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lf Price Pawn Shop RAW novel - Chapter (35)_5
“준비는 잘되어 가고?”
태식은 캔 맥주를 따 건네주며 물었다.
“전에 있었던 집회 참가자들이 나 대학생 연대 회원들과 접선해 인터뷰를 많이 따 놨습니다. 현 장 분위기나 흐름도 어느 정도 익혔고요.”
“해 보니까 어때? 영화 찍는 거 랑은 많이 다르겠지?”
“전혀 다르죠. 전혀 다른데…… 그래도 나름의 맛이 있다고 생각 하긴 합니다. 안 그래도 요즘 중 국에서 신종 바이러스 문제로 시 끄럽지 않습니까.”
“그렇지. 홍콩에도 환자가 있 나? 내가 국제 뉴스까진 안 봐 서.”
“예, 11번 감염자까지 나왔습니 다. 그런데 그 대부분이 중국인 이랍니다. 중국에서 넘어온 사람 들인 거죠.”
“여기도 힘들구먼.”
“그뿐이겠습니까. 마스크도 온 통 다 털어 가는 바람에 마스크 값이 열 배도 넘게 뛰었습니다.” “그건 한국도 그래. 그래도 이 번 건 정부에서 빨리 움직인 덕 분에 어느 정도 수습이 되긴 했 다만.”
“여긴 그것도 힘들 겁니다. 행 정부의 과반이 거의 중국에 장악 되다시피 해서요. 안 그래도 감 정 안 좋은데, 더 켜켜이 쌓여 가는 느낌입니다. 겉으로 보기엔 티가 나지 않아도 그 속을 보면 부글거리는 용암 같달까요.”
“용암이 원래 밖에서 보면 굳어 있는 것처럼 보이잖아.”
“예. 뭐 하나 탁 터지기만 하면 거칠게 들고 일어날 판입니다.”
이 감독은 초췌한 외견과 달리 눈동자만은 생기로 반짝거렸다.
당장 하루아침에 일이 시작될 것같이 호들갑을 떨며 홍콩으로 넘어온 것이라 지금쯤이면 기운 이 빠질 법도 한데 그런 기색은 없었다.
오히려 지그시 열이 올라 끓기 직전의 용광로 같은 기운이다.
“중국 작전 요원들이 들어왔을 거야.”
“그러면 저번에 말씀하셨던 그 배우도 함께 들어온 것이죠?”
“아아, 그건 일이 조금 꼬였어.”
“꼬였다니요? 뭔가 큰 착오가 있는 것입니까?”
“그 배우는 한국으로 파견을 왔 더라고. 이번에 한국에서 큰일이 좀 많이 터졌잖아. 중국에서 냄 새를 맡고 싶은가 봐.”
“그렇군요. 그러면 여기 일은 어떻게 진행되는 것입니까? 설마 철수 명령을 하시려고 직접 오신 것입니까?”
“흐음……. 그러고 싶어?”
영화가 촬영 중에 뒤엎어지는 경우는 허다하다.
물론 그간의 고생이 아깝긴 하 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결정을 오판이라 생각하지도 않는다.
잡음이 많은 영화는 결국 개봉 까지 가기 어려울뿐더러 우여곡 절로 개봉을 하더라도 좋은 성적 을 내지 못한다.
아니, 성적은 고사하고 준수하 다는 평가조차 기대할 수 없다.
안 하느니만 못 한 필모그래피 다.
하지만 지금은 그 경우가 다르 다.
이 감독은 이 땅에서 분명 어떠 한 기운을 느꼈다.
우리나라가 민주주의와 자유에 열망하며 들끓었던 그때의 그 기 운 말이다.
이 역사의 큰 흐름의 한가운데 에서 그것을 있는 그대로 기록한 다는 것에서 영화를 만들 때와는 또 다른 무언가를 느낄 수 있었 다.
그리고 일단 돈 가지고 왈가왈 부하는 사람이 없다.
이것만 해도 어딘가.
“저는 이왕 하던 것, 계속 진행 하고 싶습니다. 배우 섭외가 안 됐다고 해서 시나리오가 엎어진 건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지, 그 말 듣고 싶어 온 거야. 이 감독이 얼마나 의욕이 있나 해서.”
“아주 의욕적입니다. 이번에 이 사님에게 앵글을 맞추면서 사실 성이 주는 생동감을 느껴 버렸다 고나 할까요. 뭐, 그렇습니다.”
“좋구먼. 그러면 새로운 배우는 어떻게 해 줄까? 연지는 그대로 온다는데. 가방도 다 싸 놨어.”
