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lf Price Pawn Shop RAW novel - Chapter (43)_8
유성은 호명되지 못한 이들에 대한 응원을 더한 후 자리를 옮 겼다.
그렇게 순차적으로 모든 포인트 를 점검한 후 본래 자리로 돌아 왔을 즈음에는 기억해야 할 이름 이 한가득 늘어나 있었다.
좋은 일이다.
유성은 혹여나 그 이름 까먹을 까 간단히 메모를 했다.
괜히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래 도 까먹는 것보다야 낫지 싶다.
“공격은 언제쯤 할 생각이야?”
“한 시간쯤 후에.”
“그럼 오늘 내에 끝내는 거지?”
“그래야지. 사장님 시간 끄는 거 안 좋아하시니까.” “알겠어.” 사혁은 분주하게 공격 준비를 했고 유성은 가만히 적들의 동태 를 살피며 작전을 구상했다.
유성이 홀로 가늠하고 있는 사 이 검은 그림자가 유성 옆으로 다가와 섰다.
“ 바쁜가?” 이현이 었다.
“소장님이 무슨 일로?” “놓치고 간 거 있어서 배달 왔 다.”
이현은 그림자 속에서 머리통을 꺼내 놓았다.
“뭔데?”
“간첩들이다.”
유성은 자신도 모르게 어금니를 물었다.
이현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포위망 내부를 살폈다.
“대치 중인 거냐?”
“의도가 있다. 당신이 손 거들 필요 없어.”
“그렇군……
이현은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 다.
“필요하면 불러라. 치안 유지는 내 담당이기도 하다.”
“필요하면 부르지. 필요하면.”
유성은 이현을 보지 않고 답했 고 이현은 유성의 시선을 바라지 않고 돌아갔다.
그전에는 그저 꺼림칙하고 아니 꼬운 존재가 이현이었는데 지금 은 그 시선이 달라졌다. 어떠한 감정이라기보단 분석에 가깝다.
이현에게선 살인에 대한 감정이 없었다.
아무리 적이라 하여도 살생 그 자체에 대한 불편함 같은 것 말 이다.
그러니 반성 따위는 생각할 여 지도 없다.
‘막 쓰기 좋은 칼. 그저 쓰이기 좋은 칼……
태식이 이현을 지칭하는 말이 다. 막 쓰다 버리기 좋은 칼.
그것은 그 칼이 잘 들어서가 아 니라 버림에 있어 죄책감을 가져 도 되지 않는 존재이기 때문이 다.
‘힘에 취하지 않기. 목적을 수단 의 정당성으로 가지지 않기. 항 상 반추하고 반성하기. 질타와 비난에 위축되지 않기, 그리 고……
유성은 태식이 말한 판을 짜는 자로서의 함양들을 꼽아 봤다.
뭐가 이것저것 많다. 거기에 더 많은 것들이 추가되어야 할 것 같은 기분이다.
“형, 시간 다 됐어.”
“그래.”
사혁의 말에 유성은 퍼뜩 정신 을 차렸다.
“들어가자.”
유성이 다시금 혈수본을 일으키 며 앞으로 나아간다.
그에 맞춰 포위망 또한 책임을 위한 전진을 시작했다.
휘이이이-! 쾅!
높은 포물선을 그린 박격포탄이 폭발과 함께 일대를 휘감았다.
파편에만 맞아도 전투 불능이 될 만한 파괴력이다.
휘이이잉-! 피이이잉-!
쾅, 쾅! 쾅!
연거푸 박격포탄이 날아온다.
유성은 이것이 저들의 두려움의 표출이라 생각했다.
자신들의 생존을 위한 자위권으 로서 바격포와 대물저격총을 꺼 내 든 것은 그만큼 적에 대한 두 려움이 크다는 방증 아니겠나. 저들은 싸워 이길 생각을 하는 게 아니라, 궁지에 몰린 채 두려 움에 발버둥 치는 것이나 다름없 다.
그렇다고 그 두려움을 용인할 생각은 없다.
유성은 혈수본을 치솟는 분수처 럼 높게 뿜어 올렸다.
태식이 어둠을 내리는 것처럼, 피의 그림자로 하늘을 뒤덮는다.
투, 투둑. 투두둑-.
