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lf Price Pawn Shop RAW novel - Chapter (29)_6
그 빗줄기가 마족과의 동화가 쉽게 이루어질 자를 찾는다.
그중에서도 마몬의 성향과 잘 맞는 자들이라면 돈에 대한 집착 이 있는 이들이다.
검은 비가 내린 곳에서 붉은 꽃 이 피어오른다.
한 송이, 두 송이.
피어오른 꽃은 금세 일대를 붉 게 물들였다.
“어허허허허, 많군. 생각보다 많 아.”
“돈이란 게 그렇고, 마라는 게 그런 겁니다. 주변의 모든 것을 빨아들이고 검게 물들이죠.”
태식은 그 꽃을 꺾어 담았다.
망설임이 없고 사정 또한 없다.
“그렇게 물들다 보면, 어느 순 간부터는 자신이 숙주가 되어 주 변을 물들이고 다니죠.”
“맞는 말일세. 잡초는 잔뿌리까 지 모두 뽑아야 다시 돋아나지 않는 법이니.”
태식은 꽃바구니 속에서 검게 그으른 인상의 노인을 꺼냈다.
수십년 어선을 타며 해풍과 태 양에 그을린 그의 인상은 오직 삶의 고난만 있을 뿐 독기나 마 기는 언뜻 보이지 않았다.
“겉으로 보아선 그저 어부일 겁 니다. 뭐 하나 누린 것 없이 살 아온 사람 같아 보이겠죠.”
태식이 기억을 열었다.
그 기억 속의 어부는 누군가의 명령을 받아 배를 몰았다.
딱히 풍랑이 몰아치는 바다일 필요가 없다.
평소처럼.
늘상 그런 일상이듯, 배를 몰고 나간다.
평소와 다른 점은 일꾼 하나 대 동했다는 것이다.
딱히 자리를 찾을 필요도 없다.
물이 도는 자리. 혹은 물길이 대양으로 나가는 자리.
거기서 일꾼으로 데려온 이에게 그물질을 하라 시킨다.
그다음은 쉽다.
그저 밀어 넣으면 되니 말이다.
“이런 식이죠. 대부분 이런 식 입니다.”
“많이 해 본 솜씨로군.”
“많이 했죠. 해도 해도 끝이 없 을 정도로 많이 했어요. 그래서 여기선 좀 안 하려고 했는데, 결 국 이렇게 되네요.”
“그래서 말했지 않나. 천명이라 고.”
“천명은 무슨. 그것도 일종의 정신병입니다. 영감님도 그거에 취하면 이런 놈 되는 거예요.”
“어허허허허, 귀하나 나나 뭐 다를 게 있다고.”
“하하. 거참, 영감님 말 속에 뼈 가 잔뜩 들어 있으시네.”
“역사에 기록되어지길 바라는 것도 아니고 이름을 떨치길 바라 는 것도 아니잖나. 그러니 수없 이 많이 잊혀진 사건 중 하나로 잊혀질 것이네. 모르는 이들이 보면 그럴 수밖에, 홀홀홀.”
진인은 태식에게 손을 내밀었 다.
“ 뭐요?”
“그 망태기 말일세. 내가 한번 걸러 보겠네.”
“굳이요?”
“그래야지. 그래야 귀하의 마음 이 조금이라도 가벼워지지 않겠 나.”
“기억은 못 열잖아요.”
“귀하처럼은 못 해도 진실을 말 하게 할 수는 있다네. 늙은이 소 일 준다고 생각하고 주시게.”
태식이 가진 죄책감을 나누려 함이다.
태식도 그것을 안다.
괜한 자존심이나 고집으로 거절 할 생각은 없다.
죄책감만큼 칼이 무뎌지게 하는 게 없다. 덜어낼 수 있을 때 덜 어내는 게 좋다.
“고맙다는 말은 안 합니다.”
“어허허허, 들은 셈 치겠네.”
꽃바구니를 건네받은 진인이 자 리를 이동하려 했다.
“영감님, 이따가 다시 오세요.”
“어인 일로?”
“다 돌아야죠. 이런 일이 여기 만 있을 것도 아닌데.”
“다? 아하-. 어허허, 그렇구먼.” 진인의 시선이 태식이 든 검에 맺힌다.
예리하기만 한 검이었다.
