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lf Price Pawn Shop RAW novel - Chapter (46)_1
체계 (2)
“명을 완료하였습니다.”
의식 점거를 끝낸 바토리가 확 인을 요했다.
태식이 바토리의 의식 안으로 들어갔다.
그 의식 안이 물에 잉크를 뿌려 놓은 것처럼 뒤엉켜 있다.
이렇게 두면 의식이 뒤섞인다. 관리하기 힘들뿐더러, 역전 현상 이 일어나 관리자의 의식이 뒤엉 켜 버릴 수도 있다.
물론 아직은 커다란 욕조에 잉 크 한두 수저 부어 둔 정도이니 의식이 꼬일 것까지 걱정할 수준 이 아니긴 하다만 처음부터 체계 를 잘 잡아 놔야 나중에 고생을 안 한다.
태식은 사방으로 너울거리는 의 식 줄기를 한 곳으로 갈무리했 다.
깔끔하게 정리를 한 후엔 바토 리의 의식 한 부분을 잘라 냈다.
“끄윽-.”
바토리는 어금니를 악물며 삐져 나오는 신음을 참았다.
신경이 뭉텅이로 잘려 나간 것 같은 고통일 테니 바닥을 뒹굴어 도 엄살은 아니다.
“참아. 처음에 정리를 잘해 놔 야 편해.”
바토리는 대답하지 못하고 제 허벅지를 움켜쥐었다.
날카롭게 자란 손톱이 살을 파 고든다.
엄살을 핀다거나 도망가려는 느 낌이 없다.
그것은 신뢰다. 바토리는 태식 이 정말로 자신의 편의를 위해 이와 같은 조치를 한다고 믿고 있었다.
의식을 들여다보고 있으니 바토 리의 그런 믿음이 고스란히 전해 진다.
태식은 괜히 입안이 씁쓸해 담 배 한 대 빼 물곤 작업을 이어 갔다.
분리된 바토리의 의식 안에 연 결되어 있는 전마병들의 의식을 갈무리해 밀어 넣었다.
“집중해라. 너 스스로 할 수 있 어야 관리하기 편하다.”
바토리의 뿔이 검게 빛났다.
통증을 버티는 것만으로도 여력 이 없으니 본능에 따라 힘을 끌 어오는 것이다.
신하가 군주 앞에서 칼을 뽑는 행위와 같다만, 이걸 건방지다 말할 건 아니다. 왕 노릇을 할 것도 아니고 말이다.
“폴더 나누듯이 해 놓으면 된 다. 폴더라고 하면 모르나? 창고 에 책장 여러 개 두듯이 말이 야.”
태식은 의식을 여러 개로 쪼갰 다. 그 손길에 배려는 찾기 어렵 다.
의식 가르기를 끝내곤 일정하게 나뉜 의식 안으로 전마병의 의식 을 정리해 넣었다.
정리가 끝났으니 실사용을 해 볼 차례다.
연결된 의식을 타고 전마병의 의식으로 들어갔다.
확실히 부하가 적다.
이것은 개인이 가진 능력과 별 개로 이미 의식이 연결되어 거부 반응이 없기 때문이다.
태식은 이리저리 움직임을 부여 했다.
앉고, 뛰고, 바닥을 굴러 보게 했는데 착오 없이 잘 수행된다. 그리고 의식을 거둔 다음에도 수 행된 행동의 기억이 휘발되지 않 았다.
태식은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였 다.
“영감님, 덕분에 잘 잡혔습니 다.”
“그러한가? 난들 봐도 모르니.”
설명을 좀 해 달라는 표현이다. 결과가 좋으니 못 해 줄 것 없 다.
“이전의 방식대로라면 자의식 없이 저장된 명령만 수행이 가능 했어요. 능동적 판단이 불가한 거죠. 능동 판단이 가능할 정도 의 의식을 남겨 두면 강제 수행 때의 기억은 휘발되고요.”
“명령받은 행동을 한 기억이 남 지 않는다는 게지?”