하늘을 메운 피 구름이 제 몸을 부풀리며 뭉쳐 들더니 이내 핏빛 소나기를 쏟아 낸다.
그것은 눈에 비치는 모습 그 이 상의 공포이자 저주였다.
또한 분노이기도 했다.
그것이 연출된 분노라 하여도 감히 누가 그것을 연출이라 의심 할까.
“너희는 심계의 규율을 인지하 고 있음에도 그것을 어겨, 심계 의 근본을 흔들었다. 이는 세상 의 모든 능력자에 대한 멸절 선 언과 다르지 않다.”
유성의 목소리가 핏빛 소나기를 타고 울려 퍼진다.
“나는 심계의 수호자이자, 루오 신의 선택받은 대리인으로서 우 리의 적을 앞장서 처단하겠다.”
“화, 확대해석이다! 우린 자위권 행사를 위해 개인 화기를 무장했 을 뿐이라고! 멸절이라니! 그런 의도 따윈 전혀 없어!”
“이렇게까지 할 거 없잖습니까! 국제법상의 상호조약 따위는 개 나 줘 버린 겁니까!”
저들의 처절한 항변은 소나기에 묻혀 옅게 흩어진다.
누군가는 그 소리를 들었을 수 도 있겠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 은 그 목소리가 전혀 반영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유성은 떨어지는 빗방울을 가시 돋친 철조망으로 엮었다.
붉은 비 맞은 이들은 그대로 벗 어날 수 없는 그물에 낚여 발버 둥 치는 신세가 되었다.
이대로 그물을 잡아당기면 그 속에 옥죄인 이들은 피범벅이 되 어 저며질 것이다.
유성은 손을 높이 들었다.
“침략자여! 루오신의 이름으로 단죄를!”
유성이 외침과 함께 가시 그물 을 낚아채는 순간.
온 대지를 뒤덮는 어둠이 떨어 졌다.
에스퍼 리그 (7)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을 어 둠이다.
발 디디고 있는 땅은 고사하고 손바닥조차 보이지 않는다.
빛을 가린 암실이 아닌 오직 어 둠만이 존재하는 공간에 들어선 같은 느낌은 삽시간에 인간의 감 각을 허물어트렸다.
심장 내려앉는 것 같은 중압감 에 숨이 턱턱 막히고 방향을 감 지할 수 없는 혼란스러움에 현기 증이 몰아친다.
차단된 기관들의 감각까지 전부 의식으로 모여든다.
톡톡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에 천등 치는 것처럼 옴몸이 떨린 다.
“순수의 기수여, 나의 뜻을 곡 해하는구나.”
온 감각을 빨아들일 것 같은 목 소리가 머릿속을 울린다.
“루오시어!”
“루오신이시어!”
“루오-!”
“신께서 납시었다, 찬양하리라!”
“루오-! 루오-!”
신을 경배하는 목소리가 온 사 방에서 울려 퍼진다.
대변혁을 직접 경험한 이들에게 루오신의 존재는 감히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며 의심하지 않는 진 리다.
“신께 고합니다. 저희는 심계의 침략자를 벌하려 한 것입니다!”
“루오신께서 허락한 이 땅을 더 럽히는 자들을 처단하는 것입니 다!”
용기 없는 자들의 두려움이 통 곡이 되어 터져 나온다.
그것은 유별남이 아니니 핀잔할 게 없다.
“기수여. 분노를 거두라-!”
검은 목소리가 정신을 빨아들일 듯 메아리친다.
“단장님!”
“청장님, 힘을! 힘을 거두십시 오!”
두려움에 빠진 이들이 아우성이 다.
구헌터들의 두려움은, 그들이 이전 세대의 헌터이기에 새내기 들에게 더욱 크게 전염되었다.
“단장님, 힘을 거둔 게 맞습니 까? 제발!”
“고집 피우실 일이 아니잖습니 까! 루오신입이다! 신이라고요!”
유성의 귓전으로도 자신을 재촉 하는 비명들이 칼날처럼 파고드 는 중이었다.
하지 않으려 고집을 피우는 게 아니라 힘에 부쳐서 그러는 탓이 다.
혈수본을 회수하려 하지만 마음 처럼 되지 않는다.
