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lf Price Pawn Shop RAW novel - Chapter (3)_2
출근을 빙자한 태식은 가게로 가는 게 아니라 바로 심계로 이 동했다.
목적지는 한빙곡이다.
딱히 눈이 쌓여 있다거나 얼음 이 얼어 있는 것은 아니다.
풍경만 보자면 늦가을 정도 되 는 풍경이다.
그런데 살아 움직이는 생물이 없다.
휘이이잉-.
귀청을 때리는 바람 소리는 칼 날처럼 매섭기만 하다.
태식은 그런 한빙곡을 맨발에 슬리퍼를 끌며 돌아다녔다.
담배 한 대를 입에 문다.
추울 때 피우는 담배는 연기가 진하게 보여서 나름의 맛이 있 다.
주머니에 손 딱 꽂아 넣고 총총 뛰어 굽이 계곡을 넘은 태식은 한 호수에 도착했다.
유성의 부인이 잠든 호수는 아 니다.
그럼에도 호수 밑에 곧은 자세 로 누워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 다.
그때는 이게 유일한 구명줄이었 을 것이다.
처음 심계가 열렸을 때.
듣도 보도 못한 괴물이 뛰쳐나 오고 초능력을 가진 돌연변이가 생겨나고.
현대 의학으로는 감히 어찌하지 못할 질병과, 현대 과학으로는 규정조차 할 수 없는 에너지를 발견했던 때.
온 사회가 혼란스러운 그런 때 라, 개개인의 비극에는 누구 하 나 눈길을 주지 못했던 그런 때 였기에.
그나마 특형이라도 있는 능력자 들이나 이렇게 가족들을 한빙곡 에 데려다 누일 수 있었을 것이 다.
“쓰으읍. 일단 보자고.”
태식은 오는 길에 잡아 온 멧돼 지를 호수 안으로 던졌다. 임신 한 멧돼지다.
멧돼지는 발버둥 칠 겨를도 없 이 순식간에 얼어붙어 버렸다.
태식은 멧돼지의 기운이 먼저 자리한 사람들의 것과 같아지기 를 기다렸다.
그그! 오래 걸리진 않았다.
태식은 완전히 얼어붙은 멧돼지 를 다시 꺼냈다.
해동은 해동이되 치료의 범주에 있는 해동이어야 한다.
게임에서 흔히 보던 힐이라든가 큐어 같은 마법은 로아에 존재하 지 않았다.
그래서 여러 무구 제작과 포션 기술이 그토록 발전한 것이다.
물론 치료 마법에 대한 연구를 아주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지 만, 그때는 이미 포션 기술이 극 에 달해 있을 때였고 전장도 종 막으로 치달을 때여서 마땅치가 않았다.
그렇기에 마법으로는 딱히 방법 이 없다.
“무작정 녹일 수가 없으니.”
태식은 포션들을 이리저리 조합 해 가며 방법을 찾았다.
일로 생각하면 일이고 놀이라 생각하면 놀이이다.
놀이라 생각하고 퍼즐을 푼다.
이 정도 마인드 컨트롤은 손쉽 다.
수백만의 시신을 보고 환상이라 고 생각하는 것에 비하면 말이 다.
꾸우윽-. 꾸으으윽.
해동한 멧돼지는 잠꼬대하는 것 처럼 꾹꾹거렸다. 생명력 표시기 로 측정을 해 보니 15 언저리에 있다.
이 정도만 되도 잘 정양하면 목 숨에 지장은 없다.
태식은 멧돼지의 아랫배를 매만 졌다.
무엇보다 배 속의 아기가 중요 하다.
태식은 온 신경을 집중했다.
“태동 좋고. 이 정도만 돼도 괜 찮지.”
제법 궁리를 했지만, 딱히 어려 운 건 없었다.
빙결 마법과 해동마법을 완벽히 이해하고 있으니, 포션으로 그와 같은 흐름과 효과를 만들어 주면 되는 문제였다.
“냉동 푸는 건 이 정도만 해도 충분하고.”
암흑중독의 치료법은 이미 알고 있다.
그건 포션만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암흑중독은 암흑의 힘인 다크매 터를 다스려야 한다.
그러니 지금 딱히 실험해 볼 건 없다.
답이 나왔다면 나온 것이지만 급하게 갈 건 아니다.
해동을 하고 치료를 하더라도 계속 예후를 봐 줘야 하고 후유 증을 주의해야 한다.
이린의 준비가 끝나서 그러한 후속 조치가 원활히 이루어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다음에 움직 이는 게 올바르다.