“그렇죠. 그러다 보면 아무래도 기억에 공백이 생기면서 효용이 떨어지게 되거든요. 혼란스러워 하기도 하고, 연속되는 임무에 적응 못 하기도 하고요.”
“헌데 지금은?”
“지금은 명령받아 수행한 것들 도 전부 기억을 하네요. 그러면 서 자아 유지도 되고요.”
“그러면 주변 사람들은 사람이 갑자기 변한 것처럼 느끼진 않겠 구먼.”
“그렇죠. 그리고 주변에서 그런 인식을 가졌다고 해도 스스로 어 느 정도 대응이 가능할 거고요. 자신이 한 이상 행동을 다 기억 하고 있으니까요.”
“허허. 이런 기술이 있었으 면……
“왜요. 일찍 좀 쓰지 그랬냐고 요? 그래서 지금 하고 있잖아요. 누구 허락 받고 이러고 있나 모 르겠네요.”
“흠흠, 그러게 말일세. 내가 허 튼소리를 했네.” 태식은 필터만 남은 담배꽁초를 훑어 버리곤 바토리를 일으켰다.
“물은 빈 곳부터 고인다. 한번 지나친 곳이라 하여 가벼이 보지 말고 항상 새로 본다는 생각으로 주시해라.”
“예.”
“물러가라.”
바토리는 부복한 그대로 그림자 로 녹아들어 사라졌다.
“으허허허허.”
진인이 실실 웃는다.
“뭐가 그렇게 신나요?”
“아닐세. 신나기는 무슨.”
진인의 눈엔 태식과 바토리의 모습이 꼭 군왕과 신하의 모습처 럼 비추어졌다. 그러니 웃음이 난다.
“거 속 빤히 보입니다.”
“나는 귀하가 열심히 하니 그게 좋은 것이지.”
“그냥 쓰레기만 치우는 겁니다. 썩은 물이 고이는 웅덩이에 물 퍼내고 그 자리 메꾸려고 하는 것이라고요. 괜한 생각 하지 마 세요.”
“아무 말도 안 했네. 그저 일이 잘되니 즐거워서 웃은 게야. 자 네 말마따나 이 사회 지천에 널 린 쓰레기를 치우는 일인데 기분 이 좋지. 아, 그러면 그 작자들은 어떻게 할까?”
은근히 말을 돌리는 걸 계속 꼬 투리 잡기도 그렇다.
“누구요?”
“그 왜, 휴전선 안쪽에 넣어 둔 놈들이 있지 않나.”
“이미 매립한 쓰레기인데 굳이 파낼 필요 없잖아요. 아직 치울 거 많을 텐데.”
“허긴, 그렇구먼.”
어차피 말 돌리자고 꺼낸 것이 니 아무렴 상관없다.
“그러면 알겠네. 앞으로도 이런 경우 있으면 말씀 주시게. 내 두 팔 걷고 일하겠네.”
“예〜 예〜. 고생하셨어요. 들어 가세요.”
진인이 잠시 머뭇거린다. 입술 이 움찔거리는 게 무슨 말을 하 고 싶은 투다.
“망설이면서 말할 것 같으면 그 냥 말하지 마세요. 무슨 말 할지 뻔히 알 것 같으니까.”
“허허. 내 아무 말도 안 했네. 그럼 먼저 일어남세. 수고하셨 네.”
핀잔 한 번 더 듣고 나서야 두 루미로 변해 날아갔다.
“후우-.”
태식은 긴 숨 한 번으로 섬에 가득 찬 안개를 흩어 버렸다.
달이 높아서 그런가 밤이 밝다.
어둠이 내려도 빛은 있다. 그것 은 빛이 들이쳐도 그림자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모든 세상을 빛으로 가득 차게 할 수 없는 일이고 반대로 어둠 으로만 메울 수도 없는 일이다.
태양이 기울면 빛이 있던 곳에 그림자가 지는 것처럼, 시시각각 변하는 게 세상이다.
사람이라고 다르지 않다.
착했던 이가 타락하기도 하고 악했던 이가 회개하기도 한다.