“예, 그건 들어서 알고 있습니 다. 특형도 생겼다고 하던데요.”
“어때? 연지는.”
“그럼 연지를 메인 주인공으로 넣으라는 말씀이십니까?”
“그림이 안 되면 말고.”
“아니요. 그림보다는 연지가 잘 해낼 수 있을까 싶어서요.”
“안 되면 안 되는 대로 그림이 나오지 않겠어? 모든 혁명과 저 항이 반드시 성공하는 건 아니니 까.”
“그거야 그렇지만……
“그 녀석이 서툴긴 해도 의욕은 있거든. 이런 일에 의욕 없으면 못 하잖아. 더욱이 이렇게 위험 한 일이라면 말이야.”
이 감독은 태식의 말에 찬찬히 고개를 끄덕였다.
실패도 그것 그대로 그림이라는 말이 머릿속을 팍 두드린 탓이 다.
거력에 항거하며 승리하는 여인 의 모습이 매력적인 것과 같이, 꺾여 나가는 여인의 모습도 누군 가의 마음에 불을 지피기엔 모자 람이 없다.
어떻게 해도 그림은 그림이다.
“너무 원톱 주인공으로 삼지는 말자고. 주인공은 어디까지나 여 기 사람들이니까.”
“예. 대충 그림이 그려집니다. 연지가 보기와는 다르게 몸을 사 리질 않는 좋은 배우인 게 참 강 점입니다.”
태식은 얼마 남지 않은 맥주를 몇 마디 응원을 더해 비워 냈다.
“그럼 수고하고. 무슨 일 있으 면 편히 연락해. 마냥 편하지 않 았을 텐데 연락 한 번을 안 해.”
“이렇게 먼저 챙겨 주시지 않습 니까. 감사합니다. 그럼 살펴 가 십시오.”
태식은 휘휘 손을 저어 주곤 가 게로 돌아왔다.
가게 테이블엔 연지가 뚱한 표 정으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왜 그렇게 죽을상이야?”
“심심해서 그러죠, 심심해서. 누 구는 막 특수요원같이 일하고 있 고 누구는 말도 못 붙이게 바쁘 고. 손님이라도 많으면 덜한데, 파리만 날리고.”
“가방은 다 싸 놨다고 했지?”
“여행 가방요? 한참 전에 싸서 택배까지 다 부쳐 놨어요. 언제 든 바로 튀어 갈 수 있게요. 제 가 준비성이 워낙 좋아서 말이에 요.”
“잘했네. 비행기로 넘어갈래? 아니면 내가 넘겨 줄까?”
“지금 가요?”
태식은 고개를 끄덕였다.
“우와-.”
“왜, 송별회 안 해 줘서?”
“네.”
연지는 퍽 서운한지 목소리가 착 가라앉았다.
“너 출장 가는 거잖아. 회사에 서 출장 갈 때도 송별회 해 주 냐?”
“그래도 잘 갔다가 와라, 이런 거 한마디는 해 줄 수 있잖아 요.”
태식은 피식 웃으며 연지를 당 겨 왔다.
그 힘의 반동으로 연지의 볼에 서 스파크가 튀었다.
몇 가지 가르쳐 준 요령대로 연 습을 하고 있는 것 같긴 하다만, 그 숙련도가 느린 편이다.
원래 전격의 힘 자체가 멋대로 뻗는 경향이 있어서 다루기 힘들 다.
“자, 이건 꼭 하고 다니고.”
태식은 손때 묻은 가죽 허리띠 를 건넸다.
“이건 뭔데요?”
“쉽게 말하면 차단기. 너 힘 뻗 치는 거 좀 잡아 줄 거다. 차 봐, 허리 조절해 줄 테니까.”
연지는 대충 허리에 둘러 길이 를 잡았고 태식은 손쉽게 버클을 새로 조절해 줬다.
잠금식 버클을 풀 때마다 탁 하 며 경쾌한 소리가 난다.
“잘 맞지?”
“네.”
“그리고 이건 인식 필터 걸어 주는 목걸이. 어디 위장할 때 좋 을 거야. 이건 긴급 전투 유지기 라는 건데, 진짜 위험할 때 써. 상처 부위에 바로 주사해도 되고 입안으로 짜 넣어도 돼.”
“뭘 이렇게 많이 챙겨 줘요?”
“물가에 애를 내놓는데 튜브 하 나 가지고 안심이 되겠냐. 구명 조끼에 끈까지 연결해 놔야지.”
“아우 진짜! 마지막까지 어린애 취급하기에요?”