악당 천명 (2)
착취의 장을 본다.
단순한 임금 체불이나 최저 시 급 미준수의 개념이 아니다.
사람을 노예처럼 다룬다.
개밥으로 줄 음식을 밥이라고 주고 마스크나 장갑과 같은 보호 장비는 고사하고 변변한 작업복 도 지급하지 않는다.
이렇게 많을 줄 몰랐다.
TV에서 이슈화가 된 것은 염전 노예뿐이라 그곳만 그런 줄 알았 는데, 실상은 다른 지역이라 해 서 다를 게 없었다.
단지 그 지역에 염전이 몰려 있 었기에 밀집도가 많은 것뿐이었 지 힘들고 어려운 곳에 몸과 정 신이 아픈 사람을 두어 착취하는 행태는 전국 어디에나 있었다.
“여봐, 내가 진짜 궁금해서 그 러는데 말이야. 목장갑 하나에 천 원쯤 하냐?”
태식은 심드렁하니 물었다.
잡혀 든 업주는 뭐에 취한 듯 몽롱하다.
“이 친구 이거 물정 모르는구 먼. 목장갑이 무슨 천 원이나 해.”
“그럼 500원?”
“그걸 왜 돈 주고 살 생각을 하 냐 이 말이야. 하청에 요구하면 되는걸.”
“아〜. 그렇구나. 하청에서 목장 갑도 가져다주는구나.”
“그럼, 그래야지. 지들이 누구 덕에 돈 벌어 먹고사는데.” “그러면 그 공짜로 얻는 목장갑 말이야. 왜 김 씨 아저씨한테는 하나도 안 주는 거냐? 보니까 손 이 다 찢어졌던데. 손톱도 빠지 고.” “공짜로 받은 건 내 재산 아닌 가. 김 씨 그놈은 내가 거둬 맥 이다시피 하는데, 그거면 됐지 뭘 더 챙겨, 챙기길.”
“거둬 먹여?”
“그럼! 나 없으면 길바닥에서 객사했을 놈인데. 내가 불쌍해 가지고 데려다가 밥도 주고 잠자 리도 제공하고, 기술도 가르치고, 한글도 떼게 시키고. 나 아니었 으면 저놈•이 사람 구실 했으려 고.”
태식은 파하 숨을 내쉬며 손을 털었다.
“그렇지. 이러니까 바뀔 수가 없는 거지.”
일말의 죄책감이 없다.
오히려 당당하고 떳떳하다.
진심으로 자신이 은혜를 베풀었 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 사고방식은 고쳐지지 않는 다.
태어나길 이렇게 마족과 동화되 기 쉬운 적성으로 태어난 것이 다.
개도하고 교육할 대상이 아니 다.
솎아 내야 하고 골라내야 한다.
“이봐 젊은 친구. 그런데 지금 날 어디로 데리고 가는 거야?”
“너 같은 쓰레기들 모아 놓는 곳. 쓰레기통.”
“내가 쓰레기통에 들어가는 거 구먼.”
“그렇지. 영영 못 나올 거야.”
“아이구, 그러면 안 되는데.”
“왜 안 돼?”
“내가 없으면 내 회사는 어쩌 고. 당장 내가 공급하는 원료가 얼마나 중요한 건데. 이게 공급 이 안 되면 우리나라 산업의 근 간이 멈춘다고.”
“그래, 그러시겠지.”
태식은 또 하나의 쓰레기를 쓰 레기통으로 넣었다. 보이는 대로 하나씩 주워 담다 보니 그 양이 많다.
줍는 김에 그 옆에 있는 담배꽁 초며 과자 봉지까지 줍는 통에 더 많아졌다.
“족히 300명은 되겠구먼.”
“그것도 적어요. 이놈이 영 기 운을 못 차려서.”
태식은 붉은 피부가 보라색으로 떠 버린 마몬을 쥐고 흔들었다.
“마물이라 할지라도 힘을 과히 쓰면 지치는 법 아니겠나.”
“그렇게 동정할 놈은 아니고요. 이놈은 자연계도 아닌 순수한 마 족 혈통이니까.”
“어허허허. 그러한가. 귀하는 참, 알다가도 모르겠구먼.”
“뭐가요?”
