령의 주인이시여. 왜 여기 에…….
마몬은 작은 몸을 바들거리며 태식 앞에 와서 부복했다.
몸을 잔뜩 웅크린 녀석은 오동 통한 꼬리를 머리 위에 올려 둔 채다.
-꼬리 치워.
-제, 제발. 부디 용서를.
-꼬리, 치워.
-살려고 그랬습니다. 저도 살고 싶어서 그랬습니다. 아시지 않습 니까. 저희 마족은 인간으로 부 터 정념을 흡수해야만 살 수 있 습니다. 많이 먹지 않았습니다. 정말 배가 고파서, 배가 고파서 허기만 면할 정도로 먹었습니다.
마몬은 짧은 팔까지 치켜들어 머리를 감쌌다.
정확하게는 뿔이다.
마족의 뿔은 흡수한 정념에 비 례해 성장한다.
뿔이 많고 클수록 그 힘 또한 강대하다고 볼 수 있고 그만큼 많은 사람의 정념을 흡수한 것이 다.
그래서 태식은 항상 마족의 뿔 을 뽑아 놓곤 했었다.
-제발 용서를, 부디 용서를 -같은 말 반복하게 하는 거 싫 어하는데. 그새 잊었냐?
—흐아아아.
마몬의 번들거리는 검은 눈이 울렁거린다.
-꼬리 치우라고.
꼬리가 스스륵 내려간다.
그 머리에 엄지손가락만 한 뿔 이 돋아 있었다.
-배부르게 잘 처먹고 살았네.
-이곳에 령주께서 계신 줄은 몰랐습니다. 정말 몰랐단 말입니 다. 알았으면 이러지 않았을 겁 니다. 알았다면…… 이 땅에 발 붙이지 않았을 겁입니다. 흐어엉.
마몬은 급기야 엉엉 울음을 토 해 냈다.
귀신같이 큰 눈에서 검붉은 눈 물이 뚝뚝 떨어진다.
-생쥐같이 숨어 얼마 안 되는 정념을 받아먹은 것뿐입니다. 타 락할 인간은 결국엔 타락한다. 셰즘께서도 그리 말하시지 않았 습니까. 어차피 타락할 인간들의 정념을 조금 받아먹은 것뿐입니 다. 먹고살려고 그랬습니다. 저도 살고 싶어서 그랬습니다.
-손가락 한 마디.
태식은 짧게 말했다.
-흐그으으으.
마몬은 울음을 토하며 양손으로 제 뿔을 잡았다. 그러곤 송곳니 를 드러내며 힘을 줬다.
-부디 용서를.
꽈지직!
육포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뿔 이 찢겨 나왔다.
뜯겨진 뿔 뿌리에서 검은 마기 가 줄줄 흘러나온다.
-부디…… 부디 영멸만은…….
마몬은 양손으로 제 뿔을 받쳐 태식에게 내놓았다.
태식은 그것을 마기로 녹여 흡 수했다.
뿔에 쌓인 정념의 기억이 밀려 온다.
갑자기 심계에서 눈을 뜬 시점 이다.
로아에서 영멸당한 다음의 시점 일 것이다.
아무리 뿔 자리를 매만져도 손 끝에 걸리는 것 하나 없는 무각 의 상태.
무각의 마족은 갓난아이나 다름 없다. 변변한 마물 하나 잡지 못 한다.
이리저리 치이고 숨죽이며 굴러 다니고.
썩어 가는 고기마저도 눈치를 보며 훔쳐 먹었고, 정념 한 줄기 얻기 위해서 목숨을 걸고 헌터에 게 접근한다.
그야말로 빌어먹는 삶이었다.
그렇게 심계를 떠돌다가 밖으로 나온 게 얼마 전이다.
마기에 기시감을 느끼는 헌터를 피해 도망치다 보니 결국 강원도 구석까지 오게 되었고 허기진 배 를 움켜쥐고 정념을 찾다 보니 권 목사에게 닿게 되었다.
그게 다였다.