“그래도 생각보다 쉽게 풀려서 다행이네. 나머진 이린이가 준비 되면 되는 거니까.”
태식은 가벼운 마음으로 가게로 이동했다.
“사장님 나오셨습니까.” 유성이 맑은 투로 인사를 건넸 다.
“그래, 조금 늦었어.”
“예. 예약 작업은 다 받았습니 다.”
“잘했어. 오늘까지만 예약받고 내일부터는 예약받지 마.”
“갑자기요‘?”
“응. 귀찮아. 이번 달은 벌 만큼 벌었잖아. 돈 떨어지면 다시 하 지, 뭐.”
태식은 한쪽 테이블에 정리된 예약 물품을 단번에 훑었다.
대충한다. 그래도 완충을 넘어 오버 차징이 되어 잔진동을 일으 킬 정도다.
오히려 힘 조절을 하지 않아서 그렇다.
“나 좀 잘 거니까 점심은 알아 서 먹어.”
“그럼 가게 문을 닫을까요?”
“그렇게까지는 됐고.”
태식은 소파에 누웠다.
당장에 신경 거슬리는 것들을 얼추 정리해 놔서 그런지 속이 편하다.
불어오는 바람 냄새가 퀘퀘하지 도 않고 하늘도 맑다.
소파는 언제나 그렇듯 몸을 착 감아 준다. 낮잠 한숨 자기 딱 좋다.
G 己럿 —
■ -• ■ O •
태식은 금세 잠이 들었다.
“사장님, 사장님-!”
대히<&D의 생약연구소 소장인 백현도는 호들갑을 떨며 마이린 에게 달려왔다.
귀 끝까지 붉게 달아오른 얼굴 이다.
“대체, 대체 이걸 어디서 입수 하신 것입니까? 대체 어디서 “실험 결과가 어떻게 되는데 요?”
“이거야말로 전설에나 나오는 소생약입니다. 진시황이 찾던 불 로영생의 약이 바로 이거란 말입 니다!”
“그, 그렇게 대단한 물건인가 요?”
“대단하다마다요! 연구할 게 무 궁무진합니다. 무궁무진!”
“소장님, 잠시 홍분 좀 가라앉 히시고요. 그래서 복제약을 만들 수 있겠어요?”
“원래 공돌이는 갈아야 제맛 아 닙니까. 죄다 갈아서 되게 만들 어 놓겠습니다.”
이린은 백 소장의 이런 모습을 어디서 본 것 같다는 느낌을 받 았다.
가만 생각해 보니 태식 앞에서 호들갑을 떨던 자신의 모습이었 다.
열정적인 것은 좋아 보였다만, 그것이 딱히 유쾌하게 받아들여 지진 않았다.
이러다 실수라도 할까 싶어서 말이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실수는 외 부 발설이다.
평소라면 당연히 그럴 리 없겠 지만, 이거야 여간한 사안이 아 니다.
백 소장이 떠들지 않는다고 해 도 좋은 일이 있다는 것쯤은 얼 굴에 뻔히 드러날 것이다.
입을 닫고 있다고 해도 생약연 구소에서 뭔가 큰일이 있구나 하 는 것 정도는 퍼질 거란 말이다.
“백 소장님.”
“예, 사장님.”
백 소장은 공놀이하는 강아지 같은 얼굴이었다.
주인에게 어서 공을 던져 달라 고 보채는, 그런 강아지 얼굴 말 이다.
“암흑중독에 대한 치료가 우선 이에요. 한눈파시면 안 돼요.”
“당연합니다. 당연하고 말고요. 제가 어디 한눈파는 사람입니까. 한눈파는 그런 사람이었으면 대 하<&D 의 소장씩이나 될 수 없 었을 겁니다!”
역시 텐션이 너무 높다.
마이린은 자신이 몇 마디 한다 고 해서 그의 흥분을 가라앉히긴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래요, 차분히 진행해 주세요. 시간이 급한 건 아니니까요.”
“걱정하시지 마십시오. 제 이름 을 걸고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 겠습니다!”
백 소장은 가슴을 탕탕 때리며 호언장담했다.
대히<&D의 한 파트를 책임지 는 소장이니 능력적인 것은 걱정 하지 않는다.
미진한 다른 부분은 다른 것으 로 채워 주면 그만이다.
차로 돌아온 마이린은 조수석에 서 대기하고 있던 김 팀장에게 말했다.
“팀장님. 팀원 몇 명 생약연구 소에 붙여 둬야 하겠어요.”
“알겠습니다. 정도는 어느 수준 으로 할까요?”
