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lf Price Pawn Shop RAW novel - Chapter (45)_2
권 총장에게 갈 것이다.
권 총장에게 갈 때는 단순히 의 혹뿐인 이미지들이겠지만 그의 손을 통해 증거가 실존하는 범죄 로 만들어질 것이다.
한 바퀴를 전부 돌았는데, 영 속이 풀리지 않는다.
잡은 물고기 수로만 따지면 그 래도 한 바구니는 되겠다만 만족 스럽지 않다.
원래도 밤잠 설치기 일쑤인데 이대로 그냥 집에 가면 잠을 못 잔다.
태식은 마몬을 다시 끄집어내지 않았다.
마몬의 추적으로 잡아내지 못한 것은, 그 능력이 미진하기 때문 이 아니라 분류가 다르기 때문이 다.
그렇다면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 면 된다.
그리고 그에 대한 데이터는 이 미 충분하다.
지금까지 순회하며 모은 정보들 말이다.
태식은 그 기억들을 층층이 겹 쳐 쌓았다.
그러다 보면 서로 다른 그림이 지만 어울리게 들어맞는 부분이 생겨난다.
겉으로 보이기에 눈에 띄는 혐 의가 없을지라도 여럿의 범죄자 들과 연결 고리가 있다면 의심해 보는 것은 당연하다.
태식은 그렇게 겹쳐진 하나의 키워드를 골라냈다.
성착취 피해자연대 .
그것은 그 이름부터가 가슴에 불을 당기기 충분한 키워드로 가 득 차 있었다.
선행의 값 (2)
“후우우-.”
태식은 길게 숨을 골랐다.
착취라는 단어가 콕 박힌다.
발을 떼는 그 걸음부터 제발 그 러지 않기를.
착취받은 자들을 착취하는 그런 참담한 현실은 아니기를 빌어 본 다.
“미진 씨. 우리 이렇게 얼굴 마 주 보며 이야기하는 게 벌써 열 번이 넘네요.”
짙은 갈색으로 색이 바랜 나무 바닥과 여기저기서 주워 왔을 것 같은 옛날 가구들.
시골 복덕방에서 볼 것 같은 낡 은 소파와 직접 손으로 짠 레이 스 테이블보.
오래된 보육원의 손때 묻은 원 장실 같은 분위기다.
그리고 그에 어울리는 자애로운 목소리였다.
그것이 연기라면 그 어떠한 배 우도 따라잡지 못할 연기고, 가 식이라면 이미 본성이 되어 버린 가식이라 할 만했다.
“나는 우리 미진 씨가 그런 아 픔과 고통에도 이렇게 용기 있게 나서 준 것에 대해 정말로 감사 하고, 또 감사해요.”
미진의 두 손을 마주 잡고 있는 손은 분명 따뜻할 것이며 흔들림 없이 내보내는 시선 또한 분명 애틋할 것이다.
태식은 자신이 잘못 찾아왔나 싶었다. 아니, 차라리 자신이 틀 렸기를 바란 것일지도 모른다.
“선생님, 저, 그런데요. 그런데 요. 이런 말씀 드리기 정말 죄송 한데요. 이번 달 지원금이……
미진의 표정이 너무도 서글펐기 때문이다.
송구함과 부끄러움, 거기에 두 려움과 초조함이 엉망으로 뒤엉 킨 그녀의 얼굴은 부디 그녀가 의도적인 꿰임에 빠진 피해자가 아니길 바라게 했다.
“미진 씨. 알아요. 힘든 것, 우 리도 다 잘 알고 있어요. 하지만 우리 더 큰 가치를 위해 싸우고 있잖아요. 미진 씨같이 용기 있 는 사람이 앞에 나서 줘야 또 다 른 피해자를 막을 수 있어요. 우 리가, 내가 미진 씨 옆에 있잖아 요. 우리 함께 힘내 봐요.”
태식의 어금니에 힘이 바짝 들 어간다.
“저, 진짜 죄송한데요……. 생활 비가 없어서, 생활이 너무 힘들 어요. 집회 참가 때문에 아르바 이트도 찾기 어려운 거 아시잖아 요. 제 이름으로 후원금 들어온 거……. 이번 달에는 조금 더 주 시기로 하셨잖아요.”