또한 빛과 어둠이 공존하듯, 한 사람에게서도 선과 악이 공존한 다.
누군가에겐 더 없이 자애로운 사람이 또 누군가에겐 그보다 더 한 악당이 없는 것처럼 말이다.
태식은 그러한 흐름은 자연의 법칙 그대로라 사람의 힘으로 거 스르지 못한다고 여기는 편이었 다.
“ 어설프네……
태식은 자조했다.
이미 선을 넘겼다.
그 이전부터도 오지랖 한 번씩 피울 때마다 이 정도는 괜찮겠 지, 이쯤은 상관없겠지 하며 조 금씩 넘었더랬다.
마왕 놈이 꿈마다 찾아와 같은 말을 늘어놓는 것이 왜 그렇겠 나.
그만큼 그 말에 매여 있고 의식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선을 넘는 것에 대한 의 식은 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돌 아갈 생각은 하지 않았다.
돌아갈 노력도 하지 않았고 되 돌리려 하지도 않았다.
이미 넘겨 버린 선에서 점점 더 멀리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 고 있었지만 일부러 뒤돌아보지 않았다.
그나마 막연해지라고. 정확하게 그 간격을 가늠하면 혹여나 깜짝 놀라 뒤로 뛰어갈까 봐.
그러면 지금까지 해 둔 것이 물 거품이 되잖나.
그래서 뭉뚱그리고 있었다.
그렇게 한 발씩 건너오던 게, 이젠 진짜 선을 넘겨 버린 기분 이다.
바토리를 현신시키면서 말이다.
“하여간 어설퍼.”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뭔가 더 가열 차게 나아가고 싶은 기분은 딱히 아니다.
선을 넘었다고 해서 갑자기 전 력 질주를 해야 되는 건 또 아니 지 않나.
그러니 이것도 어설프다.
로아에서도 이랬더랬다.
왕족들을 멸하고자 했으면 신분 제를 뿌리 뽑아 없애 버린다는 각오로 쓸어 버렸어야 했었다.
마왕을 패퇴시키기 전에 먼저 원로회를 장악하고 모든 국가를 통일하여 하나의 정치 체계로 수 렴시켜야 했었다.
오롯이 정점에 올라 모든 힘을 휘어 쥐어야 했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죄짓지 않은 이들을 단지 정치 적인 이유로 참한다는 게 내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탓에 전쟁 내내 골 아프게 시달렸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결 과가 딱히 배드 엔딩인 건 아니 었다.
어찌 되었든 마왕을 참하였고 자신은 집에 돌아왔으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지금 서 있는 이곳이 로아가 아 니라는 것만 해도 그 다름의 근 거는 차고 넘친다.
“마몬, 마몬. 나와 봐라.”
태식은 마몬을 부르며 길을 내 어 줬다.
“부르셨나이까. 령주시여.”
마몬이 그 앞에 부복한다. 전에 비해 이렇다 하게 뿔이 자라지 않았다.
스스로 자제하고 있는 게 느껴 진다.
“바토리 봤냐?”
“아••••••
마몬의 눈동자가 빙글빙글 돈 다.
“그 냄새가 느껴지긴 하옵니 다.”
“ 인사할래?”
대장군들 사이에서 마몬은 시건 방진 녀석이란 평이었다.
마몬은 바토리를 굳이 마주하고 싶지 않다만 태식이 말하니 거절 할 수 없다.
“명이시라면 받들겠습니다.”
태식은 다시 바토리를 불러냈 다.
“오랜만입니다.”
품계가 낮은 마몬이 먼저 고개 를 숙였다.
바토리는 티 나지 않을 정도로 고개만 살짝 끄덕였다.
바토리로서는 돈으로 쪼아 대던 마몬이 그다지 반가운 얼굴은 아 니다.
“타지에서 고향 사람 만났는데 반갑지 않아?”
“령주께서 말씀하시는 바는 이 해하오나, 저와 마몬은 근원이 다릅니다.”
그 근원이 바로 자신이다.
“너희는 그런 식으로 내외 하는 구나. 그건 또 몰랐네.”