“악한을 이리도 싫어하면서 순 수한 악이라는 존재는 그리 중용 하는 겐가?”
“이놈은 쓸모가 있잖아요, 그놈 들은 쓸모가 없고. 전쟁터라도 있으면 들이밀기라도 할 텐데, 딱히 전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어허허허, 이거 참 무서운 사 람이구먼. 그래서 일부러 이곳에 자리를 잡은 겐가?”
태식이 고개를 갸웃했다.
“휴전선 안에 말일세. 전쟁이 일어나면 가장 먼저 전쟁터가 될 곳에 이자들을 뒀냐 이 말이야.”
“해석이 과하시다. 사람 발길 안 드는 적당한 자리 찾다 보니 까 여기로 결정한 겁니다. 또 궁 금한 거 있어요? 대신 일해 주는 겸해서 두 개 정도는 더 대답해 드리죠.”
“어허허허허.” 진인은 태식의 심드렁한 말에 수염을 잡으며 웃었다.
주고받는 것에 꽤 명확한 구석 이 있잖나.
이러면 일을 더 거들어 주고 싶 어진다.
그러면 알아서 챙겨 줄 거 아닌 가.
“아니네. 이게 빚이라면 조금 더 쌓아 두도록 하지. 가서 일 보시게.”
“그래요 그럼. 일하다 골 아프 시면 한 대씩 피우시고요.”
태식은 담배 한 보루 내밀었다.
“전에 받은 것 남았네.”
“그럼 그냥 쟁여 두시고요.”
태식은 훌쩍 날아올랐다.
안개 자욱한 미궁에서 수백의 사람들이 이리저리 헤매고 있다.
공포와 두려움에 찬 비명을 지 르는 자도 있고 내가 누군지 아 냐며 소리를 질러 대는 자도 있 다.
제자리에 주저앉아 우는 자도 있다.
“카아악 퉷-. 속이다 시원하 네.”
듣기 좋은 소리다.
피해자들에게 저들이 받는 고통 을 전해 주지 못하는 게 아쉬울 따름이다.
속이 좀 뻥 뚫리는 기분이다.
쓰레기를 치워 깨끗해진 길거리 를 보는 그런 기분 말이다.
손이 근질근질한 게 더 하고 싶 다.
로아에서 했던 것처럼 정화 작 업을 하고 싶은 기분이다.
로아에서는 그랬더랬다.
태식이 온갖 음해와 음모를 이 겨 내고 멸마군의 총사령관이 되 었을 때.
태식은 거칠 것 없는 정화 작업 을 실행했었다.
주둔하는 영지의 모든 사람을 훑어 마족과 동화 가능성이 있는 자들을 배제하는 작업이었다.
그중 죄가 있는 자는 벌을 하였 고, 죄가 없는 자는 멸마군 휘하 군인으로 들여 관리하였었다.
물론 그것이 인류의 절멸을 걸 고 벌어지는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이라 가능했던 일임을 알고 있다.
그런데 하던 가락이지 않나.
한번 할 때 화끈하게 탈탈 털어 버려야 속이 시원하다.
“내가 이래서 참으려 했지. 이 래서 참으려고 했어.”
태식은 혀를 쯧쯧 찾다.
스스로에게 보내는 자소다.
그 이전에도 일반인의 규범에선 아득히 선을 넘고 있었지만, 최 소한 태식의 내면에서는 아니었 다.
참아야 한다, 여기서 더 나가면 안 된다.
여기까지만 하자, 딱 여기까지 만.
그렇게 되뇌며 다스렸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마음속의 저지선이 무너졌다.
태식의 머릿속에는 이미 이다음 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처음 위상 변환기를 만들었을 때, 중국과의 전쟁까지 염두에 두었던 것처럼 말이다.
“이놈은 언제까지 뻗어 있는 거 야. 정념도 많이 먹었을 건데.”
-그, 금방 회복하겠습니다. 몸 이 감당할 수 없는 출력으로 써 서 그렇습니다.
“응? 내가 방금 마족어로 말했 나‘?”
-아니요, 한국어로 말씀하셨는 데요.”
“너 한국말 알아들어?”
-네. 공부했습니다. 알아듣습니 다.
“그럼 말하기는?”
“조금 됩니다.”
“조금이 아닌데? 발음 정확하구 만.”