뿜어 놓은 혈수본이 전부 어둠 에 뒤엉켜 옴짝달싹하지 않는다.
억지로 힘을 쓰려 하니 숯덩이 를 집어 삼킨 것처럼 속이 쓰리 다.
“끄으윽-. 시, 신이시어! 신이시 어!”
유성은 신을 연호했다.
처음 한마디는 적당히 해 달라 는 신호였던 것이 몇 마디 되지 않아 진심으로 우러났다.
순식간에 미궁에 던져졌던 그 감각이 되살아났다.
죽지 않을 거라 믿지만 죽으면 별수 없지 하는 그 태도.
장난기 가득한 눈빛 아래 숨겨 져 있던 그 차가운 시선이 퍼뜩 떠올라 버린 것이다.
“신이시어! 분노를. 크억, 분노 를 거두어 주십시오. 저, 저는! 저는 당신의 뜻을……. 크윽, 크 억!”
유성은 가슴을 움켜쥐며 핏물을 토했다.
그 핏물은 그대로 바닥을 적실 뿐 혈수본으로 흘러가지 못했다.
모든 힘이 끊어진 것이다.
“크읍, 신이시여. 용서해 주십시 오. 이렇게 용서를 구합니다.”
유성은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덜덜 떨리는 손을 마주 모아 경 건히 기도 올렸다.
그것은 분명 연기라고 볼 수 없 는 진실이었다.
그 순간 어둠이 흩어지고 빛이 드리워졌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신이시어-!”
“루오-! 루오오오그!”
온정신을 옭아맨 공포가 물러가 자, 많은 이들이 안도의 눈물을 터트렸다.
“신이시어, 가르침을 주시길 간 청합니다. 곱씹어 반성하겠습니 다.”
유성은 깊이 절하여 고개를 숙 였다.
그 자세가 경건할수록 신의 위 상이 높아지며 신의 위상이 높아 질수록 그 선택받은 기수인 유성 의 위상 또한 높아진다.
“부정한 자를 벌하는 뜻은 마주 하기 기껍다. 하나, 그 뜻이 도를 넘어 네 순수가 헤쳐지는 것은 두고 볼 수가 없구나.”
“죄송합니다. 제가 제 역할에 취해 본분을 잊었습니다.”
“추악한 자의 욕심을 쫓다 보면 그에 물드는 법이다. 욕심이 창 궐하여 추악함이 넘침에, 그것을 쓸어내는 것은 나의 몫이니 기수 는 그에 물들지 말라.”
“예. 신이시여, 명심하겠습니 다.”
“말 살찌울 곳을 허락받은 자 여, 순례자를 배척하지 말 것이 며 아우름을 쫓으라. 더러움을 씻어 내는 것은 쏟아지는 소나기 의 몫이니 순수의 기수로서 순수 를 영속할 것이다.”
“예. 명심하겠습니다. 현신해 주 심에 감사드립니다.”
유성은 마지막까지 경건한 태도 로 읍했다.
그 이상 신의 목소리는 울리지 않았다.
대신 하늘과 연결되는 검은 기 등이 떨어져 적진을 휘감았다.
그 어둠의 소용돌이가 끝나는 순간까지 그 누구도 고개를 들지 못했다.
휘이이잉-.
길게 울려 퍼지는 바람 소리를 끝으로 얇게 남은 어둠 줄기까지 흩어졌다.
유성은 그제야 몸을 풀며 일어 났다.
무의식적으로 가슴을 뒤적거리 다 포션이 없음을 자각했다.
“형, 여기.”
사혁이 눈치 빠르게 포션을 건 넸다.
유성은 단숨에 들이켰다.
“ 괜찮아?”
“어, 괜찮아. 이 정도는 뭐
“그런데 사전에 합의된 연출인 거지……
“연출처럼 보였냐?”
유성은 자신이 만든 핏자국을 쓱쓱 쓸어 내며 물었다.
“아, 아니. 전혀 그렇게 안 보였 어.”
“그럼 된 거지 뭘. 다들 봐라, 반쯤 넋이 나갔잖아.”
저린 손발을 주무르는 자들이 한둘이 아니었고 개중에는 중압 감을 버티지 못하고 과호흡 증상 을 보이는 이들도 있었다.