태식이 손을 휘 저었다. 바토리 가 그 손짓에 물러갔다.
불러내는 것도 돌려보내는 것도 쉽다.
“령주시여.” 마몬이 바닥에 이마를 대며 조 아렸다.
“왜?”
“저 또한 령주의 권속으로 다시 태어나고 싶습니다!”
“허이구-.”
마몬의 품계가 바토리보다 낮다 곤 하나 녀석도 군단장으로서의 품계가 있다.
자신과 다른 바토리의 근원을 알아볼 정도는 되고, 그 근원이 태식이란 것도 느낄 수 있음이 다.
“권좌에 오르신 령주께 충정 을……”
마몬이 스스로 뿔을 부여 쥐었 다. 가만 두면 뽑아 바쳐 올릴 판이다.
“그놈에 권좌는-.”
태식은 마몬을 둥실 띄웠다. 그 러곤 그 짜리몽땅한 녀석을 빤히 쳐다본다.
“려, 령주시여……
마몬은 물방울에 갇힌 개구리마 냥 버둥거렸다.
“잘못이 있다면 용서를…… 망설임이든 두려움이든 지금까 지 의식하지 않으며 여기까지 왔 다.
그런데 이제야 바짝 의식이 되 는 것은 겁을 집어먹었기 때문일 까.
웃긴 일이다.
자신의 손으로 마왕을 참했는데 새삼 두려워질 게 뭐라고 겁을 먹을까.
“마몬.”
“예, 령주시여.”
“너 종마로 둔 인간들 있지?”
“예, 있습니다. 하, 하오나 생을 갈취할 정도는 하지 않았습니다. 령주께서 인간을 아끼시는 바, 정혈에 손상을 주지 않는 선에서 넓고 얕게……
“됐고. 실한 놈으로 몇 놈 찍어 봐.”
“용서를-.”
겁을 집어먹은 마몬이 스스로 뿔을 뽑으려 했다.
아주 충성심에 눈물이 날 지경 이다.
“말을 하면 좀 들어라. 쓸데없 는 짓 하지 말고.”
태식은 마몬을 묶어 두곤 그 기 억을 훑어 좌표를 찍어 냈다.
그렇게 다섯의 사람을 꺼냈다.
하나같이 볼살 늘어지고 아랫배 가 두둑하다.
간단히 기억을 훑어보니 아주 가관이다.
고위 관료인 자들이 왜 장기 매 매에 손을 대고 있는지는 모르겠 다만 기억을 보자니 그렇다.
교도소에 수감 중인 죄수를 자 의든 타의든 사망 상태로 만들어 장기를 빼서 파는 것이다.
애당초 그렇게 희생당한 죄수들 이 진짜 죄를 지어 수감 된 것인 지도 애매하다.
알아보려거든 더 깊은 기억을 헤집고 들어가야 할 텐데, 지금 상황에선 별 의미 없는 짓이다.
“되긴 할 것 같은데……. 진짜 되면 어 이걸 웃어야 되나, 울어 야 되나.”
태식은 그 다섯을 어둠으로 감 싸 한데 묶어 마몬과 마주 보게 두었다.
그러곤 도미니오를 꺼내 마몬을 겨누었다.
“령주시여. 령주시여!”
“눈 딱 감고 있어라.”
태식이 뻗은 도미니오가 마몬을 집어삼켰다.
“령주시여!”
체계 (3)
도미니오에 휘감긴 마몬의 육신 이 검은 연기로 녹아내렸다.
협곡의 칼바람 휘감기는 듯한 바람 소리가 귓전을 때린다.
그것이 꼭 소리 없는 영혼의 비 명 같다.
태식은 마몬의 기운을 빨아들였 다. 그러곤 자신의 힘과 엮어 매 개체가 될 제물로 밀어 넣었다.
그들은 가슴을 움켜쥐며 고통에 몸부림쳤다.
피를 토하는 절규가 메아리친 다.
로아에서 경험했던 숭배의 모습 과 퍽 비슷하다.
아무렴 상관없다.