“뭐가 마지막이야 이 꼬맹아, 금방 다시 올 텐데. 넘어가라 이 제.”
태식은 간단히 공간을 갈라 전 신주 가득한 골목과 연결시켰다.
“치킨 한 마리 안 사 주고 이렇 게 보내네. 나 보고 싶다고 울지 마세요.”
“넌 울고 싶으면 마음대로 울 어. 거기서 울어 봐야 안 들리니 까.”
“못됐어 진짜.”
“넘어가 인마. 손 잘려.” 태식은 연지를 밀어 넣곤 길을 닫았다.
있던 사람 빠지니까 가게가 휑 하다.
“이제야 좀 장사 안 되는 전당 포 같네.”
유성은 외부 활동으로 바쁘고 방우, 사혁은 외근을 나가 있다.
승주는 1층에 있고 제니는 3층 에 있다.
아마 이건 앞으로도 고정될 것 같다.
태식은 소파를 가리고 있던 병 풍을 접어 한쪽으로 밀어 놓았 다.
그렇게 두니 병풍도 전당포의 매물처럼 녹아들어 버렸다.
그러곤 소파에 앉아 낮은 테이 블에 다리를 턱 올려놓곤 등을 기대었다.
띠리링. 방문 벨이 울린다.
손님은 가게 내부에 들어와 이 리저리 둘러봤다.
“저기요, 저기요. 여기 매니저님 들 다 어디 갔습니까?”
“무슨 일이신데요?”
“전당포 멤버십 관련해서 좀 물 어보려고 하는데요.”
“아〜 그거요. 그거면 전당포 거 리로 가 보세요.”
“전당포 거리요? 어떤 가게가 아니라 그냥 거리로 가란 말이에 요?”
“네. 입구 딱 들어가시면 바로 아실 거예요.”
“네, 알겠습니다. 쩝.”
손님은 입맛을 다시곤 가게를 나왔다.
좁은 먹자골목을 지나 두 블록 너머의 종로 중앙의 전당포 거리 로 간다.
“뭐야, 뭔데 사람들이 저렇게 모여 있어?”
전당포 거리 입구에 사람들로 꽉 차 있다.
커다란 카메라를 든 사람들이며 방송국 중계 차랑도 근처에 서 있을 정도다.
“무슨 일이야 이게.”
그는 몰려 있는 사람들 사이에 들어가 서 구경꾼 중 한 사람이 되었다.
“오늘 이 자리에 제가 선 이유 는! 여러분의 열화 같은 지지를 보답하기 위해서입니다!”
만석은 마이크에 대고 목청 좋 게 소리를 쳤다.
만석은 상투적이지만 그렇다고 빼놓을 수 없는 인사말 몇 마디 더 이은 후 시선을 뒤로 보냈다.
“오늘 개소식을 위해 대한수호 단의 단장이신 페가수스 유성 님 을 모셨습니다!”
유성은 박수 속에 앞으로 나와 마이크를 이어받았다.
“지금까지 우리 헌터들의 전유 물이었던 것을 이제는 나눌 때가 되었다고 여겨 장 의원님의 의견 을 지지하기로 하였습니다. 다른 헌터분들의 배려와 응원을 부탁 드리는 바입니다.”
유성은 정해진 짧은 인사를 끝 낸 후 자리를 떴다.
짧지만 확실한 지지 의견을 비 친 것이니 목적은 충분했다.
“자 그러면-! 제가 직접 보여 드리겠습니다!” 만석은 두 주먹을 불끈 쥐며 들 어 올렸다.
맨들거리는 민머리가 붉게 달아 오른다 싶더니, 그의 주먹에서 뭉글뭉글 마그마가 피어올랐다.
“흐앗차!”
만석은 천하장사가 한판 뒤집기 를 하는 것처럼 허리를 젖혀 가 며 주먹을 내질렀다.
퍼엉-!
마그마 전당포의 자랑인 거대한 금은보화 간판이 단박에 쪼개져 검게 녹아내렸다.
“이 장만석이가 전당포를 만들 며 헌터의 새 시대를 열었습니 다. 그리고 오늘-!”
건물 위에서 대기하고 있던 방 우가 현수막을 휘리릭 풀어 내렸 다.
[초대박! 상설 반값 할인!]붉은 궁서체의 글씨는 간단명료 하게 진지했다.
“상설 할인 매장을 여는 것으로 우리 사회에 도래한 새 시대의 신호탄을 울리겠습니다!”
만석은 양손을 번쩍 들며 웅변 했다.