“혹시, 사장님 기분 상하신 건 아니겠지? 괜히 부탁드려서 “사장님이야 원래 할 때 확실하 게 하시는 분이잖아. 괜한 소리 말고 사람들이나 추슬러.”
유성은 사혁의 등을 툭툭 두들 겨 전열로 돌려보냈다.
그러곤 자신은 적진으로 향했 다.
마지막을 장식한 검은 회오리가 무엇을 했을까 싶다.
유성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못한 나신으로 뒤엉켜 쌓여 있는 사람들을 발견했다.
설마하니 전부 직접 처리해 버 렸으면 어쩌나 싶었는데, 그러지 않았으니 천만다행이지 싶다.
유성은 아직 떨림이 남은 손으 로 담배를 물었다.
나무둥치에 앉아 깊은 숨 들이 쉰다.
“후우-. 왜 이렇게 달아 이거.”
깜짝 놀랄 정도로 달았다.
아마도 성취란 녀석이 곁들여진 탓일 것이다.
“맛있으면 된 거지 뭐.”
유성의 입꼬리가 자연스럽게 말 려 올라간다.
태식의 그것과 제법 닮은 미소 였다.
♦ * ♦
두 번째 루오신의 강림은 심계 를 통째로 뒤집어 놓기 충분했 다.
저층의 모든 헌터들이 반달섬으 로 모여들었고 5층으로 출전을 나갔던 헌터들이 만사 제쳐 놓고 되돌아 올 정도였다.
어디를 가도 유성의 출전과 함 께 루오신에 대한 이야기가 퍼져 나왔다.
특히나 술집의 테이블은, 테이 블마다 참가했던 인원들이 이야 기를 파는 음유시인처럼 그 순간 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토해 냈 다.
누군가는 아쉬워했고 누군가는 두려워했으며 누군가는 신기해하 며 그 신비한 경험은 간접 체험 했다.
물론 그에 따른 현실적인 염려 를 하는 이들도 분명 있었다.
지조근도 그중 하나였다.
“너무 제집 드나들 듯이 들어오 는 거 아닙니까.”
유성은 사전 연락 없이 찾아온 지조근에게 차갑게 쏘아붙였다.
“이야기는 얼추 들었습니다. 고 생하셨다고요. 여러모로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지조근은 어울리지도 않는 과일
바구니를 내밀었다.
유성은 그 모습이 퍽 웃겼다.
이것은 자신의 수고에 대한 감 사일까, 아니면 신의 헌신에 대 한 두려움일까.
“시간 되면 이번 사안에 대해 긴히 이야기 좀 나눌 수 있습니 까?”
그래도 제법 공손해진 태도는 마음에 든다.
“짧게 하시죠.”
유성은 자리를 권하며 마주 앉 았다.
“내가 듣기로 루오신이 총기 소 지자들을 건드리지 말라고 했다 는데요. 맞습니까?”
“정확한 골자는 그게 아니긴 하 지만 맥락으로는 포함됩니다.”
“아아…… 그럼 이제 어떻게 합 니까? 총 들고 설치는 놈들 우리 가 어쩌지 못하는 겁니까? 그게 진짜 신의 뜻이랍니까? 염병하 고. 루오신도 한국어 쓰던데 한 국인 아니었습니까?”
“지금 신을 지칭하는데 비속어 쓴 거 자각해요?”
“내, 내가 그랬어요?”
“방금 염병이라고.”
“요, 요놈의 주둥이. 내가 마음 이 너무 앞서다 보니 실수 한 거 요. 신께 이르지는 말아 주십시 오.”
“나한테 그럴게 아니라 당사자 께 기도드려서 해결하시죠.”
“아, 알겠습니다.”
지조근은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렸다.
하는 투가 어찌 봐도 장난기 하 나 없는 진심이다.
유성은 웃으면 안 되지 하면서 도 삐져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해 피식 거렸다.
‘사장님이 이래서 장난을 좋아 하시는 건가.’
반성을 필수로 하자니 얼마 되 지도 않는 죄책감도 이런데, 태 식이 가지는 죄책감을 어떠할까 싶다.
감히 가늠하지 못할 크기라고 본다.
“기도 다했습니다.”
“예. 루오신께서 잘 들어주셨길 기도 합니다. 루오-.”
“루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