“물론이죠. 물론이에요. 미진 씨 를 위해 들어온 소중한 후원금인 만큼 소중하게 활용해야 하잖아 요. 다른 사람들은 미진 씨와 같 은 피해를 겪지 않게 하기 위해 서. 우리 더 알리고 더 목소리를 내야 해요.”
그 음성이 애잔하다 못해 숭고 하다.
거대한 적에 맞서 싸우는 힘없 는 성자의 그것과 같다.
“우리에게, 피해자에게, 사회적 약자에게 시선을 두지 않는 저 무관심한 사람들에게. 우리가 목 소리를 내어 소리쳐야 해요. 지 금까지 함께 잘해 왔잖아요.”
거짓이 아니다.
목소리, 눈동자, 시선, 미진을 끌어안는 손짓 하나, 몸짓 한 줌.
그 무엇에도 거짓이 없다.
그렇기에 역겹다.
“저, 선생님. 그렇기는 한데 요……. 저 정말…… 차비도 없 어서 걸어 다녀요……
“미진 씨-. 세상을 바꾸는 데는 항상 고통이 수반돼요. 우리 함 께 걷고 있어요. 내가, 우리가, 항상 미진 씨와 함께 걸을……
상처 입고 기댈 곳 없는 이에게 당장 듣기 좋은 말들로 재갈을 물리는 꼴을 보고 있자니 욕지기 가 솟구친다.
도저히 더 듣지 못하겠다.
태식은 미진에게서 그녀를 거칠 게 떼어 내며 모습을 드러냈다.
“어맛. 다, 당신, 당신 뭐예요? 어떻게 들어왔어요?” 그녀는 헝클어진 머리를 매만지 며 물었다.
깜짝 놀라 비명이라도 지를 법 한데 그런 티가 없다.
숨을 집어삼킨 채 눈만 깜빡이 고 있는 미진과는 그 그릇부터 비교할 게 아니다.
그러니 손안에 든 방울마냥 얼 마나 쉬웠을까.
얼마나 우습고 얼마나 같잖았을 까. 아니, 하찮았을까.
“돈 달라잖아, 돈 달라는데 왜 딴소리만 늘어놓고 지랄이야.”
“미, 미진 씨. 이 사람 뭐예요? 설마 미진 씨랑 같이 온 거 아니 죠?”
그녀는 미진에게 의심의 시선을 보냈다.
그것은 피해자의 눈이었고 배신 당한 슬픔을 가지고 있었다.
연기가 아니다.
진짜로 배신당했다고 여기고 있 었다.
이 정도면 신념이다.
자신의 행보에 의심을 두지 않 는 철저한 신념이다.
“저, 저는 모르는 사람이에요.”
“미진 씨. 그러지 마세요. 돈 때 문에 이러는 거예요? 미진 씨 그 런 사람 아니잖아요. 다들 숨기 급급한 사람들 속에서 유일하게 용기 내 준 고마운……
“거 왜 자꾸 딴소리냐고. 사람 을 불러다 써먹었으면 돈을 주라 고. 돈을. 꼬라지 보니까 다른 일 도 못하게 맨날 잡아 돌린 것 같 구만 왜 돈을 안 줘.”
“말씀 삼가세요. 참으로 교양 없는 분이군요. 내가 사회 활동 하며 이런 경우 한두 번 겪어 본 줄 아세요? 굴하지 않습니다.”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당당하게 떠든다.
“돈 떼먹다 맞아 본 적이 없어 서 이렇게 당당한가?”
“누가 돈을 떼먹었다고 그래요! 다 쓸 곳에 썼습니다.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오는 게 쉬운 줄 아 세요? 우리의 목소리를 내기 위 해서 얼마나 많은 수고와 재화가 투입되어야 하는지……
듣고 싶지 않다.
수치심이 아닌 모멸감을 느낀다 는 듯한 얼굴도 마주하기 싫다.
당장 욱하는 성질대로라면 그대 로 갈아 내 버리고 싶은 기분이 다.
다만, 보는 눈이 있어 한 템포 참는 것이다.
태식은 미진을 보았다.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이미 버틸 수 있는 정신적 여력 이 없다.
아마 오늘 이 자리에 온 것도 큰 용기를 가지고 왔을 것이며, 대화를 이어 가는 것만으로도 부 단한 정신력을 소모했을 것이다.
쉬운 방법을 쓰자면 잠을 재우 는 게 간단하다.
