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lf Price Pawn Shop RAW novel - Chapter (2)_6
그녀의 할머니인 이옥정 여사가 대호 그룹이 대호상회였을 때부 터 하나씩 모은 골동품들이 자리 잡고 있는 미술관이다.
차는 미술관을 지나쳐 좁은 산 길 가도를 탔다.
차 한 대 겨우 지나갈 수 있는 길은 양옆으로 굽이진 소나무들 이 어우러져 있다.
그렇게 도심 속 숲을 지나 중턱 쯤에 오르자, 무궁화나무가 두르 고 있는 공터가 하나 나왔다.
기사는 익숙한 듯 그곳에 차를 세웠다.
“오래 걸리진 않을 거예요.”
“예, 사장님. 대기하고 있겠습니 다.”
마이린은 무궁화나무가 깔린 길 안으로 들어갔다.
좁은 굽이를 몇 번 지나치자 오 래된 사찰의 정문과 같은 문이 그녀를 반겼다.
세월의 향내가 묻어 있는 현판 엔 무궁원이라 쓰여 있었다.
이곳에 이옥정 여사가 있다.
자박자박 걸음을 걸어 초옥 같 은 건물에 들어갔다.
대호의 안주인이 잠들어 있다고 보기엔 어울리지 않게 초라했다.
“할머니, 오랜만에 왔죠.” 마이린은 낮은 제단 옆에 쪼그 려 앉았다.
“아빠 깨어났는데. 왔다가 가셨 나요?”
주변을 봐도 사람 다녀간 흔적 이 없다.
“아니라고요? 그래도 이해해 주 세요. 이제 병상에서 일어난 지 얼마 안 됐거든요.”
늘상 하는 것처럼 돌아오지 않 을 질문을 대화처럼 던져 본다.
“그리고 정말 기쁜 소식 있어 요. 할머니가 그걸 직접 봐야 했 는데. 할머니도 분명 자랑스러워 했을 거예요. 아, 아닌가요? 이 제야 정신 차렸다고 하셨을까 요?”
이린은 후훗 웃었다.
“아빠가 정말 변한 거 있죠. 저 한테 큰일도 맡기고요. 뭐라고 요? 금세뿐이라고요? 그래도 이 번은 조금 다르지 싶어요. 죽을 고비를 넘기고 깨어났으니까요. 아마 할머니를 만나고 혼쭐이 난 거 아닐까요? 그러고서 어딜 들 어오냐고. 냉큼 돌아서 입은 은 혜 다 갚고 오라고.” 이린은 할머니의 위패를 부드럽 게 닦았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아빠가 오빠가 아닌 저에게 일을 맡겼거 든요. 그리고 잘되고 있는 것 같 아요. 행운도 따라 주고 있고.”
입가에 번지는 희미한 미소는 여러 감정이 녹아 있다.
말 한마디마다 과거의 기억이 스쳐 간다.
“벌써 큰일 하나를 정말 손쉽게 처리했어요, 그러니까 걱정 마세 요. 할머니가 가르쳐 준 거 하나 도 안 잊었어요.”
이린은 잠시 말이 없었다.
과연 지금 이걸 입 밖으로 내는 게 온당한가 싶다.
지금까지 그 누구에게도 언급하 지 않았던 것이다.
입 밖으로 낸 적도 없다.
하지만 지금은 내 보고 싶다. 스스로에 대한 다짐을 위해서라 도 말이다.
“그리고 정말 잘 되면, 그래서 모든 것이 가능해지면, 제가 할 머니의 한도 꼭 풀어 드릴게요.
꼭이요.”
마이린은 위패를 다소곳이 올려 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문을 나서기 전까지도 몇 번 이나 아쉬운 듯 뒤를 돌아봤다.
“진인사대천명, 사람이 할 일을 하고 하늘의 뜻을 기다린다. 그 리고 겸손, 또 겸손. 할머니, 나 안 까먹었어요. 잘 해낼 테니까, 지켜봐 주세요.”
마이린은 산문을 걸어 내려오며 몇 번이나 마음을 다잡았다.
“사장님, 어디로 모실까요?”
“호텔로 가죠. 종로에 이대로 갈 수는 없으니까요.”
“예, 사장님.”
호텔에 들른 이린은 다시 채비 하고 종로로 향했다.
변변한 간판도 없는 가게. 심지 어 1층은 쓰레기 더미가 그대로 방치된 건물에 있는 그런 가게.