와아아아 환호하는 사람들은 전 당포의 직원들뿐이다.
사전에 공지된 게 아무것도 없 으니 사람들은 떨떠름해하는 눈 치가 컸다.
마그마전당포를 다니는 헌터들 은 만석이 절대 손해 보는 장사 를 할 인물이 아님을 알기에 그 러했고 모르는 사람들은 모르기 에 그러했다.
아니, 모르지 않는다.
반값 상설 할인 매장이란 것도 결국 다 남으니까 하는 거고 그 또한 판매 전략이란 것을 말이 다.
“백형아!”
“예, 아버지.”
“가지고 와라!”
백형은 준비된 마네킹을 가지고 왔다.
해녀복처럼 딱 달라붙는 복장이 입혀진 마네킹이다.
“전 세계 최초 공개합니다. 다 크매터를 완전 차단하는 심계복 입니다!”
잠시간의 정적. 하지만 이내 파 바바방 플래시 세례가 터진다.
“장 의원님! 다크매터를 완전 차단한다는 게 진짜입니까!”
“국과심과 협력된 사항이 있는 것입니까!”
“정부 부처와 협의된 상항이 없 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자-!”
만석은 우렁차게 기합을 질러 기자들의 목소리를 일축했다.
“이 심계복은 오직 일반인 분들 에게만 판매하도록 하겠습니다. 능력자들에게만 허락된 세상인 심계에, 일반인분들도 자유로이 왕래할 수 있도록! 저 전당포 왕 마그마 릭이! 이 대한민국 국회 의원 장만석! 종로의 아들 장만 석이가 여러분에게 통 크게 쏘겠 습니다!”
“의원님! 이런 아이템을 이렇게 갑자기 공개하는 이유가 뭡니 까!”
“일반인이 아이템을 구매하는 것은 법에 저촉되는 부분이 있을 텐데요! 그런 부분은 사전 협의 가 끝난 것입니까!”
“해당 아이템은 등급이 정확히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아이템입 니까, 아티팩트입니까!”
다시 한번 질문 세례가 쏟아진 다.
“궁금하십니까!”
“공식 기자회견 자리를 가지실 의중은 없으십니까!”
“그럼 들어오십시오! 여러분께 보여 드릴 게 많이 있습니다. 단!”
기차 화통 같은 목소리가 다시 금 웅성거리는 좌중을 침묵시킨 다.
“ 일반인만!”
“헌터청과는 협의가 된 내용입 니까!”
“헌터와 전당포 협회의 지지로 의원이 되신 건데, 이런 결정을 내리시는 의중이 무엇입니까!”
“당과는 협의가 된 내용입니 까!”
기사들의 질문 세례와 함께 플 래시가 연신 번쩍거렸다.
만석은 눈 하나 깜짝 않고 그 아우성을 만끽했다.
개밥그릇 (1)
“당신! 이딴 식으로 일을 처리 하면 어쩌자는 거야!”
“죄송하게 됐습니다. 보안을 유 지하기 위해 그렇게 했습니다.”
“보안? 보안 같은 소리 하고 있 구먼. 내가 당신 검은 속 모를 줄 알아? 당신 전당포 차릴 때도 인터넷에서 쇼하면서 차렸잖아!” 만석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렇 지 않으면 잔뜩 일그러진 얼굴이 그대로 드러날 것 같았기 때문이 다.
“그쯤 했으면 됐습니다. 그만하 세요.” “대표님, 이건 그냥 두고 넘어 갈 일이 아닙니다. 전략 공천을 받은 초선 의원이 이렇게 천지분 간 못 하고 날뛰는 걸 어떻게 그 냥 보겠습니까?”
“초선 의원이니까 그만한 패기 도 부리고 하는 겁니다. 자, 그만 나가 보세요.”
“대, 대표님?”
“나가서 일 보세요. 할 일 많으 시잖아요.”
김재현은 사무적인 어조로 축객 령을 내렸다.
그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고개 드세요.”
김 대표와 마주 선 만석은 그제 야 고개를 들었다.
죄송한 티는 하나도 없다.
“내가 왜 당신에게 전략 공천을 줬는지 압니까?”
김재현은 허리를 세우며 제법 위신을 뽐내며 말했다.
하지만 만석의 눈에는 그게 갈 기 빠진 사자의 거드름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이미 너무 큰 사람을 겪은 탓이 다.
김재현의 엄한 태도는 태식의 피식거리는 미소에도 비할 바가 못 된다.
태식의 미소가 떠오르니 만석도 풋 웃음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