-비루하게 살았구나.
-너희 사역마는 사역되는 존재 로서 영원히 영광되지 못할 것이 며, 영원히 강맹하지 못할 것이 다. 령주께서 영혼에 심은 각인 입니다. 잊지 않았습니다. 부디 영멸만은……
목소리가 죽어 간다. 원래 뿔을 잃으면 이렇다.
그렇다고 죽는 건 아니다. 죽을 만큼 힘들 뿐이다.
“쯧.”
태식은 혀를 찼다.
“원래 집 떠나면 고생이지.”
태식은 흡수한 마기를 일정 부 분 마몬에게 돌려줬다.
마기가 흘러나오던 뿔 자리에 딱지가 지고 오돌톨 새 뿔이 빼 꼼 머리를 내밀었다.
마몬은 제 머리를 쓰다듬어 뿔 을 확인하곤 당황스러워 했다.
-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령주시여.
뿔을 키웠을 때의 징벌대로라면 뿔이 뽑힌 채로 정념 한 줄기 닿 지 않는 곳에서 며칠씩 방치되는 거였다.
그 이후에도 상처를 치료해 주 는 경우는 일절 없고 모기 피 빠 는 것만큼의 정념으로 뿔자리를 메꿔야 했다.
그런데 이렇게 뿔까지 자라나게 해 주니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 이었다.
-어흐으윽, 으어어어으.
마몬은 다시 울었다.
짧은 팔다리로 가슴을 치고 땅 을 구른다.
여러 감정이 뒤섞인 표정이다.
-외로웠습니다, 정말 외롭고 무 서웠습니다. 이토록이나 두려운 령주이신데, 그럼에도 보아서 다 행입니다.
마몬은 제 감정을 토해 냈다. 권 목사에게는 절대 내보인 적 없는 감정이지만, 태식에게는 괜 찮다.
최초의 셰즘이자 유일한 령주이 니 그 앞에선 마족의 긍지 따위 는 하잘 없는 것일 뿐이다.
그래서 허물어진다.
-누구라도 보고 싶었습니다. 대 화를 할 수 있는 존재가, 누구라 도 보고 싶었습니다.
어떤 감정인지 안다.
이해하고도 남는다.
태식도 경험했던 것이고 평생 가지고 있던 감정이었다.
로아에서라면 감히 공감하려는 것이냐 하며 뿔을 뽑았을 텐데, 지금은 그런 감정이 들지 않는 다.
이곳이 집이라 그렇다.
-할 일 많다. 추스려라.
-예, 셰즘이시여. 다루는 대로 다루어질 것이고 쓰시는 대로 쓰 이겠습니다.
마몬은 태식에게 부복했다.
-네 안식처로 가자.
그 한마디에 마몬은 태식의 그 림자에 녹아들었다.
태식은 성지라 명명되어진 곳으 로 이동했다.
이 사이비의 피라미드 꼭대기 층에 해당하는 곳이다.
금을 입은 태백산맥의 한 지류 에 자리 잡은 터라 성지 또한 황 금으로 번쩍거린다.
살구씨 농원이란 명패를 지나친 다.
살구나무가 쭉 둘러쳐져 있다.
황금의 대지에 어울리지 않는 억지 치장이다.
그 나무를 심기 위한 흙을 전부 외부에서 공수해 와야 했을 테니 말이다.
그것은 일종의 과시였다.
흙이 있는 곳을 황금으로 치장 하는 것처럼 황금이 즐비한 곳에 흙을 치장해 둔 것이다. 억지로 심어 둔 살구나무가 그 렇고 과하게 조성해 둔 농지가 그렇다.
“새로운 성도님이십니까?”
밀짚모자를 쓴 중년인이 태식을 보곤 다가왔다.
예배당에서 보았던 관리자 같은 부류가 아니었다.
그는 순수하게 비워진 사람이었 다.
마족으로부터 대부분의 정념을 흡수당해 욕망과 탐욕을 잃은 상 태.