반값전당포 앞에 선 마이린은 심호흡을 다시 했다.
탁한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모 습이 재계의 꽃 마이린처럼 보이 진 않았다. 적당하다 싶었다.
“태식 씨〜.”
가게 문을 밀어 본다. 문은 열 리는데 사람이 없었다.
점심을 훌쩍 넘긴 시간인데 이 상하다.
잠시 기다리던 마이린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옥상으로 올라갔 다.
애연가이니 옥상에 있나 싶어서 말이다.
“태식 씨〜.”
마이린은 녹이 잔뜩 슨 문틀 너 머로 빼꼼히 고개를 내밀었다. 낡은 테이블에 누워 다리를 까 딱거리고 있는 태식이 있었다.
“태식 씨, 자요?”
“자려고 했는데 사장님 때문에 깼네요.”
“아이, 미안해요.”
마이린은 종종걸음으로 태식 옆 으로 왔다.
“이왕 쉴 거면 우리 호텔 와서 쉬시지……. 아, 문자는 잘 받은 거죠? 답장이 없어서, 제가 잘못 보냈나 해서요.”
“그거 물어보려고 왔어요?”
“겸사겸사요.”
마이린은 손에 들고 있던 케이 크를 내밀었다.
“저번에 맛있다고 하셔서, 오늘 은 다른 맛으로 가지고 왔어요.”
“무슨 맛인데요?”
“당근 맛요.”
태식은 눈을 가늘게 뜨며 일어 났다.
“당근으로 케이크를 만들어요?”
“진짜 맛있어요. 저도 제일 좋 아하는 케이크인걸요.”
“뭐, 사장님이 그렇다고 하면 중간 이상은 가긴 하겠네요.”
“여기서 드실래요? 아니면 내려 가요?”
“내려가서 먹죠. 여긴 뭐 포크 도 없고.”
마이린은 태식보다 먼저 계단을 내려갔다.
태식이 어슬렁어슬렁 가게로 내 려가니 마이린이 부산하게 접시 를 깔고 있었다.
접시라고 잔 기스 가득이라 볼 품이 없다.
포크도 손잡이 부분의 플라스틱 장식이 떨어져 나간 것이다.
“괜히 식기 같은 거 가져오고 그러지 마세요.”
태식은 식기를 빤히 보는 이린 이 신경 쓰여 먼저 그렇게 말했 다.
“안 돼요? 호텔에 많아요.”
태식은 바른 자세로 소파에 앉 아 곧은 시선으로 마이린을 봤 다.
마이린은 괜히 그 분위기에 눌 려 무릎을 모으고 다소곳이 손을 올렸다.
“사장님. 사장님은 호텔을 경영 하니 인테리어와 분위기에 조예 가 깊을 겁니다. 맞습니까?”
“다른 사람들 보는 만큼은요.”
“그럼 이 가게의 분위기가 어떻 습니까?”
“가게 분위기가……. 솔직히 말 해서 80년대 복덕방 같은 느낌 이에요.”
“맞습니다. 그럼 사장님이 보기 엔 제가 꾸밀 줄 몰라서 이렇게 해 두는 것 같습니까?”
“그거야……
“일부러 이렇게 세팅해 둔 겁니 다, 일부러. 이 분위기가 좋아서. 이런 걸 앤티크라고 하는 거죠.”
마이린은 더없이 진중한 태식의 어조에 어색하게 입꼬리를 올렸 다.
“하, 하하, 앤티크라고 하기 엔…… 저, 태식 씨. 제가 조금
헷갈려서 그러는 건데요. 지금 농담……하는 거죠?”
“진담입니다. 내 취향을 사장님 주관으로 침범하지 마세요. 이건 지극히 사적인 부분입니다.”
“미안해요. 그럴 생각은 없었어 요.”
“자, 그럼 케이크를 먹죠.”
“네, 네, 드세요.”
마이린은 얼른 케이크를 떠서 태식에게 내놓았다.
태식은 고구마색의 당근 케이크 를 보며 이게 맛있으면 어쩌나 하는 고민을 했다.
이린이 미워 보이지 않는 탓이 다.
일부러 흠을 잡아 거리를 둬 보 려고 해도 흠이 잡히지 않는다.
지금까지 수없이 많은 사람을 경험하고 겪었지만 이만한 사람 참 드물다.
“어서 먹어 봐요. 진짜 맛있어 요.”
태식은 케이크를 크게 베어 입 에 넣었다.