자고 일어나면 상황은 모두 끝 나 있을 것이며 지금의 기억은 꿈과 같이 흐릿한 환상으로만 남 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미진에게 아무런 도움도, 치유도 되지 못한다.
무작정 이린에게 연락해 상담팀 에 넘길 것도 아니다.
“진정하십시오. 특수수사국에서 나왔습니다.”
태식은 아무렇게나 지어낸 말을 했다.
미진은 그 말을 이상하게 여기 지 않았다.
“겨, 경찰이세요?”
“비슷한 개념으로 보시면 됩니 다.”
“그럼 수, 수호단요?”
“자세히 말씀 드릴 수는 없습니 다.”
“저, 그러면요. 저도 도움받을 수 있을까요? 저도……
그녀는 태식이 당장이라도 사라 질 것처럼 조급하게 말했다.
“말씀하십시오.”
“여, 여기서요?”
경찰서에 가서 조서라도 쓰길 바라는 것일까.
당장 그렇게는 해 주지 못해도 그와 비슷한 안정감을 줄 순 있 다.
태식은 사위를 옅은 어둠으로 감싸 분위기를 차분히 가라앉혔 다.
그러곤 불빛 하나 부드럽게 켜 두고 미진과 마주 앉았다.
“편히 말씀하십시오. 지금 말씀 하시는 모든 내용은 기록되어 사 건에 주요 증언으로 활용될 것입 니다.”
경찰 흉내가 잘된 것인진 모르 겠다. 그럼에도 미진의 고개가 세차게 끄덕이는 걸 보면 비루한 연기를 걱정할 필욘 없지 싶다.
“그러니까 어디부터 말씀드려야 하냐면요……
“처음부터도 좋고, 중간부터도 좋습니다. 생각나는 대로 편히 말씀하셔도 참작되어 반영될 것 입니다.”
“네. 그러면요. 저는…… 여기 활동이 너무 힘들어요. 정말 너 무너무 힘들고……. 이게 맞는 건가 싶어요.”
“후원금 횡령 이외의 다른 것이 있습니까?”
“돈도 그렇고요. 그리고…… 다 른 곳에 가서 사람들 앞에 서는 게 너무 무서워요. 힘들어요. 수 많은 사람들 앞에서 제가 겪은 일들을 풀어내는 게, 그걸 강요 받는 게 너무 아파요. 그것 때문 에 약도 먹고 있어요.”
미진은 초췌했고 불안했다. 그 것은 누가 보아도 그렇게 느낄 정도로 극명했다.
그래서 측은하고 안타깝다.
맞다.
기아로 쓰러져 가는 아프리카 어린이와 미진은 다르지 않다.
아파야 하고, 고통스러워야 하 며, 회복되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 그것이 당위고 명분이 된다.
“힘들다고 했어요. 매번 힘들다 고 했는데……. 들어주지 않았어 요. 그럴 때마다 더 힘내자, 할 수 있다, 응원한다고 했어요. 하 지만 자료 사진까지 전시해 가면 서……. 전시회까지 열어 가면서 하는 건…… 그 자리에 저를 세 워 두고……
아슬아슬하게 걸려 있던 눈물방 울이 결국 왈칵 터져 나왔다.
태식은 눈을 질끈 감았다.
스스로 감정이 많이 올라와 있 음을 자각하고 있다.
격정에 휘둘리면 마음대로 뻗치 고자 하는 힘을 억누르지 못한 다.
오히려 발산한다.
태식은 그 발산을 저어했다.
“죄송해요. 울려고 하지 않았는 데……. 울면 안 되는데……
“괜찮습니다. 힘드시다면 애써 이야기하실 필요 없습니다. 추후 자리를 다시 마련하여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아후-. 네, 감사합니다. 아후 그녀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눈 을 훔쳤다.
“죄송합니다. 수사하시는 데 방 해 된 것 같아서……. 다음에 연 락 주세요……
몇몇이고 고개를 숙이며 자리에 서 일어났다.
축 처진 어깨로 동화처럼 꾸며 진 감옥을 빠져나간다.
“저기요. 잠시 만요.”
“ 네?”
태식은 그녀를 되부르지 않고 직접 문밖으로 나갔다.
그러곤 불쑥 손을 내밀었다.
“일단 가지고 가십시오.”
“네?”
미진은 태식의 손에 꼭 쥐여진 현금을 보았다.
반사적으로라도 나올 법한 괜찮 다는 말이 목구멍을 올라오지 못 한다.