생존에 필요한 약간의 식욕과 수면욕만으로 살아가며 그것만을 위해 행동하는 상태.
망실자다.
그렇다. 이지를 상실한 전마병 과 다르지 않다.
태식이 전마병을 개발한 것도 이 망실자에서 착안한 것이다.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참 순하 고 좋은 사람들이라고 평하겠지 만, 실상은 감정의 대부분이 거 세된 환자다.
태식은 그들을 신경 쓰지 않고 비켜 갔다.
그는 태식을 붙잡지 않았다. 그 저 그러려니 하고 제 갈 길을 간 다.
망실자들은 본래 그런 존재다.
그들에게 딱히 이렇다 할 동정 심이 들진 않는다.
욕망이 망실되었다는 것은 그만 큼 많은 욕망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고, 그것을 그토록이나 강하 게 표출했다는 것이다.
저들을 선택한 자가 누구인지 알기에, 저들이 선택받기 위해 어떤 짓을 했는지도 알고 있다.
그저 짜증스러울 뿐이다.
-여기입니다.
마몬은 자신의 안식처를 가리켰 다.
별것 없는 땅굴이 전부였다.
새끼줄로 꼬아 만든 주렴에는 수저, 찢어진 목장갑, 낡은 손수 건, 아이스크림 막대 같은 것들 이 걸려 있다.
마몬이 의미를 부여하고 안정을 얻는 물건들이다.
대부분의 마족들은 자신의 안식 처를 이런 수집품으로 채워 둔 다.
그러니 진짜 중요한 것은 안식 처가 자리 잡은 땅이 아니라, 그 안식처를 채우고 있는 이 수집품 들이다.
태식은 그 수집품을 갈무리해 마몬에게 주었다.
마몬의 또다시 눈을 껌뻑거렸 다.
-태우지 않으십니까?
질문을 하면 안 된다는 규율이 있었지만 참지 못하고 내뱉었다.
마찬가지로 사역마는 수집품을 가지지 못한다는 것이 규율이었 으니 말이다.
-이게 뭐 별거라고.
말린 심장, 눈알꿰미, 왕들의 두 개골 같은 것에 비하면 정말 별 것 아닌 것이긴 하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렇게 잘 대해 주셔서 감사합니 다. 오늘이 꼭 저의 탄생일인 것 같습니다.
마몬은 얼떨떨하게 수집품을 받 아 들곤 되도 않는 말을 토해 냈 다.
정말 되도 않는 말이다. 그래서 태식은 피식 웃고 말았다.
본래라면 다음 목적지는 집무실 이었다.
권 목사의 기억을 통해 마몬의 존재를 확인했으니 놈을 잡아서 베올의 뇌와 연결해 안테나처럼 써먹을 생각이었다.
강력한 정념에 반응하는 마족의 성질을 이용해 강하게 분출되는 탐욕의 꼬리를 잡는 것이다. 그렇게 찾아낸 사람은 십중팔구 는 구린 곳이 잡힌다.
특히나 마왕군의 재정 회계 담 당이었던 마몬은 금전욕에 대한 욕심을 잘 잡아내는 녀석이다.
로아에서도 크게 효과를 보았지 만, 명예와 권력의 축이 더 컸던 로아보다도 자본주의인 이곳에서 더욱 큰 효과를 볼 게 확실하다.
-쓰시는 대로 쓰이겠습니다. 부 디 요긴하게 가용해 주십시오.
마몬은 오동통한 손을 모아 가 며 부복했다.
본래 자존심이 센 녀석이었다.
아무리 가진 힘이 다른 고위 마 족보다 약하다곤 하나 물자를 주 무르는 재정 담당이었던 만큼 자 긍심만큼은 대단한 놈이었었다.
72군단장의 직책이면서 11대장 군들에게도 핀잔을 줄 정도였으 니 그 성격 알 만하잖나.
그런 놈이 이렇게 굴종한다.
로아에서의 굴종과는 느낌이 다 르다.