“ 젠장.”
“에? 뭐가 잘못됐어요? 맛이 이 상한가요?”
“뇌물이 세다.” 맛있는걸 맛없다고 할 수야 없 다.
“맛있다는 소리죠? 아휴, 깜짝 놀랐잖아요.”
“됐으니까 가지고 온 거나 내 봐요. 뇌물을 가지고 왔으니 뭐 가 더 있을 거 아니에요.”
“아이참, 그런 목적으로 가지고 온 건 아니고요.”
말은 그리하면서도 신이 나서 태블릿을 내민다.
“위상변환기에 대한 일단의 관 리 보고서예요.” 관리팀의 신상명세부터 시작해 서 분 단위 작동 경과와 게오르 그 수치 측정값까지.
하나부터 열까지 흠잡을 데 없 이 깔끔하다. 아니, 과하다.
“그리고 이건 향후 발생할 문제 들에 대한 사전 예방안이고요.”
“됐어요, 알아서 해 주세요. 알 아서 해 달라고 토스한 건데.”
태식은 태블릿을 밀어 내고 케 이크를 물었다.
“이런 귀한 물건을 믿고 맡겨 주셔서 고마워요. 정말 실망시키 지 않을게요.”
“그냥 편히 하세요, 편히.”
“그럼요, 태식 씨. 우리 이 다음 건 뭘 할까요?”
“ 뭐를요?”
“제가 리스트 한번 뽑아 봤는데 요.”
마이린이 태식이 밀어 둔 태블 릿을 다시 그 앞으로 밀었다.
파일 제목은 ‘보은 프로젝트 줄 기 기획안’이었다.
“어때요? 태식 씨 말대로 대호 스케일에 맞게 준비를 해 봤어 요. 그렇다고 해서 디테일을 놓 치지도 않으려고 노력했고요.”
“밥 먹었어요?”
“네‘?”
“밥 먹었냐고요.”
“아직요.”
“그럼 밥 먹을래요?”
“……네, 그래요.”
태식은 남은 케이크를 냉장고에 넣고 가게를 나섰다.
“국밥 먹어요?”
“ 국밥요?”
“소머리국밥.”
“ 먹죠.”
“그래요.”
태식은 할매 국밥집으로 갔다.
“할매, 저 왔어요.”
자주 얼굴을 봐서 그런가, 이젠 스스럼없이 편하다. 태식이 먼저 친한 척을 한 탓이다.
“어이, 전당포 총각 왔어?”
“국밥 두 개 주세요.”
“거 앉어. 얼른 내 줄게. 오늘은 이쁜 색시랑 같이 왔구먼.”
“누나예요, 누나.”
“아이구 그려? 얼굴이 뽀〜얘 가지고 총각보다 동생인 줄 알았 구먼.”
“호호호. 감사해요, 할머님.”
태식과 이린은 낡은 플라스틱 의자에 나란히 앉았다.
“많이들 묵어.”
역시나 말뿐인 많이 먹어가 아 니다. 소담하게 쌓인 머릿고기가 인심 아니겠나.
“잘 먹을게요, 할머님.”
이린은 살짝 간을 보더니 큰 수 저로 다대기를 팍팍 풀었다.
“흐음, 맛있네요.”
일부러 테스트하려고 데리고 온 것은 아니지만, 생각보다도 더 복스럽게 먹는다.
“진짜 잘 먹네요?”
“그럼 제가 거짓말로 잘 먹는다 고 했을까 봐요? 어릴 때 할머니 가 수육국밥 해 주시고 그랬었어 요.”
“할머니면 이옥정 여사님 말하
는 건가요?”
“어? 우리 할머니 이름을 태식 씨가 어떻게 알아요?”
“에‘?”
“아, 아아. 미안해요. 내 정신 좀 봐. 할머니는 그냥 가족이라 고만 생각해서요. 딱히 매스컴에 나간 적도 없고 해서요.”
“좀 걷죠.”
“담배는 안 피워요? 식후땡 해 야 하잖아요.”
“사장님이 식후땡이라고 하니까 엄청 어색하네요.”
“왜요? 나는 국밥도 못 먹고 담 배도 모르는 그런 사람 같아 보 여요? 나 담배도 피웠었어요.”
“ 진짜?”
“또, 또! 날 너무 색안경 끼고 보는 거 아니에요?”
“담배 안 피울 것 같다고 보는 게 색안경이에요?”
“그런가?”