“제가 받아도 되는 돈인가요?”
“공식적으로 가용 가능한 수사 비입니다. 출두하시는 날 차비로 쓰실 정도니 부담 가지지 않으셔 도 됩니다.”
차비도 없다고 하지 않았냐는 말보단 이게 낫지 싶다.
“아……. 네 그럼 감사히 받을 게요.”
미진은 30만 원쯤 되는 돈이 차비치고는 많은 것 같다 하지 않고 주머니에 챙겨 넣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한 20만 원 정도 더 보탤 걸 그랬다.
“저, 경찰관님, 아. 경찰 아니라 고 하셨죠. 그러면 수사관님이라 고 불러야 하나요?”
“뭐든 좋습니다.”
“저, 그러면. 앞으로 일자리 구 해도 되죠? 집회 참석 같은 거 안 해도 괜찮죠?”
“예, 그러셔도 됩니다.”
“네. 감사합니다. 혹시 명함 같 은 거 받을 수 있을까요?”
“제 명함요?”
“네. 제가 혹시 일자리를 구하 면, 먼저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 서요. 수사에 방해되면 안 되 고…… 또 저도 미리 시간을 비 워야 되고…… 과한 염려와 배려다. 다르게 보 면 눈치를 많이 보는 것이기도 하다.
“저희가 미진 씨 스케줄에 맞출 테니 그런 염려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절대 일상에 피해 가지 않도록 단단히 조치하겠습니다.”
“아……. 네. 감사합니다.”
미진은 다시 뒤돌아 계단을 내 려갔다.
건물이 길가에 있으니 바로 택 시를 잡으면 될 터인데, 굳이 지 하철역으로 향하는 것은 쥐여진 돈이 부족하기 때문일까.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에라 모 르겠다 하고 헌터 파우치 하나 쥐여 줄까 싶은 기분이다만, 그 것이 그저 스스로의 만족을 위한 값싼 동정임을 알기에 그러지 않 는다.
급할 것 없다.
누구인지 알고 있으니 그 어려 음은 차근히 해결해 주면 될 일 이다.
태식은 뒤돌았다.
이대로 끝내기엔 아직 시작도 안 했다.
태식이 손가락 쉬이 내저었다.
사무실 책장을 채우고 있는 파 일과 연보 들이 후르륵 쏟아져 그 앞에 펼쳐졌다.
자랑스럽게 아로새긴 역사와 흔 적 들이 고스란히 그 안에 기록 되어 있었다.
그 기록에는 역사의 흐름에 스 쳐 간 국회의원도 있고, 한시대 의 간판 앵커도 있다. 원로라고 대우받을 배우들도 있 었으며 이름 대면 알아줄 기업인 들도 있었다.
그들을 앞에 두고 호통치듯 연 설하는 그녀의 모습은 흡사 귀족 들을 앞에 두고 작전 지휘를 하 는 잔다르크의 모습인 양 당당하 고 신성했다.
그 시선은 자신이 쟁취해야만 하는 것이 있는 앞을 바라보고 있다.
자신 뒤에서 횃대에 꽂힌 전쟁 포로마냥 전시되어 있는 피해자 에겐 눈길 한 번 가지 않는다.
시작부터 그랬던 인물이다.
그럼에도 지금 자리한 곳이 이 낡은 사무실이라면 그녀가 청렴 한 것일까, 아니면 스쳐 지나간 위상들처럼 그녀 또한 스쳐 지나 가 버린 것일까.
둘 다 아니다.
그녀가 공고히 세운 성이 바로 이 연보이며 기록이다.
갖은 협박으로 성적 착취를 당 한 피해자를 세워 두고, 그것을 전시하며 부르짖어 쌓아 올린 피 의 성이었다.
그녀는 모든 부정한 구호 단체 의 대모였다.
선행의 값 (3)
태식의 어둠이 고개를 빳빳이 치켜들고 있는 그녀의 머리를 감 싸 쥔다.
이쯤이면 기억을 들어내는 것에 충분한 당위가 있잖나.
아니, 당위성 따위는 이미 상관 없을지도 모른다.
“뭐가 그렇게 떳떳하냐. 뭐가 그렇게 자신만만해. 반성 없는 존재가 뭐가 그렇게 결백하고 억 울해?”