“최고 수준으로요. 장시간 동안 기밀 유지가 되어야 해요. 뭔가 있다는 느낌은 받아도, 그 뭔가 가 무엇인지는 절대 밖으로 안 나가게 하세요.”
“다소간의 무력 충돌이 있을 수 도 있습니다.”
“감행하세요.”
“아…… 예, 알겠습니다.” 김 팀장은 짐짓 놀란 표정을 지 었다가 고개를 숙였다.
지금까지 마이린이 이 정도로 강한 명령을 내린 적이 없기 때 문이다.
‘동생이 알아도 난리고 오빠가 알아도 난리겠지……. 태식 씨가 나한테 너무 큰 걸 줬어.’
마음 같아서는 아버지에게 보고 하고 아버지의 힘을 전면적으로 내세워 움직이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그래서야 아버지의 기대 도, 태식의 기대도 어기는 것이 나 다름없다.
‘그래, 아직 급한 건 아니니까. 최후의 수단은 최후에 가서 사용 하면 되는 거야. 일단 이대로 가 자.’
마이린은 마음을 다스리며 태블 릿의 업무 열람을 확인했다.
“실장님은 따로 관련 권위자들 과 접선해 두도록 하세요.”
“알겠습니다.”
“김 팀장님. 아이템 입수 건은 어떻게 되었죠?”
“일부는 3팀에서 직접 진행하고 있고, 일부는 하청을 주어 진행 중입니다. 빠를수록 좋다고 하셔 서요.”
“하청요? 어디를 말하는 거죠?”
“그…… 사장님도 아는 사람입 니다. 강 사장님 옆에서 일 도와 주던……
“김 팀장님답지 않게 왜 그러세 요? 정확하게 말씀하지 않고요.”
“그 건달들 말입니다. 저번 서 해 설치 때도 같이 왔었죠.”
“아아, 그 온몸에 문신한……. 그런데 태식 씨가 부리는 사람들 이면 따로 일이 있지 않겠어요?”
“혹시나 해서 물어봤는데, 따로 부여받은 임무는 없다고 했습니 다. 원래 그 사람들 하는 일이 아이템 브로커였고요.”
“그래요. 김 팀장님이 어련히 알아서 잘하셨으려고요.”
마이린은 체크 박스를 체크하고 넘어갔다.
“사장님, 그러면 오후에 있을 결산 회의는 그대로 진행 시켜도 되겠습니까?”
“될 수 있으면 조금 당기죠. 시 간 될 것 같으니까 회의 끝내고 서해에 갔다가 와야겠어요.”
“예, 사장님. 일정에 반영하겠습 니다.”
“사장님, 일정이 너무 과하지 않으신지요. 요 며칠 계속 철야 를 하다시피 하시지 않았습니까. 건강이 염려됩니다.”
박 실장과 달리 김 팀장은 약간 의 우려를 표했다.
“힘들어도 직접 가서 봐야죠. 그래야 잡혀요. 알잖아요.”
현지 시찰을 하고자 하는 목적 은 현장의 일이 잘 돌아가는지 확인하는 것뿐만이 아니다.
다른 꿍꿍이를 차리는 게 있는 지, 아니면 외부 조건에 영향을 받고 있는 건 있는지. 그런 것을 확인하는 목적이 더 크다.
마이린은 오빠가 가진 일에 대 한 욕심을 잘 알고 동생이 가진 성과에 대한 열등감 또한 누구보 다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마음을 놓고 있을 수가 없다.
“때마다 당근을 주고 채찍을 휘 둘러서 혼을 빼놔야죠. 그래야 한눈을 안 팔죠.”
마이린은 피곤한 일이라는 듯이 눈을 감았다.
뭐든지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 라 그런가 사람 다루는 게 가장 힘들다.
“예, 알겠습니다. 그에 맞게 준 비하겠습니다.”
“그래요. 그럼 잠시 눈 붙일 테 니 도착하면 알려 줘요.”
마이린은 좌석을 기울이며 눈을 감았다.
위이잉- 차량 커튼이 올라가고 잔잔한 클래식이 흘러나왔다.
피휴우우-. 이린은 금세 잠이 들었다.
조금만 기다려 (2)
간판도 없는 가게 건물 앞에 입 간판이 하나 생겼다. 유성이 가 져다 놓은 것이다.
입간판에는 ‘차징 서비스 마감, 컨디션 회복 중’이라고 적혀 있 었다.
간혹 헛걸음한 손님이 들어와 언제쯤 컨디션이 회복되겠느냐 묻기도 했지만, 그것이야 너무도 주관적이라 뻔한 대답만 해 줘도 충분했다.
그래서 한가했다.