“그런 것 같은데.”
“아이, 알아들었으면 됐죠, 뭘.”
이린은 그런 걸로 트집 잡지 말 라는 듯이 입술을 삐죽거렸다. 태식은 피식 웃었다.
“그런데 어디로 가요?”
“여기서 청계천 가깝잖아요.”
“거기까지 가려고요?”
“왜요? 도보 5분 이상은 차로 가야 해요?”
“또 그런다. 그게 아니라요. 저, 나름 위장하고 나온 거란 말이에 요. 누가 알아보는 거, 태식 씨도 불편하잖아요.”
태식은 어깨를 으쓱했다.
지금은 이미 그 단계를 넘어섰 다. 그 불편함을 의식할 거였으 면 같이 일을 하지도 않았다.
“나랑 같이 있는데 누가 알아보 겠어요?”
“그래도요. 제 뒤에 미행이 붙 었을지도 모르고……
“미행? 뭐, 암투 중이에요?”
“아니요. 파파라치나. 있잖아요. 저야 익숙해서 괜찮은데 태식 씨 는 아니잖아요.”
“하기사.”
태식은 허공에 손을 쑥 집어넣 었다. 길 한복판에서 그러니 이 린이 오히려 깜짝 놀라 주변을 살폈다.
“그러는 게 더 티 나요.”
태식의 손에 목걸이가 하나 들 려 나왔다. 특별한 장식이라곤 없는 단순한 목걸이였다.
“대 봐요.”
“이게 뭔데요?”
“안면 인식 필터를 걸어 주는 목걸이예요.”
태식은 손쉽게 그녀의 목에 목 걸이를 채워 줬다.
“못해도 아티팩트는 되는 물건 같은데, 제가 받아도 될까요?”
“사적으로만 활용한다는 조건이 면요.”
“물론이죠! 태식 씨를 만날 때 만 착용할게요.”
태식은 피식 웃고는 앞장서서 걸었다.
찬물에 발 좀 담가요. (2)
태식은 청계천 다리 밑에 앉았 다.
마이린은 사람 하나 정도 간격 을 띄고 그 옆에 앉았다.
태식은 물에 발을 담갔다.
맨발에 슬리퍼만 끌고 왔으니 부담스러울 게 없었다.
태식은 별말 없이 가만히 있었 다.
분위기를 보던 마이린이 먼저 입을 연다.
“저, 태식 씨. 아까 이야기했던 거 있잖아요. 그중에 서해안에서 유입되는 쓰레기 문제는 어때 요?”
“그게 뭔데요?”
“서해에서 미세먼지만 넘어오는 게 아니거든요. 전 세계적으로도 바다에 흐르는 플라스틱 쓰레기 더미는 굉장히 큰 이슈예요. 우 리나라도 마찬가지고요.”
“서해에서 오는 거면 중국에서 오는 거죠?”
“네. 중국 동부 연안에 공단이 모여 있거든요. 그리고 보하이해 에 대규모 김 양식장이 있는데, 거기에서 쓰는 부표가 우리나라 서해안 섬과 제주도까지도 흘러 가요.”
마이린은 핸드폰을 열어 관련 다큐를 검색해서 보여 줬다.
태식은 별말 없이 그것을 봤다.
움직이고 말고를 떠나 무언가를 알아 두는 것은 중요하다.
그래야 어떠한 상황에서 입체적 인 고려가 가능하다.
전쟁을 치렀던 태식에겐 뼈에 새겨진 습관이다.
“보세요. 바람이 많이 부는 곳 은 이 부표나 쓰레기가 날려서 내륙까지 들어가거든요. 이 지역 은 사람들 왕래도 안 하는 해변 인데 쓰레기가 가득하죠. 전부 중국에서 온 거예요.”
“그래서, 아이디어가 있어요?”
“이미 서해에는 위상변환기를 설치해 놨잖아요.”
“그런데요?”
“위상변환기가 해류를 컨트롤할 수도 있는 거니까, 서해의 해류 를 컨트롤해서 중국의 쓰레기가 다시 중국 연안으로 돌아가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요. 미세 먼지를 돌려보내는 것처럼요.”
이린은 눈동자를 반짝거리며 물 었다.
이것저것 많이 생각한 티가 났 다. 많이 설레 하는 티도 났고 말이다.
태식은 여기서 찬물을 한번 끼 얹어 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 다.
“신발 벗고 물에 발 좀 담가 요.”
“지금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