“당신이 뭐라고! 당신이 뭐라고 나를 재단해. 나는 이날 평생 순 교자같이 살아왔어. 내가 누릴 수 있는 평범한 행복 따윈 버리 고 스스로 가시밭길을 선택했 어!”
“그딴 걸로 만족스러워하지 말 란 말이다!”
태식의 의식이 그녀의 기억을 헤집고 들어갔다.
뒷방으로 물러나 있는 것 같지 만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고개 를 숙이며 인사한다.
그러면 깨달음을 가진 성인이라 도 된 양 여기저기서 따온 명언 들로 훈화를 한다.
그녀 아래 많은 단체가 있고 그 단체에 수많은 사람들이 속했다.
그리고 그들의 영향력으로 움직 이는 사람의 수는 만 단위를 우 습게 넘어선다.
여론을 흔들다 못해 조성하고 휩쓸 수 있는 수다.
더욱이 봉사와 집회를 통해 행 동력이 검증되고 관계가 성립된 사람들이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군대와 다를 바 없으니, 그야말로 성주 이자 왕이다.
아니, 선지자라 불리는 게 더 즐거울 테지.
액수를 가늠할 필요 없이 들어 오는 돈은 청탁금이니, 인사란 꼬리표 없이 선행을 위한 기부금 으로 다시 퍼져 나간다.
그렇게 뿌려진 돈이 어떻게 쓰 이는지, 누구에게 흘러가는지 따 위는 중요하지 않다.
이미 자신은 선행을 실천한 것 이니 말이다.
괜한 부스럼이 무서워 증빙을 요구하지 않는 게 아니다.
비겁하게 눈 돌린 게 아니라, 아예 쳐다보지 않는 것이다.
자신은 정당하며, 순결하고, 고 결하니 말이다.
그녀의 삶과 기억에서 그 가치 는 단 한 번도 흔들린 적이 없었 다.
“이러니 걸리질 않지. 이러니 걸리질 않아.”
마몬의 탐색에 걸리지 않은 이 유를 알겠다.
마몬은 추악한 금욕에 반응한 다.
돈을 위해 남을 속이고 기만하 여 착취하는 추악함이다.
하지만 이 경우는 다르다.
스스로 부끄러움이 없다. 남을 속인다는 생각 자체가 없으니 부 끄러울 일도 없다.
그저 거룩하고 신성하기에 그 어떠한 양심의 가책도 가지지 않 는다.
하지만 그 과정은 이처럼 참담 하다.
“짓밟는 짓이다. 그걸 왜 모르 냐? 니가 하는 짓이 니가 구원하 고자 하는 사람의 상처를 짓밟는 짓인지 왜 몰라?”
“상처가 아니라, 더 나은 사회 를 위한 희생이야! 그 아이들이 희생하는 것처럼 나도 희생으로 이만큼 이끌어 왔어. 너 같은 햇 병아리가 이 사회를 위해 무슨 헌신을 했어? 니까짓 게 뭐라고 떠들어!”
그 목을 움켜쥔 태식의 손에 힘 이 바짝 들어간다.
“어떻게 이렇게 오만할 수 있 냐.”
머릿속에 부글거리며 끓어오르 는 것 같다.
애써 닫아 두었던 의식이 너무 열려 있는 탓일까.
그 흔들림 없는 시선과 수없이 많은 오만했던 것들의 시선이 겹 쳐 든다.
오만함으로 이루어진 것 같았던 그 왕족들.
단지 왕가의 핏줄을 이었다는 것만으로 스스로에게 부여한 수 없이 많은 권리와 그 권리를 당 위로 삼아 내렸던 무수한 명령 들.
그 명령하나 하나가 수천수만의 피가 되어 흐른다는 걸 당연시 여기는 그 오만함.
“그래, 거기나 여기나 다르지 않지. 세상이 다르고 시대가 변 해도 다르지 않아. 오히려 다행 이다.”
태식의 입꼬리가 말려 들어간 다.
“네가 왕이 아니라서. 군주가 아니라서. 그렇기에 오히려 이 정도에서 그쳤구나.”
왕을 참했던 기억이 엉켜든다. 가만 둘 수 없는 해악이었다. 그 래서 솎아 냈다.
지금이라고 뭐가 다를까.
봤기에 외면할 수 없고 알았으 니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또 있을 것 아닌가.
이렇게 자기 신념에 똘똘 뭉쳐 뒤돌아보지 않는 존재가 또 있을 것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