가만 생각해 보면 그리 특별한 능력도 아니다.
본래 마족은 인간과의 동화를 이루기 때문에 언어능력이 뛰어 나고 언어 습득도 빠른 편이다.
“칭찬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목소리가 애 교투야?”
“애교투요?”
“애교 떠는 목소리냐고.”
마족어로 말할 때는 낮은 음으 로 깔리는 목소리인데 한국어로 말할 때는 음이 확 올라가 버린 다.
“교정하겠습니다.”
“교정할 건 아니고. 지금 생긴 거랑 잘 어울리긴 하네.”
마몬의 완전체 모습에 비하면 전혀 매치가 안 될 목소리지만 짜리몽땅하니 오동통한 너구리 같은 현재 모습과는 제법 잘 맞 는 것 같기도 하다.
“칭찬 감사합니다.”
“너 그런데 왜 한국말 하는 거 얘기 안 했냐.”
“묻질 않으셔서……. 기억을 보 셨기에 당연히 보셨을 줄 알았습 니다.”
“내가 니 머리 열어 보면서 어 학 공부한 거까지 찾아봐야 돼?”
“죄송합니다.”
“죄송할 건 또 뭐냐.”
태식은 마몬의 뒷덜미를 잡아 목을 턱 젖혔다.
그러곤 포션을 들이부어 줬다.
“기운 좀 차려 인마, 할 일 많 아.”
“츄르름, 감사합니다.”
마몬은 입가에 묻은 포션을 핥 으며 대답했다.
시선이 포션 병으로 간다.
마족들은 포션 맛이 달달한 게 초콜릿 시럽 먹는 것 같다나.
여하튼 맛이 좋단다.
“그런데 다른 사역마는 없습니 까?”
“왜, 친구 만나고 싶어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제가 령 주님의 유일한 종마인가 해서 여 쭌 것입니다.”
“굳이 따지자면 그렇게 되긴 하 겠지.”
아그니는 홍시라는 이름으로 이 린에게 가 있다.
사역마라 볼 수 없다.
그리고 태생이 자연계이니 마몬 이 말하는 종마와는 다소 차이가 있기도 하다.
“포션을 마셔서 그런가 힘이 나 는 것 같습니다. 한 병 정도 더 마시면 회복이 더 될 것 같습니 다.”
맛으로 더 달라는 말을 하는 것 같진 않다.
아직 할 일 많은데 못 해 줄 것 도 없다.
“먹는 만큼 일해야 되는 거 알 지?”
“예. 종자로서 령주의 은혜에 부응해야 하는 것이 당연합니 다.”
“그래, 얼마나 잘 부응하나 한 번 보자.”
태식은 내친김에 군산으로 향했 다.
새로 바뀐 군산팀 팀장 오차연 이 와서 태식을 맞이했다.
태식은 처음 보는 얼굴이다만, 오 팀장은 태식을 익히 알고 있 다.
“처음 뵙겠습니다, 이번에 새로 군산팀 팀장으로 배정된 오차연 입니다.”
“네, 말은 들었어요. 강태식이에 요. 반가워요.”
오 팀장은 태식의 악수를 두 손 으로 받았다.
“안 그래도 사장님의 특별 지시 가 내려져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이렇게 직접 찾아 주셔서 영광입 니다.”
“특별 지시? 어떤?”
“앞으로 어떠한 일이 일어나도 당황하지 않고 즉각적, 다각적 대응이 가능하도록 비상 체계를 유지하라는 지시셨습니다.”
“군산팀에서는 포션만 만들면 되는데 뭘 그렇게까지. 그래서 요?”
“예?”
“그래서 어떤 조치를 하셨냐고 요. 그 즉각적, 다각적인 대응을 위해서 말이에요.”
3팀 김 팀장에게 전해 듣기로 강 이사는 겉으론 신경 안 쓰는 듯, 편히 하라는 듯 말해도 실상 속으로 미리 다 계산하고 체크하 는 타입이라고 들었다.
그러다 빈틈이 있으면 내쳐지는 것이고 잘 준비되어 있음 더욱 중용하는 타입이라고.
부하 직원으로서는 대하기 까다 로운 타입이지만, 조직을 이끄는 리더의 타입으로 나누어 볼 때는 열심히 따라 볼 만한 타입임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