태식은 원래 이런 분위기였으니 좀 쑤셔 할 것도 없고 어색해할 것도 없었지만, 유성은 그렇지 못했다.
뭐라도 해야 한다는 심정이 컸 다.
유성은 가만히 있다가 못해 냉 장고의 성에를 제거하거나 싱크 대의 묵은 때를 벗겼다.
“유성아, 좀 너는 가만히 있지 를 못하냐.”
“아하하, 정신 사나우셨습니
까?”
“심심해서 그래?”
“아니요, 딱히 심심해서라기보 다는……
유성은 어색하게 뒤통수를 긁었 다.
“그냥 제가 청소하는 걸 좋아합 니다.”
“그럼 3층 청소나 하든가. 거기 청소할 거 많다.”
“그럴까요? 그럼 가게 일 바빠 지면 불러 주십시오. 3층 청소하 고 있겠습니다.”
딱히 바빠질 가게 일이 없다.
미세먼지에 대한 것도, 암흑중 독에 대한 것도 자신이 할 일은 다 끝내 놨다.
나머진 대호에서 진행할 일이 다.
딱히 신경 쓸 것도 없고 할 일 도 없다. 이러면 늘어지면 된다.
마냥 늘어지기 지루하다면 산책 하러 나가도 좋다.
태식은 슬렁슬렁 밖으로 나갔 다.
햇살이 좋으니 뭐든 좋다.
내친김에 청계천까지 갈까 하다 가 오래 걷기는 영 귀찮아 발길 을 멈추었다.
훈육이 필요한 아이가 있는 것 도 아니고 말이다.
태식은 중고 서점 앞에서 발을 멈췄다.
쌓여 있는 만화책 더미를 본다. 누렇게 바랜 만화책의 색이 좋 어린 시절 용돈 1천 원으로 만 화책방에서 반나절을 녹이던 때 가 떠오른다.
그때는 참 아무 생각 없이 살았 는데, 어느덧 너무 생각이 많아 진 나이가 되었다.
그 생각이 적당히 나이에 맞게 많아진 정도라면 괜찮을 텐데, 많아져도 너무 많아졌다.
태식은 그래서 이렇게 아무래도 좋은 생각을 하는 순간이 좋다.
“요리왕 비룡. 마계대전, 플라잉 하이. 오, 붉은매. 마끼바오? 이 야, 이런 것도 있네.”
하나같이 결말이 떠오르질 않는 다. 중간까지만 본 건지, 아니면 완결까지 다 본 건데 기억이 안 나는 건지도 구분이 안 된다.
기억이 너무 멀다.
태식은 이럴 때면 꿈같았던 40 여 년이 꿈이 아님을 자각한다.
“사장님, 여기 만화책 판매하시 는 거죠?”
중고 서점의 사장님은 돋보기안 경에 화가 모자가 잘 어울리는 할아버지 였다.
“그럼요, 판매합니다.”
목소리가 인자했다. 그 첫마디 가 퍽 마음에 들었다.
“여기 있는 것 중에 재미있는 거 있을까요?”
“그거야 보는 사람 마음에 들어 야 재미 아니겠어요.”
“가끔은 추천도 받고 싶으니까 요.”
그래서 괜히 말을 더 걸어 보았 다.
서점 할아버지는 주름지고 곱은 손으로 책 더미를 툭툭 치웠다.
“나는 이게 재미나더만. 총각 눈에는 재미있는지 모르겠구먼 요.”
책등이 터진 것만 봐도 세월이 짐작된다.
그만큼 오래된 책이었다.
“공포의 외인구단? 이건 진짜 이름만 들어 본 건데요.”
“그럼 한번 봐 봐요. 재미있어 요.”
“네, 이걸로 가져갈게요.”
태식은 주머니에 꾸깃거리는 5 만 원권을 내밀었다.
할아버지는 구불구불한 가게 안 으로 들어가 잔돈을 거슬러 왔 다.
“그런데 요즘 젊은 사람들은 책 도 죄다 전화기로 보던데.”
“한 장씩 침 묻혀 가며 넘겨 보 는 맛이 있잖아요.”
“총각은 종이 맛을 아는가 보구 먼.”
“또 올게요. 많이 파세요.”
태식은 만화책 한 묶음을 들고 가게로 들어갔다.
여전히 손님은 없었다. 자리를 비운 사이 왔다가 아무 도 없는 걸 보고 그냥 나간 것인 지, 아니면 한 명도 오지 않은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딱히 상관 없도 없다.
태식은 좌탁에 만화책을 풀어 두곤 소파에 푹 꺼졌다.
쿰쿰한 책 냄새가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