로아에서의 굴종이 공포와 두려 움, 억압과 징벌 때문이었다면 지금은 고독과 외로움이 기반이 었고 반가움과 서글픔까지 섞여 있다.
그 외로움이 자꾸 예전 일이 떠 오르게 한다.
로아에 처음 소환되었을 때 말 이다.
망할 원로원 놈들이 소환할 거 면 제대로나 할 것이지, 한창 전 쟁 중인 전선에서 소환되는 바람 에 고생도 그런 죽을 고생이 없 었다.
외로웠었고 두려웠었고 배가 고
팠었다.
아마도 그때, 원로원에서 찾아 오는 것이 조금만 더 늦었었다면 어쩌면 마족 진영으로 넘어갔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로아에서의 기억 중에서 정말 떠올리기 싫은 부분이지만, 그만 큼 강렬한 기억이라 그때의 감정 은 잘 잊히지가 않는다.
“아- 술 땡기네.”
일을 하다 보면 이런 날도 있지 싶다.
당장 급한 것은 치웠으니 괜찮 지 않나.
태식은 용주에게 전화를 걸었 다.
내가 해도 될까? (2)
“형, 동생 술 한 잔 사 줘.”
태식은 맡겨 둔 술 단지 찾는 것처럼 말했다.
-딱 저녁 먹을 시간이구만.
“안 돼?”
-기다려 봐, 니 형수한테 허락 받아야지.
-태식 씨?
-어, 무슨 일 있나 봐. 한잔하 자네.
-밥 다 차렸는데, 태식 씨는 저 녁 먹었대? 안 먹었으면 그냥 집 으로 오시라고 해서 같이 먹어 요.
수화기로 형수 혜정의 목소리가 넘어온다.
-술 있나?
-전에 제사 지내고 남은 백세 주 있고 맥주 있고요.
-야, 들었냐? 니 형수가 너 저 녁 먹이겠다는데.
“좋지 그럼. 건너가도 돼? 아영 이 좌표 찍고 넘어가면 되는데.”
용주의 허락이 아닌 혜정의 허 락을 구하는 물음이다.
-어어, 넘어와.
태식은 용주의 집으로 넘어갔 다.
방 두 개에 주방과 붙어 있는 거실의 그리 넓지 않은 집이다.
벌써부터 아기용품으로 가득 들 어차 있으니 인테리어는 따로 볼 게 없다.
“형수, 내가 형수 밥 먹고 싶은 거 어떻게 알고-.”
“저녁 안 먹었을 거 같아서요.”
“아빠빠빠-.”
아영이가 아장아장 걸으면서 걸 어와 태식의 바지춤을 잡았다.
“으헤헤헤. 아영아, 삼촌 왔 다〜.”
태식은 아영을 안아 들고는 흔 들흔들 비행기를 태웠다.
“야, 그만 하고 앉아라.”
“형수, 눈치 없이 좀 얻어먹을 게요.”
“에이-. 눈치 없긴요. 차린 것 도 없는데요.”
혜정은 김치전 반죽을 개었다.
“형수는 같이 안 먹어요?”
“저는 아까 아영이 먹이면서 먼 저 먹었어요. 편히 드세요.”
“그럼 잘 먹겠습니다.”
된장찌개에 장조림, 비엔나소시 지와 진미채.
흔히 먹던 밥상이고 특별할 것 없는 밥상이다.
일상적이다.
용주와 함께 있으면 일상 속으 로 들어와 있는 기분이다.
그래서 좋다.
방금 전에 보고 왔던 그 메스꺼 운 광경이 희석되어 사라지는 것 같다.
“이꺼-! 이꺼-! 이꺼어-!”
아영이까지 보고 있으면 더 말 할 것도 없다.
아영은 어설프게 포크질을 한 소시지를 태식의 입으로 밀어 댔 다.
“아영이 이제 포크질도 엄청 잘 하네〜. 케첩도 찍을 줄 알고-. 다 컸구먼, 다 컸어.”
태식은 케첩이 과하게 묻은 소 시지를 냉큼 받아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